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혜(광평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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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王譓
(? ~ 1285)

1. 개요[편집]


고려의 왕족. 희종의 아들인 경원공(慶原公) 왕조(王祚)의 장남이다. 초명은 왕순(王恂)이었고, 이후 왕혜(王譓)로 바꾼다.


2. 생애[편집]


원종 6년(1265) 1월 대장군 김방경, 중서사인 장일 등과 원나라에 조공 사절로 간다. 광평군 등은 원나라에서 후대를 받고 같은 해 5월에 고려로 돌아온다. 원종 말년에는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고 개선하는 김방경을 개경의 교외에서 마중할 예정이었으나, 김방경이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자 마자 달려와 그 예정은 취소된다.

충렬왕 즉위년(1274) 서북면에서 원나라의 공주를 맞이하려는 왕을 수행한다. 충렬왕 4년(1278) 압록강을 건너온 왕을 마중해 흰 모시를 바쳤으며, 충렬왕 5년(1279)에는 원나라에서 온 사신들과 함께 경상도, 전라도에 파견돼 동정(東征)에 사용할 전함 건조를 감독한다.

광평공은 일찍이 고려의 먼 왕족인 낭장 왕연(王涓)의 노비를 빼앗는데, 원나라에서 관직을 지내는 왕연의 사위 김신(金侁)이 소송을 걸어 노비를 되찾는다. 2차 일본 원정에서 김신이 익사하자 광평공은 노비를 다시 뺏어 제국대장공주에게 바친다. 광평공은 이 노비들을 바치기 전에 자기 노비들과 결혼을 맺게 해 그 수가 3백여 명이었다. 제국대장공주는 이를 알고 자기가 받을 노비에 더해 이들과 결혼한 광평공의 노비까지 모두 취한다. 광평공은 궁문에 머리를 찧어가며 노비를 돌려달라고 간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충렬왕 11년(1285) 죽는다. 광평공의 재물은 모두 몰수돼 왕실 창고에 들어간다.


3. 가족관계[편집]


사촌형제 원종과 경창궁주의 딸인 함녕궁주와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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