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 (r20220720판)

문서 조회수 확인중...






파일:티베트 문장.svg
{{{#!wiki style="display:inline-flex; vertical-align:middle; text-align: left"
티베트 관련 문서
བོད་

<^|1><height=34><bgcolor=#ffffff,#1f2023>
[ 펼치기 · 접기 ]

}}}


파일:20201016_223120-removebg-preview.png
티베트 불교 བོད་ཀྱི་ནང་ཆོས།

불|སངས་རྒྱས།
석가모니불과 날란다 17 논사(論師)[1]


법|ཆོས།
티베트식 불교 경전 뻬차(dpe cha)


승|དགེ་འདུན།
묀람(smon lam)[2]에 참가한 티베트 불교 승려들

교세

약 1,800만 ~ 2,000만 명[3]
분류

대승 불교 (Mahayana Buddhism)
금강승 불교 (Vajrayana Buddhism)
성립

A.D. 7세기 송첸감포 왕 재위 시
분포

티베트, 몽골, 부탄
인접한 인도, 네팔, 중국, 러시아 일대
주요 사상

중관, 여래장, 후기 밀교
종파

닝마, 까규, 사캬, 겔룩 등
명칭

티베트어

བོད་ཀྱི་ནང་ཆོས།
영어

Tibetan Buddhism
한국어

티베트 불교

1. 개요
2. 명칭
3. 역사
4. 현교
4.1. 개요
4.2. 교학과 수행의 일치
4.3. 분석적ㆍ논리적 탐구
4.4. 근(根), 도(道), 과(果)
4.5. 견해, 명상, 행위
4.7. 불교인식논리학
5. 밀교
5.1. 개요
5.2. 밀교의 기원과 불교사 서술 방식
5.2.1. 전통적 관점
5.2.2. 현대적 관점
5.3. 밀교와 현교의 비교
5.4. 밀교의 분류
5.5. 밀교의 수행 요건
5.6. 밀교의 계율
5.7. 밀교의 수행법
7. 강원의 교육과정
7.1. 개요
7.2. 5대 경전의 학습방법과 핵심
7.3. 문사수(聞思修)의 체계
7.4. 기초 과정
7.5. 5대 경전 과정
7.6. 강원 과정 이후
8. 종파
8.1. 개요
8.2. 닝마
8.3. 까규
8.4. 사캬
8.5. 겔룩
8.6. 조낭
10. 한국과의 교류
10.1. 인적 교류
10.2. 문화 교류
10.3. 현대 교류
11. 지역별 보급
11.1. 대한민국
11.2. 중화권 및 티베트
11.3. 몽골
11.4. 부탄
11.5. 인도
11.6. 네팔
11.7. 러시아
11.8. 기타 전세계
12.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교섭
12.1. 티베트 불교에서 보는 "참 나"
12.2. 족첸, 마하무드라, 중관에서의 "마음의 본성"
13. 기타
13.1. 밀교와 성(性)?
13.1.1. 오해와 편견
13.1.2. 사상적 배경
13.1.3. 원리, 자격, 금기
13.1.4. 논란
13.2. 승려의 결혼?
13.3. 육식?
13.4. 초야권?
13.5. 복식



티베트 라싸(Lhasa)에 위치한 포탈라궁(Potala Palace)

허공계가 남아 있는 한, 중생이 머무는 한,

저 또한 여기 머물러 중생의 고통을 소멸하게 하소서.

《입보살행론》〈회향품〉


여래(如來, tathāgata)는 오온(五蘊)이 아니고

오온과 다른 것이 아니며

여래 속에 오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온 속에 여래가 있는 것도 아니며

여래가 오온을 갖는 것도 아닌데

이런 가운데 어느 것이 여래이겠는가?

《중론》〈관여래품〉[4]

[5]



1. 개요[편집]


티베트를 중심으로 발달한 불교의 한 종파. 주된 분포 지역은 중국(중국령 티베트 자치구 포함)[6], 부탄, 몽골(중국령 내몽골 자치구 포함), 러시아의 몇몇 공화국(칼미크 공화국, 부랴트 공화국, 투바 공화국) 등이며, 믿는 지역이 가장 넓은 편인 불교 종파이다. 티베트 불교를 밀교라고 분류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티베트 불교는 대승을 중심으로 소승, 바라밀승(대승 현교), 금강승(대승 밀교)을 모두 포괄하므로 대승 불교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7] #


파일:images.jpeg-3.jpg

현대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인 지도자
제14대 달라이 라마 뗀진 갸초(bstan ‘dzin rgya mtsho)



제14대 달라이 라마,《제26회 유엔 기후 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COP26) 메세지 -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 위기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전인류적 대응과 노력을 호소해왔다.
2021 그레타 툰베리 및 기후 운동가들과의 대담
제14대 달라이 라마, 프란츠 알트, 《단 하나뿐인 우리의 집》(민정희, 우석영 譯)
수잔 바우어-우, 툽텐 진파, 《그레타 툰베리와 달라이 라마의 대화》(고영아 譯)

2. 명칭[편집]



실로 스승(guru)이란, 다름 아닌 붓다이며, 법이며, 상가이다(gurur buddho bhave[d] dharma[h] samnghaś căpi sa eva hi).

《Subhāsitasamgraha》, 《Jñānasiddhi》, 《Abhisamayamañjarī》, 《Gunabharani》등 (방정란 譯)


티베트어 '라마(bla ma)'는 '라나 메빠(bla na med pa)'의 축약어로 '위없는 존재, 가장 높으신 존재, 뛰어난 존재'란 뜻을 담고 있으며 '스승'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구루(guru)'의 의역어다. 불법승 삼보와 함께 스승을 특별히 존숭하는 티베트 불교의 특성 때문에 과거 서구에서는 티베트 불교를 '라마교(lamaism)'라고 칭하였으나 이는 부적절한 표현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라마교 혹은 라마 불교라는 용어 대신 티베트 불교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Encyclopædia Britannica, 《Lama》

스승을 붓다 혹은 본존 그 자체로 보는 밀교보다 믿음과 공경의 정도는 덜하지만, 대승 현교(顯敎)에서도 스승을 붓다의 화신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화엄경》에서는 ‘모든 공덕이 선지식에 의해 생긴다’’라고 하였으며 《대고경(大鼓經, Mahabheriharaka-sutra)》[8]에서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가까워졌을 때 아난이 매우 슬퍼하자 석가모니가 그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아 슬퍼하지 말라. 아난아 울지 말라. 나(석가모니)는 미래에 선지식이 되어 너희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이다."[9]

따라서 현교의 견해에서도 스승은 불보(佛寶), 스승의 가르침은 법보(法寶), 스승의 권속과 제자, 도반들은 승보(僧寶)로 해석 가능하다. 더 나아가 밀교(密敎)에서 스승의 몸(身)은 승(僧), 스승의 말씀(口)은 법(法), 스승의 마음(意)은 불(佛)로서 스승은 곧 삼보의 총합이다. 즉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티베트 불교에서 스승을 중시하는 경향은 현밀(顯密)이 발달한 인도 대승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며, 스승과 삼보께 귀의하는 인도 날란다 사원의 전통을 보전하고 있는 것이지 티베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티베트 불교"란 용어는 외부에서 명명한 학술적 명칭이며 고유 용어로는 쵀(chos) 또는 낭쵀(nang chos)라고 일컫는다. '쵀'는 '법(法), 다르마, 진리'란 뜻이고 '낭쵀'는 '내부자의 법(法), 다르마, 진리'란 뜻이다. '내부자'란 뜻의 낭빠(nang pa)는 티베트에서 '불교도'를 가리키는 말로, 소걀 린뽀체의 설명에 따르면 '진리를 외부에서 찾지 않고 자신의 내면, 마음의 본성에서 찾는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진리를 외부에서 찾는 '외부자'인 "치빠(phyi pa)", 즉 불교 외의 타 종교, 신앙과 대비하여 '티베트의 내부자의 법(bod kyi nang chos)'이란 표현처럼 배타적인 의미로 쓰일 때도 있다.[10] John Powers, David Templeman, 《Historical Dictionary of Tibet》 리그파, 《티베트의 지혜(삶과 죽음을 바라보는)》(오진탁 譯)

3. 역사[편집]


파일:samye-monastery-religious-fresco-740.webp
티베트 불교를 정착시킨 (左) 샨타락시타, 구루 빠드마삼바와, 티송 데첸 왕 (쌈예 사원 내 벽화)

티베트에 불교가 처음 소개된 것은 5세기경 28대 하토토리넨첸 왕(lha tho tho ri gnyan btsan) 때이다. 토착 전설에 따르면 왕은 도대시마똑 육자진언과 금으로 된 탑을 선물 받고 이를 신기하게 여겨 비밀스럽게 왕궁에 모셔 공양 올렸다고 한다. 불교에 관한 기록은 7세기 송첸 감포 왕(Srong btsan sgam po, 605-650) 때부터 본격적으로 전해진다. 이후 8세기 티송 데첸 왕(Khri srong lde btsan, 755–794)이 인도 날란다 사원의 승원장 샨타락쉬타(Śāntarakṣita)와 티베트에서 '제2의 부처'라 여겨지는 밀교의 대성취자(mahasiddha) 빠드마삼바와(Padmasambhava)를 인도로부터 초빙하고 불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티벳에 불교가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대승 불교가 번성하였던 북인도, 중앙아시아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티벳에서는 인도로부터 유입된 대승불교가 흥성할 수 있었다.

파일:A_grand_view_of_Samye.jpg
티베트 최초의 불교 사원인 쌈예(bsam yas) 사원

불교가 티벳에 도입되던 초기에는 당나라의 영향으로 티벳에 인도불교와 중국불교가 공존하던 시기도 있었다. 당시 티벳에는 인도 불교와 중국 불교 양자의 수용 여부를 두고 왕과 왕비, 귀족 등 권력 집단 간에 이견이 있었다. 이윽고 티송데첸 왕의 중재로 중국 북종선(北宗禪) 계열[11]의 승려인 화상[12] 마하연(摩訶衍)과 인도불교를 대표하는 논사 까말라쉴라(Kamalaśīla, 740-795)가 티벳 최초의 불교 사원인 쌈예(bSam yas)사원에서 논쟁을 벌인 끝에 까말라쉴라가 승리하면서 인도불교가 티벳에서 주류로 확고히 자리잡게 된다. 티벳 측 문헌인 《바세(sBa bshed)》와 달리 20세기 초 돈황에서 출토된 중국 측 문헌인 《돈오대승정리결(頓悟大乘正理決)》에서는 쌈예 논쟁의 결과를 마하연의 승리로 기록하였다. 양측의 기록이 상반되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티송데첸 왕을 비롯한 당시 티베트의 권력층이 인도불교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이다.
폴 드미에빌, 《라싸 종교회의》(배재형, 김성철, 차상엽 譯)
중암, 《까말라씰라의 수습차제 연구》
왕석, 《돈오대승정리결》(김치온 譯)
박건주, 《티베트 돈점 논쟁 연구》

쌈예논쟁 이후 인도불교는 티벳 지역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고 불사불관(不思不觀)의 돈법(頓法)을 주장하는 마하연 화상(和尙)의 선종은 '하샹(ha shang)'의 가르침이라 불리우며 배척의 대상이 된다. 선종과 유사한 점이 있는 닝마의 족첸도 사캬 빤디타(Sa skya paṇḍita) 등에 의해 '하샹'에게서 유래하였다는 의심을 받으며 '중국식 족첸'으로 비판받았고, 까규의 마하무드라 역시 인도 전승의 마하무드라가 아닌 '중국식 족첸'에서 유래한 '오늘날의 마하무드라'로 비판받기도 하였다. 차상엽, 《싸꺄빤디따(Sa skya paṇḍita)의 마하무드라(Mahāmudrā) 비판》 Roger R. Jackson, 《Sa skya paṇḍita's Account of the bSam yas Debate: History as Polemic》 David Jackson, 《Enlightenment by a single means : Tibetan controversies on the "self-sufficient white remedy"(dkar Po Chig Thub)》

안성두 서울대 교수, 한국불교연구원 서울구도회 강의
《티벳 불교의 이해:삼예사의 논쟁과 그 의미》

티베트는 다른 불교권 국가에 비해 비교적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티베트에 처음 불교가 전해진 7세기부터 16세기까지 약 900년 간 지속적으로 역경작업이 이루어져 현재 티베트역 경전에는 산스크리트어 원전이나 한역본에는 남아 있지 않은 후기 불교 경전들이 존재한다. 또한 티벳 문자는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역경할 목적으로 인도 데바나가리 문자를 본따 창제되었고, 티베트어역 경전은 충실한 직역이라 산스크리트어 원전을 복원하는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왕가의 후원 하에 대대적으로 역경을 한 덕분에 티베트 불교는 설일체유부의 계율, 아비달마, 《현관장엄론》계열의 바라밀 전통, 중관과 유식의 제 논서, 불교논리학(인명학), 밀교 등 인도 대승불교의 거의 모든 전통들을 받아들여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현교, 대승밀교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교학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파일:57077.jpg

티베트 불교의 중흥조, 아티샤[13]

또한 히말라야를 사이에 두고 티베트와 인도를 오가는 인적 교류가 활발했다. 예컨대 린첸상포(Rin chen bzang po, 958-1055)와 마르빠(Mar pa chos kyi blo gros, 1012-1097)와 같이 구법을 위해 티벳에서 인도로 넘어와 불교 문헌을 수집하고 인도인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인물들이 있었다. 또한 반대로 인도에서 힌두교의 부흥과 이슬람의 확장을 피해 히말라야를 넘어 티벳으로 넘어온 아티샤(Atiśa Dīpaṃkara Śrījñāna, 982-1054) 같은 인도인 스승들도 있었다.

836년부터 842년까지 집권한 랑다르마 왕의 폐불 정책으로 인해 티베트 불교는 극심한 후퇴를 겪게 된다. 폐불 이후 2세기 간의 불교 암흑기를 거쳐 11세기 초에 이르러 예세 겐 부자의 불교 부흥 운동이 일어난다.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1042년 아리 왕의 아들 예쎼외가 인도에서 아띠샤를 초대한다. 아띠샤는 티베트에서 《보리도등론》 등을 저술하며 17년 간 티베트에서의 포교로 까담빠 형성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13세기에 무슬림 세력이 인도로 진출하자 인도 불교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무슬림은 이교도인 불교와 힌두교를 박해하였는데, 힌두교와 달리 출가 승단과 재가 신도의 구분이 명확했던 불교는 승원이 파괴되자 구심점을 상실하고 인도에서 쇠멸한다.[14] 인도 각지에 있던 불교 승가 공동체는 티베트, 네팔, 남인도로 흩어졌다. 이 때 승려 상당수가 경전을 가지고 티베트로 피신하면서 위끄라마쉴라 사원에 있던 교학, 조직, 전적이 그대로 티베트로 옮겨졌고, 당시 승려들이 갖고 온 전적(典籍)들은《티베트 대장경》의 기원이 된다. 때문에 티베트 불교는 인도 대승불교의 마지막 계승자로 평가받는다. 티베트 불교도들 스스로도 인도 최대 불교대학인 날란다(Nālandā)사원과 위끄라마쉴라(Vikramaśilā) 사원의 학통(學統)과 법맥(法脈)을 계승하였다고 자부한다.



다큐 《Indian Roots of Tibetan Buddhism》





차상엽 경북대 동서사상연구소 전임연구원,
대한불교진흥원 헬로붓다 아카데미 "뿌리는 같아도 다른 꽃이 핀다"
《티베트 불교의 역사와 사상》 1, 2부

4. 현교[편집]



4.1. 개요[편집]


파일:manjushri_1.jpg
모든 불보살의 지혜의 총체(總體)인 문수보살[15]

현교(顯敎)는 '겉으로 드러난 가르침'이란 뜻으로 언어 문자상으로 설시된 가르침이며 일반적인 소승[16]과 대승 가르침을 뜻한다. 밀교(密敎)는 '은밀히 전수한 가르침'이란 뜻으로 다른 말로 금강승이라고 한다. 참고로 현교, 밀교는 동아시아에서 유래한 용어이며 인도-티베트 불교에서는 주로 소승 현교를 성문승, 대승 현교를 바라밀승/바라밀이취理趣, 대승 밀교를 금강승/금강이취(혹은 진언승/진언이취)라고 일컫는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바른 수행과 실천을 위해 먼저 바른 견해가 세워져야 함을 강조하고, 성급하게 수행법만을 익히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넓은 의미에서 수행을 '마음을 바꾸는 행위'라고 정의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교학 역시 수행에 포함된다. 따라서 교학과 수행을 하나로 보고 문사수(聞思修) 삼혜(三慧)를 고루 강조하는 것이 날란다 대학의 전승을 이은 티베트 불교의 특징이다. 박은정, 《티베트 불교 힘의 원천, 승가교육제도》

경전 못지 않게 논서를 중시하는 논장(論藏) 위주 불교라는 특징도 있다. 중국 불교가 특정 경전을 소의경전으로 삼는 종파불교인데 비해, 티베트 불교는 여러 경전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주석을 단 논장을 주로 학습한다. 경전이 형성된 지 이미 수백 년 이상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경장 만으로는 본래 뜻을 알 수 없으며, 보살 선지식들이 경장을 해설한 논장에 의지하여야 경장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것이 논장을 주로 학습하는 이유이다. 또한 '쌉쩨(sa bcad, 科目)'라고 하는 목차를 세세하게 달아 경론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4.2. 교학과 수행의 일치[편집]


온갖 유정으로서 발심하여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아가려는 자는 마땅히 먼저 청정한 시라(尸羅, 즉 계율)에 안주하고, 그런 연후에 문소성혜(聞所成慧) 등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이를테면 먼저 진리의 관찰에 수순하는 청문(聽聞)을 섭수하고, 듣고 나서는 들은 법의 뜻[法義]을 부지런히 추구하며, 법의 뜻을 듣고 나서 전도됨이 없이 사유해야 하니, 사유하고 나서야 비로소 능히 선정에 의지하여 수습(修習)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수행자는 이와 같이 계(戒)에 머물면서 부지런히 닦아 문소성혜(聞所成慧)에 의해 사소성혜(思所成慧)를 일으키고, 사소성혜에 의해 수소성혜(修所成慧)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아비달마구사론》(권오민 譯)


문을식 서울불교대학원대 교수의 문을식,《요가 상캬 철학의 이해》에 따르면 서양의 철학(philiosophy)은 주로 논리적, 사변적, 분석적 방법을 통해 지혜(sophia)를 얻지만 인도의 철학(darśana)은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지혜(jñāna, prajñā)를 얻는다.

  • 듣고 배워서 얻어진 지혜(śruta-prajñā): 오랜 시간의 테스트를 거쳐 검증되고 실험되어 온 옛 성현(ṛṣi)들의 경험과 탐구 결과를 듣고 배우는 방법(聞, śruta, śramaṇa) 이다. 이것은 다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만이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동적 노력이 포함되는 활동이다. 이런 과정에서 얻어지는 지혜를 문혜(聞慧, śruta-prajñā)라고 한다. 이 지혜를 얻는 방법은 경전이나 논서들의 텍스트를 이해, 해석하고 현대언어로 번역하고 설명해주는 해석학적 방법인 정언량(正言量, śabda-pramāṇa)이 있다. 단, 디그나가(Dignaga)는 정언량 혹은 성언량(聖言量) 또한 비량(比量)의 한 종류인 신허비량(信許比量, āpta-anumāna)으로 보고, 인식의 근원은 비량과 현량(現量) 뿐이라는 이량설(二量說)을 주장하였으며 티베트 불교에서도 이를 따른다.

  • 논리적 사고를 통해 얻어진 지혜(anumāna-prajñā): 바깥으로부터 배우고 받아들인 것과 스스로의 경험을 자료로 하여 그것을 논리적, 합리적 기준(yukti, anumāna)에 맞추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다른 견해와 주장과 견주어 토론하고 논쟁하며, 더 나아가 그런 자료들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지적 공유물이 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고 체계화시키는 활동이다. 이러한 논리적 사고를 통해 얻어진 지혜를 사혜(思慧, anumāna-prajñā 또는 cintā-prajñā)라고 한다. 이 지혜를 얻는 방법은 문혜와 수혜 그리고 스스로의 지적 경험을 자료로 하여 의심하고 비판하고 토론하고 논증하고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는 논리적 방법인 비량(比量, anumāna-pramāṇa)이다.

  • 요가적 방법에서 얻어진 지혜(bhāvana-prajñā, samādhi-prajñā): 마지막으로 문혜와 사혜로부터 얻어진 언어적, 개념적 관념적 지혜를 체험적이고 직접적이며 직관적 지혜로 변환시키는 요가적 방법에서 얻어진 지혜를 수혜(修慧, bhāvana-prajñā) 또는 삼매의 지혜(三昧慧, samādhi-prajñā)라고 한다. 이 지혜를 얻는 방법은 문혜와 사혜에 기초하여 요가행법을 실천하는 것(現量, yogī praktiasa, sākṣātkāra)이 있다. 이러한 인식방법은 직접적 지각(知覺)인 현량(現量) 중에서도 유가사의 선정(禪定)상태에서 대상을 지각하는 유가현량(瑜伽現量)에 해당한다.

안성두 서울대 교수는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불교의 이해》에서 겔룩의 창시자인 쫑카빠의 견해에 의거하여, 경전의 가르침을 배우고(聞) 사유(思)하는 교학과 수행(修)의 불가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쫑카빠는 《보리도차제광론》에서 직접적 가르침과 경전적 가르침을 상호불가결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보다 우선적인 과정은 경전의 가르침을 듣는 데 있다고 말한다. 불교에 있어서 경전의 가르침은 문혜(聞慧)와 사혜(思慧)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문혜(聞慧)와 사혜(思慧)에 의해 증득된 바로 그것이 수혜(修慧)에 의해 수습되어져야 하는 것이지 다른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쫑카빠는 경마의 비유를 들어 청문(聽聞)과 이에 대한 깊은 사유를 수반하는 직접적 수행은 "경주할 장소를 먼저 보여준 후에 경주하는 것과 같다." 라고 설명한다. 만일 경주할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고 경주한다면 실제 노력에 비해 소득도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잘못된 길로 빠질 위험이 크다. 

또한 쫑카빠는 "위대한 경전의 가르침을 수행의 요체를 결여한 단순한 설명으로만 간주하고, 수행의 요체는 오직 핵심적 의미를 설하는 스승과 제자 간의 은밀한 직접적 가르침에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가르침의 단절이라는 업장을 쌓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해탈을 구하는 자들에게 있어 최고의 교설은 위대한 경전일 뿐이다.

문: 진리(사성제와 무상無常 등 16행상行相)를 봄으로써 해탈하니

공성을 보는 것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답: 이 도道(공성을 깨달은 도)가 없이는 보리가 없다고 경에서 설하기 때문이다.

법의 뿌리가 비구이기에, (성문의 성자인 비구들이 공성을 깨닫지 못한다 하면) 비구 또한 머물기 어렵네.

마음이 대상을 가지는 한 열반 또한 머물기 어렵게 되네.

번뇌(세간도의 멸한 대상인 번뇌)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윤회에서] 벗어난다면

(현전現前한 번뇌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곧바로 해탈하게 될 것이다.

