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혁/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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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오그던 3차 월드컵
3. 상하이 4차 월드컵
5. 이후



1. 개요[편집]


파일:2010 남자 양궁 국가대표팀.jpg
오진혁, 임동현, 김우진
오진혁2011년 국제 대회 활약을 정리한 문서.

2010년 한국 양궁 국가대표팀에 변화가 있다면 직전 시즌 세계선수권 우승자였던 이창환이 상위 3인 안에 들지 못하고 고등학생 김우진이 새로 발탁되었다. 따라서 아시안 게임에서 1번 사수 임동현과 3번 사수 오진혁은 그대로, 2번 이창환의 자리를 김우진이 이어받는다. 또한 올 시즌부터 혼성 단체전개인전 세트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2. 오그던 3차 월드컵[편집]


  • 랭킹 라운드
오진혁은 678점이라는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며 3위에 오른다. 1위는 임동현, 그리고 고교 궁사 김우진은 5위를 기록했고, 이창환은 16위를 기록했다. 또한 2위 자리에는 올 시즌 16연승 포함 개인전 17승 1패로 기량을 만개한 기록 중인 미국의 브래디 엘리슨이 위치했다.

  • 남자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하였다.[1]

  • 혼성 단체전
랭킹 라운드 3위를 한 오진혁과 1위 김문정이 팀을 이뤄 출전하였고, 결승에서 영국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 남자 개인전
랭킹 라운드 3위 오진혁은 4위까지 주어지는 64강전 부전승 혜택을 받아가고 인도 선수와 현 스페인 팀의 감독을 역임한 엘리아스 쿠에스타를 이겨 8강 자리까지 진출한다. 8강전 상대는 아테네 올림픽 8강전에서 박경모를 꺾고 이후 동메달을 획득한 티머시 존 커디. 커디는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자 잠시 은퇴하였으나, 이번 시즌 1월 은퇴를 번복하고 국제 무대에 돌아왔다. 이전 시즌부터 국제 대회에 완전히 자리잡은 오진혁은 커디를 6:0으로 제압하고 4강전 캐나다의 크리스핀 듀에니어스와 상대한다. [2] 3세트에서 끝난 이전 경기와는 달리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다 역시 7:3으로 오진혁의 승리. 그렇게 상하이 4차 월드컵 이후 1년만에 결승에 진출한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만날 또다른 선수는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른 김우진. 두 선수는 한국의 양궁 수준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듯 4세트까지 승부의 결론을 내지 못하지만, 5세트 김우진이 승리하여 오진혁은 3차 월드컵 개인전 은메달을 획득, 처음으로 3종목을 출전한 대회에서 모든 메달을 획득한다.

이 대회에서 김우진이 금메달, 오진혁은 은메달, 임동현은 동메달을 획득 대한민국은 작년 세계선수권에서 놓친 포디움 스윕을 달성하게 된다. 여기서 멈추지 않은 대한민국은 여자부에서도 1위 김문정, 2위 기보배, 3위 윤옥희, 4위 주현정이라는 화려한 성과를 내며 남녀 동반 포디움 스윕을 달성, 4개 종목[3]에서 금메달 포함 전 종목 포디움을 달성했다.


3. 상하이 4차 월드컵[편집]


  • 랭킹 라운드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열리는 중국의 상하이 월드컵에서 오진혁은 678점으로 4위, 691점으로 세계신기록[4]을 세운 1위 임동현과 3위 이창환에 이어 팀 내 3위에 오른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총 점수는 2043점으로 단체전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5]이전 대회 데뷔전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전을 석권한 김우진은 674점으로 9위를 기록했다. 혼성 단체전은 3위 이창환[6], 남자 단체전은 임동현, 김우진, 오진혁이 출전한다. 여담으로 이번 대회 랭킹 라운드에서는 동점자가 매우 많았는데, 11위 - 13위가 모두 672점, 670점과 662점을 기록한 선수는 무려 5명이었다.
  • 남자 단체전
대한민국은 16강전 몽골을 만나 가볍게 221:209로 승리를 따내고, 베이징 올림픽 개인전 1위, 월드컵 파이널 2위인 빅토르 루반의 조국이자 아테네 올림픽 단체전 동메달을 기록한 우크라이나를 상대한다. 결과는 대한민국의 227:220 승리. 4강전에서는 작년 세계선수권에 이어 다시 한 번 한일전이 성사되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베테랑 중 베테랑 야마모토 히로시가 빠지고 84년생 후루카와 다카하루, 85년생 아마노 료타, 86년생 키쿠치 히데키라는 비슷한 연령대로 구성된 일본의 스쿼드였다. 결과는 216:224로 일본의 승리. 한국은 동메달 결정전으로 진출해서 90년생 유망주 다이샤오샹의 중국을 꺾고 223:216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 남자 개인전
오진혁은 부전승 없이 64강에 진출하여 태국 선수를 상대로 4:0으로 승리한다. 현재 세트제는 1세트 3발, 6점을 먼저 내는 선수가 승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세트제 시행 초기에는 6발 3세트로 경기를 진행하여 세트 포인트를 획득하고 이를 합산하여[7] 승패를 판단하였다. 따라서 1, 2세트를 모두 이겨 4:0을 만들면 3세트에서 패배해도 역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3세트를 진행하지 않는다. 링크 32강전 오진혁은 대만 선수를 만나 4:2로 패배하여 최종 결과 17위로 개인전을 마무리한다.


