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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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平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수.

220년에 조조가 죽자 국연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항복했지만 다시 반란을 일으킬 때 장진, 황화 등이 호응해 세력이 점점 커지자 무위 태수 관구흥이 원군을 요청하면서 조서를 받고 학소와 함께 금성에 있었다.

231년에 제갈량이 기산을 공격하면서 사마의를 상규에서 공격하려고 했는데, 제갈량이 곽회, 비요 등을 격파한 뒤에 사마의가 교전에 응하지 않자 퇴각했고 사마의는 제갈량을 뒤쫓아 노성에 이르렀다가 산에 올라 영채를 세우고 싸우려 하지 않았다. 이 때 위평은 가허와 함께 여러 차례 싸우기를 청했고 모든 제장들이 싸울 것을 요청하면서 사마의가 출진했다가 위연, 고상, 오반 등의 공격을 받아 패한다.


2. 창작물에서[편집]




2.1. 삼국전투기[편집]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의 카와로 등장하며, 동료 가허와 기산 전투 (5)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소개컷에서는 학소와 세트 메뉴였던 위평은 학소의 메이저 진입과 함께 새로운 파트너인 가허를 찾았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본작에서는 학소와 위평의 세트 시절은 딱히 나오지 않았다.

기산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위연이 나와서 싸우라고 도발할 때 사마의가 가만히 있자 모욕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어야만 하니 이럴 바엔 우리가 이 멀리까지 나올 이유가 없지 않냐고 했으며, 가허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하자 이에 동조하며 성질을 냈다.

결국 사마의가 공격을 명하면서 촉군과 싸우러 나갔다가 오반에게 죽었으며, 이를 본 위연이 오반에게 누가 내 먹이를 먹으라고 했냐고 한다. 오반: 아... 아직 제일 맛있는 게 남았잖아요.


2.2. 대군사 사마의[편집]


사마의가 황명으로 검각을 통해 군사를 둘로 나누어 퇴각하는 촉군을 추격하기 위해 장합이 선봉으로 세우면서 사마의의 명으로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장합의 뒤를 따르라는 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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