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프리트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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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프리트 5세
Kaiser Otfried von Goldenbaum V

인물 정보
신체 정보
남성
생몰년
SE ??? ~ SE 765(??년)
재위
SE ??? ~ SE 765(??년)
가족 관계
리하르트(장남), 프리드리히 4세(차남) 클레멘트(삼남)
아말리에 폰 브라운슈바이크(손녀), 크리스티네 폰 리텐하임(손녀), 루트비히(손자)
에르빈 요제프 2세(증손자),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증손녀), 자비네 폰 리텐하임(증손녀)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외손자), 카타린 케트헨 폰 페크니츠(외증손녀)
국적 및 소속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최종 직책
은하제국 황제

파일:Goldenbaum-Dynasty.png 골덴바움 왕조 역대 황제 파일:Goldenbaum-Dynasty.png
오토하인츠 2세

오토프리트 5세

프리드리히 4세

1. 개요
2. 작중 행적
2.1. 재위
2.2. 죽음
3. 여담



1. 개요[편집]


Kaiser Otfried von Goldenbaum V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골덴바움 왕조의 35대 황제이다.

OVA에서는 프리드리히 4세의 즉위배경을 소개하는 파트에서 병상에 누운 모습으로 짤막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얼굴은 확인하기 힘들다.

2. 작중 행적[편집]



2.1. 재위[편집]


타고난 절약정신으로 제국재정을 흑자로 만든 황제. 완전히 수전노에 가까웠다고 한다. 참고로 황제가 죽을 때 황실 재정의 흑자 규모는 이때까지 쌓아온 제국 재정의 적자를 일시에 메꾸고도 남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아껴야 잘 살지. 원래 재정은 뭘 해도 흑자보다 적자가 더 쉽고 특히나 자유행성동맹과의 전쟁에 제2차 티아마트 회전으로 인해 장성 60명이 전사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은 제국군을 복구하는데 든 비용부터, 이제르론 요새 건설비까지 합치면 당시에 돈 나갈 구석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을텐데도 오히려 재정흑자를 달성했다는 것은 단순히 아끼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1][2] 즉, 오토프리트 5세는 절약 외에도 다른 여러가지 정책을 이용해 제국의 재정을 매우 일신화시킨 명군이였던 것.

군사적인 면에서도 업적을 남겼는데, 바로 이제르론 요새가 이 시기(제국력 454 ~ 458년, 우주력 763 ~ 767년)에 건설 되었다.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완패한 은하제국군은 백여년 전 '패군제' 프리드리히 3세 시절 슈테판 폰 바르트바펠 후작이 제안한 대규모 거점지를 건설하는 계획을 꺼내들었고, 오토프리트 5세는 중신 세바스티안 폰 뤼데리츠 백작에게 요새 건설을 명하였다. 그러나 요새를 건설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 오토프리트 5세는 몇 번이고 요새 건설을 중단하려 했다. 결국 뤼데리츠 백작은 예정 이상의 비용이 드는 바람에 책임을 지고 자살했다. 어찌되었든 이제르론 요새는 완공되었고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까지 29년간 자유행성동맹군의 공세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허나 이후에는 민주공화주의세력이 쏠쏠하게 써먹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


2.2. 죽음[편집]


