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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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한국에서
2.1. 고려
2.2. 조선
3. 중국에서
3.1. 당


1. 개요[편집]


도호부(都護府)는 중국의 군정기관이자 한국고려조선 시대의 행정기관. 고려왕조 때부터 신설되어 구한말까지 존속했던 곳으로 도읍행정, 치안을 맡았다.

원래 도호부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새로 정복한 이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변방에 둔 군정기구를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이 이름을 고려에서 일반 행정구역에도 붙이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도 보편화되었다.


2. 한국에서[편집]



2.1. 고려[편집]


전 왕조 통일신라의 행정구역을 후삼국을 재통일한 고려가 계승했지만, 신라는 수도 서라벌을 중심으로 중앙정부의 일원적 행정력이 강하고 지방세력을 발달하지 못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행정구역도 주(한 지방의 중심도시)-군(큰 동네)-현(작은 동네)으로 간결하게 구성했었다. 그에 비해 고려는 건국부터 호족 연합체로 시작했고 초기 고려는 다양한 지방세력이 다양한 급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행정구역 구분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군보다 위의 부를 고려 태조대에 신설하고, 그 부 위의 도호부는 고려 성종 14년(서기 995년)에 신설되었다. 처음에는 안동도호부(현 경주시), 안서도호부(현 해주시), 안남도호부(현 전주시), 안북도호부(안북부, 현 안주시) 네 곳에 도호부를 설치했으나 경주와 전주도호부를 폐지하고 안변군(현 안변), 안남(현 부평), 안동시(현 안동) 세 곳을 새로 설치 이치하면서 5곳이 되었고 이후에 대도호부, 중도호부로 분리하였다.

목사와 같은 정3품의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가 다스렸다. 원래 중국의 도호부, 도독부 제도에서의 장은 도호, 도독으로 불렸는데 한국에서 현지화되면서 도독부사, 도호부사로 불렸으며 대도호부사와 도호부사는 고을 이름 뒤에 붙일 때는 '부사'(府使)로 줄여서 부르기도 했다.[1] 마찬가지로 대도호부, 도호부 자체도 '부'로 줄여서 불렀다.

도호부의 수장은 지방 주지사이며 군지사, 현령관이 다스린다. 주로 고려 3품 이상, 4품 이상부터 관직을 맡아왔고 조선왕조 때 일부 도호부가 폐지되었거나 설치되었다.


2.2. 조선[편집]


조선 도호부 중 제일 규모가 큰 곳을 대도호부(大都護府)라 하였는데 안동, 강릉, 영흥, 영변, 창원 5곳이 지정되었으며[2], 오늘날로 치면 특례시 정도 되겠다.

이보다 낮은 도호부(都護府)는 종3품 도호부사(都護府使)가 다스렸다. 부, 대도호부는 중요 지역에만 특별히 지정되었지만, 도호부는 군의 인구가 많아지면 승격하는 식이라 그 수가 계속 증가하였다. 안주, 북청, 길주부사는 절도사가 겸임했다.

경기도 8곳, 충청도 1곳, 경상도 14곳, 전라도 7곳, 황해도 6곳, 강원도 7곳, 함경도 18곳, 평안도 14곳 등 75개 도호부가 있었다. 1896년 23부제 개편 당시 도 산하의 행정구역이 모두 으로 일원화되면서 폐지됐다.

3. 중국에서[편집]



3.1. 당[편집]






은 정복전쟁을 통해 강역을 넓혀갔으며, 이민족을 통치하기 위하여 6개의 도호부를 두었다. 한국사와 직접 관련있는 안동도호부삼국통일전쟁 이후 당이 차지한 동쪽의 경계였던 고구려최대도시, 평양에 설치되었으나 나당전쟁 이후 강역이 줄어듦에 따라 요동으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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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 대한민국에서 '○○광역시장'을 줄여 그저 '○○시장'이라고 곧잘 통용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2] 안동은 정조시기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되어 대도호부에서 강등당한 전적이 있다. 영흥은 원래 윤급 부였는데 감영이 함흥으로 옮겨가면서 격하되었다. 그러다가 영흥이 도호부로 또 강등되면서 생긴 공석을 채운것이 창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