《입보리행론》


화두일구(話頭一句)만을 참구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다는 선불교나 아함경, 니까야 등 초기 경전을 중시하는 측에서는 대승불교의 교학이 지나치게 철학적이고 사변적이며 수행과 동떨어진 가르침이라고 비판하거나 폄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심법(心法)은 오직 화두나 공안을 참구해야만 깨달을 수 있다고 여기거나, 혹은 사성제 팔정도 등 초기불교의 가르침만으로 충분히 해탈이 가능하며 대승 불교 사상도 초기 불교 교리 안에 모두 포섭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선불교는 대승불교의 맥락에서 이해되지 않는다면 불교인지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로 은유적이고 함축적이며, 그러한 은유들에 내재된 교시(敎示)는《능가경》, 《금강경》 , 《화엄경》 등 대승 경론에서 설해진 교의(敎義)들의 실천적 응용이자 중국적 변용에 다름 아니다. 한편 초기불교는 만일 대승불교의 교학이 초기불교의 교리를 보다 분명하고 심도있게 해석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법(法)을 실체화하는 오류를 답습하고 있을런지 모른다. 부파불교에서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자아는 무아이지만 구성 요소인 법은 실체가 있다'는 아공법유(我空法有)로 변질된 바 있으며, 현대 위빠사나 수행자들 가운데에서도 찰나생멸을 관하면서 '찰나 동안 지속되는 실체'를 인정하는 오류에 빠지는 경우 등을 찾을 수 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유부의 견해를 비판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것도 지나치게 단편적인 접근일 것이다. 법체에 대한 유부의 실재론적 해석은 인식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며 그 역시 무아론의 논의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는 없다. 티베트 불교에서도 유부의 주장은 불설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할 불교 4대 학파의 학설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8세기 경 귀류논증 중관학파 논사인 샨티데바는 《입보리행론》에서 사성제 등으로 충분하다는 소승 학파의 주장을 논박하면서 사성제만으로 해탈에 이르지 못한 소승 수행자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샨티데바는 경전을 근거로 공성 또한 불설(佛說)에 포함됨을 강조하였고, 인무아를 자각하는 지혜만으로 해탈을 이루는데 충분하다고 여기는 후대 수행자들의 자질을 문제삼았다. 그는 법무아를 증득하지 못하면 해탈하여 아라한이 될 수 없으므로 승의(勝義)의 승가를 세울 수 없다고 보았다. 마음이 대상을 갖는 한, 즉 법아집(法我執)이 있는 한 이로 인한 다른 번뇌가 생겨 열반을 얻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소승 아비달마에 법아집 뿐 아니라 인아집(人我執)과 관련된 다른 번뇌들도 설해지지 않은 것이 많으므로 아비달마에서 설해진 번뇌만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고, 유부ㆍ경량부 등 소승 학파에서 현전하는 번뇌를 제거하였음에도 즉시 열반에 이르지 못한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게쉬 텐진 남카,《심오한 중도의 새로운 문을 여는 지혜의 등불》

일부의 원인으로 일부의 결과만을 이루고

일체의 원인으로 일체의 결과를 모두 성취한다.[17]

《대비백련화경(大悲白連華經)》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각자가 생각하는 진리, 법성(法性)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비단 대승불교 뿐 아니라 불교사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이른바 '초기 경전'이라 일컬어지는 아함과 니까야 역시 붓다의 온전한 친설(親說), 원음(原音)이 아니며, 수 세기에 걸친 역사적 변천 과정을 거쳐 각 부파에 의해 채택된 부파불교 시대의 산물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경전 내부에 수정ㆍ가감으로 인한 신ㆍ고층(新古層)이 존재하고, 경전 구성에 있어서 각 부파들의 판본마다 분명한 차이를 보이며, 경전의 해석에 있어서도 각 부파 고유의 관점이 반영된 논장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불교에도 새로운 방편과 해석이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등장한 대승의 사상은 석가모니의 본의(本義)를 분명히 밝혀 수행의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내도(內道)의 다른 학파들 및 외도(外道)들과 경쟁하고 교류하면서 불법(佛法)을 더욱 풍요롭게 발전시켰다. 대승 논사들은 근본스승인 석가모니를 존숭하며 대승 경전 뿐 아니라 초기 경전 또한 자신들의 전거로 삼았고, 학자이자 동시에 수행자로서 자신의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精緻)한 이론을 전개하며 궁극적으로 마음, 의식의 변화와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자타의 이익과 안락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대승의 사상적 기조는 수행과 무관한 지적 유희나 근원과 단절된 급진적인 변용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티베트 불교 강원에서 배우는 반야, 중관, 구사, 인명, 계율 등 오부대론은 인도 나란다 대학의 교육과정에서 유래한 구성으로, 팔만사천법문 중에서 수행을 위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경율론만을 선정하여 압축한 교과 체계이다. 10여 년에서 길게는 20년 이상 소요되는 티베트 불교 교학과정이 상당히 방대해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해탈 뿐 아니라 일체중생을 위한 성불을 목표로 소승, 대승, 금강승을 모두 아울러 배우는 인도-티베트 불교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18]


4.3. 분석적ㆍ논리적 탐구[편집]


티베트 불교는 비판적 분석과 판단을 중시한다. 권오민 경상대 교수가 꼰촉 직메 왕뽀,《티베트에서의 불교 철학 입문》(권오민, 유리, 김대수 譯) 등에서 언급하였듯이 불교의 믿음(信, śradha, 또는 勝解, adhimukti)확신이며, 이는 우선적으로 비판적 분석/판단에 의한 것이다. 문사수 중 사유의 과정에 해당하는 비판적 분석 혹은 탐구 고찰을 사택(tarka, 혹은 覺觀), 간택(pravicaya, 혹은 思惟觀察)이라고 한다. 부처의 말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금(金)을 감정하듯이 분석적으로 의심을 갖고 경전을 배우고 사유하고 수행하면서 불법의 진리를 수행자 본인이 직접 확인해가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비판적 분석을 강조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은 맹신이 아닌 비판적 분석이기에 단순히 경전을 외우기보다 이치를 따지며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19]라고 말하였다. 또한 법회에서 다음과 같은 경전의 어구를 즐겨 인용하며 경전을 분석하고 깊게 사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비구들과 지혜로운 이들이여, 연금술사가 금을 태우고 자르고 문지르듯이 나의 말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단순히 존경한다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20]


스승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이 스승에 대한 존경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다. 달라이 라마는 제14대 달라이 라마,《달라이 라마 반야심경》(주민황 譯)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날란다 대학 같은 고대 인도의 사원 대학에서는 학승(學僧)이 스승의 저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전통을 발전시켰다. 스승의 저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스승을 존경하거나 공경하지 않는 행위로 간주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의 제자 아리야 위묵티세나(Arya Vimuktisena, 聖解脫軍)는 스승의 유식론적인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중관학파의 견해로 경전을 이해하였다. 티베트에서는 19세기 닝마의 학자인 주 미팜(Ju Mipham)의 제자 알락 담최 창(Alak Damchö Tsang)이 스승이 쓴 논전의 일부 내용에 반론을 제기한 사례가 있다. 알락 담최 창은 "스승이 훌륭하다고 해도 가르치는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면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티베트 속담 중에 "사람은 공경하고 존경하되 그가 쓴 논서는 철저하게 분석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스승에 대한 건전한 마음가짐과 수행할 때 의지해야 할 사의법(四依法)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2021년 8월 한국인을 위한 비대면 법회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스승과 다른 관점을 갖는 것이 스승에게 실례가 되거나 스승을 거스르는 악업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달라이 라마는 "경전에서 언급하였듯이 아무 이유도 없이 스승의 의견을 부정하는 것은 죄악이 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을 말했다. 상술한 석가모니의 연금술사 비유나 바수반두(세친), 아상가(무착), 디그나가(진나)와 이들의 후학(後學) 격인 짠드라끼르띠(월칭)의 사례[21]에서 알 수 있듯, 스승의 가르침을 아무 이유 없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숙고하고 실천하고 수행한 뒤 그 가르침의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달라이 라마는 설명했다.

또한 람림 수행 전승의 분화(分化)[22]에서 알 수 있듯이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스승의 말씀조차도 관찰하고 분석해야 오류가 생기지 않는다고 달라이 라마는 말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스승이 어떤 가르침을 제공하든 제자는 그 가르침을 항상 탐구하고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며, 만약 가르침에 오류가 있다면 제자는 스승에게 해명을 요구할 수 있고 오히려 그 가르침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겔룩의 창시자 쫑카빠의 해석도 소개했다.[23][24] #

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진의(眞意)에 의지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에 의지하고 의식(意識)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료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 

《대승열반경》 제6권 사의법(四依法)


사물의 실상을 분석할 때 분석하는 사람이 갖춰야 하는 최소의 조건은 사의(四依)이다. '의지한다[依]'는 것은 '믿는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며, 의지해야 하는 네 가지는 진의(眞意), 지혜, 법, 요의경이며, 의지하지 말아야 하는 네 가지는 문자, 의식, 사람, 불요의경이다. 의지하고 의지하지 않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그 사람의 명성이 높고 낮음 등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이 설하는 가르침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사람과 그의 가르침 둘 중에서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는 의미이다.[25]

'진의에 의지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그러한 가르침도 문장의 운율이 아름다운지 등을 보지 말고, 진의를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진의를 명확하게 설한 것은 받아들이고, 오류가 있는 것은 설령 문장이 매우 훌륭하다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즉, 문자와 진의 둘 중에서 문자를 믿지 말고 진의를 믿어야 한다.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특정 목적에 의해 단지 방편으로써 설하신 언설[불요의]만을 보지 말고, 그것의 진실된 실상[요의]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부처님의 진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목적에 의해 [어떤 사물이] '진실로 존재한다'고 설한 경은, 언설 그대로 받아들이면 논리적 오류가 있으므로 다른 의도로 해석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궁극적 의도대로 '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한 경은, 언설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논리적 오류가 없으므로 요의로 마땅히 믿어야 한다.

'지혜에 의지하고, 의식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그 요의도 안식(眼識) 등의 근식(根識)이나 분별식(分別識)에 나타난 것만을 믿지 말고, 대상의 실상을 현량(現量)으로 보는 지혜를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게쎼 텐진 남카 譯)

이상의 사의법에 관한 일반적인 해설 외에 19세기 닝마의 대학승 미팜 린뽀체의 사의법에 대한 해설은 아래와 같다.

【"미팜의 <사의법(四依法)> 주석" 펼치기ㆍ접기】
만약 다음의 견해를 얻지 못한다면 맹인이 지팡이에 기대는 것처럼 오직 명성과 말, 또는 이해하기 쉬운 것들에만 의지하여 마침내 사의법(四依法)의 이치에 어긋날 수 있다.

1.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그러므로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해탈은 가르침(정법正法)에서 나오지 가르치는 사람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만일 가르침이 잘 설해졌다면 누가 설하였든지 상관없다. 심지어 선서(善逝, sugata) 역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백정으로도 화현한다. 만일 대승법(大乘法)과 같은 정법의 의미와 반대되는 말을 한다면 아무리 말솜씨 좋은 사람이라도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한다. 마치 부처의 모습을 한 마라와 같이.

2. 말에 의지하지 말고 뜻에 의지하라.
법을 공부하거나 사유할 때 항상 말에 의지하지 말고 뜻에 의지하라. 만일 뜻을 이해했다면 어떤 식으로 설하여졌든지 모순이 없다. 만일 설하는 이가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이해했다면 그 때 비로소 각각의 단어와 표현에 대해 사유하라. 마치 코끼리를 찾은 후에 비로소 코끼리의 발자국을 찾아 나서듯이. 만일 뜻을 잘못 이해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말들을 사유한다면, 생각이 다할 때까지 고민을 멈추지 못하겠지만, 그저 진정한 뜻에서 멀어지고 또 멀어질 뿐이다. 마치 아이들의 놀이처럼 기진맥진해진 채 끝이 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 ‘그러나’ 같은 한 단어일지라도 맥락에서 벗어나면 끝없이 많은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 뜻을 이해했다면 더 이상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킬 때 어리석은 이들은 손가락만 쳐다보듯이, 바보들은 말에만 집착하여 자신들은 잘 이해하였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중에는 착각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3. 불료의에 의지하지 말고 요의에 의지하라.
뜻을 파악할 때 무엇이 불료의不了義(미요의未了義)이고 무엇이 요의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불료의에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진정한 요의에만 의지해야 한다. 일체지자(一切知者, sarvajña)께서는 배우는 이들의 근기와 성향에 맞게 가르치셨다. 그는 사다리의 가로대들처럼 여러 단계의 승(乘)을 소개하셨다. 여덟 종류의 암시와 간접적인 가르침[1]과 같이 그는 마음에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지혜롭게 설하셨다. 만일 불료의의 가르침을 (의도와 상관 없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 가르침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나 불료의의 가르침은 (방편으로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설할 수 있다.

4. 지식에 의지하지 말고 지혜에 의지하라.
만일 요의의 가르침을 수행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세속의 이원적(二元的)인 마음에 의지하지 말라. 이원적인 마음은 언어와 개념들을 쫓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비이원적(非二元的)인 지혜에 의지하라. 개념적인 생각과 함께 작용하는 것이 바로 세속적인 마음이다. 세속적인 마음은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하는 대상을 포함하는 특성이 있다. 그런 식으로 주객을 나누는 이원적인 모든 생각은 그릇된 것이며 절대 진정한 현상의 본성(本性)에 다다르지 못한다. 실재든지, 비실재이든지, 실재이면서 비실재이든지, 실재도 아니고 비실재도 아니든지 그러한 개념은 어떻게 생각하든지 여전히 개념일 뿐이다. 우리가 마음에 품는 어떤 생각이든지 그것들은 마라의 지배 아래 있다.이러한 가르침은 경전에 나와 있다. 어떤 부인(否認)이나 단언(斷言)에 의해서도 개념을 다 제거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부인하거나 단언함 없이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한다면, 바로 해탈이다. 비록 주체와 객체에 대한 어떠한 집착도 없지만 스스로를 비추는 본연의 지혜가 있다. 그리고 존재와 비존재, 존재이면서 비존재,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닌 모든 생각들이 완전히 사라진다. 이것은 최상의 본초(本初)적인 지혜(Yeshe, Primodial wisdom)라고 한다.

요의는 방편법문에 의하여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비개념적인 알아차림(awareness)의 지혜의 대상으로서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부인과 단언, 존재와 비존재와 같은 개념적인 양 극단에 얽매여있는 한 세속적인 마음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초월적인 지혜를 경험하는데 도달하였다면 모든 이원적인 생각은 진정되고 현상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모든 부정(否定)과 정립(定立), 또는 부인과 단언에서 벗어나 진정한 법(Dharma)의 심오함에 이르게 된다.#


삼소량분(三所量分) གཞལ་བྱའི་གནས་གསུམ། : 세 가지 존재 방식

མངོན་གྱུར། [ㅇ왼규르]  현전(現前) = 현전분(現前分)

ལྐོག་གྱུར། [꼭규르]  비현전(非現前) =  불현전분(不現前分) = 은폐분(隱蔽分)

ཤིན་ཏུ་ལྐོག་གྱུར། [씬뚜 꼭규르]  극비현전(極非現前) = 최극은폐분(最極隱蔽分)


앎의 대상에는 크게 현전(現前), 비현전(非現前), 극비현전(極非現前) 세 가지가 있다. 현전'지각 가능한 명백한 현상'으로 논리를 통해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 현상들은 직접적인 감각적 지각인 현량(現量)을 통해 직접 경험하며 터득할 수 있고,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삶과 죽음, 계절의 변화 같은 거친 무상(無常)은 현전에 해당한다.

비현전'일부분만 지각할 수 있는 현상'이다. 비현전은 요가수행자[26]가 아닌 일반인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없으므로 논리적 추론인 비량(比量)을 적용하여 확립해야 한다. 이때의 분석 대상은 경험에 근거한 추론적 인식에 의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찰나생멸하는 미세한 무상이나 무아, 공성 등이 비현전에 해당한다.

극비현전'전혀 지각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극비현전은 일반인의 현량으로도 인식할 수 없고, 이해의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은 비량을 이용해 검증하는 것도 힘들다. 이러한 경우에는 타당한 경전적 권위, 즉 성교량(聖敎量) 내지 교증(敎証)에 의존해야한다.

교증에 의존하더라도 경전의 타당성, 신뢰 가능성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 가령 티베트 불교는 인도 불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텍스트 비평을 통해 번역된 경전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경전을 가르치는 스승의 타당성, 신뢰 가능성도 검증해야 한다. 교증을 거친 후에는 경전 내용 자체가 삼지작법(삼단논법) 등의 논리에 위배되지는 않는지 검증하는 이증(理証)을 거친다. 이는 믿음에 기반한 논리적 추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부모의 말에 의지해서 자신의 생일이 언제인지 알 수 있고, 역사적 기록에 의지해서 과거에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들을 알 수 있는 것 또한 극비현전에 해당한다. 경전에서는 극비현전의 예로 중생의 업력(業力), 부처의 사업(事業), 진언(眞言)과 약(藥)ㆍ물질의 힘, 유가사(瑜伽師)의 유가(선정禪定)의 경계 등 네 가지 불가사의한 대상을 언급한다.[27] 여기서 업력, 다시 말해 업의 인과(因果) 작용은 오직 일체지(一切智)를 이룬 부처만이 완벽히 알 수 있으며, 아라한도 인과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다만 개별적인 사태들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업의 경과가 아닌, 업이 작용하는 일반적인 원리인 업설(業說)에 대해서는 《구사론》 등 여러 논서에서 상세히 밝혀놓았다.
제14대 달라이 라마, 《달라이라마, 수행을 말하다》(이종복 譯)

경설을 근거로 받아들이는 방식도, 예를 들면 '보시를 행하면 재물을 얻는다. 경에서 이와 같이 설하기 때문이다'라고 할 때, 경설 자체를 논증인(論證因)으로 세워서 해당 내용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론의 언설이 현량(現量)과 논리로써 오류가 없고, 경설의 구절에 직간접적인 모순이나 전후의 모순이 없으며, 설법자에게 다른 특별한 의도가 없는 등의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핵심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날란다 학자들의 전통에서는 제법의 체계를 확립할 때, 경설이나 타당한 말에 의지하는 신허비량(信許比量)보다 사세비량(事勢比量)을 중시하였고, 논리에 의지하는 사세비량보다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현량을 더 중시하였다. 이러한 우선순위를 아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게쎼 텐진 남카 譯)

사종도리(四種道理)

① 법이도리(法爾道理)

② 작용도리(作用道理)

③ 관대도리(觀待道理)

④ 증성도리(證成道理)


분석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해심밀경》, 《대승아비달마집론》, 《유가사지론》 등의 보살경장에서는 사종도리를 설하고 있다.

법이도리는 사물의 실상 그대로를 토대로 한, 각각의 법의 특성이나 자성 또는 법성을 의미한다. 작용도리는 그러한 법이도리를 토대로 하는, 각각의 법성의 본질과 부합하는 여러 가지 작용을 의미한다. 관대도리는 작용도리를 토대로 하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 즉 인과관계, 부분과 유분(有分)의 관계, 행위와 행위자와 행위 대상 셋의 관계 등 의존하는 실상을 의미한다. 증성도리는 앞의 세 가지 도리를 토대로 분석할 때, '이것이기 때문에 저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도 없어야 한다'와 같은 논리를 세워서 소립(所立)을 논증할 수 있는데, 이러한 방식을 증성도리라고 한다.

사종도리 중 관대도리와 작용도리 이 둘의 핵심 내용인 인과와 연기의 법칙은 불교 전통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이치이다. 크게는 기세간과 유정세간의 생성에서부터 작게는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비가 내리는 것과 같은 개별적 상황의 발생에 이르기까지 오직 인과연기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불교의 교의체계에서는 중생이 업과 번뇌의 힘에 의해 윤회를 떠도는 방식에서부터 윤회의 원인과 조건들을 차례로 제거하여 해탈에 이르는 것까지 오직 인과의 법칙으로 성립된다. 역사적 기록이나 현실적 상황 그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과의 법칙은 불교 철학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게쎼 텐진 남카 譯)


파일:dalai-group-102510.jpg

2010년 스탠포드대 "자비와 이타주의의 과학적 탐구"
(“Scientific explorations of compassion and altruism.”)
회의에서 과학자들[28]과 손잡은 달라이 라마.

티베트 불교의 분석적이고 지성적인 성향은 과학자들과의 적극적 교류에서도 드러난다.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제커(Carl Friedrich von Weizsäcker)#, 데이비드 봄(David Bohm)#, 리차드 데이비슨(Richard J. Davidson)#,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 등 세계적인 뇌과학자, 신경생물학자, 인지과학자, 정신의학자, 물리학자들이 달라이 라마, 까르마빠와 같은 티베트 불교 스승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법문에서 양자역학, 심리학, 신경생물학 등을 예시로 자주 언급한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는 양자역학과 불교의 중관 사상 모두 '사물이 실제로는 관찰자에게 인식되는 것처럼 고정불변하는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보았다. 그는 더 나아가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불교 경전에서 언급된 수미산 중심의 세계관을 부정하기도 하였다. #

달라이 라마는 "중국 불자든, 한국 불자든, 티베트 불자든 상좌부 전통을 따르는 불자든 우리 불자들이 21세기의 불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그것은 (21세기 불자들이) 현대 과학을 포함하여 현대와 현대 세계에 대한 더 폭넓고 깊은 이해의 기반을 갖춰야 하고 그에 덧보태어 부처님의 메시지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더 온전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불자들에게 현대 과학 탐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또한 달라이 라마는 분석과 탐구를 강조하는 티베트 불교의 특성과 불교 논리학에 기반하여 불교와 과학 간의 교류가 가능하며 서로에게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불교와 과학 간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는 달라이 라마의 노력에 대해 불교계나 과학계 양측 모두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지금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달라이 라마가 2005년 신경과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회인 신경과학회(Society for Neuroscience, SfN)의 연례 학술회의에 초대되었을 때, 처음에는 그의 참석에 관한 논란이 벌어져 (달라이 라마의 정치적 입장에 반대하는 중국 출신이 다수 포함된) 500여 명의 과학자들이 초대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반대 측은 "달라이 라마의 명상에 대한 견해는 주관적이며, 명상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현 시점에 신경과학이 무모하게 정신적 문제에 접근할 경우 학문의 신뢰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반대 이유를 들었다.[29] 그러나 이후 '명상을 통한 의식의 연구'를 주제로 한 달라이 라마의 연설을 듣고 신경과학자들은 그의 참석이 매우 적절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학회의 여론은 그의 방문을 전적으로 환영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 # #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인 날란다 대학(사원)의 설립 목적은 ‘불교학 연구와 진흥’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불교학뿐 아니라 철학, 문학은 물론이고 천문학이나 의학, 약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와 수업이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불교는 원치 않는 고통의 뿌리가 대상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에 있다고 본다. 불교의 근본적 동기와 주된 목적은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구경(究竟)의 안락(安樂)이며, 이를 위해 대상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는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란 것이 처음부터 명백했다. 결국 세상의 본질,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아는 게 ‘고통’에서 해방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말이다. 불교 경전이 성립되고 계율이 정비되자 붓다의 제자들이 제일 먼저 찾아 나선 것도 세상의 본질에 대한 것이었다. 부파불교 시대, 아비달마가 융성하기 시작하면서 불교 논서들에 유달리 자연과학적 지식이 자주 등장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날란다 대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 역시 과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 경론의 가르침을 크게 ‘제법(諸法)의 실상(實相) 혹은 과학’, ‘그와 관련된 철학’, ‘수행의 차례’로 분류하였다. 이 중 과학과 철학 두 분야는 종교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지식의 영역이며 시대적 요구와도 잘 맞는 학문이라고 여긴 달라이 라마는 2011년 《불교 과학 철학 총서》의 편찬을 기획한다. 이에 티베트 최고의 학승인 게셰 70여 명으로 구성된 편집위원회가 만들어진다. 편집위원들은 날란다 17 논사들의 저작, 그리고 여타 아비달마 논사들의 저작을 모두 검토하고 그 중에 과학, 철학과 관련된 내용을 발췌, 선별, 분류한 후 주석과 해설을 달았다. 총서 1권에서 다루고 있는 물질세계는 극미(極微)의 세계에서 천체(天體)까지, 즉 마음을 제외한 외부 세계 전부를 가리킨다. 특히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질, 시간과 공간, 뇌를 비롯한 인간의 신체가 주 대상이다. 또한 서문에서는 불교와 과학의 관계를 다룬다. 영어, 중국어(번체)에 이어 전세계에서 3번째로 《불교 과학 철학 총서》 1권 '물질세계'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근간으로 2권 '마음'이 있다.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게쎼 텐진 남카 譯) 그 밖에 티베트 불교와 과학 간의 교류를 담은 국내 서적으로 《과학과 불교(한 원자 속의 우주)》(이해심, 삼묵 譯), 《달라이 라마 과학과 만나다》(남영호 譯) 등이 있다.

달라이 라마와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마음과 생명 연구재단(Mind & Life institute)의 강연, 대담, 저서 그리고 달라이라마와 과학자들의 교류를 담은 다큐 영화 《The Dalai Lama: Scientist》등에서 티베트 불교와 과학자들 간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Science for Monks & Nuns 프로젝트는 티베트 불교 승려들에게 과학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사업이다. 스미스소니언 재단 등에서 파견된 교육자와 과학자들의 지도 하에 현재 7개 과학 센터에서 300명 이상의 승려들이 3년 과정의 과학 리더쉽 프로그램을 수료하였다. # 또한 에모리대와 협력하여 Emory-Tibet Science Initiative(ETSI)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티베트 불교 강원에 과학 과목을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하여 승려들에게 지속적으로 과학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티베트 불교 강원의 과학 교육에 대한 다큐
《100 Year Project:A Film》

■ 《깔라마 경》에 대한 오해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깔라마들이여, 그대는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 받지 않을 것이며, 이런 법들은 지자(智者)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된다.’고 알게 되면, 그것들을 구족하여 머물러라."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탐욕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성냄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어리석음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깔라마 경(A3:65)》(대림 譯)

상좌부 경전인 《앙굿따라 니까야》에 속한 《깔라마 경》은 이른바 '부처의 자유 탐구 헌장(the Buddha's Charter of Free Inquiry)'으로 잘 알려진 경전이다. 모든 교조주의, 전통, 편협함으로부터의 자유를 논하는 본 경전은, 그러나 유명세만큼이나 잘못 해석되는 경우도 많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적인 인용을 바탕으로 종종 《깔라마 경》은 급진적인 회의주의나 비이성적이고 주관적인 진리 창조를 옹호하는데 악용되곤 한다.# 이에 관하여 빅쿠 보디(Bhikkhu Bodhi)[30]

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맥에서 벗어난 단 한 구절의 인용을 근거로, 붓다는 '모든 교리와 신앙을 일축하는 실용적인 경험주의자'가 되어버렸고, 그의 법은 단순히 자유사상가의 진리에 대한 도구가 되어 각자 자기 멋대로 수용하고 거부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Bhikkhu Bodhi, 《A Look at the Kalama Sutta》

《깔라마 경》은 진리에 대한 판단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깔라마 사람들을 위해 즉각적이고 도덕적이며, 유익하고 본질적인 가치인 '탐진치(貪瞋痴)의 소멸'을 우선 기준으로 제시한 경전이다. 《깔라마 경》에서 석가모니는 논리와 추론, 사유만으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였지만, 그러한 지적 작용들 자체를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은 해당 경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깔라마 경》을 독해하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논리적 사고는 요구된다. 바른 법을 '이익과 행복의 획득 수단'으로 정의하고, 이익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탐진치를 소멸해야 하며 따라서 바른 법과 바르지 않은 법을 탐진치의 소멸 여부로 판단하는 《깔라마 경》의 전개 역시 일종의 연역적 추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깔라마 사람들의 삼보에 대한 귀의 부분에서 알 수 있듯, 건전한 사유에 기초한 믿음에 대해서도 《깔라마 경》은 부정한 바 없다.

차연성(此緣性)을 알고서 사견(邪見)의 그물인 분별(分別)을 벗어난 사람은, 탐욕, 미움, 우치를 벗어나 [번뇌에] 물들지 않은 열반으로 나아간다.

