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련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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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楊璉眞伽[1]
생몰연대 미상

중국 원나라요승으로, 송나라 황제들의 무덤을 도굴한 인물이다.


2. 상세[편집]


양련진가는 탕구트 출신의 티베트 불교 승려이다. 원나라가 중국 대륙을 장악한 이후, 양련진가는 강남 석교도총통(江南釋敎都總統: 강남 불교도들의 수장)으로 임명되어 강남의 불교를 장악하였다.

양련진가는 강남 백성들의 원나라에 대한 불만을 억누를 목적으로 원나라의 신하인 셍게(桑哥)의 지원을 받아, 송휘종 이하 송나라의 황제들이 안장된 황릉을 모두 도굴하였다.[2] 특히 이종이 안장된 영목릉은 심각했는데, 이종의 시신이 무덤 밖으로 끌려나와 목이 잘렸고, 이종의 두개골은 술잔으로 사용되는 굴욕을 당했다. #[3] 양련진가는 남송 황제들의 무덤을 도굴한 직후 소나 말의 뼈를 모아 임안의 고궁에 승탑을 세웠는데, 강남 백성들의 민의를 억눌렀다는 의미로 승탑의 이름을 진남탑(鎭南塔)으로 명명하였다.

양련진가가 남송 황릉을 도굴하였음을 원나라 조정도 크게 문제로 여겨 양련진가를 처형하고 그의 재산을 몰수했다. 양련진가와 함께 송나라의 황릉 도굴에 참여했던 승려들도 도굴할 때 수은 중독으로 죽었다거나 매장품을 놓고 서로 다투다가 죽는 등 최후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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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의 중국학자 헤르베르트 프랑케는 '련진가'라는 이름이 '린첸 꺕(རིན་ཆེན་སྐྱབས།)'이라는 이름을 음사한 것이라고 보았다.[2] 참고로 휘종 이전 송태조부터 송철종까지 송 황제들이 안장된 무덤은 이미 정강의 변 이후 금나라가 수립한 괴뢰정권 유제의 유예가 도굴했다.[3] 술잔으로 사용되었던 이종의 두개골은 원나라가 멸망한 직후 수도인 대도에서 발견되었다. 명나라의 황제였던 태조 주원장은 이 사실을 알고 탄식을 금치 못하였다. 이후 이 두개골은 홍무 2년(1369)에 다시 영목릉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