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슬링겐의 콘라트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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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rad I von Urslingen
생몰년도
미상 ~ 1202년
출생지
우르슬링겐
사망지
시칠리아
재위 기간
1177년 - 1190년, 1195년 - 1198년(스폴레토 공작)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스폴레토 공국 58, 60대 공작.


2. 행적[편집]


우르슬링겐 출신으로, 토스카나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대리인을 맡고 있던 크리스티안 1세 폰 부흐의 행정 관료였다. 1174년 크리스티안이 공략한 아시시의 백작으로 선임되었다. 1177년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로부터 스폴레토 공작에 선임되었다. 1185년 프리드리히 1세의 아들 하인리히 6세의 약혼자인 시칠리아 왕국의 공주 쿠스탄차를 리에티에서 맞이한 뒤 독일로 이송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1188년 하인리히 6세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동행했다.

1190년 구엘프파가 스폴레토에서 봉기하여 그를 쫓아내고 판둘프 2세를 새 공작으로 세웠다. 이후 시칠리아로 건너가서 하인리히 6세와 쿠스탄차의 아들인 프리드리히 2세를 보좌했으며, 1195년 쿠스탄차로부터 시칠리아 왕국 총독에 선임되었다. 1195년 하인리히 5세가 스폴레토를 탈환하면서 스폴레토 공작에 복위했지만, 1197년 9월 28일 하인리히 4세가 시칠리아 반란 진압을 수행하던 중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해버리면서 입지가 급속도로 약해졌다. 그는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봉신을 자처하며 직위를 유지하려 했지만 결국 1198년 구엘프 파에 밀려 독일로 달아났다.

이후 슈바벤의 필리프 궁정에서 근무하던 그는 1202년 필리프의 지시를 받들어 시칠리아 섭정으로 부임하러 갔으나 시칠리아에 상륙한 직후에 사망했다. 사후 그의 아들 우르슬링겐의 콘라트 2세, 우르슬링겐의 하인리히, 우르슬링겐의 레이날트 1세가 잇따라 스폴레토 공작을 자칭했지만 실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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