나가르주나, 《공칠십론》(이지수 譯)

이지수, 《인도 불교철학의 원전적 연구》

석가모니는 자신의 탁월한 지성을 적극적으로 중생 교화에 활용하였는데, 단적인 예로 석가모니가 설한 연기법은 독립된 존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의존적인 존재를 정립시켜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동시에 제거하기 때문에 "왕(王)과 같은 논리"[rigs pa'i rgyal po]로까지 일컬어진다. 용수보살이 《공칠십론》에서 밝혔듯이 연기를 통해 다른 것에 의존한 것(차연성), 즉 공성을 알게 되어 사견(邪見)과 그로 인한 탐진치를 소멸할 수 있기 때문에 붓다의 교설인 연기는《깔라마 경》에서 말하는 유익한 법의 기준에 완벽히 부합한다.

일반적으로 공성에 대한 지혜가 성장함에 따라 탐진치와 같은 번뇌도 점진적으로 소멸된다.[31]

대승의 수행과정에서 처음에는 논리적인 추론인 비량(比量)을 통해 공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여 견도(見道)에 이르러 직접적인 지각인 현량(現量)으로도 공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수도(修道)에서 명상을 통해 견도에서 직접적으로 지각한 공성에 대해 더욱 익숙해지고, 해탈을 방해하는 번뇌장(煩惱障)과 일체법을 깨닫는데 장애가 되는 소지장(所知障)을 끊음으로써 모든 번뇌가 소멸된 무학도(無學道)에 이르게 된다.



4.4. 근(根), 도(道), 과(果)[편집]



파일:Bodhgaya_3639641913_f4c5f73689_t.jpg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의 보리수.
불법(佛法)을 나무에 비유하면 존재론은 뿌리,
수행론은 줄기, 결과론은 열매에 해당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모든 불교의 가르침을 크게 근(根, 혹은 기基, gzhi), 도(道, Skt. mārga; Tib. lam), 과(果, 'bras bu) 세 부분으로 분류한다. 근은 존재론, 도는 수행론, 과는 결과론에 해당한다. 존재론에 기반하여 수행론이 성립하며, 존재론과 수행론을 기반으로 결과론이 성립한다.

수행론인 도(道)는 다시 견해, 명상(수습), 행위(Tib. ལྟ་སྒོམ་སྤྱོད་གསུམ་, ta gom chö sum, Wyl. lta sgom spyod gsum)로 구분한다. 여기에 결과론인 과(果)를 합하여 견수행과(見修行果)라고 지칭할 때도 있다. 견해, 명상, 행위에 대한 설명은 다음 항목에서 후술하였다.

불교 전반에 걸친 존재론, 수행론, 결과론에 관하여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후술할 내용은 달라이 라마의 초기 저작인 《초심자의 새로운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선설善說(ལེགས་བཤད་བློ་གསར་མིག་འབྱེད་ཅེས་བྱ་བ་བཞུགས་སོ།, Opening the Eye of New Awareness)》의 게시 소남 걜첸 스님 번역본에서 발췌, 요약한 것이다. 상세한 내용은 정토마을 한국티벳불교문화연구원의 게셰 소남 초펠스님이 완역, 출간한 《로사르믹제(새로운 마음의 눈을 여는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근(根) - 기본 바탕인 세속제와 승의제의 이성제
  • 도(道) - 방편의 보리심과 반야의 지혜 두 가지 방법
  • 과(果) - 법신과 색신의 두 가지 과위(果位)

존재론은 이제(二諦), 즉 세속제(世俗諦)승의제(勝義諦)로 구성된다. 이제설은 외도(外道)와 불교의 다른 학파에서도 등장하지만, 특히 중관학파에서 존재방식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개념이다. 승의제(진제)는 법의 궁극적인 실상을 보는 지혜의 직접적인 대상이고, 세속제(속제)는 세속에서 표현하는 이름과 생각(名言)의 직접적인 대상이다.

승의제와 세속제는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의식의 분별 상(이름, 생각 등)으로는 각기 다른 두 가립(假立)된 법(法)인 체성일(體性一) 반체이(返體異)(ngo bogcig ldog patha dad)의 관계이다.

중관학파의 관점에서 진제는 공성(空性), 속제는 공성을 제외한 모든 법으로 5온, 12처, 18계, 62계 등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이 있다.

수행론방편지혜 두 가지로 구성되는데, 구체적으로 교법(敎法)인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을 익히고 증법(證法)인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실천한다. 부처의 팔만사천법문은 모두 경율론 삼장으로 나눌 수 있다. 경장은 정학, 율장은 계학, 논장은 혜학을 주로 다룬다. 삼장은 소승장과 대승장으로 나눌 수도 있다.

소승의 계학은 삼악도와 윤회에서 해탈하려는 별해탈계, 정학은 색계의 사선정(四禪定)과 무색계의 사무색정(四無色定), 혜학은 사성제의 이치를 아는 지혜이다. 한편 대승의 계학은 악행을 막는 보살계, 정학은 허공장선정(虛空藏禪定) 등 특별한 선정, 혜학은 공성을 깨닫는 지혜이다.

계학은 도거(掉擧)로 산란한 마음을 법과 원칙을 지켜 산란하지 않게 하고, 정학은 혼침(昏沈)으로 집중하지 못하는 마음을 선정에 들게 하며, 혜학은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하게 한다. 지(止)와 관(觀)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먼저 샤마타를 닦은 뒤 샤마타와 위빠샤나를 함께 하는 지관쌍수(止觀雙修)를 순서대로 닦아서 공성을 깨달아야 번뇌의 뿌리까지 끊을 수 있다.

계정혜 삼학에 의지하여 성문ㆍ연각승의 토대를 다지고, 보리심을 일으켜 대승의 바라밀승과 금강승에 입문하여 지혜와 방편을 획득한다. 육바라밀 중 공성을 깨닫는 지혜바라밀은 지혜, 나머지 바라밀들은 방편에 해당한다. 바라밀승은 성불하는데 삼아승지겁이 걸리는 반면, 금강승은 짧으면 한 생안에도 성불 가능한 특별한 법이 있다.

■ 대승(보살승)의 수행 체계: 5도 10지
파일:BandPhoto_2021_05_06_12_34_29.jpg

결과론에 의하면 지혜가 원인이 되어 법신을 이루고, 방편이 원인이 되어 색신을 이뤄 최종적으로 부처의 과위를 얻게 된다. 법신과 색신은 다시 자성법신(自性法身), 지혜법신, 보신, 화신의 사신(四身)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자성법신은 진제에 해당하고, 나머지 지혜법신, 보신, 화신은 속제에 해당한다.

자성법신은 진제로서 '무자성(無自性)인 공성'을 의미한다. 자성법신을 다시 둘로 구분하면 '오염이 없는 본래청정'으로 '자성이 공(空)한 부처의 마음의 흐름(心相續)'인 자성청정신(自性淸淨身)과, '객진번뇌[32]가 없는 청정'으로 '번뇌장과 소지장이 없는 부처의 멸제(滅諦)'인 객진청정신(客塵淸淨身)으로 나눌 수 있다.[33] 둘은 자성신을 부처의 깨달음을 얻기 전과 후로 구분한 것일 뿐, 모두 똑같은 공성을 의미한다. 그 중 전자인 자성청정신은 곧 깨닫지 못한 중생도 누구나 부처의 종자(種子)를 갖고 있다는 여래장에 다름 아니다. 즉, 티베트 불교 주류의 관점에서 '여래장=객진번뇌를 제거하기 전 심상속의 공성'을 뜻한다.[34]

속제에 해당하는 지혜법신, 보신, 화신 중 지혜법신은 붓다의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이룬 마음(의식)의 흐름, 보신은 정토에 머물며 보살들에게 대승법만을 설하는 등 다섯 가지 고정된 법[35]을 갖춘 색신, 화신은 다섯 가지 고정된 법을 갖추지 않고 삼계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투는 색신을 의미한다.[36] [37]

부처의 공덕에는 신(身), 구(口), 의(意), 사업(事業)의 공덕이 있다. 몸의 공덕은 32상(相) 80종호(種好), 말의 공덕은 60가지 음성의 특징, 마음의 공덕은 지혜와 자비의 공덕으로, 지혜의 공덕이란 승의제와 세속제 등 모든 법을 정확히 아는 일체종지의 공덕이며, 자비의 공덕은 번뇌의 악습에 묶여 있는 중생들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번뇌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대자비심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공덕이다. 마지막으로 사업의 공덕은 27가지 행업(行業)으로, 부처의 신, 구, 의, 사업이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부처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공덕으로 4무외(無畏), 4무애지(無礙智), 10력(力), 18불공법(不共法) 등이 있는데, 4무외, 4무애지, 10력 등에 관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설명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부파불교와 달리 대승불교의 18불공법은 그러한 능력이 중생들을 어떻게 도우는지에 대해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 자성? 무자성?

중관학파는 법에 실체가 있다고 보는 소승 아비달마 교학에 대항하여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인 자성(自性, svabhāva)을 부정의 대상으로 삼았다. 동아시아 불교에 익숙한 이들은 이러한 중관학파의 주장에 혼란을 느끼기 쉽다. 여래장(如來藏), 불성(佛性) 사상과 유학(儒學), 현학(玄學)의 심성론(心性論)에 강한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불교에서 자성이란 곧 진여(眞如), 불성(佛性),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등과 동의어로서 진리의 당체(當體), 법의 진실한 본성이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관을 요의로 삼은 티베트 불교는 일체 무자성(無自性, niḥsvabhāva)을 논하면서 자성을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동아시아 불교와 마찬가지로 자성신(svabhavakaya), 자성청정(rang bzhin gyis rnam par dag pa) 등 자성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초학자가 혼동을 느끼기 쉽다. 쫑카빠의 《보리도차제광론》<관품>에서도 일체법이 무자성임을 논하면서 승의제(勝義諦), 법성(法性)으로서의 승의자성(勝義自性)은 긍정하는 일견 모순된 듯한 서술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티베트 불교에서 자성의 정확한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1) 자성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

어떤 사람은 말하길, 부정대상은 자성이며, 또 그 자성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즉 (1) 그 자체는 인과 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며 (2) 상태가 다른 것으로 변하는 일이 없으며 (3) 그 존재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중송》(제15장)에서 “(제1게) 자성이 연과 인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자성이 연과 인에 의해 생긴 것이라면,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 될 것이다. (제2게) 더욱이 어찌하여 자성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자성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셨기 때문이다

쫑카빠,《보리도차제광론》<관품> (이태승 譯)

쫑카빠는 용수보살의 《근본중송(중론)》에 의거하여 부정해야할 대상으로서의 자성을 (1)인과 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며 (2)불변하고 (3)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로 규정하였다. 일체법에 이러한 자성이 없는 것, 무자성이 곧 중관에서 말하는 공성(空性)이다.

2) 자성이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

그것(=자성)이 있는가, 없는가라고 누군가 묻는다고 하자. 만약 없다고 한다면, 무엇을 위해 제보살은 바라밀의 길을 수습(修習)하는 것인가. 왜냐하면 그 법성을 증득하기 위해 제보살은 그와 같이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이고, 경으로서 증거를 보이고 입증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중관파의 입장에서 해탈을 얻는 것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열반을 얻는 것은 그 열반을 깨닫는 것으로, 그 열반도 그 경우 멸제(滅諦)로 간주되며, 멸제도 또 승의제로 설해지기 때문에, 승의제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앞에서 일체법에 있어 자성의 성립을 부정하지 않았는가(=부정했다) 라고 생각한다면, 내적(內的)인 지(知)에 의해 가설(假說)된 것이 아닌 제법에 있어서 그 자체로 성립하고 있는 자성인 것은 티끌 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리들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그와 같은 자성으로서 다른 제법은 말할 것도 없고, 법성이라는 승의제도 또 (그와 같은 자성으로서) 성립하는 일은 조금도 없다

쫑카빠,《보리도차제광론》<관품> (이태승 譯)

한편 쫑카빠는 해탈, 열반, 멸제, 승의제, 법성으로서의 승의자성(勝義自性)을 인정한다. 그러나 승의제, 법성 또한 상술한 부정의 대상인 자성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다만 세속의 언설(言說)로 표현될 뿐이다. 언설로 표현될 수 없는 궁극의 경계, 무명(無明)을 떠난 성자들의 인식을 "진실된 존재, 변치 않는 것, 항상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 어떠한 경우에도 생겨나지 않고,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서 자성, 승의제, 법성 등의 이름을 붙여 가설(假說)하였지만, 다른 모든 법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생각(名言)으로만 존재할 뿐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태승 위덕대 교수는 쫑카빠가 자성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배경에 쫑카빠가 《보리도차제광론》에서 인용한 짠드라끼르띠(월칭)의 영향이 있었으리라고 보았다. 용수보살 이래로 짠드라끼르띠 이전 중관 논사들 중에는 자성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경우가 없었다. 그러나 짠드라끼르띠는 《입중론주》, 《명구론》 등에서 법성(dharmatā), 본체(svarūpa), 자성(svabhāva), 본성(prakŗti), 공성(śūnyatā), 무자성(naiḥsvabhāva), 진실(tathatā) 등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물론 이 중에 '자성'의 자성과 '무자성'의 자성은 다른 의미일 것이다. 짠드라끼르띠나 쫑카빠가 '언설로서의 세속'으로 법성 내지 자성을 인정한 까닭은 청정한 수행인 범행(梵行), 바라밀행을 하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며, 승의적으로는 존재와 비존재를 떠난 적정(寂靜) 그 자체이다.

이태승, 《『보리도차제대론』에 나타나는 승의자성의 의미》

윤희조, 《자성(自性)의 의미변화에 관한 일고찰 - 『구사론』, 『중론』, 『단경』 을 중심으로》

정리하자면, 티베트 불교에서 자성은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 둘 다로 쓰인다.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경우 자성(세간자성)은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를 의미하며,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 자성은 '자성-공'으로 공성(=무자성)과 의미가 같다. 이를테면 공성을 '자성이 없다(무자성)', '자성이 공하다', '자성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식으로 전도(顚倒)된 관념을 척파하기 위해 부정 형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불도(佛道)를 이루는 수행의 근거, 목표, 결과로 삼기 위해 '(승의)자성', '자성청정', '자성법신', '법성', '불성', '여래장', '진여', '멸제', '승의제', '열반' 등의 긍정 형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38]

[39] 물론 긍정 형식으로 표현되더라도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가 아닌, 언설로만 성립할 뿐이다.[40]

비단 티베트 불교 뿐만 아니라 자성은 대승 불교 전반에 걸쳐 복합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다른 대상과 구별되는 고유한) 본질', '본성'이란 뜻의 자성이 중관에서는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로서 부정 대상이 되었고, 이후 유식, 여래장에서는 다시 '궁극적인 진실의 경계', '본질'이라는 긍정의 의미로 쓰이는 변천과정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변화가 개념적인 혼동을 유발하기 쉽기 때문에 맥락에 따른 자성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태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성(自性))》



4.5. 견해, 명상, 행위[편집]


파일:280845030p014p70on891q17p13n5250.jpg
수행의 단계마다 각기 다른 견수행과(見修行果)가 존재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수행론인 도(道, Skt. mārga; Tib. ལམ་, lam, Wyl. lam)를 다시 세분화하여 견해, 명상(수습), 행위(Tib. ལྟ་སྒོམ་སྤྱོད་གསུམ་, ta gom chö sum, Wyl. lta sgom spyod gsum)로 구분한다. 여기에 결과론인 과(果, འབྲས་བུ་, Tib. drebu; Wyl. 'bras bu)를 합하여 견수행과(見修行果: 견해, 명상(수습), 행위, 결과)라고 지칭할 때도 있다. 현밀(顯密)을 막론하고 모든 불교 수행은 견해, 명상, 행위 세 가지로 구성되며, 이를 통해 목표한 결과를 얻는다.[41]

대만 중화불학연구소(中華佛學研究所)의 란지푸(藍吉富) 교수가 작성한 《佛教信仰的見修行果》를 참조하여 견수행과(見修行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견해(Skt. dṛṣṭi; Tib. ལྟ་བ་, tawa; Wyl. lta ba, view)란 법문이나 종파의 교리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나 믿음을 의미한다.

1) 법문의 기본 원리, 믿음의 근거, 이론 구조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염불 법문을 예로 든다면 법문의 근거가 되는 경론과 왜 염불이 필요한지, 염불의 정의는 무엇이고 염불의 목적은 무엇인지 등등이 견해에 해당한다.

2) 어떤 전승이나 종파의 기본 교리 구조를 말함.

수행자 개인의 견해는 이론적인 지식, 이론의 실천을 통해 얻은 지혜, 궁극적인 깨달음 등 여러 단계로 나뉠 수 있다. 또한 전승이나 종파 교리에 있어서도 단계 별로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명상(혹은 수습, meditation)은 내재적(內在的)이고 개인적인 수행을 의미한다. 불교 수행(修行)은 내재적인 수행인 '명상'과 다른 대상 간의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외재적인 '행위'로 구분할 수 있다.

명상은 주로
  • 수습(修習), 수행계발(Skt.bhavana; Tib. སྒོམ་, gom, Wyl. sgom)
  • 삼매(Skt.samadhi.; Tib. ཏིང་ངེ་འཛིན་, ting nge dzin, W yl. ting nge 'dzin)
  • 선정(Skt.dhyana; Tib. བསམ་གཏན་, samten. Wyl. bsam gtan)

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명상은 경전 학습을 통해 얻는 문혜(聞慧, śruta-prajñā)와 논리적 사유를 통해 얻는 사혜(思慧, anumāna-prajñā 또는 cintā-prajñā)를 요가행법을 통해 직접적, 체험적, 직관적인 수혜(修慧, bhāvana-prajñā)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행위(Tib. སྤྱོད་པ་, chöpa, Wyl. spyod pa, action)는 앞서 언급했듯이 외재적(外在的)이고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일상의 행동이나 태도,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육바라밀을 예로 들자면 선정, 지혜바라밀은 명상에 해당하고 보시, 지계, 인욕 바라밀은 행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진바라밀은 나머지 다섯 바라밀 모두에게 적용된다.

오명불학원(五明佛學院)의 켄뽀 소다지(Sodargye) 스님은 대승 불교 보살의 행위란 오로지 조건 없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한편 닝마의 뒤좀(Dudjom) 린뽀체는 행위란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일어나는 생각 모두를 잘 관찰하여 그 생각들의 참된 본성을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미래를 쫓아가지도,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고 기쁜 상황에 집착하거나 혹은 슬픈 상황에 압도되지도 않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모든 기쁨과 슬픔, 평안과 고통의 자성(自性, svabhāva)이 없는 위대한 평정(equilibrium)에 머물게 된다.

결과(result)는 견해ㆍ명상ㆍ행위로 구성된 불교 수행을 배우고 실천하여 얻는 성과를 의미한다.

1) 각 전승과 종파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과위(果位). 성문승은 아라한, 대승의 현교(바라밀승)는 삼아승지겁 동안의 수행을 통한 성불, 밀교(금강승)은 즉신성불(卽身成佛), 선종은 견성성불(見性成佛), 정토종은 극락왕생 등등 전승과 종파마다 수행의 궁극적인 결과는 다를 수 있다.

2) 궁극적인 과위 외에 단계별로 얻는 성과. 예를 들어 성문승은 아라한 외에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등 사향사과(四向四果)가 있으며 보살승은 초지(初地)부터 십지(十地)까지의 보살지(菩薩地)가 있다.

수행의 성과는 억지로 구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바른 수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조낭의 스승인 제쭌 타라나타(rje btsun ta ra na tha) 는 견해, 명상, 행위의 불가분성과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견해, 명상, 행위를 하나로 묶고 실천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마치 창(槍) 하나하나가 모여 한 묶음을 이루듯이 서로 밀접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견해 없이는 행위가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실재가 있다고 믿게 되고 그래서 윤회가 계속된다. 행위 없는 견해로는 공덕 쌓는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 게다가 견해를 기르는 당사자를 허무주의의 심연까지 이끌어 갈 위험이 있다. 명상이 없는 견해와 행위는 땅 속에 묻힌 보물과 마찬가지로 무용하다. 오두막집 밑에 보물이 무진장 숨겨져 있어도 가난한 사람이 그것으로 배고픔을 면할 수 없듯이, 견해와 행위에 대한 가르침이 엄청나게 많아도 실제 명상 수행을 하지 않으면 수행자는 마음을 다르마(불법)에 계합시킬 수 없다. 즉 견해와 행위가 필요할 때 전혀 유용하지 못할 것이다.

제쭌 타라나타(rje btsun ta ra na tha)

마티외 리카르,《티베트 지혜의 서》(임희근 譯)


4.6. 중관 사상[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불교/중관 사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7. 불교인식논리학[편집]



파일:dignaga.jpg

대론(對論)으로 외도(外道)들을 제압하는 디그나가

중관학과 더불어 불교의 인식론과 논리학에 해당하는 인명학(因明學, Hetu-vidyā)을 중시한다는 점도 티베트 불교 교학의 특징이다. 인명학은 현대식 용어로 불교인식논리학이라고 한다. 인명학에서 지각에 해당하는 현량(現量, pratyakṣa)과 추리에 해당하는 비량(比量, anumāna)이라는 두 종류의 인식을 다루며, 이 중 비량에 관한 이론은 논리학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명학은 견해, 사상을 익히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수단일 뿐 아니라, 사유와 수행을 통해 얻은 인식이 정합적(整合的)이고 명료한 인식인지 점검할 때도 필요하다.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차이는 인명(因明)과 밀교(密敎)에서 드러난다고도 할 수 있다. 인명과 밀교는 인도 후기 대승 불교 시대를 이끌었던 마차의 양 수레바퀴로 인명은 진리 탐구를 위한 분석적, 철학적 도구이며, 밀교는 대승불교 유가행의 완성이다.

인명학은 구(舊)인명과 신(新)인명으로 나뉘는데, 이 중 신인명은 디그나가(Dignāga, 480~540)와 다르마끼르띠(Dharmakīrti, 7세기)가 확립했다. 불교의 진리를 논리적으로 탐구하는 모든 과정은 인명의 범주에 포함된다. 디그나가와 다르마끼르띠는 불교의 인명논리학을 집대성하여 종(宗), 인(因), 유(喩)로 이루는 삼지작법(三支作法)을 확립했고, 이후 오지작법의 논쟁 방식이 점차 정립되었다.

《인명칠론(因明七論)⟫ 혹은 《칠부량론(七部量論, Pramanavartikadisapta-grantha-samgraha)⟫은 다르마키르티가 디그나가의 《집량론(集量論, Pramāṇa-samuccaya)⟫를 주석한 (1) ⟪양평석(量評釋, Pramāṇavārttika)⟫, (2) ⟪정량론(定量論, Pramāṇaviniścaya)⟫, (3) ⟪이적론(理滴論, Nyāyabindu)⟫ (4) ⟪인적론(因滴論, Hetubindu)⟫, (5) ⟪관계론(關系論, Saṃbandhaparīkṣā)⟫, (6) ⟪쟁리론(諍理論,  Vādanyāya)⟫, (7) ⟪오타론(悟他論, Saṃtānāntarasiddhi)⟫ 등 일곱 가지 주석서를 총칭하는 말이다.
정성준, 《티베트대장경의 번역과 영향》

파일:cdaf59abb72cc430ca28ec02c10e0649.jpg
《인명칠론》의 저자 다르마끼르띠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디그나가의 《인명정리문론(因明正理門論)》과 디그나가의 제자로 추정되는 상카라스와민(Śaṇkarasvāmin)의 《인명입정리론(因明入正理論)》등이 한역되어 전래되었다. 반면 티베트 불교에서는 다르마끼르띠의 《석량론(양평석)》을 중시하였는데, 《석량론》과 같은《인명칠론》은 과거에 한역이 된 바 없다. 현대에 이르러 학술서와 논문 등에서 《인명칠론》일부가 현대어로 번역되었지만 아직《석량론》의 완역본은 나오지 않았다. 근현대 티베트의 문제적 인물인 학승(學僧) 겐뒨 최펠(dge 'dun chos 'phel)이 《석량론》을 영어로 완역하였으나 실전(失傳)되었다고 전해진다.

티베트 불교의 인식논리학과 언어철학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는 스위스 로잔 대학의 파스칼 위공(Pascale Hugon)이 작성한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Tibetan Epistemology and Philosophy of Language> 항목에 나와 있다.

티베트 불교 강원에서는 기초 과정에서 인식논리학과 관련된 《듀라(섭류학攝類學)》, 《로릭(심류학心類學)》, 《딱릭(인류학因類學)》을 배운 뒤 5부대론 과정에서 다르마끼르띠의 《석량론(釋量論)》을 배운다. 대략 10년 이상 해마다 겨울철 한 달씩 스님들이 한 절에 모여 집중적으로 논리학을 배우기도 한다.

참조할만한 국내 자료는 다음과 같다. 티베트 불교의 인식논리학과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국내 자료는 매우 드물다.


대신 티베트 불교 인식논리학의 토대가 되는 인도 후기 유식학파의 인식논리학 및 언어철학과 관련한 국내 자료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42]

  • 《니야야빈두(정리일적론)》


파일:af052af0e97a045ab8e96879519f96ac.jpg

티베트 승려들이 대론하는 모습

불교논리학에 기초한 대론(對論, rtsod pa)은 인도의 날란다 사원에서부터 계승된 티베트 불교의 중요한 수행 방법 중 하나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대론은 설법('chad), 저술(rtsom)과 더불어 학자(paṇḍita)의 3가지 주요 활동(mkhas pa'i bya ba gsum)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찍이 불교는 내도(內道)의 다른 학파 및 외도(外道) 간의 대론을 통해 바른 견해를 확립해왔다. 오늘날과 같은 티베트 불교의 대론 방식은 12세기 차빠 최끼 셍게(phywa pa chos kyi seng ge)에 의해 정립되었다.

