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의 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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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燕王盧綰反入<匈>奴 燕人魏滿亡命 聚黨千餘人 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障 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 王之 都王儉(李曰 地名 臣<瓚>曰 王儉城 在樂浪郡浿水之東) 以兵滅 侵降其旁小邑 眞番臨屯 皆來服屬 方數千里 傳子至孫右渠(師古曰 孫名右渠) 眞番辰國 欲上書見天子 雍閼不通(師古曰 辰謂辰韓也) 元封二年 漢使涉何諭右渠 終不肯奉詔 何去至界 臨浿水

연왕(燕王) 노관(盧綰)이 배반하여 흉노(匈奴)에 들어가자 연(燕)나라 사람 위만(魏滿)은 망명했는데, 무리 1,000여 인을 모아 동쪽으로 요새를 넘어 도망하여 패수(浿水)를 건너 진(秦)의 옛 빈 땅에 있던 위 아래의 장새에 살았다. 점차 진번(眞蕃)·조선(朝鮮)의 만이(蠻夷)와 옛 연(燕)과 제(齊)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왕이 되어 왕검(王儉){이(李)는 지명이라 했고, 신찬(臣瓚)은 왕검성(王儉城)이 낙랑군(樂浪郡)의 패수(浿水) 동쪽에 있다고 했다.}에 도읍했다.

반고(班固), 二十四史 - <조선전>(朝鮮傳) 中


1. 개요
2. 배경과 주요 내용 및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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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연왕 노관이 한나라를 배신하고 흉노로 망명했을 때, 고조선으로 망명한 위만이 고조선의 서북지역을 지키다가 반란을 일으킨 후 준왕을 몰아내고서 위만조선을 건국한 사건이다. 기록상 전해지는 한국사 최초의 쿠데타이자 역성혁명이다.


2. 배경과 주요 내용 및 전개[편집]


기원전 202년경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전한을 성립시킨 한고제 유방의 대규모 숙청 사태 당시 연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이자 위만은 1,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연나라 땅에서 동쪽에 인접한 고조선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이후 위만은 준왕의 신임을 얻어가면서 서북 국경 지역을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이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나간 위만은, 준왕을 몰아내고서 왕위를 빼앗아 위만조선을 건국하고 도읍을 왕검성(王儉城)에 정했다.
위만이 나라를 세울 무렵 한나라는 건국 초기인데다가 흉노족의 위협을 받았으므로 조선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이에 위만은 진번(眞番), 임둔(臨屯) 등의 주변 지역을 복속하고 세력을 키워, 조선을 수천 리에 달하는 지역을 다스리는 강국으로 성장시켰으며, 손자인 우거왕에 이르러서는 그 세력이 더욱 커졌다.

위만은 복속한 지역들의 안정화를 취하는 통치방식을 활용하여, 기원진 108년에 멸망하기 이전까지 위만조선의 국경을 유지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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