4.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편집]


  • 랭킹 라운드
30m, 50m, 70m, 90m 거리당 36발씩 1440점 만점으로 진행된다. 고등학생의 돌풍을 계속 이어가는 김우진이 1387점으로 1위, 오진혁은 1366점으로 2위를 기록했다.

  • 남자 단체전
1번 시드 자격으로 뉴델리 9회 아시안 게임부터 대회 8연패를 노리는 대한민국은 16강에서 카타르를 226:196점으로 30점 차이 대승로, 8강전 태국을 상대로는 229:208, 21점 차이 대승으로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한다. 4강전은 이전 상대국들보다 강한 팀인 인도를 만났는데, 역시 이전 경기보다 접전인 222:216, 6점 차이로 승리하였다. 대회 8연패를 노리는 한국이 넘어야 할 마지막 산은 중국. 대한민국은 1세트 56점, 2세트 55점, 3세트 57점이라는 기복 없는 경기력으로 3세트까지 168점을 기록하였고 중국도 56 - 58 - 55점으로 총합 169점, 3세트 종료 시점에서 누구 하나 밀리는 쪽 없이 1점 차이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4세트 한국은 임동현의 8점, 김우진의 10점, 오진혁의 7*점으로 25득점을 기록하고, 중국은 싱위의 9점, 다이샤오샹은 8점, 천원위엔의 8점으로 193:194로 1점차 리드를 지킨다. 이후 4세트 남은 3발에서 임동현, 김우진이 이전과 같은 8점과 10점을 기록한 것과 달리, 오진혁은 3시 방향 10점을 기록하며 4세트 총 53점, 총점 221점을 기록한다. 중국은 싱위의 9점, 다이샤오샹의 6점으로 3번 주자 천원위엔이 쏘기 이전 한국이 24발 221점, 중국은 23발 209점이 된다. 즉 1발을 남겨놓고 12점차로 뒤지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아시안 게임 남자 단체전 8연패를 완성한다. 이후 천원위엔의 9점으로 최종 스코어 221:218. 한국 응원단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자국의 금메달을 마음껏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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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Guangzhou Asian Games Archery Men's Team Final

캐스터 : 대한민국 금메달입니다! 대한민국 금메달! 대역전승을 거두는 대한민국 남자 양궁 단체!

김수녕 : 우리 선수들도 긴장을 했고, 중국 선수들은 더 긴장했습니다.

캐스터 : 제9회 인도 뉴델리 대회 이후, 아시안 게임 8연속 금메달이라는 정말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는 우리 남자 양궁 대표팀!

우승 직후 MBC 김수녕 해설과 캐스터의 멘트.


이렇게 국민을 긴장시키고 그렇지만 마지막에는 큰 희열을 주고요, 정말 이 한 편의 양궁 드라마를 보는 듯한 경기를 연출한 우리 임동현, 김우진, 오진혁 선수.


이 정도의 심리적인 것(압박감)은 누구든지 올 수 있는데, 그것을 얼마만큼 잘 극복해 내느냐가 문제인데, 우리나라 선수들은 이런 경험을 국내에서 선발전을 치르면서 항상 경기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이든 예상하고 경기를 했고요.

양궁 특유의 공정한 선발전이 국제대회의 좋은 결과로 이어짐을 밝히는 김수녕 해설.

  • 남자 개인전
랭킹 라운드에서 상위 2명만 출전하는 규정으로 인해 대표팀 내에서 김우진과 함께 유이하게 개인전에 참가한다. 1라운드를 부전승으로 통과한 오진혁은 32강전 필리핀의 마크 하비에르를 만나 4:0 무실점으로 승리하고, 기세를 이어가 말레이시아의 쳉추시안을 상대로도 승리한다. 하지만 8강전 중국의 싱위를 상대로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6:4로 첫 아시안 게임의 도전을 멈추게 되었다. 오진혁의 첫 번째 아시안 게임 개인전 최종 결과는 5위.


5. 이후[편집]


제91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일반부 30m에서눈 36발을 모두 10점에 명중시키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X-10 23개를 기록하며 세계신기록을 달성했다. 참고로 이 기록은 2015년 김법민이승윤이 경신했다.(공동 1위, 360점 만점, X-10 2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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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 기록도 남아있지 않고, 오진혁의 단체전 결과 모음에서도 오그던 월드컵 단체전 동메달은 나와있지 않다. 다만 해당 기사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2] 상단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 오진혁에게 절을 한 선수이다.[3] 남자 개인, 여자 개인, 혼성 단체, 여자 단체 금메달, 남자 단체 동메달[4] 6년만에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기록은 2004년 고교 궁사였던 자신이 세운 687점.[5] 종전 기록은 2008년 안탈리아 월드컵에서 임동현, 이창환, 박경모가 세운 2039점.[6] 파트너는 기보배.[7] 승 - 2점, 무 - 1점, 패 - 0점. 이는 현재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