범천스님은 범천,《불교논리학의 향연》에서 티베트 불교의 대론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 대론은 인명자(因明者; 딱셀와; rtags gsal ba)와 발서자(發誓者; 담짜와; dam bca'ba) 간의 문답으로 진행된다. 인명자는 일어선 채로 질문하고, 발서자는 앉은 채로 대답한다.

2) 발서자는 자신의 주장을 방어하고, 인명자는 발서자의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들을 통해 발서자를 모순으로 유도해간다.

3) 발서자가 자신이 전에 했던 주장을 뒤에 번복하면 인명자는 왼손바닥에 오른 손등을 내리치며 '차!'라고 외쳐 오류가 발견됐음을 확인시킨다. 그러나 이것이 인명자의 착각일 경우 발서자는 '찰록' 또는 '차똥'이라고 말해 오류가 없음을 주장한다.

4) 궁극적으로 인명자는 발서자의 근본주장(짜외담짜; rtsa ba'i dam bca'), 즉 논쟁의 시초가 된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해 나아가며, 근본주장이 번복될 경우 발서자의 근본적 패배로 간주된다.



티베트 불교 대론법 소개 영상

대론이나 분석 명상은 마음챙김 등 다른 명상에 비해 과학적으로 거의 연구된 바 없다. 마리에케 반 부흐트(Marieke K. van Vugt) 흐로닝언대 교수, 조슈아 폴록(Joshua Pollock) 켄트 주립대 교수, 데이비드 프레스코(David M. Fresco) 켄트 주립대 교수 등은 2020년 대론과 분석명상에 관한 첫 과학적 연구를 발표했다.

대론(monastic debate)은 양자(兩者)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분석 명상(analystic meditation)에 해당한다(역으로 개인의 분석 명상은 스스로 묻고 답을 찾는 '자가 대론(self-debate)'에 가깝다.).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대론 역시 '분석 명상'으로 지칭하였다. 측정 수단으로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분석하는데 알맞은 뇌파의 하이퍼스캔(Hyperscan)을 활용하였다. 실험 대상은 겔룩에 속한 세라 제(Sera Jey) 강원의 승려들로 선정되었다.

측정 결과 대론 중에 집중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중전두 세타 진동(mid-frontal theta oscillations)이 유의미하게 증가하여, 분석 명상이 집중력을 훈련시킨다는 가설과 일치함을 보였다. 세타 진동의 증가 정도는 초보자 승려군(群)보다 숙련된 승려군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또한 짝지어진 토론자들 간의 전두 알파 진동(frontal alpha oscillations) 동시성(synchrony)이 전제에 대한 의견이 서로 불일치할 때보다 동의할 때 더욱 증가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Marieke K. van Vugt et al.,, 《Inter-brain Synchronization in the Practice of Tibetan Monastic Debate》

세라 제 강원의 교수사들과 상급생 승려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토의 및 인터뷰와 예비실험들을 바탕으로, 반 부흐트 등은 성공적인 토론에 추론과 비판적 사고, 주의 집중, 작업 기억(working memory), 감정 조절, 추론 기술에 대한 자신감, 사회적 유대감 등이 필요하다는 초기 이론을 설정하였다. 또한 향후 대론과 분석 명상이 심리학적 웰빙과 교육적 성취에 심리학, 신경과학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추가로 연구해나갈 것을 제안하였다.
Marieke K van Vugt et al., 《Tibetan Buddhist monastic debate: psychological and neuroscientific analysis of a reasoning-based analytical meditation practice》

4.8. 자비와 보리심의 강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불교/자비와 보리심의 강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밀교[편집]



5.1. 개요[편집]



파일:90706.jpg

모든 불보살의 힘(力)의 총체이자
밀승의 가르침을 결집한 금강수보살(Vajrapani)[43]

인도 불교의 최종단계라고 할 수 있는 밀교는 티베트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동남아, 동북아의 다른 국가들로 전래되었지만 지금까지 법맥이 끊기지 않고 독자적인 밀교 종단이 유지되고 있는 곳은 티베트(몽골, 부탄 등 티베트 불교권 지역 포함)와 일본뿐이다.[44] 일본에는 중기 밀교까지 전해진 반면 티베트에는 후기 밀교까지 전래되었다. 밀교부에 해당하는 방대한 경전들이 존재하며 또한 티베트 불교 종파별로도 각자의 독자적인 밀교 전승과 문헌을 갖고 있다.

밀교는 다른 말로 금강승(金剛乘, vajrayana)이라고 한다. '금강'이라는 것은 매우 견고하고 단단한 것을 뜻한다. 방편과 지혜를 분리시키지 않고 합일시켜 단단하게 하기 때문에 금강승이라고 한다. 금강승은 '방편승(方便乘, upayayana)'이라고도 한다. 바라밀다승보다 많은 선교 방편들을 구족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금강승을 '과승(果乘, phalayana)'이라고도 한다. 수행자가 과(果)로써 도(道)를 삼기 때문이다. 수행의 결과인 불과(佛果)를 수행방편으로 이용하여 수행자 자신을 밀교의 본존으로 관상하는 청정 인식을 갖게 한다. 금강승은 '밀승(密乘, guhyayana)'이라 칭하기도 한다. 반드시 엄격하게 비밀을 지키면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밀교의 가르침과 수행은 비밀로 남아있어야 하며 밀교 수행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관정이나 금강승 수행에 대해서 남에게 알리거나 자랑해서는 안된다. 자칫 자기중심주의, 오만에 빠질 수 있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달라이라마의 밀교란 무엇인가》(설오 譯)

최로덴(최연철)은 최로덴,《티벳 불교의 향기》에서 딴뜨라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딴뜨라(Tantra, rGyud)라는 용어는 밀교 경전들에 근거한 수행 전통을 말한다. 딴뜨라(Tantra)라는 말의 본뜻 역시 연속(連續) 계속(繼續) 본속(本續) 밀주본속(密呪本續) 비밀본속(秘密本續)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티벳어로는 ‘규(rGyud, 續)'라고 하는데, 이 역시 같은 의미이다. 딴뜨라의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로 관상(觀想)의 과정들, 의례절차, 상징들의 구체적인 묘사를 통한 깊은 철학적 의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들을 활용한 수행을 통하여 의식을 전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체계화되어 있다. 즉 ‘딴뜨라’는 모든 수행 양식과 관념들 그리고 다양한 상징물들과 함께 구전 전승되고 있는 의례 의식과 광범위한 경론들을 포괄하는 말이다.

또한 밀교는 현교에서 미처 밝히지 못한 더욱 심오한 견해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밀교 경전에서는 번뇌장, 소지장 같은 번뇌를 다룰 때 현교의 번뇌 개념보다 더욱 미세한 번뇌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부처의 사신(四身)[45]의 공덕에 대해서도 현교에서 다루지 않는 자세한 사항을 설명한다. 가령 현교, 특히 귀류논증 중관학파에서는 의식에 대해 설명할 때 전5식과 제6식의 존재에 대해서만 언급하지만, 겔룩에서 주요하게 취급하는 무상요가 딴뜨라인 구햐사마자 딴뜨라(Guhyasamājatantra)에서는 현교에서 언급하지 않는 미세한 번뇌들을 제거하여 제1공(空)부터 제4공까지의 더욱 미세한 의식 단계에 도달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불교 수행에 있어 현교 뿐 아니라 밀교 역시 필수불가결한 가르침이며,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는 바라밀승(현교)으로 십지보살까지의 과위를 얻는 것은 가능하지만 성불을 위해서는 반드시 금강승(밀교)의 무상요가 딴뜨라를 성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 수행의 3가지 체계
이승
삼승

소의 경전
수행
소승
성문승·독각승
별해탈계
아함경 등 초기 경전
주로 자신의 번뇌를 없애는 수행
대승
바라밀승(보살승)
보살계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등
일체중생을 위해 보리심과 육바라밀 수행
금강승(밀승)
금강승계
밀집금강, 승락금강, 대성덕금강 등
번뇌의 독을 약으로 삼는 수행


5.2. 밀교의 기원과 불교사 서술 방식[편집]



5.2.1. 전통적 관점[편집]



파일:89904.jpg

지금강불(Vajradhara)과
84명의 마하싯다(mahasiddha)[46]

겔룩의 승원에서 교재로 쓰이는 양짼 가외로되(Dbyans can dgah baḥi blo gros)의 밀교 관련 논서 《시이꾸숨기남샥랍쌜된메(因位三身行相明燈論, gzhi'i sku gsum gyi rnam gzhag rab gsal sgron me)》를 중암 스님이 역주(譯註)한 양짼 가외로되,《밀교의 성불 원리》(중암 譯)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금강승은 석가모니불의 보신불(報身佛)[47]인 지금강불(持金剛佛, Vajradhara)에 의해 설하여졌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강불은 오종성불(五種性佛)의 덕성을 하나로 모은 대보신불(大報身佛)로 밀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부처이다. 금강승의 가르침은 무상유가의 법기(法器)로 알려진 업과지(業果地)[48]의 남섬부주 유정들을 위해서 단지 한 생애에서 성불할 수 있도록 최상의 근기를 대상으로 설한 비밀의 방편도(方便道)로 설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무상요가부 딴뜨라의 가르침은 대승 가운데 대승이며 최상승법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이 비밀 금강승의 가르침이 남섬부주에 출현한 것은 오로지 석가모니불의 시대이며, 과거의 연등불이나 미래의 미륵불 때는 금강승의 가르침이 설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인간 수명이 100세에 불과한 오탁악세에 출현한 석가모니불의 교화 대상인 현세의 남섬부주 중생들이 금강승의 큰 연분(緣分)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오직 과거의 현전왕불(現前王佛), 현세의 석가모니불, 미래의 문수사리불[49]이란 세 분의 부처가 출현한 세 겁 때의 중생들만이 금강승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다. 그만큼 금강승과의 인연은 매우 희유한 인연이며 숙세의 매우 큰 선근 공덕 없이는 접할 수 없다고 한다.


파일:Padmasambava-looks-like-me.jpg

빠드마삼바와 "나처럼 여기고 보라" 불상(佛象)[50]

티베트에 최초로 밀교를 전한 밀교의 대성취자(mahasiddha)이자 아미타불(Amitabha)의 화신으로 알려진 구루 빠드마삼바와(Padmasambhava)의 전기 《빼마 까탕》에서는 밀교와 만나는 희유한 법연(法緣)을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귀담아 잘 들으십시오! 티베트의 선근자들이여!

비밀진언의 금강승이 출현하는 것은 희유한 일이니,

과거의 8억 4천만의 제불여래도 설하지 않았으며,

연등불께서 법륜을 굴리실 때도 설하지 않았으며,

미래에 오시는 제불여래들도 역시 설하지 않으니,

그 유정들이 밀교의 법 그릇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과거 겁초에 겁명(劫名)을 일체장엄이라 부르는 때,

현전왕불의 가르침에 밀법이 출현하였으며,

현재불인 석가세존의 교법에 밀교가 출현하였습니다.

다시 천만 겁을 지나 겁명을 꽃 장엄이라 부르는 때,

문수사리불이 출현하여 현재와 같은 시절이 도래할 때,

그 부처님께서 지금처럼 진언밀교를 선양하게 됩니다.

이 세 겁의 유정들이 밀교의 법기가 되기 때문이며,

이 세 겁이 아닌 시절에는 금강승이 출현하지 않습니다."

《뻬마 까탕》


불교학자 최로덴은 최로덴,《티벳 불교의 향기》에서 딴뜨라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딴뜨라의 수행자들은 딴뜨라 수행의 전통이 대부분 석가모니(Sakyamuni) 부처가 직접 설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개중에는 가끔씩 다른 세상(타방他方)의 부처가 설한 것도 있으며, 말이 아닌 의식 속에서 전해진 것(意傳)이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것(心傳) 등 다양한 형태로 전해진 딴뜨라들이 있다. 티벳 불교 학자들 대부분은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일반적으로 역사학과 관련한 현대의 분과학문에 종사하는 학자들은 이러한 내용을 다른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석가모니의 입멸 이후, 최소한 천 년 동안, 불교 딴뜨라들이 출현한 역사적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본다. 

이렇게 석가모니 재세시와 인도에서 딴뜨라가 꽃 핀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 것에 대해 티벳 역사가들 중 17세기의 유명한 역사가인 따라나타(Taranatha) 같은 이들은, 석가모니가 재세시에 직접 딴뜨라의 가르침들을 전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 사람들의 근기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단지 소수의 제자들에게만 전승되고 나머지는 때가 되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감추어져 있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딴뜨라의 기원에 관한 이런 식의 설명은 현대의 학자들에게 큰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이렇게 수많은 딴뜨라의 경전들이 언제 어디서 누가 편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딴뜨라를 직접 수행하는 사람들의 전통에서 보면, 딴뜨라는 한번도 끊이지 않고 이어진 확실한 법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그 전통을 따라 성취를 이루었고, 지금도 그 법맥을 따라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며, 많은 딴뜨라의 경전에는 법맥의 전수자들이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딴뜨라의 법을 전해준 증거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5.2.2. 현대적 관점[편집]


딴뜨리즘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여전히 딴뜨리즘의 기원은 분명치 않다. 과연 현 시점에서 딴뜨리즘의 기원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을지 회의를 표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을 통해 딴뜨리즘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의 기원에 대한 주장들은 대개 한 쪽이 다른 쪽에 의존하였다는 ‘빌린 모델(borrowing model)’과 두 딴뜨라 이면에 공통적인 근원이 존재한다는 ‘기층 모델(substratum model)’의 두 양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 특히 요기니 딴뜨라들과 샤이바 딴뜨라들의 공통적인 토대로 일종의 ‘종교적 기층’이 존재한다는 가설은 20세기의 많은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다.

'종교적 기층'이란 아리안족의 인도 아(亞)대륙 진출 이전부터 존재하던("pre-Aryan") 토착 부족의 종교와 문화를 의미한다. 비(非) 아리안계 토착 부족들은 아리안 족의 진출 이후에도 주변부에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존속하였다. 이들 부족들의 문화에 담긴 여신(女神) 숭배와 주술적 요소가 점차 아리안 족의 베다 전통(Vedic tradition)에 유입되었고 그 결과 힌두, 불교, 자이나교 등에 딴뜨리즘이 형성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이 가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옥스퍼드대의 알렉시스 샌더슨(Alexis Sanderson)에 의해 도전받았다. 샌더슨이 ‘종교적 기층’ 가설에 의문을 품는 직접적인 이유는 ‘종교적 기층’이라는 것이 결코 지각되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추론되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데에 있었다. 

샌더슨은 우리가 딴뜨라로서 지각하는 것은 항상 샤이바 딴뜨라거나 바이슈나바 딴뜨라거나 불교 딴뜨라거나 혹은 어떤 구체적인 전통에 속하는 딴뜨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종교적 기층’ 가설은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 특히 요기니 딴뜨라들과 샤이바 딴뜨라들의 많은 공통점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전혀 설득력을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샌더슨은 비록 요기니 딴뜨라들이 다양한 의례 등 그 기원에 있어서 샤이바 딴뜨라들을 상당히 모방했지만, 요기니 딴뜨라들은 불교의 딴뜨라로서 샤이바 딴뜨라들을 배척하며 훌륭하게 기능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샌더슨의 이론은 루에그, 스페라, 데이비드슨 등에 의해 비판받았다. 웨더마이어 역시 힌두 샤이비즘과 불교는 정치, 경제, 문화와 사회적 공간을 공유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기에 불교 딴뜨리즘이 전적으로 힌두 샤이비즘(Śaivism)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하였다.

어느 쪽이 옳든 간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라뜨나까라샨띠(Ratnākaraśānti)나 아바야까라굽따(Abhayākaragupta) 등 인도의 후기 딴뜨라 불교의 위대한 학승들이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을 문제 삼은 자료가 지금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딴뜨라 불교가 적절한 불교적 의미를 주는 상징주의에 의존하면서, 이교적인 요소들을 흡수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명확한 의미가 그러한 요소들에 주어지면, 그들의 불순함은 제거되고, 그들은 불교의 이상을 표현하는 강력한 상징들로 탈바꿈하였다. 
이용현,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에 대한 논쟁》

불교 딴뜨리즘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들은 불교 역사의 서술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19세기 근대 서구 학자들은 인도 불교의 쇠퇴와 불교 딴뜨리즘의 등장을 결부시켜 해석했다. 그들은 불교 딴뜨리즘이 힌두 샥티즘과 샤이비즘 등에서 유래하였다고 규정하고, 힌두이즘적 요소의 도입이 불교 내부의 도덕적 타락과 정체성 상실을 초래하여 인도 불교가 쇠멸하였다는 서사 구조를 고안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근본적인 결함을 내포한다. 서구 학자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Abrahamic religions)의 개념으로 인도 종교를 해석하였다. 그 과정에서 샤이비즘, 샥티즘, 바이슈나비즘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인도 내 종교와 사상, 관습들이 '힌두교'라는 단일 종교처럼 취급되었고, 종교 간의 관계도 대립적이고 배타적인 관계로 묘사되었으며 여성의 가치는 평가 절하되었다.

또한 '생성-발전-번성-소멸'로 이어지는 유기체적 역사관에 익숙했던 서구 학자들에게 딴뜨리즘의 성(性)적 요소는 서양 고전(古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문명의 쇠락 징조로 해석되었다. 딴뜨리즘은 일종의 성적 타락으로 치부되어 서구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인도 불교 소멸의 원인으로 채택되었다.

불교 딴뜨리즘으로 인도 불교의 쇠락을 설명하는 서술 모델은 제국주의 시대에 처음 등장하여 20세기 초중반까지 서구 학계에 만연하였다. 그리고 서구의 영향을 받은 일본은 물론이고, 초기에 서구와 일본의 연구 성과를 받아들이는데 급급했던 한국 학계에도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다.

반면 인도 학자들, 특히 벵갈 출신 학자들은 딴뜨리즘을 불교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하던 원시적인 문화적 저류(undercurrent)와 연관시키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토착 부족 문화는 아리안족의 진출 이후에도 '종교적 기층', 혹은 '저류'를 형성하여 유지되면서 주류 종교에 유입되었다. 그 결과 기존 종교의 성격과 달리 민중 지향적, 모계 지향적, 신체 지향적인 딴뜨리즘이 등장하게 된다. 서구의 낭만적인 성향을 가진 학자들도 이러한 인도 학자들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Christian K. Wedemeyer,《Making Sense of Tantric Buddhism: History, Semiology, and Transgression in the Indian Traditions》

한편 대승 불교의 중관, 유식 논사들은 학자이자 동시에 밀교 수행자들이었다. 《유가사지론》으로 대표되는 유가행 이론의 완성 이후 이들은 유가행의 실천을 목적으로 밀교 의궤를 창안하였다. 또한 《대일경》, 《금강정경》과 같은 밀교 경전에 주석을 달았고, 바라밀승의 수학 이후 진언승을 수학하는 대승 교단의 현밀겸수(顯密兼修)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밀교의 교리적, 실천적 정통성을 보여준다. 정성준, 《인도밀교의 성립에 나타난 후기중관파와 밀교의 교섭 고찰》


5.3. 밀교와 현교의 비교[편집]



파일:Feature-Review_Tibetan-Medical-Paintings_AbramsNY.jpg

티베트 전통 의학에서의 인체 맥륜(脈輪)도.
밀교에서는 신구의(身口意) 삼밀(三密)의 수행으로
현생(現生)에서 지금의 몸으로 부처가 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 가능하다고 본다.

겔룩의 창시자인 쫑카빠는 "공성에 대한 견해, 모든 유정의 존재들을 위해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발심하는 의도(보리심), 육바라밀의 수행에 있어 현교와 밀교 양자는 차이가 없다." 하고 말하였다.

현교와 밀교는 공성(空性)이라는 견해를 지향하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밀법에서 말하는 공성이라는 것도 결국 대승 현교에서 말하는 공성을 말하는 것이지 더 심오한 공성을 말한다거나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51]

현교와 밀교의 공통된 수행도는 곧 보리심이다. 진정한 보리심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밀교의 수행승에 들어갈 수 있다. 보리심을 갖춰야 밀교에 박학다식하고 밀교의 수행을 겸비한 자격을 갖춘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밀법의 가르침을 수행할 수 있다.

현교와 밀교 사이에 의도, 동기인 보리심과 행위인 육바라밀에 있어서는 차이가 전혀 없다. 또한 현교에서 말하는 부처의 과위와 밀교에서 말하는 부처의 과위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부처의 과위에 이르기 위한 방편에 있어서는 현교와 밀교가 차이가 있다. 부처님의 과위, 불과(佛果)라는 것은 법신(法身)과 색신(色身) 두 가지로 양상을 나눌 수 있다. 현교와 밀교 모두 법신을 이루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지만, 색신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은 밀교에만 드러나 있으며 법신을 이루는 방법에 있어서도 현교보다 밀교가 더욱 구체적이다. 전반적으로 밀교는 현교에 비해 보다 지혜롭고 예리한 근기의 수행자만이 수행할 수 있고, 더욱 다양한 방편으로 쉽고 빠르게 성불할 수 있는 가르침이다.

금강승이 바라밀승보다 우월한 점에 대해 제13대 달라이 라마 툽텐 갸초(Thub Bstan Rgya Mtsho)는 다음과 같은 4가지를 언급했다.

(a) 금강승에서 공성의 체험을 일으키는 방식은 비할 데 없는 방편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방편들은 신체의 거칠고 미세한 생명의 바람(風)들을 중맥(中脈)에 넣고, 머물게 하고, 녹임으로써 심적(心寂)의 지혜를 얻게 한다.[52] 따라서 금강승에서 공성에 대한 통찰을 기르는 방편들은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b) 금강승은 보다 광대한 방편들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금강승의 수행 중에는 성취해야 할 색신(色身)의 특성에 따라서 원인이 되는 형태를 명상하는 것이 있다.

(c) 금강승의 도(道)는 어려움 없이 속히 성취된다. 반야바라밀승에서는 깨달음의 과위를 얻기 위해 수많은 생(生) 동안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반면 금강승에서는 지금 한 생 안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쉽게 성취할 수 있다.

(d) 마지막으로 금강승은 도(道)의 빠른 진전을 이룰 수 있는 예리한 근기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고안되었다.
Glenn H. Mullin, 《From the Heart of Chenrezig: The Dalai Lamas on Tantra》

파일:glenn-mullin_31.jpg
캐나다인 출신의 티베트 불교 스승으로, 주로 겔룩 계열의 밀교 수행을 가르치고
수십 권의 티베트 불교 고전을 번역한 글렌 물린(Glenn H. Mullin).
2011년부터 매년 방한하였다.

현교와 달리 밀교에는 지혜와 방편을 완벽히 합일하여 수행하는 법이 있다.[53] 바라밀승의 수행자가 공(空)에 대한 개념적 또는 추론적 인식을 얻게 되면 오직 공만이 나타나고 대상은 사라진다. 그러나 본존요가는 공성에 대한 명상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본존으로, 자신의 주변 환경을 본존의 거주지로(만다라), 자신의 도반들을 신성한 존재들로, 자신의 행동들이 본존의 신성한 행동으로 심상화(心象化)함으로써 금강승의 수행자가 공을 깨닫게 되면, 관(觀)하던 현상이 공하다는 지각이 일어남과 함께 그 현상들이 사라지지 않고 공성의 범주 내에서 유지된다. 그러므로 지혜와 방편이 동시에 존재하고 공을 깨닫기 위해 사용된 미묘(微妙) 의식은 붓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한 금강승에는 본존의 관상 뿐 아니라 신체 구성요소인 기(氣, prāṇa), 기맥(氣脈, nāḍi), 맥륜(脈輪, cakra), 명점(明點, bindu) 등을 활용한 수행법이 있다. 금강승에서는 불과(佛果)를 이루는데 매개체가 되는 수행자의 신체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무상요가 딴뜨라에 의하면 수행자의 몸과 마음은 일상생활의 거친 수준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미세한 수준으로도 존재한다. 다양한 물질요소로 이루어진 수행자의 일상적인 신체적 형태는 병과 쇠퇴와 죽음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금강신(金剛身)이라 불리는 미세한 몸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파괴 불가능한 성질을 갖고 있다.

소멸되는 물질적인 거친 수행자의 몸이 일반적인 신체기관에 의해 채워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세한 금강신의 몸은 기(氣)와 명점(明點)이 흐르는 수천 개의 기맥(氣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기맥들은 지복(至福)의 원천이며 무상요가 탄트라의 수행에 있어서는 필수적이다. 딴뜨라 수행의 목적은 미세신(微細身)의 구성요소를 정화하여 붓다의 세 가지 몸(法身, 報身, 化身)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삼는 데에 있다.
원명, 《탄트라 수행의 특징: 신체 구성요소의 활용》

5.4. 밀교의 분류[편집]


티베트의 학자이자 역사가인 부뙨(Buton)은 밀교를 소작부 혹은 사부(所作部 혹은 事部, kriya tantra), 행부(行部, charya tantra), 유가부(瑜伽部, yoga tantra), 무상유가부(無上瑜伽部, anuttarayoga tantra) 등 네 부파로 분류하였다. 밀교 네 부파는 수행의례나 방법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소작부는 외적인 의례를 수행의 중심으로 삼고, 행부는 《대일경(大日經)》을 위주로 외적인 의례와 내적인 수행을 함께 중시하며, 유가부는 《금강정경(金剛頂經)》을 중심으로 오직 내적인 수행만을 중시한다. 무상유가부의 가르침은 인도 후기 밀교에 해당하며 비교하여 설명할 것이 없다. 네 탄트라의 수행은 상응하는 근기를 가진 수행자에 근거하여 나눈 것이지,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나눈 것이 아니다.