오토프리트 5세는 슬하의 자식으로 아들 3명을 두었다. 순서대로 장남이자 황태자 리하르트, 차남 프리드리히, 삼남 클레멘트. 이들 중 리하르트는 근면하고 교양이 풍부했으며, 클레멘트는 행동력이 뛰어났다. 반면 프리드리히는 형과 동생에 밀려 어느 신하의 지지도 받지 않았다. 특히 프리드리히는 본인의 아버지와는 달리 유흥을 즐겼고, 오토프리트 5세는 구두쇠답게 아들에게 충분한 유흥비를 주지 않았다. 그 덕에 프리드리히는 항상 유흥비가 부족해서 고급 매춘부며 술집에게 54만 제국마르크씩이나 외상빚이 있었으며, 명색에 대공이자 황제의 차남이면서 빚쟁이들에게 쫓기거나 외상을 못 갚아서 가게 '뷔르거'의 주인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프리드리히의 행태는 당대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궁정은 리하르트를 지지하는 파벌과 클레멘트를 지지하는 파벌로 나뉘었다. 두 파벌을 지지하는 신하들은 새 시대의 특권을 두고 다투었으며, 리하르트와 클레멘트도 어느새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제국력 452년에 황태자 리하르트가 오토프리트 5세의 암살을 꾀했다가 적발되었다. 이로 인해 리하르트는 반역죄로 처형당했으며, 그를 지지하던 신하 60명도 처형당했다. 그런데 제국력 455년에 리하르트의 혐의가 사실은 클레멘트 일파가 뒤집어 씌운 모함임이 드러나 클레멘트를 지지하는 신하 170명이 숙청당했다. 클레멘트는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을 시도했으나, '우연한' 사고로 우주선과 함께 폭사해 시신조차 남지 않고 사망했다.

이렇게 유력한 제위계승자들이 사이좋게 공멸하면서, 오토프리트 5세에게 남은 사람은 누구의 기대도 받지 않은 프리드리히였다. 이윽고 오토프리트 5세가 심장병으로 사망하자, 프리드리히 대공이 프리드리히 4세로서 은하제국 36대 황제에 올랐다. 그리고 오토프리트 5세가 이룩했던 흑자재정은 프리드리히 4세가 토목건축으로 탕진했다. 그나마 프리드리히 4세는 '치우제' 지기스문트 2세처럼 개념이 아주 없지는 않아서, 그의 치세에 제국이 파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3. 여담[편집]


  • 역사상의 모델은 딱히 없어보이나, 로마 제국의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 황제와 은근히 비슷하다. 수전노에 가까울 정도로 구두쇠라는 점과 치세 자체는 나름대로의 명군이라는 평가를 받는 등. 그 외에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도 비슷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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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슷하게 에도 시대의 요네자와 번은 우에스기 가문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본디 우에스기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해 고쿠다카가 1/4로 깎인데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가신단은 그대로 유지해 재정적으로 힘들 수 밖에 없어 대대로 재정난에 시달렸고 심지어 안 그래도 적은 석고가 또 반토막이 나기까지 했다. 우에스기 가문은 이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절약도 하고 로비도 해보고 했지만 재정난을 극복하지 못했다가 9대 번주인 우에스기 요잔이 식산흥업과 복지정책, 의식개혁을 일으켜 그의 재임 말기에 요네자와 번의 모든 빚을 갚는데 성공했다. 즉 단순히 아끼기만 한다고 되는게 아닌 셈. 물론 차우셰스쿠는 진짜로 그렇게 하긴 했는데 그 덕에 나라 사정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쪽은 수출만 하고 수입은 안 하는 방침으로만 나갔기 때문.[2] 물론 진짜로 절약으로 나라 재정을 키운 왕이 없지는 않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정말로 극단적인 절약을 통해 재정을 마련했고 이 재정으로 군대를 키웠다. 그는 아버지가 지은 사치스러운 궁전에 살았지만 궁전의 일부만 사용했고 아버지의 사치품을 몽땅 팔아 재정으로 돌렸으며 로코코 풍의 옷은 비싸다며 군복만 입었고 역시 돈아깝다고 서민용 싸구려 담배를 피우고 전투 식량만 먹었으며 이것도 아까웠는지 귀족들을 상대로 무전취식을 하기도 했다. 취미도 있긴 했지만 돈이 안 든다는 이유로 산책이 취미였다. 이러다 보니 평생 남에게 돈을 준 것도 세번 뿐이고 그나마도 푼돈이라 당대 유럽 군주들의 비웃음을 샀다.[3] 이 경우 자기 후계자와 사이가 끝장나게 안 좋았다는 점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