윤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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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汲
1697~1770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자는 경유(景孺), 호는 근암(近庵), 본관은 해평(海平).
윤두수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윤세수이다.


1. 생애[편집]


172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그해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하지만 이 때 시권의 비봉[1]에 나이와 본관을 쓰지 않아 격식 위배로 탈락하였으나, 헌납 채응복의 상소로 구제되었다.

영조의 탕평책을 계속 반대하여 자주 파직, 좌천되었으나 의로운 주장이 많아서 곧 서용되곤 하였다.


2. 여담[편집]


  • 보물 제1496호로 그의 초상이 전해지는데, 변상벽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 글씨가 뛰어나 윤상서체(尹尙書體)란 독특한 서체를 이루었다.
  • 부리던 하인 중 임오화변의 고변자 나경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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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祕封: 시험지 끝에 응시자 본인의 관직·이름·본관·거주지 및 부·조·증조의 관직 이름, 외조의 관직 이름과 본관 등을 다섯 줄로 쓴 뒤, 관원들이 응시자의 이름을 알아볼 수 없도록 그 위를 종이로 붙여 봉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