무상요가 딴뜨라는 방편 부(父) 딴뜨라, 반야 모(母) 딴뜨라, 부ㆍ모 양 딴뜨라의 쌍입(雙入)을 설한 불이(不二) 딴뜨라로 나뉜다. 방편 부 딴뜨라에 속하는 경전은 《비밀집회 딴뜨라(Guhyasamaja tantra)》와 《야만따까 딴뜨라(Yamantaka tantra)》가 대표적이며, 반야 모 딴뜨라는 《헤바즈라 딴뜨라(Hevajra tantra)》, 《챠크라삼바라 딴뜨라(Chakrasamvara tantra)》 등이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불이 딴뜨라는 《깔라챠크라 딴뜨라(Kalachakra tantra)》가 대표적인 경전에 속한다.


파일:87220.jpg

17세기 겔룩 계통의 칼라차크라 만다라

5.5. 밀교의 수행 요건[편집]


현교, 다시 말해 바라밀승은 부처의 과위를 이루는데 삼아승지겁이 걸리는 반면 밀승을 수행하면 단기간 내에 자량(資糧)[54]을 쌓아 짧게는 한 생에도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티벳망명정부 총리를 역임한 삼동(zam gdong) 린포체는 2018년 방한법회에서 현교와 밀교를 도보와 고속철도에 비유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때 도보보다 고속철도가 훨씬 빠르지만 거쳐가는 경로는 같다. 마찬가지로 밀교도 현교보다 짧은 기간에 성불할 수 있지만 중간 과정을 생략함 없이 거쳐 가는 과정은 동일하다.

밀교는 단기간에 성불할 수 있는 수승한 가르침이지만 아무나 밀교를 수행할 수는 없다. 밀교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이미 현교의 수행차제를 두루 섭렵하여 근기가 성숙된 이라야 하며, 오직 불과(佛果)를 증득하고 싶다는 의욕을 앞세우거나,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수승하다고 자만하여 밀교 수행에 접근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탈을 염원하는 출리심, 다른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과 보리심이 투철하고 공성을 바르게 이해한 사람이어야 한다. 달라이 라마는 "오늘날 사람들이 금강승(밀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차제(次弟)에 따른 수행과 보리심의 획득, 공성에 대한 이해 없이 금강승 수행을 하는 것은 외도(外道)의 수행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수행의 결과도 얻을 수 없다." 라고 강조하였다.

출팀 껠상(Tsultrim Kelsang) 오오타니대 교수와 마사키 아키라(正木 晃)는 출팀 깰상, 마사키 아키라,《티벳 밀교》(차상엽 譯)에서 밀교 수행 이전에 현교 수행을 마치는 것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겔룩의 경우 20여년 간의 현교 수행을 제대로 마친 사람만이 아무리 젊어도 30대에서 40대 정도에 밀교에 입문하게 된다. 현교가 결여된 밀교 만으로는 자칫 체험지상주의에 빠져 자신의 체험만을 절대화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석가모니가 수행을 시작하였을 때도 각지의 스승을 찾아다녔지만 모든 스승들이 저차원의 경지에만 도달해있었음에도 그것을 고차원의 경지라고 굳게 믿고 있어 석가모니를 낙담시켰다고 불전은 전하고 있다.


파일:800x.jpg

관정을 주는 제9대 캄뚤린뽀체(Khamtrul rinpoche)
캄뚤린뽀체 전승은 둑빠 까규의 주요 4대 환생자 전승 중 하나다.

밀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격을 갖춘 법맥스승으로부터 관정(灌頂, Skt. abhiṣeka, Wyl. dbang)구전(口傳, Skt. āgama, Wyl. lung), 구결(口訣, Skt. upadeśa, Wyl. khrid)을 받아야 한다. 관정은 왕이 즉위할 때 왕의 머리에 사해(四海)의 물을 부어주는 의식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의식을 통하여 밀교에 입문하려는 사람은 스승으로부터 밀교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또한 스승의 구전(口傳)을 통해 수행법을 전수받고, 수행법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인 구결 역시 전수받는다. 밀교 수행을 성취하려면, 현교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더욱 큰 스승에 대한 신심(信心)이 필요하다. 관정을 주는 스승을 본존의 현현으로 믿어야 하며 만일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관정이 성립되지 않는다.

관정(Abhiṣeka)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허가관정(許可灌頂, jenang)이고 다른 하나는 관정(灌頂, dbang)이다. 허가관정은 말 그대로 본존에 대한 간략한 성취법이나 명상을 허가받는 관정이다. 일반적인 관정이 궁극적으로 본존의 과위를 성취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허가관정은 본존의 공덕을 이어받아 단기간에 가피를 얻는 목적이 크다. 허가관정은 2~3일 간 열리는 관정에 비해 의식이 훨씬 간소하며 관정을 받고 지켜야 할 삼매야계와 수행 의무[55]의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따라서 허가관정은 대중적으로 많이 전수되고, 한국에서 열리는 티베트 불교의 관정법회 대부분도 허가관정에 해당한다. 허가관정을 통해 밀법과 본존에 인연을 맺으며 보리심의 종자를 심고 단시간에 많은 죄업과 장애를 소멸할 수 있다. 또한 관정을 주는 아사리(阿闍梨, ācārya)[56]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는다. #

티베트에서는 라마들이 상대방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대어 가피를 주곤 하는데 이를 '손으로 주는 관정' 이라는 뜻의 착왕(phyag dbang)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마정수기(摩頂授記)[57]로 오인하여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고 티벳 린뽀체 초청법회를 '마정수기 법회'라고 홍보하여 대중을 오도(誤導)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5.6. 밀교의 계율[편집]


밀교의 계율은 싸마야(samaya, 三昧耶)라고 부른다. 밀교의 수행에서 계율을 지키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관정은 먼저 계를 받고 이를 지킬 것을 맹세한 사람에게만 수여된다. 금강승의 밀교계는 매우 엄격하고 지키기 힘들다. 아띠샤(Atisha)는 본인의 삶 중에 "비구계는 조금도 어김이 없이 지켰고 보살계는 간혹 지키지 못했지만, 밀교계를 어긴 것은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과 같이 많다."고 말하였다. 아띠샤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밀교 수행자는 소승의 별해탈계, 대승의 보살계와 금강승의 삼매야계까지 모두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일반적으로 무상요가 딴뜨라의 밀교계는 '14가지 근본 밀교계'와 '18가지 부차 밀교계'로 분류하는데, 이러한 밀교계를 어기는 것은 금강지옥에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고 본다. 부차 밀교계를 어기는 것조차 비구계를 지키지 못한 것보다 18배나 무거운 과보를 낳는다고 한다. 역으로 별다른 수행 없이 밀교계만 잘 지켜도 18생 안에 지금강불의 과위를 성취할 수 있다는 가르침도 전해진다. 그만큼 밀교계의 의의가 크기 때문에 밀교계를 받은 후에는 이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밀교계의 14 근본타죄(根本墮罪)에는 스승을 모욕함, 가르침을 경시함, 함께 금강승을 수행하는 도반과의 불화, 보리심과 공성의 포기 등이 있다.

《14 근본 삼매야계》

1. 금강상사(金剛上師)의 말씀을 위배해서는 안 되며, 상사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2. 붓다의 가르침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

3. 금강사형제(金剛師兄弟)나 사자매(師姉妹)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4. 중생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5. 보살원행(원보리심, 행보리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6. 소승ㆍ대승ㆍ금강승을 비방하지 말며, 열심히 학습해야 한다.

7. 밀법을 의심하는 중생에게는 금강승 밀법을 드러내 보여서는 안 된다.

8. 자신의 몸을 해치지 말아야 하니, 몸의 어떤 부분이라도 모두 중생을 깨우치는데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9. 밀법에 대해 의혹의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10. 중생을 해쳐서는 안되며, 중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11. 밀법을 경시하여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12. 밀법을 받아들이는 데 적합하지 않은 중생에게는 밀법을 가르쳐주어서는 안 된다.

13. 금강승 밀법을 수지하는 데 있어서 규정에 따라 법기를 사용하고 공양을 실행하여야 한다.

14. 여성 혹은 지능이 낮은 중생을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



5.7. 밀교의 수행법[편집]


티베트 밀교 수행은 크게 생기차제(生起次第, utpattikrama)원만차제(圓滿次第, 혹은 구경차제究竟次第, sampannakrama)라는 두 단계를 구분한다. 두 차제는 모두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편이다. 생기차제에서는 본존불 수행의 관상과 진언을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인(因)을 심고 원만차제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 자리에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케 해주는 법이다. 원만차제에서는 중생과 부처가 둘인 상대적인 경계를 인정치 않는 지견(知見)으로 수행한다. 방편을 빌리지 않고 본연의 절대적 진리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다.

티베트 불교 안에는 각 파마다 고유한 전승을 가진 수행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공통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수행이 본존을 관하는 본존수행, 즉 본존요가(本尊瑜伽, devatabhisamaya)이다. 시방에 본래 존재하는 불보살은 본존불인 지혜존이 되며, 자신의 몸을 수행의 대상으로 정한 불보살과 똑같은 모습으로 관상하는 것은 삼마야존, 혹은 계율존(계율의 대상인 부처)이라 부른다.

자신인 삼마야존을 선명히 관상하여 본존 만트라를 염송하고 자신이 진실로 본존불과 똑같은 부처라는 자부심(佛慢)과 신심(信心)이 확고해졌을 때, 지혜존인 본존불과 상응할 수 있고 가피를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지혜존과 삼마야존이 잘 상응하여 가피가 충만해졌을 때 자타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공성의 상태에 들어가는데, 이 단계를 원만차제의 단계라 한다. 이를테면 한 가지 수행 안에 생기차제, 원만차제가 다 포함된다. 다만 원만차제 수행만 할 때는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광명의 상태로 생기차제를 대신한다.

원만차제 수행을 대표하는 법으로 까규의 착첸(마하무드라) 수행과 닝마의 족첸(마하상디) 수행을 들 수 있다. 두 수행 안에는 지관(止觀)의 두 수행을 다 포함하는데, 선종의 참선과 흡사한 면도 많이 있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에서 이러한 원만차제 수행은 스승이 직접 제자에게 마음의 본성을 보게 해주고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제자가 근기가 익지 않았을 때에는 스승이 많은 방편을 빌려서 제자에게 마음의 본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이끈다. 설오, 《티베트 불교를 만나다》


6. 수행 체계(람림, 보리도차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불교/수행 체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강원의 교육과정[편집]



7.1. 개요[편집]



파일:IBD1-lg.jpg

인도 다람살라의 IBD(Institute of Buddhist Dialectics)에서 강의를 듣는 승려들의 모습

티베트 불교의 최대종파인 겔룩은 다른 종파보다 교학을 강조하여 전체 강원 교육과정을 수학하는 데 20여 년 정도 걸린다. 현대교육제도의 초등과정부터 대학원과정까지에 해당하는 기간을 불교 교육에 투자한다고 볼 수 있다.

겔룩 외의 타 종파는 보통 9~10년 이상의 강원 과정을 거친다. 강원 과정 이후에도 승려 개인의 자율적인 교학연구는 계속 이어지며, 개중에는 겔룩처럼 20년 가까이 강원에서 학습한 후 켄뽀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타 종파 승려가 겔룩 승려보다 교학 수준이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종파 간의 교학적 견해는 대부분 일치하나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 부분도 있다.

광성사 주지 게쉬 소남 걀첸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겔룩의 3대 사찰인 데뿡 사원의 로셀링 강원에는 1학년부터 19학년까지 교육과정이 존재한다. 주로 《인명학(因明學)》, 《반야학(般若學)》, 《중관학(中觀學)》, 《율(律)》, 《구사론(俱舍論)》 등 5대 경전을 배우는 교육방법을 체계적으로 잘 갖추었다고 한다. 5대 경전을 주로 배우는 점은 겔룩 뿐 아니라 다른 종파에서도 동일하다.[58]
소남 걀첸 스님, 《티베트의 큰 강원에서 5대경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방법》

강원에 입학하기 전에는 먼저 예비과정에 들어간다. 맨 처음 출가 서원을 하며 삭발과 승복을 입고 승려로서 사원에 들어간다. 한국 불교의 행자나 원불교의 간사 과정과 비슷하며, 이때 승가의 규율과 의식, 글과 기도문 암송 등을 배우고, 사원 곳곳에서 운력(運力)을 하면서 사원 생활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모든 승려들이 강원의 전체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박사학위 격인 게쉬나 켄뽀 자격을 얻는 사람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 외 승려들은 의식이나 행정 등 사원 운영에 필요한 각자의 업무에 종사한다.


7.2. 5대 경전의 학습방법과 핵심[편집]


5대경을 배울 때에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무조건 경전을 외워야 한다.
둘째, 경을 보지 않고 외우는 연습을 자주 해야 한다.
셋째, 뜻을 알기 위해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넷째, 경전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자주 보아야 한다.
다섯째, 여러 차례 토론을 통해 경의 내용을 깊이 새겨야 한다.

5대경을 포함한 불교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근(根) - 기본 바탕인 세속제와 승의제의 이성제
도(道) - 방편의 보리심과 반야의 지혜 두 가지 방법
과(果) - 법신과 색신의 두 가지 과위(果位)

다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근(根) 즉 기본이 되는 사성제, 진속이제 등 존재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도(道) 즉 수행은 앞서 존재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실에 맞는 오도(五道)와 십지(十地) 등 방편과 지혜의 수행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과(果) 즉 결과는 존재론과 수행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실과 맞는 수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과위(果位) 즉 법신(法身), 화신(化身), 보신(報身) 등 부처의 신구의(身口意)의 공덕을 말하고 있다.


7.3. 문사수(聞思修)의 체계[편집]


먼저 들음에서 생긴 지혜(문소성혜聞所成慧)를 일으켜야 한다. 그것으로 경전의 가르침의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고, 그 다음 사유함에서 생긴 지혜(사소성혜思所成慧)로 요의와 불요의를 분명하게 구별한다. 그 다음, 그것에 의해 상세하게 구별된 의미에 의지하여 오로지 진실한 의미를 수습(修習)해야 한다. 진실하지 않은 것을 수습하면 안된다.

진실하지 않은 것을 수습하게 되면 전도(顚倒)되게 수습하고 의심도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청정한 지혜도 생겨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습하는 것이 의미가 없게 되어, 마치 외도들이 수습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까말라쉴라, 《수습차제》

《까말라실라의 수행의 단계》(오기열 譯)


티베트 불교는 공부 따로 수행 따로 없이 배움 그 자체를 수행으로 생각하고, 문사수(聞思修, Skt. śruta cintā bhāvanā; Tib. ཐོས་བསམ་སྒོམ་གསུམ་, tö sam gom sum, Wyl.thos bsam sgom gsum)를 통해 경전을 공부한다.

문(聞), 즉 배움으로써 경전의 뜻을 타력(他力)으로 대충 이해하게 만든다.
사(思), 즉 깊게 생각함으로써 경전의 뜻을 자력(自力)으로 확실하게 확신이 생기게 한다.
수(修), 즉 닦음으로써 경전의 뜻을 깊게 마음에 익히게 한다.

문(聞), 즉 배움이 부족하면 문혜(聞慧)가 부족할 수밖에 없고, 문혜(聞慧)가 부족하면 사(思), 즉 관찰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사(思)가 부족하면 사혜(思慧)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문(聞), 문혜(聞慧), 사(思), 사혜(思慧)의 바탕이 없으면 수(修), 즉 도(道) 닦는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무엇보다 제일 먼저 경전을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티베트 강원의 스승들이 늘 강조한다.

이와 같이 티베트 큰 강원에서는 문사수(聞思修)의 과정을 아주 중요하게 여겨 5대 경전 등 불경과 논서들을 체계적으로 배움으로써 먼저 현교(顯敎)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얻게하며 마음에 깊게 익히도록 하고난 뒤 밀교(密敎)의 깊은 수행법을 배우고 실천 수행한다.


7.4. 기초 과정[편집]


제일 먼저 《듀라(섭류학攝類學)》를 배운다. 《듀라》는 인명학(因明學)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은 논리 이론을 최초로 배우는 과목으로, 티벳의 스승이신 차빠 최끼 생게가 경량부의 이론 방식을 접목하여 량(量)의 전반적인 의미를 요약하여 ‘듀라’라고 정하였다. <듀라>는 소논리, 중논리, 대논리 세 가지로 나뉘며, 근(根), 도(道), 과(果) 세 가지 중 주로 근, 즉 존재론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두 번째, 《로릭(심류학心類學)》을 배운다. 구체적인 심리학이 아닌 일반적인 마음의 종류, 가령 현량(現量), 비량(比量), 분별심(分別心), 비분별심(非分別心), 육식(六識), 심왕(心王), 심소(心所) 등을 설명한다. 또는 7종심식(七種心識) 즉 현량식(現量識), 비량식(比量識), 재결식(再決識), 사찰식(伺察識), 현이미정식(顯而未定識), 의심(疑心), 전도식(顚倒識) 등을 가르친다.

세 번째, 《딱릭(인류학因類學)》을 배운다. 진인(眞因)은 과인(果因), 자성인(自性因), 불가득인(不可得因) 세 가지로 나뉘며, 사인(似因) 또한 상위인(相違因), 부정인(不定因), 불성인(不成因) 세 가지로 나뉜다.

네 번째, 《둡타(종의宗義)》를 배운다. 종의는 학파, 교파라고도 부른다. 외도나 불교도의 견해에 따라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는 철학적 바탕(根), 수행방식(道), 그 결과(果) 셋에 대한 교리적 설명 방식 등을 말한다. 간략하게 고대 인도의 외도 5개 파(派)인 논의오파(論議五派; 수론파數論派, 순세파順世派, 승론파勝論派, 폐타파吠陀派, 리계파離繫派)와 불교도의 4대 학파인 유부(有部), 경량부(經量部), 유식학파(唯識學派), 중관학파(中觀學派)로 나눈다.

다섯 번째, 《살람(지도地道)》을 배운다. 보살의 십지(十地)[59]와 오도(五道)[60], 그리고 성문도, 연각도, 보살도에 대해 배운다.

이상의 과정을 배우는 데 대략 4년 정도 걸린다.


파일:GesheTenzinNamkha_Book4.jpg


파일:108040_43635.jpg

《듀라(뒤다)》의 초급 부분과 《둡타》는 각각 《논리에 이르는 신비로운 열쇠》, 《불교 철학의 보물꾸러미》라는 제목으로 티벳대장경역경원에서 번역되었다.


7.5. 5대 경전 과정[편집]


여섯 번째, 《석량론(釋量論)》을 배운다. 석량품(釋量品) 또는 광본양학(廣本量學)이라고도 하며, 고대 인도의 법칭(法稱)보살이 지었다. 이 논서는 자리(自利), 양성립(量成立), 현전(現前)과 타리(他利) 등 4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명칠론(因明七論) 중에서 세 근본이 되는 논서이다. 《둡타(종의宗義)》를 배우고 난 뒤 대략 10년 이상 해마다 겨울철 한 달씩 스님들이 한 절에 모여 집중적으로 배우기도 한다.

일곱 번째, 《반야현관장엄론(般若現觀莊嚴論)》을 7년 동안 배운다. 미륵오론인 《현관장엄론》, 《대승장엄론》, 《중변분별론》, 《법법성분별론》, 《구경일승보성론》 중의 하나이다. 그 내용은 일체종지, 도지, 일체지, 일체오등현관, 정현관, 차제현관, 찰나오등현관과 법신 등 8가지로 보살도의 모든 수행과 부처님의 경지인 과위(果位)에 대해 설명한 미륵보살이 지은 논서이다.

여덟 번째, 《입중론(入中論)》을 3년 동안 배운다. 용수보살이 지은 《중론(中論)》의 논서인 《입중론》은 월칭보살(짠드라끼르띠)이 저술하였고, 10품으로 나뉜다. 주로 중관사상 즉 공성(空性)과 연기(緣起)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아홉 번째, 《율경근본율(律經根本律)》을 4년 동안 배운다. 인도의 율사 공덕광보살이 4부 율전의 내용을 해석한 것이다. 주로 계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17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열 번째, 《구사론(俱舍論)》을 2년 동안 배운다. 《아비달마 구사론본송》이라고도 하며, 인도의 세친보살이 저술한 소승의 논서로 본문은 게송체이고 8품으로 나뉜다. 당나라 삼장 현장법사가 범어를 한문으로 역경하였다.

이렇게 해서 현교(顯敎)에 대해 기초과정 포함하여 거의 20년 정도 체계적으로 배운다.


7.6. 강원 과정 이후[편집]


5대 경전 등 불경과 논서들을 체계적으로 배움으로써 먼저 현교(顯敎)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얻게 하며 마음에 깊게 익히도록 한다.

강원의 전체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에는 겔룩의 경우 불교철학박사에 해당되는 게쉬(ge she), 나머지 종파에서는 불교 강백(講伯)에 해당하는 켄뽀(khen po)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필기 시험(디규), 대론(對論) 시험(쬐규) 등을 거쳐 칭호를 받는데, 겔룩에서 남자 수행자는 게쉬(Geshe), 여자 수행자는 게쉬마(Geshema) 칭호를 받는다. 타 종파의 경우 남자 수행자는 켄뽀(Khenpo), 여자 수행자는 켄모(Khenmo)란 칭호를 받는다. 게쉬에도 시험 성적에 따라 아래서부터 도람빠(Dorampa,) 링세(Lingtse), 촉람빠(Tsorampa), 하람빠(Lharampa)의 네 단계가 있다. 게쉬 학위를 얻기 위해선 약 23년, 켄뽀 자격을 얻기 위해선 약 13년이 걸린다. 그 후 밀교의 깊은 수행법을 기간 없이 평생 배우고 실천한다.

겔룩에서는 게쉬 학위를 취득한 후 규뙤 사원이나 규메 사원으로 대표되는 밀교 사원에 들어가 밀교 교학을 배운다. 밀교 공부와 수행은 평생 배우고 닦는다는 개념이고, 밀교 수행은 스승의 허락과 자격을 얻어야만 행할 수 있으므로, 견고한 현교의 철학적 토대를 갖춘 준비된 사람만이 밀교 수행에 들어갈 수 있다.

티베트에서는 교학이 갖춰지지 않은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것을 '마치 손가락이 잘린 사람이 바위산을 기어오르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수행자는 산의 정상을 오를 수 있는 정확한 지도가 있어야 하고, 산을 오르다가 맞닥트릴 수 있는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철저한 교학의 토대가 필요한 이유이다. 교학을 철저하게 배우고 닦는 과정에서 이미 수행의 반은 완성된다.

8. 종파[편집]



8.1. 개요[편집]


파일:bd-fall-17-briefs.jpg
1963년 전(全) 티베트 불교 전승 회의 당시 사진.[61]

티베트 불교는 크게 닝마(རྙིང་མ་, Wyl. rnying ma, "오래된"), 싸꺄(ས་སྐྱ་, Wylie: sa skya, "하얀 땅"), 까규(བཀའ་བརྒྱུད།, Wylie: bka' brgyud, "구전 전승의"), 겔룩(དགེ་ལུགས་, Wyl. dge lugs, "위대한") 등 4개 종파로 나뉜다.

티베트불교의 종파를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구파(舊派, nyingma)와 신파(新派, sarma)이다. 닝마(rNy-ing ma)는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구파(舊派) 또는 고파(古派)로 번역되는데, 티베트의 모든 불교 종파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 이보다 후에 일어난 사캬, 까규, 겔룩, 조낭 등 모든 티베트의 종파들은 신파(新派)에 속한다.

구파와 신파를 나누는 기준은 경전의 번역이다. 티베트에 인도불교가 도입되던 7~8세기에 티베트의 법왕들이 후원하여 이루어진 번역을 구역(舊譯), 10~11세기 지방 귀족 세력이 지원하여 이루어진 번역을 신역(新譯)이라 한다. 특히 현교보다는 주로 밀교 전승의 번역과 전래에 따라 구파와 신파로 구분된다.

전래 시기에 따른 분류 외에도 사캬, 디룽, 딱룽, 게덴 등 지역에 따른 분류, 까르마 까규, 불룩 등 스승에 따른 분류, 까담, 족첸, 착첸, 시제 등 수행 전승에 따른 분류 등으로도 종파를 구분할 수 있다.

종파 간에 정치적 대립이 빈번하였지만 각 종파의 고승들은 종파를 막론하고 존경의 대상이었고, 다른 종파의 학승이 자기 종파의 교리를 배우는 것을 막지도 않았다. 종파 간의 경쟁적 발전과 더불어 상호 이해와 존중이 이루어지고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이종복, 《종파로 보는 티베트 불교》

종파
주요 수장
경전의 번역
닝마(རྙིང་མ་, Wyl. rNying ma '오래된')
전통적으로 없음
구파(舊派, Nyingma)
싸꺄(ས་སྐྱ་, Wylie: Sa skya, '하얀 땅')

사캬 티진
신파(新派, Sarma)
까규(བཀའ་བརྒྱུད།, Wylie: bKa' brgyud '구전전승의')
까르마빠
겔룩(དགེ་ལུགས་, Wyl. dGe lugs '위대한')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


8.2. 닝마[편집]


파일:Padmasambhava.jpg
닝마의 개조(開祖) 빠드마삼바와[62]

닝마(Nyingma)는 '오래된'이란 뜻으로 말 그대로 티베트 불교 중 가장 먼저 생긴 종파이다. 8세기 티송데쩬 왕은 당시 네팔에 머물고 있던 인도 날란다 사원의 승원장 샨따락쉬따(Śāntarakṣita)를 초청하면서 밀교 성취자인 빠드마삼바와(Padmasambhava)를 대동했다. 빠드마삼바와는 밀교행을 통해 티베트의 토속 종교인 뵌교의 신도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토속신들을 제압하여 불교에 귀의하도록 이끌었다. 이에 샨따락쉬따는 왕실의 후원 하에 쌈예사(bSam yas dgon pa)를 건립하고 티베트의 첫 승단을 만들었다. 닝마는 이때 샨따락쉬따가 대동했던 밀교 성취자 빠드마삼바와와 그의 가르침을 그 중심으로 삼는다.

