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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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왕(彭城王)
劉翼 | 유익

시호
없음
작위
팽성왕(彭城王)

(劉)

(翼)

불명
생몰
불명
출신
병주(幷州) 신흥군(新興郡)
부황
열종 소무황제( 烈宗 昭武帝)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전조의 황족. 소무제 유총의 20명의 아들들 중 하나.


2. 생애[편집]


유익은 용맹하고 날렵하여, 할아버지 유연이 한(漢)을 건국할 때 그를 섬기며 별장(別將)으로 활약하였다. 유익의 용력은 보통 사람 이상이라 한 손으로 전각의 기둥을 들어올릴 정도로 근육이 많았으며, 사격에도 특출난 재능을 보였다. 심지어 다리의 힘도 좋아서 평양성의 문을 뛰어넘을 정도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런 유익을 보고 관우, 장비에 비견된다 평하였다. 유연 역시 유익의 용맹을 범상치 않게 여겨 정로장군으로 삼았다.

광흥 원년(310년) 7월, 북해왕·무군대장군 유예(劉乂)가 제위를 굳게 마다하여 초왕 유총이 황제로 즉위하였다. 소무제 유총은 차남 유찬을 비롯한 여러 아들들을 왕위에 올렸는데, 이때 유익 역시 팽성왕(彭城王)에 봉해졌다.

가평 2년(312년) 6월, 소무제 유총이 하간왕 유이(劉易)를 거기장군, 팽성왕 유익을 위장군으로 삼아, 함께 황궁의 금군을 통솔케 하고 궁중에서 숙영하도록 하였다. 또, 고평왕 유괴(劉悝)를 정남장군에 임명해 과거 도읍이었던 이석(離石)에 주둔시켰고, 제남왕 유기(劉驥)를 정서장군에 임명해 도읍 평양 근교에 서평성(西平城)을 축성케 하였으며, 위왕 유조(劉操)를 정동장군에 임명해 평양 북서쪽에 위치한 포자(蒲子)를 진수케 하였다. 이로써 유총은 황자들에게 각기 군권을 쥐어주어 권력을 확고히 다지고자 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근준이 유총의 황자들을 몰살시킨 바 있어 318년보다 오래 살지는 못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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