닝마는 까규와 함께 명상 등의 수행을 중시하는 종파로 알려져 있다. 수행을 중시하는 점은 두 종파 모두 동일하지만, 닝마는 까규와 달리 명상보다 견해를 좀 더 강조한다. 스승으로부터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Skt. upadeśa; Tib. མན་ངག་, mengak, Wyl. man ngag, pith instruction)을 먼저 전수받은 후, 그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명상하는 방식이다.

닝마의 전승으로는 석가모니로부터 내려오는 전승인 까마(kama)와 빠드마삼바와와 그의 제자들이 비장(秘藏)하고 시절인연에 따라 발견되는 전승인 뗄마(terma)[63]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닝마는 현교와 밀교를 9개 승으로 구분한 독자적인 9부승(九部乘) 체계를 갖추었다.

9부승은 크게 외(外), 내(內), 밀(密) 삼승으로 구분된다. 외승(外乘)은 곧 경승(經乘, sutrayana)에 해당하고 내승과 밀승은 속승(續乘, tantrayana)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외승(外乘)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을 가리킨다. 성문승, 연각승은 근본승이며 보살승은 대승에 해당한다. 그리고 내승(內乘)혹은 외전(外傳) 딴뜨라는 사부(所作部 혹은 事部, kriya tantra), 행부(行部, charya tantra), 유가부(瑜伽部, yoga tantra)로 구성된다. 내승의 가르침은 브라만의 베다(Veda) 전통처럼 의례와 외적 청정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밀승(密乘) 혹은 내전(內傳) 딴뜨라는 마하 요가(maha yoga), 아누 요가(anu yoga), 아띠 요가(ati yoga, 혹은 maha ati yoga)로 구성된다. 마하, 아누, 아띠 요가는 신역(新譯)의 무상유가부(無上瑜伽部, anuttarayoga tantra)에 해당한다. 마하 요가는 생기차제, 아누 요가는 기맥명점 수행, 아띠 요가는 원만차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9부승의 최상위에 위치한 아띠 요가는 바로 닝마 고유의 가장 심오한 가르침인 족첸(rdzogs chen)이다. 밀승의 가르침은 모든 현상을 청정하고 평등한 진여(眞如)로 전환시키는 강력한 방편들이다.

파일:dzongsar.jpg
리메(Rime) 운동[64]을 주도한 잠양 켄체 왕뽀의 환생으로
《더 컵(The Cup)》등을 제작한 영화감독으로도
알려진 종사르 잠양 켄체 린뽀체
(Dzongsar Jamyang Khyentse Rinpoche)
2013, 2015, 2017년 3차례 방한하였다.

파일:bmRUgRZU.jpg
"4명의 직메" [65] 중 하나인 직메 오챨 갸초의 환생자
제5대 쟈 낄룽(Dza Kilung) 린뽀체.
2019년, 2020년 방한하였다.

파일:Anam-Thubten-square-A-300x300.jpg
서구권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닝마의 지도자
아남 툽텐(Anam Thubten) 린뽀체.
2014~19년 8차례 방한하였다.

8.3. 까규[편집]


파일:15545.jpg
마르빠 까규의 개조(開祖) 마르빠[66]


제17대 까르마빠 오겐 틴레 도제의 까규 법맥 소개

까규란 '구전의 전통(口傳傳統)'이라는 뜻이다. 11세기 인도의 밀교 요기 띨로빠(Tilopa)를 시조로 삼는다. 띨로빠는 나로빠(Nāropā)를 가르쳤다. 티베트인 역경사 마르빠 로짜와[67](Marpa lotsawa)는 역경사 독미 로짜와 샤꺄예쉐(Drokmi Śākya Yeshé)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인도의 날란다 사원에서 나로빠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마르빠의 가르침인 마하무드라(mahāmudrā)는 이후 밀라레빠(Mi la ras pa)를 거쳐 까규로 성립되었다.

까규는 명상, 구루 요가, 나로 6법과 같은 금강승 수행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까규와 닝마는 모두 실수행을 중시하지만, 까규는 닝마와 달리 명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견해를 익히고 체험해나가는 방식을 따른다.

마르빠에게서 유래한 마르빠 까규는 4대 8소 종파로 나뉘어진다. 마르빠 까규의 초기 4대 종파는 까르마 까규(Karma bka' brgyud), 바롬 까규('Ba' rom bka' brgyud), 찰빠 까규(Tsalpa Kagyü), 팍두 까규(Pagdru Kagyü)이다.

이 중 팍두 까규는 다시 8개의 분파로 갈라져 둑빠 까규(‘Brug pa bka' brgyud), 디꿍 까규('Bri gung bka' brgyud), 딱룽 까규(sTag lung bka' brgyud), 마르창 까규(Martsang Kagyü), 슝셉 까규(Shugseb Kagyü), 트로푸 까규(Trophu Kagyü), 얌장 까규(Yamzang Kagyü), 옐빠 까규(Yelpa Kagyü)를 이룬다.

4대8소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종파는 까르마, 바롬, 둑빠, 디꿍, 딱룽 5개 종파들이다. 까루 린뽀체가 속한 상빠 까규(Shangs pa bka' brgyud)는 마르빠 까규에 속하지 않는 별도의 법맥이지만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마르빠 까규의 창시자인 마르빠는 인도의 마이뜨리빠(mai tri pa)와 마이뜨리빠의 스승인 나로빠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샹빠까규의 창시자인 케둡 큥뽀 낼죨(Kedrub Kyungpo Naljor)은 마이뜨리빠와 니구마(ni gu ma) 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니구마는 나로빠의 여자 형제 또는 배우자라고 전해진다. 이렇듯 창시자들의 스승이 서로 겹치거나 연관이 있으며, 후대에 이르기까지 두 법맥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파일:62c4be7acd0eebff1de926bff021387f.jpg
까르마 까규의 최고 지도자 제17대 까르마빠(Karmapa)
오겐 틴레 도제(O rgyan 'Phrin las Rdo rje)[68][69]

파일:Rinpoche-meditation-science.jpg
명상이 뇌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 중인
까르마 까규의 욘게이 밍규르 린뽀체
(Yongey Myingyur Rinpoche)[70]
2011년, 2016~2019년 다섯 차례 방한하였다.
2020 명상웹컨퍼런스 강연 1부 《연민의 마음》
2부 《바르게 보기 위한 명상》

8.4. 사캬[편집]


파일:five-gongmas-sakya-ling2.jpg
사캬의 다섯 창시자들[71]

사캬는 까규와 마찬가지로 나로빠의 가르침에 그 기원을 두고 또한 독미 로짜와(Drokmi Lotsawa)라는 같은 스승으로부터 출발했지만, 까규와 다른 특징들이 있다. 사캬는 쾬(Khon) 일족 자체가 종파가 된 독특한 경우이다. 회색 땅을 뜻하는 사캬(Sa skya) 지방의 일족인 쾬 일족의 쾬 꾄촉겔뽀(Khon dkon mtshog rgyal po)를 종조로 하는 사캬 역시 밀교 전통에 근거한다. 사첸 꾄촉겔뽀는 인도에서 요기 나로빠와 밀교승원인 비끄라마쉴라(Vikramaśīla)에서 공부했다고 하는 독미 로짜와로부터 헤바즈라 딴뜨라에 근거한 람데(lam ’bras) 전통을 배운다. 수행의 길과 그 결과 사이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밀교에 바탕을 두고 논하는 람데 전통은 사캬의 핵을 이루는 중심 교리이다.

람데 전승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승(經乘, sutrayana)을 설명하는 부분은 삼현분(三現分, snang gsum)이라고 한다. 삼현분은 세 종류의 단계별 인식을 뜻한다. 첫 번째 단계의 인식은 청정하지 못한 인식으로 곧 세속 중생의 인식이다. 두 번째는 경험의 인식, 즉 실상(實相)을 통찰하는 수행자들이 경험하는 혼재된 인식이다. 마지막은 청정한 인식으로 일체지를 이룬 완전히 깨달은 스승이나 부처의 인식을 가리킨다.

다음으로 속승(續乘, tantrayana)을 설명하는 부분은 헤바즈라 딴뜨라를 구성하는 삼속분(三續分, rgyud gsum)이라고 한다. 삼속분은 존재론인 기속(基續), 수행론인 도속(道續), 결과론인 과속(果續)으로 이루어져 있다.

람데 전승은 후에 뮈첸 쾬촉 걀첸(mus chen dkon mchog rgyal mtshan)에 의해 두 가지 주요한 전승으로 나뉜다. 그는 소수의 제자들을 대상으로 더욱 심오하고 경험에 근거한 가르침을 전수하였고, 이를 람데 롭셰(lam 'bras slob bshad)라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중들을 위한 보다 보편적인 가르침은 람데 촉셰(lam 'bras tshogs bshad)라고 한다.

사캬의 다른 특징으로는 불교 논리와 중관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이다. 후술할 겔룩과 함께 교학을 중시하는 종파로 알려져 있다. 사캬는 티베트 정치의 중심에 서기도 했고, 몽골의 불교 전통을 만드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캬의 지도자였던 사캬 빤디따(sa skya pandita)는 티베트를 침공한 고단 칸(Godan Khan)과 회동을 갖고 시주(施主)-화주(化主) 관계인 최왼(mchod yon) 관계를 맺어 평화적으로 티베트의 자치를 보장받았다. 또한 사캬 빤디따의 조카인 도괸 최걀 팍빠(ʼgro mgon chos rgyal ʼphags pa) 역시 쿠빌라이 칸과 최왼 관계를 맺고 원나라 국사로서 원나라에 티베트 불교를 전파하며 파스파 문자를 만들기도 하였다.

파일:sakya_trizin.jpg
2015년 방한한 제41대 사캬 티진(Sakya Trizin)
꺕곤 공마 티첸 린뽀체
(Kyabgon Gongma Trichen Rinpoche)

파일:DSC_5168c1_edited-1-768x1043.jpg
사캬의 최고 지도자인 사캬 티진(Sakya Trizin) 직은
대대로 쾬(Khon)족 남자 혈통에게 계승되었다.
(가운데) 제41대 사캬 티진 꺕곤 공마 티첸 린뽀체
(좌) 제42대 사캬 티진 라뜨나 바즈라 린뽀체
(우) 제43대 사캬 티진 갸나 바즈라 린뽀체

8.5. 겔룩[편집]


파일:Lama-Tsong-Khapa-nice-art.jpg
겔룩의 개조(開祖) 쫑카빠[72]

겔룩의 종조 쫑카빠 롭상닥빠(Tshong kha pa bLo bzang grags pa)는 14세기 동북 티베트 암도의 쫑카 지방에서 태어나서 까르마 까규 및 여러 종파에서 공부했는데, 특히 사캬의 렌다와 쇤누로도(Red mda' ba gzhon nu blo gros)를 주 스승으로 삼았다. 이후 까담의 전통을 따라 엄격한 계율의 수행을 강조하면서, 불교 철학을 바탕으로 단계적인 수행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띠샤의 《보리도등론》의 주석서인 쫑카빠의 《보리도차제광론》을 비롯한 많은 주석서 및 저서들은 그 당시까지의 철학과 수행 전통을 새롭게 해석해 내면서 티베트불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후로 까담의 전통은 점차로 겔룩의 영향 아래 들어갔다.

쫑카빠의 개혁을 통해 겔룩은 여러 승려와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된다. 또한 달라이 라마가 화주(化主)가 되고 몽골, 오이라트, 청(淸) 왕조 등이 시주(施主)가 되는 최왼(mchod yon) 관계를 맺어 통치계급과도 폭넓은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제5대 달라이 라마가 오이라트 중 코슈트부의 군사를 빌려 티베트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겔룩은 정교합일(政敎合一) 체제를 구축하고 티베트 불교 내의 최대 종파로 부상하여 현재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초대 달라이 라마는 쫑카빠의 제자 겐둔 둡빠(dGe 'dun grub pa)이다. 그러나 겐둔 둡빠는 생전에 달라이 라마라고 불리운 적이 없다. 제3대 달라이 라마 때 이르러 몽골의 알탄 칸에게 '일체를 성스럽게 아시는 바즈라다라 달라이 라마'라는 존칭을 부여받고, 전전대 전생인 겐둔 둡빠까지 소급하여 달라이 라마란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제3대 달라이 라마가 사망한 후 알탄 칸의 증손자 중 한 명이 환생자로 지목되어 제4대 달라이 라마에 등극하게 된다. 따라서 제4대 달라이 라마는 몽골인으로, 유일한 비(非)티베트인 출신 달라이 라마이다.

달라이 라마가 받은 존칭 중 '바즈라다라(Vajradhara)', 즉 집금강(執金剛)은 밀교의 이상적인 부처인 지금강불(持金剛佛)을 지칭하거나 혹은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룬 스승을 가리키는 존칭으로 쓰인다. '달라이(Dalai)'는 몽골어로 '큰 바다(大洋)'라는 뜻이고 '라마(Lama)'는 티벳어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초대 달라이 라마를 제외하고 달라이 라마로 선정되면 모두 '바다'라는 뜻의 '갸초(rgya mtsho)'가 들어간 법명(法名)을 얻게 된다.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법명인 '뗀진 갸초(bstan ‘dzin rgya mtsho)'의 '뗀진'은 '가르침(佛法)의 소유자'란 뜻이다. 즉 '뗀진 갸초'란 법명은 '불법의 바다'를 뜻한다.

공식적인 겔룩의 종정은 달라이 라마가 아니라 겔룩의 본산인 간덴 (dGa' ldan)사원의 사원장 간덴 티빠(dGa' ldan khri pa)이다. 간덴 티빠는 간덴 사원 안의 싸르쩨(Shartse)와 장체(Jangtse) 두 학당의 방장(方丈)이 번갈아 가며 맡게 되는데 임기는 전통적으로 7년이다. 환생자 제도로 선정되지 않고 순수하게 개인의 능력과 학식, 덕망, 승가 내 경력 등으로 선정되는 직위이다.

파일:03-0 1 Ling Rinpoche 14.jpg
제97대 간덴 티빠이자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던
제6대 링 린뽀체의 환생자 제7대 링 린뽀체.[73]
1992년부터 2015년까지 여섯 차례 방한하였다.

파일:Rizong_Rinpoche_102nd_Ganden_Tripa_in_2013.jpg
제102대 간덴 티빠 제2대 리종 린뽀체.
2017년 방한하여 조계총림 송광사 등에서 설법하였다.

파일:271535371_2079482235536814_1921118830739219115_n.jpg
제104대 간덴 티빠 롭상 텐진 린뽀체.
2022년 한국인을 위한 온라인 법회에서 설법하였다.

파일:Sharpa-Rinpoche-box-1.jpg
샤르빠 최제 롭상 도제 린뽀체(제105대 간덴 티빠 취임 예정)
2018년, 2019년 방한하여 부산 관음사, 서울 법련사 등에서 설법하였다.

파일:Samdhongrinpoche.jpg
초대, 제2대 티벳망명정부 총리를 역임한 제5대 삼동 린뽀체.
2012, 2018, 2019년 3차례 방한하였다.

8.6. 조낭[편집]


파일:jf_dolpopa_lineage field_01-1.jpg
조낭의 중흥조(重興祖) 될뽀빠

시가쩨 근처 조모낭 지역에서 번성한 조낭은 쿤팡 툭제 쇤두(Kunpang Thukje Tsondru)가 1294년 조낭 사원을 건립하면서 시작된다. 그 이전 11세기 깔라차끄라 딴뜨라 전문 수행가였던 유모 미꾜돌제(Yu mo mi bskyod rdo rje)는 조낭에 큰 영향을 준 조상격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유모 미꾜돌제는 카쉬미르의 빤디따 찬드라나타(Candranātha)에게서 사사받았다. 후캄(Hookham)에 의하면 타공의 이해는 유모 미꾜돌제가 카일라쉬산에서 깔라짜끄라 딴뜨라를 수행하는 도중 터득한 것이라고 한다. 사캬에서 계를 받았던 될뽀빠 쉐랍겔첸(Dol po pa shes rab rgyal mtshan) 대에 이르러 조낭은 융성했다.

조낭은 쉔똥(gzhan stong), 즉 타공(他空) 사상을 내세웠다. 타공이란 모든 속제를 비롯해 다른 것에 의존해 일어난 현상들, 자아와 같은 허상은 그 자성이 공(空)하지만, 그 모든 속제의 근간이 되는 법성, 일체지, 천연의 의식, 불성, 또는 청명한 빛의 마음은 공하지 않다는 사상이다. 이후 조낭은 제5대 달라이 라마 대에 이르러 정치적ㆍ사상적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중앙 티베트 지방에서 사라졌고 몽골과 암도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한다.[74]

될뽀빠는 삼전법륜(三轉法輪)에 해당하는 《보성론》의 여래장 사상을 요의(了義)로 보았다. 《보성론》에 따르면 속제의 현상들은 공(空)하지만 진제에서의 공성과 함께 나타나는 비이원적(非二元的)인 불지(佛智), 광명심(光明心), 부처의 공덕 등은 공하지 않다. 이러한 견해를 기존의 중관(Madhyamaka)에 대비하여 '대중관(大中觀, Mahamadhyamaka)'이라고 명명하였다.[75]

유식학파의 삼성설(三性說)과 제팔식설(第八識說)에 영향을 받은 점 때문에 학계에서는 타공설의 등장을 티베트 불교에서의 유식학파의 흐름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대중관'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될뽀빠를 비롯한 타공론자(gzhan stong pa)들은 그들 스스로를 진정한 중관 논사라고 생각했고,[76] 타공설과 유식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한편 겔룩 위주의 종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19세기 리메(Rimé, 無山, 무종파) 운동에 참여했던 사캬, 닝마, 까규 등 비주류 종파의 스승들도 타공설의 영향을 받아 타공, 혹은 타공과 자공(自空, rang stong) 사이의 절충적인 견해를 취하였다. 각 파의 독자적인 밀교 전승은 현교의 교학적 견해가 분화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안성두, 《티베트 불교에서의 여래장 해석 -자공설(自空說)과 타공설(他空說)의 차이를 중심으로-》
차상엽, 《연기와 공성 그리고 여래장에 대한 티벳 사상가들의 이해》
Karl Brunnhölzl, 《In Praise of Dharmadhatu》
Karl Brunnhölzl, 《Luminous Heart: The Third Karmapa on Consciousness, Wisdom, and Buddha Nature》

절충적인 견해 중에는 자공설(自空說)로 분류되는 견해도 있다. 가령 미팜(Mipham)의 경우, 겔룩의 자공설처럼 일체법의 자성(自性)이 공(空)함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인식'이나 '밝음' 등 진여(眞如)의 현상적인 측면을 긍정하였다. 그러나 현상의 실체화, 개념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미팜의 견해는 타공설과도 구분된다. 김성옥, 《『법법성분별론』에 대한 미팜(Mi Pham) 주석의 특징》

이렇듯 겔룩의 자공과 조낭의 타공을 양 축으로 삼은 사상적 스펙트럼 안에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현교의 자공, 타공과 밀교의 족첸, 마하무드라, 칼라차크라 등은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서로 다른 전승과 문헌에서 유래한 견해들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77] 기실 겔룩과 조낭을 제외한 나머지 종파들은 시대별, 계파별, 인물별로 견해가 나뉘어지고 더 나아가 동일 인물(예컨대 미팜)의 저작들 중에서도 타공을 옹호하는 저작과 비판하는 저작들이 모두 전해지기도 하여 자공과 타공 중 어느 한 쪽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78] '타공'이란 하나의 용어를 사용하지만 전승과 인물마다 각기 타공의 정의를 달리하기 때문에 티베트 불교에서는 "'흰 타공'과 '검은 타공'이 있다"는 식으로 여러 타공견(他空見)들 중 정견(正見)과 사견(邪見)을 구분하곤 한다.[79]

조낭의 타공과 달리 까르마 까규, 닝마 등 다른 종파의 타공은 자공에 가까운 '완화된 타공'에 해당한다. 예컨대 조낭의 타공은 여래장을 삼세(三世)에 종속되지 않는 궁극적이고 불변하는 독립된 실체(rtag dngos)라고 주장하였지만, 까르마 까규에서는 부정(negation)의 토대인 '조건지어지지 않은 빛나는 마음'을 (외부의 원인과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이전 순간의 동류(同類)의 마음에 의존하여 발생하는 순간들의 연속으로 규정하여 연기(緣起)와 분리하지 않았다. 다만 "물과 우유가 서로 섞이지 않는" 비유처럼,[80] 불성 혹은 정광명은 객진번뇌에 오염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조낭의 타공과 견해를 같이 하였다.

빛나는 마음(prabhāsvaraṃ cittaṃ)은 조건지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빛나는 마음에서는 아무 것도 원인과 조건이 합쳐져 이루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 순간의 빛나는 마음의 발생은 마음의 같은 종류(sajāti)에 의해 발생한 이전 순간의 마음에 의존한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Sajjana,《Mahāyānottaratantraśāstropadeśa》

Klaus-Dieter Mathes, 《The Other Emptiness: Rethinking the Zhentong Buddhist Discourse in Tibet》〈Zhentong Views in the Karma Kagyu Order〉

20세기 전반 닝마의 학승 뵈뛸(Bötrül Dongak Tenpe Nyima)은 티베트의 중관사상을 크게 (1) 조낭의 타공, (2) 겔룩의 진실공(眞實空, bden stong), (3) 닝마의 자공으로 구분하였다. 각각의 주요한 차이는 '부정 대상(dgag bya)'에서 드러난다. 조낭의 타공은 (1) 속제(俗諦)에 해당하는 현상의 자성(自性), 겔룩의 진실공은 (2) 일체법이 진실로 존재함, 닝마의 자공은 (3) 일체의 개념적 언급을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다.

이제(二諦)에 대한 설명도 조낭의 (1) '진제와 속제가 하나임을 부정함(gcig pa bkag pa)', 겔룩의 자립논증 중관의 관점에서 (2) “진제와 속제가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의식의 분별 상(이름, 생각 등)으로는 각기 다른 두 가립(假立)된 법(法)임(ngo bo gcig la ldog pa tha dad)', 닝마의 귀류논증 중관의 관점에서 (3) '진제와 속제가 하나도 아니고 다수도 아님(gcig du bral)'으로 달라진다.

요컨대 각 파의 견해는 중관 사상과 여래장 사상 중 어느 사상을 우위로 볼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겔룩은 이전법륜인 중관 사상, 조낭은 삼전법륜인 여래장 사상을 각각 요의(了義)로 보았고 닝마는 둘의 양립(兩立) 혹은 합일(合一)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미팜은 중관에서 진제의 공성을 주로 강조하는 반면 속제의 현상은 경시하고 있기 때문에, 중관과 유식, 여래장의 결합을 통해 비로소 공성과 현상 모두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81]
Douglas Duckworth, 《A Companion to Buddhist Philosophy》〈Tibetan Mahāyāna and Vajrayāna〉

초(超)종파적인 성향이 강한 제14대 달라이 라마 대에 이르러서야 조낭은 티베트 불교의 정식 종파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달라이 라마가 속한 겔룩과 조낭의 교학적 입장은 다르다. 달라이 라마는 반야경을 요의경(了義經)으로 보는 겔룩의 전통적 견해에 따라 조낭의 타공을 부정하고, 일체법이 승의적(勝義的)인 차원에서 독자적 실체가 없이 공(空)하다는 자공을 견지한다.

자공론자(rang stong pa)[82]들은 불성, 여래장에 자성(自性)이 있다는 조낭의 주장이 힌두의 아뜨만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또한 붓다는 영혼이나 자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결코 가르친 바 없으며, 불성, 여래장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은 불료의(不了義)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조낭은 불료의를 요의(了義)로 혼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공론자에게 있어 불성, 여래장은 마음의 법성(法性)으로서 진제로는 공성(空性), 속제로는 광명(光明)으로 장차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9. 환생자 제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불교/환생자 제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한국과의 교류[편집]



10.1. 인적 교류[편집]


허일범, 《한국 불교 속의 티베트불교》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교류는 통일신라부터 현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티베트 불교를 숭앙하던 몽골의 침략 이후 고려 불교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준 바 있다.

1. 통일신라시대

  • 신라승 김무상(金無相, 684-762)과 티베트 사신 바상시가 만난 일화는 삼예사(寺)의 사지(寺誌)에 해당하는 《바세》에 기록되었다. 김무상은 경덕왕 13년(754) 당나라 장안에서 티베트 사신들을 만나 인도 불교가 티베트에서 주류를 이룰 터인데, 훗날 티송데첸 왕이 등장하여 불교를 널리 홍포하리라 예언했다고 한다. 또한 김화상은 사신들에게 《십선경》, 《금강능단경》, 《도간경》을 전해주면서 왕의 즉위시에 사용하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훗날 김무상의 예언은 적중하여 샨타락쉬타가 인도에서 들어와서 티베트에 불법을 홍포했고, 티송데첸 왕이 즉위할 때에는 사신들이 전수받은 세 종류 경전을 독송하여 신심을 일으켰다.

  • 《금강삼매경》은 신라 찬술설이 제기되는 경전으로[83], 중국 초기 선종 성립에도 영향을 준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금강삼매경》은 티베트에 족첸 전승을 도입한 인도의 학승이자 요기 비말라미뜨라(Vimalamitra)의 저술로 알려진 《돈입수의(Cig car ’jug pa'i rnam par mi rtog pa’i bsgom don)》에도 인용되어 돈오를 정당화하는 전거로 활용되었다. 만약 신라 찬술설이 사실이라면, 김무상의 일화와 더불어 당시 한반도~중앙아시아 간 활발한 문물 교류를 짐작케하는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돈입수의》에서의 선정ㆍ지혜바라밀 및 수소성혜(修所成慧)의 강조는 삼예논쟁 당시 까말라쉴라의 논적이었던 마하연 화상의 돈오론을 연상케 하지만, 한편 비말라미뜨라의 또다른 저서인 《점입수의》에서는 대비심과 보시 등의 방편을 강조하였고 《돈입수의》와 《점입수의》의 본문 중《수습차제》와 동일한 부분이 존재하는 등 비말라미뜨라와 까말라쉴라 간의 사상적 유사성도 찾아볼 수 있다. 박운진, 《비말라미뜨라(Vimalamitra)와 삼예(bSam yas) 논쟁》

  • 혜과(惠果) 화상의 제자인 신라의 오진(悟眞)은 인도로 구법순례를 떠났다가 귀로에 티베트에서 입적하였다.

  • 통일신라시대 고승 원측(圓測)의 《해심밀경소》를 법성(法成, Chos grub)이 티벳어로 번역하여 티베트 대장경에 수록되었다. 이후 원측의 저서는 티베트 불교 내에서 경전 해석의 주요한 논거가 되는 대표적인 논장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파일:996605_275598_1018.jpg
7세기 유식학의 대가였던 원측(圓測)[84]

2. 고려시대

  • 고려 충렬왕 20년(1294) 티베트 승려 절사팔(折思八)이 티베트 경전과 법구류를 가지고 고려에 들어왔다.

  • 충선왕 즉위년(1298)에는 충렬왕과 충선왕, 계국대장공주 등이 티베트 불교 승려에게 보살계를 받았다.

  • 고려인 출신으로 원나라에 들어가 출가하여 티베트 불교 승려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황실의 각별한 존숭을 받았으므로 고려에 있는 가족에게는 특별한 우대 조치가 베풀어졌다.

  • 충숙왕 1년(1314)에는 홍약이 티베트 경전 1만 8천여 권을 고려에 전해주었다.

  • 고려사》에 따르면 충숙왕 7년(1320)에는 몽골에 볼모로 잡혀 갔다가 티베트로 들어가게 된 충선왕을 위하여 민천사(旻天寺)에서 기도법회를 열었다고 한다.충선왕은 1320년 원인종 아유르바르와다가 사망한 후 환관 임백안의 참소로 인해 불경을 공부하라는 명목으로 티베트에 3년 간 유배된다. 충선왕의 유배지는 당시 티베트의 정치ㆍ종교적 중심지였던 사캬의 사캬 사원이었다. 지금까지 현지에선 충선왕과 그의 아들에 대한 일화와 함께 충선왕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는 탕카가 전해진다.

KBS HD 역사스페셜《고려 충선왕, 티베트로 유배된 까닭은》[85]

  • 현재 우리나라 불교에 널리 퍼진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도 티베트의 자사태마(刺思駄麻)와 사팔자(思八刺) 라마가 전한 것이다.

이처럼 원 간섭기에 원나라 황실에서 신봉하던 티베트 불교가 고려에 유입되었으나, 티베트 불교의 신도층은 고려의 왕비가 된 원나라 공주의 수행원들과 고려에 거주하는 몽골 관인들 위주로 한정되었다. 고려에서의 티베트 불교 수용은 황실에 대한 존중과 공주에 대한 배려의 성격이 강했으며 전체 고려 불교계나 일반 백성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다만 원나라 황실을 축원하는 법회의식 등을 통하여 티베트 불교의 의례와 불상, 불구(佛具) 등이 수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연식, 《한국문화사 11.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이후 공민왕의 반원 정책으로 친원 세력이 축출되면서 티베트 불교 역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3. 조선시대

안노생(安魯生)이 말하였다.

"황제가 불법(佛法)을 숭상(崇尙)하여 중[僧]이 서역(西域)에서 왔는데, 나이가 20여 세쯤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존경하고 떠받들어 ‘생불(生佛)’이라고 하는데, 그 언행(言行)을 들어 보면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 없고, 구운 양(羊)고기를 잘 먹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등불과 같이 방광(放光)하는데, 이것이 이상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시킵니다."

태종실록 13권, 태종 7년 3월 15일 기사 4번째 기사


예부(禮部)에서 이래(李來)·맹사성(孟思誠)·설칭(薛偁)·이회(李薈)로 하여금 영곡사(靈谷寺)에 나아가서 각각 황제가 지은 찬불시(讚佛詩)를 속운(續韻)하여 올리게 하였다. [...]

이때에 호승(胡僧) 갈니마(曷尼摩)가 있어 ‘생불(生佛)’이라고 하는데, 황제가 그를 맞아 경사(京師)에 데려다 영곡사에 거처케 하고, 매우 공경하고 믿으니, 조관(朝官)과 사인(士人)들이 모두 달려가서 이마를 땅에 대고 기(記)를 받았다.

태종실록 15권, 태종 8년 4월 2일 경진 13번째 기사


태종실록》에는 영락제가 숭상했던 대보법왕(大寶法王) 제5대 까르마빠 데신 셱바(de bzhin gshegs pa)[86][87]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明)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안노생(安魯生)은 태종에게 영락제의 초청을 받은 한 서역(西域)의 승려에 대해 언급하였다. 비록 제5대 까르마빠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연대(年代)와 승려의 나이, 출신지, 명성, 풍습 등의 묘사를 통해 제5대 까르마빠임을 유추할 수 있다.[88] 안노생은 까르마빠에 대해 "그 언행을 들어보면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인색한 평가를 내리면서도, 한편으로 까르마빠가 보여준 방광(放光)의 이적(異跡)을 소개하였다. 《황명종신록(皇明從信錄)》등의 명대 사서(史書)들도 까르마빠가 보인 이적을 기록하였다.

또한 명나라에 파견된 이래(李來), 맹사성(孟思誠), 설칭(薛偁), 이회(李薈) 등 조선 사신들이 당시 제5대 까르마빠가 머물던 난징의 영곡사(靈谷寺)에 방문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사신들은 예부(禮部)의 지시로 영곡사에 가서 황제가 직접 지은 찬불시(讚佛詩)를 속운(續韻)하여 올렸다. 찬불시에는 불가적(佛家的) 구도(求道)와 깨달음에 관한 내용과 함께 전법행(傳法行)을 펼치는 까르마빠를 찬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89] 또한 사신들은 영곡사에서 까르마빠가 명나라의 조관(朝官), 사인(士人)들에게 마정수기(摩頂授記)를 주는 모습을 목격하였거나 혹은 사신들 스스로 까르마빠를 친견하고 마정수기를 받았던 것으로 짐작된다.[90][91][92]

신대승(申大升)은 말하기를,

"건륭(乾隆) 때에는 두려워 한 것이 몽고(蒙古)였었으므로 반선(班禪)을 총애하여 대우한 것은 그가 몽고 사람이었기 때문에 후하게 대우한 것이지 참으로 총애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정조실록 11권, 정조 5년 4월 8일 신해 1번째 기사 


몽고의 48개 부락의 사람들은 모두 사나운데 근래에 와서 더욱 강성해지자 황제가 늘 견제하면서 만족·한족과 같이 벼슬을 시키고 몽고의 왕이 새로 즉위하면 공주(公主)를 시집보냅니다. 그곳의 풍속은 번승(番僧)을 가장 존경하여 마치 신명(神明)처럼 공경하기 때문에 몽고인으로서 라마승이 된 사람은 서울에 있는 사찰을 주관하도록 하였으며 몽고 사람들이 숭배하는 번승이 있으면 대뜸 존경의 예를 더합니다. 연전에 반선(班禪)이 입적(入寂)한 뒤에 몽고의 여러 부락들 가운데 칸왕(汗王)의 자제들로써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종파를 차지하려고 꾀하는 자가 있어서 황제가 유시를 내려 금지하였습니다. 이를 가지고 보면 반선을 파격적으로 존경하여 받드는 것도 오로지 그 불도를 독실히 믿는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열하(熱河)에 해마다 거동하는 것은 아마 숨은 뜻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정조실록 39권, 정조 18년 3월 24일 신해 3번째 기사


1780년(정조 4년),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만수절(萬壽節)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조선의 사절단과 반선액이덕니(班禪額爾德尼) 제6대 빤첸 라마 롭상 빨덴 예쉐(blo bzang gpal ldan ye shes)[93]와의 조우가 열하(熱河)에서 이루어진다. 건륭제와 그의 신하들은 조선의 사신들이 황제의 스승인 빤첸 라마에게 예를 표하기를 원했으나, 억불(抑佛) 정서가 지배적인 조선 후기의 통념상 명분에 어긋나는 굴욕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져 사절단 내부의 반발이 극심했다고 전해진다. 빤첸 라마는 사절단에게 불상(佛像)을 하사하였으나 이후 불상의 행방은 묘연하다.

사절단의 정사(正使)인 8촌형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을 수행했던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의 《열하일기》에 관련 일화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당시 청, 몽골, 티베트 간의 국제 관계를 알려주는 중요 사료로 취급된다. 또한 《정조실록》에도 빤첸 라마와 관련한 조선 사신들의 국제 정세 분석이 수록되어 있다. 빤첸 라마에 대한 청의 파격적인 존숭을 단순히 신앙심의 발로(發露)로만 볼 수 없으며, 티베트 불교를 신봉하는 몽골을 포섭하고 회유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담겨있다는 점을 조선 사신들은 정확하게 간파하였다.

10.2. 문화 교류[편집]


허일범, 《한국 불교 속의 티베트불교》
  • 고려시대 이후에 편찬된 의식집들에서 진언들을 실담문자나 티베트 문자로 표기하고, 관법차제(觀法次第)와 같은 수행법에서 범자로 된 종자자(種子字)를 명상에 채용한다.

  • 또한 사원의 건축물이나 법구류 등에서 범자나 티베트 문자로 된 진언종자들을 활용한다. 사원건축에 단청을 하고, 거기에 범자로 된 문양을 새겨 넣는 것은 티베트를 제외한 어떤 국가에도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 인도나 티베트로부터 몽골 지역을 거쳐서 전파된 나가리·실담·란차·티베트·팍파문자 등은 우리 나라의 불교관련 의식집의 찬술 및 문자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육자진언(옴 마니 반메 훔) 관련 수행법은 티베트에서 저작된 《마니 깐붐(Tib. མ་ཎི་བཀའ་འབུམ་, Wyl. ma Ni bka' 'bum)》의 가르침을 계승한 것으로 육자진언을 활용한 명상법이라는 특징이 있다. 《마니 깐붐》은 몽골을 통하여 고려에 전래된 닝마의 밀교 경전인데, 육자진언과 관련된 여러 가르침들을 총망라했다.[94]

  • 밀교경궤의 교설에 입각한 다면다방불(多面多方佛), 운주사에 조성된 대석합체불(大釋合體佛)과 쌍와불은 티베트 불상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 티베트에는 비단으로 만든 대형 탕카(thang ka)[95]인 ‘괴꾸'(gos sku) 혹은 '괴꾸 첸모'(gos sku chen mo)가 있다. 괴꾸는 그 길이와 너비가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에 달하며, 특별한 종교적 행사 때 괴꾸 전용으로 지어진 사원의 거대한 벽이나 산, 언덕 자락에 전시된다.
    우리나라에도 괴꾸와 비슷한 형식의 불화(佛畵)인 괘불(掛佛)이 다수 존재하여 영산회(靈山會)같은 야외 의식에서 활용된다. 우리나라에서 괘불이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끝난 후 대규모 천도(薦度) 의식이 활발히 개최된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괘불도 1622년에 조성된 죽림사 세존괘불탱(보물 제1279호)이다.# 한편 길이 419.5㎝, 너비 254.2㎝에 달하는 크기나 단독 좌상, 단독 입상 등의 형식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 수월관음도가 괘불일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고려시대부터 괘불이 조성되었을 것이라는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의 주장도 있다.#
    주수완 우석대 교수에 따르면 괘불이나 괴꾸같은 걸개그림 형식의 대형 불화는 특이하게 중국,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고 한국과 티베트 불교권인 티베트, 몽골 등에서만 발견된다. 한국의 괘불이 티베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없지만, 완전히 무관하다고 단정짓기도 힘들며 티베트의 밀교 의식에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
파일:img_623061_1-1.jpg
파일:11913895-907089732706899-8700741905112468050-n-2_1.jpg
한국의 괘불과 티베트의 괴꾸.


EBS 세계 견문록 아틀라스 《티베트 불교 최대 명절 '몬람'》
라싸(Lhasa)의 여름 축제인 쇼뙨(zho ston) 때 산자락에 괴꾸를 펼쳐 전시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를 쇄불(晒佛), 즉 부처님께 바람과 햇볕을 쐬어드리는 것이라 부른다.

  • 고려시대 때부터 제작된 금강저(金剛杵)와 금강령(金剛鈴)은 현대 한국불교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지만, 밀교 경전에 의거한 의식이나 수행에서는 널리 쓰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금강저는 티베트 계통과 당나라 계통 금강저를 응용한 한국의 독자적인 형태인 것이 대부분이다.

  • 고려 명종 20년(1190)에 조성된 용문사 윤장대(輪藏臺)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티베트인들의 신앙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마니륜통(摩尼輪筒, mani khor lo)이다. 2000년대 넘어서 용문사의 윤장대와 그 형식은 다르지만,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티베트의 것을 차용한 마니륜통을 제작하여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법구로 활용한다. 윤장대 내부에는 불경(佛經)이 들어있고, 마니륜통 내부에는 '옴 마니 밧메 훔' 등의 진언(眞言, mantra)이 적힌 두루마리가 들어있다. 글을 몰라 경전을 읽거나 진언을 외울 수 없어도 윤장대나 마니륜통을 돌리는 것만으로 똑같은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붓다가 법륜(法輪)을 굴리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파일:203346_207118_4313.jpg
파일:70436920.RjcLP5rL.jpg
국보 제328호 예천 용문사 윤장대(輪藏臺)와
티베트의 마니 꼴로(mani khor lo).


10.3. 현대 교류[편집]


파일:BandPhoto_2020_09_27_03_19_36.jpg
조계총림 송광사 제5ᆞ6대 방장 범일 보성(梵日 菩成) 스님은 달라이 라마와 교류하며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 양 불교 전통의 발전적 교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파일:20201216_173047.jpg
조계총림 송광사 제7대 방장 남은 현봉(南隱 玄鋒) 스님 또한 티베트 불교계와 교류하며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4대 원력(願力)을 조명하는 행사에 전세계 저명 인사 130여 명과 함께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여 인터뷰를 남겼다. #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조계종 군종교구장, 해외특별교구장을 역임한 구룡사 회주 아산 정우(芽山 頂宇)스님은 티베트 불교 승가와 티베트 난민들을 지원하며 달라이 라마 방한을 추진하였다. 또한 달라이 라마 왕사(王師)의 환생인 제7대 링(Ling) 린뽀체와 활발히 교류하며 린뽀체를 수차례 한국에 초청하였고 # # # 링 린뽀체 역시 자신의 게쉐(geshe) 학위 수여 기념식에 정우스님을 외빈으로 초청한 바 있다. # # 사진은 좌로부터 2008년 방한 당시 통도사 주지 정우스님, 조계종 제32대 총무원장 가산 지관(伽山 智冠) 스님, 제7대 링 린뽀체.

파일:114943_51424_5735.jpg
비구니계에서는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봉녕사 승가대학장을 역임한 봉녕사 회주 세주 묘엄(世主 妙嚴)스님 등이 티베트 불교계와 교류한 대표적인 비구니 인사로 알려져 있다. 묘엄스님은 달라이 라마를 수 차례 친견하고 2007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제1회 불교여성들의 역할에 관한 국제회합'에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역임한 운문사 회주 법계 명성(法界 明星)스님, 이향순 조지아주립대 교수 등과 함께 참가하여 달라이 라마와 의견을 나눈 바 있다. # 또한 묘엄스님이 회주로 있던 봉녕사에는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할 당시 이운한 부처님 진신사리 9과를 안치한 진신사리 금탑이 조성되어 있다. #

파일:25497_19865_2219.jpg
2014년에는 금강스님, 진옥스님, 목종스님, 월호스님, 마가스님, 정목스님, 박광서 교수 등 불교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달라이 라마 방한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96] # 방한추진위는 한국 정부와 조계종 종단에 방한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시민들을 대상으로 달라이 라마 방한 지지 서명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달라이 라마의 장기간 외국 체류가 어려워지면서 설립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2019년 해산하게 된다. 방한추진위는 "단체 차원의 방한 운동은 중단되었지만 개별적인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달라이 라마 역시 향후 기회가 되면 한국에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였다. #

  • 달라이 라마의 방한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인도 다람살라에서는 한국인 불자들을 위한 법회가 거의 매년 개최되고 있다. 2003년 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現 티벳대장경역경원장)의 청으로 달라이 라마의 한국인 불자들을 위한 법회가 처음으로 개최된 후 현재까지 해마다 수백명의 한국인 불자들이 참여하는 법회가 다람살라 남걀사원에서 열리고 있다. # 한국인 법회를 처음으로 요청한 진옥스님은 사회복지법인 보문복지회를 운영하며 전남 여수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복지사업을 시행하는 한편, 달라이 라마의 제자로서 인도의 티베트 불교 승가와 티베트 난민들을 지원하며 티벳대장경역경원 운영을 맡고 있다. 석천사 공식 사이트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티벳대장경역경원은 1967년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동국대 도서관에 기증한 라사판 티베트 대장경 한 질과 이후 2009년 달라이 라마가 기부한 20만 달러 상당의 자금을 토대로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설립된, 티베트 대장경의 한국어 역경불사를 담당하는 학술기관이다. 초기 명칭은 '티벳장경연구소'였다. 초대 소장으로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김성철 교수, 제2대 소장으로 윤영해 교수가 취임하였고 제3대 소장으로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이 취임하면서 '티벳대장경역경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티벳대장경역경원 공식 사이트

  • 대한불교 조계종 부산 홍법사에는 높이 21m(하단 대광명전 건물 포함 45m)의 국내 최대 아미타좌불상이 조성되어 있다. 아미타대불 내부에는 홍법사 주지 심산스님이 동국대 티벳장경연구소 설립을 계기로 2010년 8월 제14대 달라이 라마를 친견한 자리에서 기증받은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됐다. 1959년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할 당시 티베트에서 직접 이운한 진신사리 중 일부라고 한다. 2011년에는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진신사리 친견 및 이운법회를 개최하였다. # #

  • 한국불교 태고종 대전교구 종무원장을 역임한 안심정사 회주 법안스님은 티베트 불교가 계승한 날란다 법맥의 대승불교에 영향을 받아 람림, 로죵 관련 논서들을 보급하고 가르쳐왔다. 또한 한국 불교, 티베트 불교, 상좌부 불교 스님들을 초청하여 국제보살계 법회를 개최하였다. 인도 다람살라 IBD에서 티베트 불교 전통 교학을 수학한 범천 법사가 소속된 안심불교학술원에서는 티베트 불교 강원에서 배우는 대승불교 교학 체계를 강의 중이다. 또한 티베트 불교를 전공한 이종복 스탁턴대 교수와 부산 광성사의 게쉬 소남스님, 게쉬 푼촉스님도 교수진으로 초빙하였다. 교재로 《다 함께 잘 사는 길(대승불교 교학체계)》이 출판되었다. 안심정사 공식 사이트 | 안심불교학술원 공식 사이트 |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공식적인 초대 한국어 통역관은 현재 나란다불교학술원 원장을 맡고 있는 박은정 통역관이다.[97] 박은정은 인도 IBD(Institute of Buddhist Dialectics)[98]에서 10년 간 반야, 중관 등 불교 교학을 수학하고 2002년부터 2018년까지 달라이 라마의 공식 한국어 통역관으로 활동하였다. 현재는 국내에서 나란다불교학술원장, 동국대(경주) 외래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교육, 연구, 번역에 매진 중이다.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 인도 철학협회장 등을 역임한 삼동(zam gdong) 린뽀체를 근본 스승으로 모시고 수 차례 방한법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불교철학의 보물꾸러미(둡따 린포체이 탱와)》, 《보리도차제광론》 1권, 2권 등을 번역하고 현재 게쉬 툽텐 소남 스님과 함께 《보리도차제광론》의 후속 번역 작업 중이며 티베트어 학습서인 《쉽게 배우는 현대 티벳어》, 《티벳어 첫걸음》 등을 저술하였다. 나란다불교학술원 공식 사이트 |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밴드 아이콘.svg

  • 박은정 통역관에 이어 제2대 한국어 통역관으로 임명된 양지애 통역관은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의 주선으로 유년기에 인도 유학을 와 영어, 티베트어, 힌디어 등에 능통하며 역시 인도 IBD에서 10년 이상 불교 교학을 수학한 바 있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으로 실시간 공개되는 달라이 라마의 법문과 대담에서 한국어 동시 통역을 담당하여 국내 불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법문 교재로 쓰이는 《입중론》, 《사백론》, 《보만론》, 《보리심석론》 등 주요 티베트어 경론들의 한국어 번역도 담당하였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삼보 중 붓다의 가르침에 해당하는 법보를 특히 중시하고,[99] 법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로짜와(lo tsā ba, 역경사譯經師)들과 그들의 후예 격인 현대의 통역관들에 대한 인식과 대우도 남다르다.게쉬 텐진 남카, 《남카스님의 티베트 불교 8.역경사들》

  • "2020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는 COVID-19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된 '명상 웹컨퍼런스'에 달라이 라마의 축하 메세지가 전달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메세지에서 "한국 불자들은 기도와 명상 뿐만 아니라 불교 철학과 논리학에도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또한 욘게이 밍규르 린뽀체, 청전스님, 게쉬 소남 걀첸스님, 게쉬 텐진 남카 스님의 강연도 진행되었다. 명상웹컨퍼런스 강연 영상 목록

2020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명상 웹컨퍼런스
제14대 달라이 라마 축하 메세지 영상

  • 티베트 망명정부가 2020년 "제14대 달라이 라마 감사의 해"를 맞아 15개 언어, 전 세계 저명 인사 130여 명의 인터뷰를 통해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4대 원력(願力)인 "인류의 가치 증진, 종교 간 화합 증진, 티베트 문화와 환경 보호, 고대 인도 지혜의 부흥"을 조명한 행사에 한국을 대표하여 송광사 방장 현봉스님과 前 달라이 라마 방한 추진위 상임대표인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이 패널로 초청되었다. # 현봉스님 인터뷰 영상 금강스님 인터뷰 영상

  • 2021년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가 주최한 "2021 오대산 문화축전"의 행사 일환으로 개최된 '제1회 화엄선문화연구소 국제명상세미나'에 제14대 달라이 라마와 오대산 명상 지도자들 간의 기조 대담이 있었다. 대담은 해조스님, 선공스님, 월엄스님, 지욱스님, 대온스님 등 명상 지도 소임을 맡은 월정사 교역자 스님들이 비대면으로 질문하고 달라이 라마가 이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질의응답에 앞서 달라이 라마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경계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사유하고 탐구해야 하며, 이것이 불법을 따르는 ‘21세기 불자’의 기본 자세"라는 메세지를 전했다. 또한 "탐구하고 사유하지 않으면 배운 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해 진정한 믿음이 생겨날 수 없다"면서 "오늘날 그저 믿고 의지하며 예불하고 명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 불교도 (티베트 불교처럼) 산스끄리뜨어 전통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중론》, 《입중론》 등 날란다 승원 학자들의 저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당부를 덧붙였다. # 제1회 화엄선문화연구소 국제명상세미나 제14대 달라이 라마 기조대담 영상

파일:2015082801238_0.jpg
달라이 라마의 첫 한국인 제자인 청전스님(右).
30여 년간 인도 현지에서 수행과 자선활동을 하며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2015년 만해대상(실천 분야)을 수상하였다.
《달라이라마와의 30년》 1부 영상 2부 3부
2020 명상웹컨퍼런스《입보리행론》강연 영상


  • 전남 보성군의 대원사에서는 회주 현장스님이 '티벳 박물관'을 세우고, 티베트 불교 승려가 보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티베트 양식의 불탑(최댄Chorten)을 짓기도 하였다. 또한 티베트 환생자 스승들을 초청하여 수차례 법회를 개최하였고 최근에는 네팔에서 닝마빠 승려를 초빙하여 티베트 불교 기도 의식도 봉행하는 등 박물관이자 동시에 사찰로서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대원사에는 '티벳 박물관' 외에도 '김지장 성보 박물관', '어린 왕자 박물관' 등 총 3개의 박물관이 있다. 추가로 '인도 박물관' 설립이 예정됐다.대원사 티벳 박물관 공식 사이트 | 파일:카카오스토리 아이콘.svg

  • 경북 성주군 보리마을 자비선 명상원, 자비선사의 송광사 강주, 동화사 강주 및 율주, 한국 차명상협회 이사장, 한국명상협회 이사 등을 역임한 회주 지운스님이 달라이 라마를 여러 차례 친견하며 티베트 불교계와 교류해왔고, 한국 불자를 대상으로 람림, 입보리행론 등 티베트 불교 관련 논서들을 강독하였다. 또한 대구 티벳불교센터 팬대링에서 매주 정기적으로 법문을 설하고 있다.보리마을 자비선 명상원, 자비선사 공식 사이트 | 자비선사 템플스테이 공식 사이트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트위터 아이콘.svg

  • 경기도 안성시의 법등사에서는 봉녕사 강원 및 율원, 대만 중국문화대학, 인도 따시종 등에서 수학하고 봉녕사 승가대학 교수를 역임한 주지 설오스님이 한국, 대만의 정토종과 티베트 불교 샹빠 까규(Shangpa Kagyu)의 밀교 수행을 겸하는 정밀쌍수(淨密雙修)를 표방하고 있다. 설오스님은 인도 따시종에서 7년 이상 까규, 닝마 법맥의 수행을 전수받고 달라이 라마, 까르마빠 등의 한국어 통역을 맡은 바 있다. 이후 법등사를 창건하고 2010년, 2011년, 2012년, 2015년 네 차례에 걸쳐 샹빠 까규빠의 스승 까루 린뽀체(Kalu rinooche)의 방한 법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달라이 라마의 밀교란 무엇인가》, 《예세초겔의 삶과 가르침》,《티베트 불교를 만나다》 등 티베트 불교 관련 서적을 번역 및 저술하였다.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 파일:네이버 밴드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이사장,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장을 역임한 능행스님은 국내 최초로 불교 호스피스 전문 병원을 창설하고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서, 죽음과 재생(再生)의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는 티베트 불교에도 관심을 갖고 《티베트 사자의 서(개정 완역)》에 추천사를 남긴 바 있다. 또한 인도 라다크 등지에서 국제의료봉사 활동을 하며 국내에서 수차례 티베트 불교 스승들의 초청 법회를 개최하였다. 교육기관인 마하보디교육원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에서는 불교, 호스피스, 명상심리 관련 교육과정을 제공하면서 티베트 게쉬 스님들도 강사로 초빙하여 티베트 불교 관련 강의를 진행 중이다. 울산 정토마을 내 사찰인 간월사는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기증 받은 사리 1과와 달라이 라마 측으로부터 기증 받은 사리 2과 등 부처님 진신사리들을 안치한 적멸보궁이다. # #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공식 사이트 | 마하보디교육원,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공식 사이트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역시 능행스님이 건립한 청주 정토마을의 센터장을 맡고 있는 지덕스님은 상술한 설오스님과 함께 북인도 따시종에서 31세부터 캄뚤 린뽀체, 독덴 암틴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20년 이상 인도 현지에서 금강승 수행을 하였고, 51세에 둑빠 까규 법맥 한국 수행센터인 캄따시링을 창건하여 주지를 역임한 바 있다. 오랜 현지 수행으로 티베트어에 능통하여 국내외에서 한국인들을 위해 여러 차례 티베트 스승들의 법문을 통역하였고, 캄따시링 개원 후 거의 매년 캄뚤 린뽀체와 독덴 아추, 켄뽀 스님들, 달라이 라마의 신탁승 네충 라마 등을 초청하여 법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따시종의 거룩한 성자 캄뚤린포체》(지엄스님 공역), 《둑빠까규 독송법본》, 《깨달음으로 이끄는 길》, 《사성제 팔정도》, 《바르도 성취법》 등을 번역 및 편찬하였다.

  • 수지 법륜사 주지 일문스님은 인도 다람살라에 위치한 여승 사원인 돌마 링(Dolma ling)에서의 4년 간 강원 수학을 포함하여 총 12년 간 인도 현지에서 티베트 불교 수행을 하고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서 까규빠 마하무드라 수행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7대 링 린뽀체, 제17대 까르마빠 오겐 틴레 도제를 스승으로 모시고 까르마빠의 법회에서 한국어 통역을 맡고 있다. BTN 불교 TV 프로그램 '다다붓다'에서 한국 불자들에게 티베트 불교를 소개하고 돌마 링에서의 유학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일문스님의 다다붓다 60회 61회 62회 63회

11. 지역별 보급[편집]



파일:Buddhist_sects.png

현대 불교 종파의 분포

밀교 · 티베트 불교

대승 불교

상좌부 불교


11.1. 대한민국[편집]


파일:20210101_214037.jpg
티베트 풍으로 지은 한국의 첫 티베트 불교 사원
광성사 (부산 서구 아미동)

현재 한국 내에서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는 곳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 티베트 불교 승단에 소속된 스님들이 한국 내에 상주하며 지도하고 있는 사찰, 단체들이다.

단체명
링크
주소
세첸코리아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서울 종로구
캄따시링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서울 성북구
랍숨섀둡링(삼학사원)[100]
공식 사이트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서울 은평구
따시최링(서울티벳불교문화센터)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서울 강북구
광성사
공식 사이트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 파일:네이버 밴드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부산 서구
팬대링(대구티벳불교센터)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밴드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대구 달서구

이 외에 정기/비정기적인 법회와 수행모임을 개최하는 수행단체는 다음과 같다. 대부분 서구에서 활동 중인 티베트 불교 수행단체의 한국 지부 격에 해당하는 단체들이다.

단체명
링크
마이트리야 상가
공식 사이트 |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예셰 롱 코리아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텔가 코리아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밴드 아이콘.svg
다르마타 코리아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싯다르타즈 인텐트 코리아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티베트 불교 관련 국내 학술기관은 다음과 같다.

학술기관명
링크
티벳대장경역경원
공식 사이트
나란다불교학술원
공식 사이트 |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밴드 아이콘.svg
정토마을 한국티벳불교문화연구원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티벳불전번역원
번역원 소개 기사# #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인 지도자인 제14대 달라이 라마, 제17대 까르마빠, 켄뽀 소달지(མཁན་པོ བསོད་དར་རྒྱས, Khenpo Sodargye, 索达吉堪布)[101]의 공식 한국어 페이스북 계정은 다음과 같다. 페이스북에서 동정, 법회 일정, 메세지, 동영상, 번역 자료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유튜브에서 달라이 라마, 까르마빠, 켄뽀 소달지 등 티베트 불교 스승들 법문의 한국어 통역본도 들을 수 있다.


스탠퍼드 자비 명상(Compassion Cultivation Training©, CCT™)은 스탠퍼드 대학의 자비와 이타주의 연구 교육 센터(Center for Compassion and Altruism Research and Education)에서 2009년 개발한 8주 명상프로그램으로 불교(특히 티베트 불교)·심리학·신경과학의 통찰과 함께 친절과 자비를 배우는 과학적 명상이다.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영어 통역관으로 잘 알려진 승려 출신의 툽텐 진파(Thupten Jinpa) 맥길대 교수가 명상 개발자로 참여하였다.[103] 국내에서는 공감과자비연구소에서 스탠퍼드 자비 명상을 지도한다. 관련 서적으로 툽텐 진파, 《두려움 없는 마음》(임혜정 譯)이 있다. 공식 사이트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티베트 불교를 믿는 네팔, 몽골 이주민들을 위한 사찰도 있다. 이 중 서울네팔법당 텍첸사의 경우 한국인 불자들도 법회에 참여하고 있다.

  • 서울 네팔법당 텍첸사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 동두천 네팔법당 용수사 (경기도 동두천시)[104]
  • 몽골 간단사 서울 포교당 (서울시 중구 광희동)


11.2. 중화권 및 티베트[편집]


과거 티베트 영토였던 티베트 자치구칭하이성, 쓰촨성, 간쑤성, 윈난성 일부 지역의 티베트인들, 내몽골 자치구몽골인들, 신장 위구르 자치구(주로 북부 중가리아 지역) 몽골 자치현의 오이라트인들, 그리고 동북 3성만주족들 위주로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이들 지역에 거주하는 한족들 중에도 한국 연예계에서 활동한 장위안 같이 티베트 불교도들이 다수 있다.

티베트는 이름대로 티베트 불교의 중심지였으나, 중국의 병합과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이후 문화대혁명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현재까지 중국 내 티베트인들 650만 여명 대부분은 독실하게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사실상 티베트 지역의 국교. 그러나 티베트인들 중 10% 정도는 티베트의 고유 종교인 뵌교를 믿는다. 다만 현재의 뵌교는 불교를 신봉하는 지배층의 탄압을 피하고자 불교의 교리와 의식 등을 거의 그대로 습합하여 외부인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불교와 유사하게 변모하였다.

파일:mencuo-e1498546372369.jpg
라룽가르(bla rung sgar, 오명불학원)의 수장인
여성 환생자 스승 제쭌마 문초 린뽀체
(Jetsünma Muntso Rinpoche)

대만에는 티베트 불교도가 상당히 많다. 대만에 티베트 불교를 널리 포교한 스루스(釋如石) 스님은 대만 내 티베트 불교 전파 과정을 두 단계로 구분하였다. 1950년부터 1982년까지는 이른바 '전홍기(前弘期)'로, 이 기간 동안은 국민당 정부를 따라 대만으로 건너온 소수의 겔룩, 사캬 승려들 외에 대부분 한족 재가 불자들 위주로 티베트 불교를 신앙하였다. 밀법의 전수는 적었고, 전파 지역은 대만 북부에 한정되었다. 그 후 1982년부터 인도, 네팔에서 티베트 불교 승려들이 포교를 위해 대거 대만에 입국하고, 또한 미국에서 밀법을 수행했던 천젠민(陳健民)의 저작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만 전역에 티베트 불교 전(全) 종파의 가르침이 본격적으로 전래되었다. 鄭志明, 《藏傳佛教在台發展的現況與省思》 양정연, 《한 권으로 보는 세계불교사》<타이완 불교사>

현재 닝마, 까규, 사캬, 겔룩 등 티베트 불교 주요 4대 종파가 모두 대만에 진출한 상태이다. 사라 프레이저(Sarah E. Fraser) 하이델베르크대 교수가 2018년 연구에서 인용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대만 내 티베트 불교 신자 수는 현재 약 50만~60만여 명에 달한다.[105] Sarah E. Fraser, 《Tibetan Buddhist Temples in Taiwan: An Exploration of Transnational Religious Architecture》 달라이 라마는 1997년, 2001년, 2009년 세 차례에 걸쳐 대만을 방문한 적이 있다.

홍콩마카오의 티베트 불교 신자들은 조상이 중국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중국 대륙의 티베트 불교권 지역에서 이주해온 경우가 대다수다.


11.3. 몽골[편집]


몽골 제국시절에 몽골의 종교였으나 제국이 쇠퇴하면서 몽골 내 티베트 불교도 쇠퇴하였다. 알탄 칸 대부터 다시 몽골인들의 종교가 되었다. 티베트어로 된 경전을 학습하고 티베트 승려와 동일한 복식을 착용할 정도로 몽골과 티베트의 불교는 거의 차이가 없다. 몽골 승려들의 수준은 예전부터 우수하였는데, 제13대 달라이 라마가 몽골을 방문한 후 그 곳 학승들의 능숙한 논쟁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일이 지금과 같은 길고 철저한 게쉬 학위 제도를 정립하게 된 계기가 될 정도였다. 안병남, 《티베트 불교의 사원 교육제도》

공산주의 시대에는 독재자 허를러깅 처이발상의 주도로 극심한 탄압을 받았지만[106] 탈공산화 후 완화되었다. 비록 공산 정권의 탄압을 받았지만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불교 관련 유산이 철저히 파괴되고 약탈 당한 티베트와는 달리 많은 경전과 유물이 따로 보관되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고 한다.

현재 몽골 인구의 약 60%가 불교도로 대부분 티베트 불교(주로 겔룩)를 믿으며, 간단 사원이 몽골 티베트 불교의 중심적인 사원이다.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 이후 몽골과 칼미키아 공화국, 부랴티아 공화국, 투바 공화국의 승려들이 남인도 카르나타카 주에 소재한 데뿡 사원의 고망 강원(Drepung Gomang Monastic University)[107]으로 유학을 오기 시작하여 현재는 2000여 명의 몽골, 러시아 연방 출신 승려들이 고망 강원에서 정진 중이다. 개중에 게쉬 학위를 취득한 승려나 사원의 방장(方丈) 등 고위직에 오른 승려도 상당 수 배출될 정도로 몽골 승려들의 자질은 우수하다. #


Telo rinpoche, 《The Revival of Buddhism in Russia and Mongolia》

11.4. 부탄[편집]


사실상 부탄국교이다. 16세기에 둑빠 까규 중 샵둥 나왕 남걜(zhabs drung ngag dbang rnam rgyal)이 이끄는 티벳 남부의 일파가 겔룩의 탄압을 피해 부탄에 자리잡아 국교가 되었다. 부탄 헌법에 따르면 5명의 고승인 롭뾘(slob dpon)들의 추천을 받아 부탄 국왕이 임명한 제 켄뽀(Je Khenpo)가 국사(國師)로서 부탄의 전체 불교 사원들을 이끌게 된다.

파일:11904.jpg
1630년대 부탄을 통일한 샵둥 나왕 남걜

11.5. 인도[편집]


인도 북부의 라다크, 시킴, 아루나찰프라데시 등 티베트계 지역 주민들과 중국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10만 여명의 티베트 난민들이 주로 믿는다. 망명 이후 티베트인들은 티베트 현지에 소재한 자신들의 주요 사원들을 본따 인도 각지에 새롭게 사원을 건립하여 티베트 불교의 명맥을 보전하는 한편, 인도 불교의 부흥에도 기여하고 있다.

인도 사회에서 오랜 세월 천대를 받아온 불가촉천민 계층에서는 불교를 믿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불가촉천민이라면 티베트인 거주지에 사는 경우가 아닌 이상 티베트 불교보다는 신흥 종파인 나바야나(Navayana)를 믿는다.[108] 나바야나는 인도 독립 이후 불가촉 천민들의 지도자였던 암베드카르 박사가 수십만명의 불가촉천민, 평민과 함께 한 불교 운동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파일:New-Drepung-1.jpg
인도 카르나타카의 데뿡 로셀 링(Drepung Losel Ling) 강원

11.6. 네팔[편집]


석가모니의 탄생지 룸비니(Lumbini)가 네팔에 있지만, 힌두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80%로 우위를 차지하며 불교 인구는 9~10% 정도에 불과하다. 네팔의 불교는 크게 티베트 불교, 네와르 불교, 테라와다(상좌부) 불교로 구성된다.

네팔은 티베트와 지리적으로 인접해있고 한 때 티베트의 지배를 받았던 적도 있다. 그 영향으로 셰르파(Sherpa)족 등 카트만두 계곡 근처 북부 고지대의 소수 민족들은 티베트 불교를 주로 믿는다. 중앙의 네와르(Newar)족은 힌두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네와르 불교를 믿는다. 힌두교의 영향으로 네와르족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카스트 제도가 있다. 테라와다 불교도 소수지만 존재한다.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 인근은 성역화되어 전세계 불교 종파들이 세운 사원들이 밀집해있다.


네팔의 보다나트 대탑(Boudhanath stupa) 소개 영상

11.7. 러시아[편집]


시베리아의 소수민족부랴트인투바인, 칼미크인 등이 주로 믿는다. 이들 중 티베트 불교 신도 인구는 약 70만~150만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 # 2016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 중 불교도의 비율은 투바 공화국 52.2%, 칼미키아 공화국 53.4%, 부랴티아 공화국 19.8%, 자바이칼 변경주 14.6%, 러시아 연방 0.6%이다. #

무신론을 강요하던 소련 시절, 칼미크인 불교 지도자들은 티베트 불교가 무신론이라고 주장했으나, 소련 정부는 티베트 불교는 무신론이 아니라면서 이슬람이나 기독교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의 박해를 가했다.[109] 당시 소련 전국에 오직 2군데 사원[110]만이 허가 하에 존치되었을 정도였다.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 정부에서 공인한 '전통 종교' 4개 중 하나로 지정되어[111] 정부 인사들과 불교 대표가 자주 만나는 등 사정이 많이 나아져 교세를 회복하고 있으며, 영미권에서 티베트 불교 신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소수민족 외의 슬라브계 러시아인 신자도 조금씩 늘어나는 중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화교[112] 또한 티베트 불교 신자가 많은데 이들은 주로 동북 3성 한족의 후손이다.

달라이 라마1976년1991년 러시아를 방문했다. 2004년에도 칼미키야 공화국 대통령 키르산 일륨지노프의 초청으로 방러하고자 하였으나, 중국 측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Dr. Andrey Terentyev, 《Tibet's Connection with Buddhism in Russia》(한글 자막 있음)

11.8. 기타 전세계[편집]


상좌부 불교, 선불교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불교로 심지어 아프리카에도 절이 있다.[113] 아프리카 불교도들의 따라보살 기도 영상[114] 유럽[115]이나 미국[116], 일본[117], 중남미[118], 동남아[119], 오세아니아 등지에도 상당한 신자들이 있다. 특히 서구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학계에서는 티베트 불교를 인도 대승 불교의 마지막 후계자로 인정한다.

파일:lerab-ling-temple-bouddhiste-tourinsoft-2741.jpg
남프랑스 몽펠리에(Montpellier)에 위치한
티베트 불교 사원 레랍 링(Lerab Ling)

달라이 라마(Dalai Lama), 까루 린포체(Kalu Rinpoche), 딜고 켄체 린포체(Dilgo Kyentse Rinpoche)[120], 소걀 린포체(Sogyal Rinpoche)[121] 까르마빠(Karmapa), 꺕제 송 린포체(Kyabje Zong Rinpoche) 등이 활발하게 포교활동을 벌이며 티베트 불교를 서방에 알렸다.

파일:Kalu Rinpoche 1.jpg
파일:kalu-rinpoche-for-flyer.jpg
초창기 서구 포교를 이끈 대표적인 티베트 불교 스승
샹빠 까규의 까루(Kalu) 린뽀체
(上) 초대 (1905-1989) (下) 제2대 (b.1990)
제2대는 2010년, 11년, 12년, 15년 네 차례 방한했다.


12.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교섭[편집]



12.1. 티베트 불교에서 보는 "참 나"[편집]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시었다.

“대혜여, 내가 말한 여래장(如來藏)이 항상된다 함은 외도들이 있다고 하는 신아(神我)와는 같지 않은 것이다. 대혜여, 내가 여래장을 말하는데, 공(空)함과 실제(實際) 열반과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不生不滅]는 것과 모양이 없으며, 원(願)함이 없다는 등의 말과 글귀로서 여래장을 설명하였다. 대혜여,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는 여러 어리석은 범부들을 위하여 무아(無我)란 말을 들을 때 놀래고 두려워하는 생각을 내기 때문에 내가 여래장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여래장은 분별하는 바가 없으며, 고요하고 모양이 없기 때문에 여래장이라 말한 것이다."

《입능가경》(동국대 역경원 譯)


선남자여, 이 불성이란 실제로는 자아가 아니다. 중생을 위하므로 자아라고 설해졌다. 선남자여, 여래는 원인과 조건이 있기 때문에(=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에 맞추어서) 무아를 자아라고 설한다. 진실로는 무아다. 비록 이렇게 설해도 거짓은 없다. 선남자여, 원인과 조건이 있기 때문에(=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에 맞추어서) 자아를 무아라고 설한다. 세간 사람을 위하기 때문에 비록 무아를 설해도 거짓은 없다. 불성은 무아이지만 여래는 자아라고 설한다. 이것은 상주하기 때문이다. 여래는 이 자아를 무아라고 설한다. 자재력을 얻기 때문이다.

《대반열반경》(김성철 譯)


한역대장경에서 "참 나"에 해당하는 한자어 "진아(眞我)"는 《대반열반경》을 중심으로 매우 제한적으로 등장하며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는 아뜨만과 같은 외도(外道)의 아(我)이다. 둘째는 오온(五蘊)으로 구성된 아(我)와 구별되는 참된 자아로 여래, 불성, 여래장 등과 동의어이다.

김성철 금강대 교수는 여래장 계통의 대표적 경론인 《열반경》과 《보성론》에 드러난 여래장 사상에서의 자아와 무아 개념에 관해 다음과 같은 유형들로 정리하였다.
  • 자아 개념을 잠정적 의미(neyārtha)=불료의(不了義)의 가르침이란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자아 개념은 외도나 중생의 교화를 위한 수단의 의미에 중점이 주어진다.
  • 외도나 중생이 집착하는 자아는 부정하되, 여래장사상 계열에서 인정하는 자아는 궁극적 실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긍정하는 유형이다. 전자가 부정되는 이유는 여래장사상에서 인정하는 자아 개념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는 여래, 불성, 여래장과 동일시되며, 자아라는 긍정적 언어로 서술된다.
  • 자아와 무아를 양자긍정의 방식으로 동일시하거나 양자부정의 방식으로 모두 부정하는 유형이다. 전자는 주로 궁극적 실재의 인식불가능성이나 난해성과 관련되어 있다. 후자의 경우는 아견과 무아견을 모두 개념적 다양성의 산물로 격하시키는 대신 궁극적 실재를 보다 고차원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김성철, 《여래장 사상에서 자아와 무아》

두 번째나 세 번째 유형처럼 자아와 무아를 긍정하거나 부정하여 궁극적 실재를 드러내는 교설 방식은 초기불교에서부터 등장한다. 그 중 자아와 무아를 모두 부정하는 방식은 중관의 부정을 통한 중(中)의 실현으로 계승되는데, 예컨대 《잡아함경》의 ‘유아(有我)라고 하면 상견(常見)에 빠지고 무아(無我)라고 하면 단견(斷見)에 빠진다.’와 같은 무기설(無記說)은 《중론》에서 "부처님들에 의해 ‘자아(가 있다)’라고도 가설(假說)되었고 ‘무아’라고도 교시되었으며 ‘자아이거나 무아인 어떤 것이 아니다.’라고도 교시되었다."(김성철 譯)[122] 등의 구절을 통해 소환, 심화되어 자아와 무아의 개념을 초월한 궁극적 실재, 현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인 공성(空性)을 설파하는데 활용되었다.
김성철, 《중론 개정본 - 산스끄리뜨 게송의 문법 해설을 겸한》

인도에서 불성, 여래장 사상은 대승의 주류 사상인 유식, 중관과 달리 독자적인 학파를 형성하지 못했고 조직적인 교의도 갖추지 못했지만, 중국과 티베트로 전래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한국 불교에서 흔히 언급하는 "참 나" 역시 불성, 여래장 사상의 영향을 받아 널리 쓰이게 된 표현이다. 티베트에서도 불성, 여래장 사상은 주요 사상으로 취급되었지만, 티베트 불교 종파들은 겔룩처럼 불성, 여래장 사상을 불료의(不了義)로 교판(敎判)하는 측과 조낭, 까규처럼 요의로 교판하는 측으로 나뉘어져 '공성'과 '불성' 간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냈다. 그 중 겔룩의 관점을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중관학파에서는 여래장 사상을 조사하면서 세 가지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1. 불성, 여래장을 설했을 때 부처님의 최종적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영원하고 항구적인 안정된 본질인 불성, 여래장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곧 열반의 기반인 (주로 번뇌를 아직 없애지 않은) 마음의 공성을 가리킨다. 마음의 본질이 무자성으로 공하고 번뇌는 우발적이기 때문에 누구나 해탈성불이 가능하다. 마음의 본질은 공하여 결정된 종성(種姓)이 없으므로 일천제(一闡提)같은 악인을 포함한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2. 부처님이 불성, 여래장 사상을 가르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하여 무아, 공성의 가르침이 그들을 두렵게 만든다. 그들은 무아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의미라고 생각하고 공성을 깨달으면 자신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공포를 안정시키고 점차적으로 공성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해 불성, 여래장을 설한 것이다.

3. 불성, 여래장 사상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발생하는 논리적 모순은 무엇인가?

불성, 여래장 사상을 문자 그대로, 즉 요의로 받아들일 경우 영속적이고 자성을 가진 아(我)가 있다는 비불교도들의 주장과 차이가 없게 되며 따라서 반야경의 요의와 모순되고 추론에 의해 반박된다.

모든 부처와 중생의 마음의 궁극적 본성이 공성이라는 점에서는 부처와 중생이 유사하지만, 그 궁극적 실재는 동일하지 않다. 하나는 부처의 마음의 궁극적 본성[自性法身]이고, 다른 하나는 오염된 마음의 궁극적 본성이기 때문이다. 만일 자성법신이 중생들 속에 존재한다면, 자성법신과 본성이 동일한 지혜법신도 중생들 속에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생들이 전지(全知)하다는 뜻이 될 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모든 번뇌를 없앤 상태가 중생들 속에 존재한다면, 공성을 직접적으로 지각[현증現證]하지 못하게 그들을 방해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고, 그들은 그 깨달음을 가질 것이다. 이것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자성법신, 지혜법신에 대한 설명은 근(根), 도(道), 과(果) 항목 참조.)

만일 부처의 32상(三十二相)이 이미 우리 속에 있다면, 우리가 32상(相)을 성취할 원인들을 만들기 위해서 여전히 도(道)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모순될 것이다. 만일 32상(三十二相)이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서 이미 우리 안에 있으며, 드러나게 만들 필요가 있을 뿐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자아(自我)로부터 발생한다는 상키야(Sāṃkhya) 개념과 유사할 것이고, 중관학파는 그 개념을 부정한다.

제14대 달라이 라마, 툽텐 최된, 《달라이 라마의 불교 강의》(주민황 譯)


언급된 상키야(수론數論)학파는 인도 육파철학(육사외도六師外道) 중 하나로, 실재(reality)가 뿌루샤(puruṣa)와 쁘라끄리띠(prakṛti)라는 궁극적인 두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원적(二元的) 세계관을 주장하는 학파이다. 뿌루샤는 불변하는 근원적 일자(一者)이자 개별적 자아인 아뜨만이며, 쁘라끄리띠는 근본원인이 되어 전변(轉變)하여 이성, 자아의식, 11개 기관―사고기관, 5개 지각기관(귀, 몸, 눈, 혀, 코), 5개 행위기관(발성, 손, 발, 배설, 생식)―과 5개 미세요소(소리, 접촉, 색깔, 맛, 향), 5개 조대요소(지, 수, 화, 풍, 공) 등으로 현상계에 현현한다. 정신인 뿌루샤와 물질인 쁘라끄리띠는 각각 '보는 자'와 '보이는 자'로 한 조를 이루어 세계를 창조해나가며, 물질이 전변해나가는 과정은 '원인이 결과를 산출하기 전에 결과는 원인 속에 존재한다'는 인중유과론(因中有果論)을 따른다. 아카마쓰 아키히코, 《인도철학강의》(권서용 譯)

오늘날 세간에서 "참 나"를 주장하는 이들 대부분이 상키야 학파와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한 논지로 그들의 "참 나" 이론을 전개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참 나"를 뿌루샤에, "에고"를 쁘라끄리띠에 대응시켜보면 쉽게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불교도들 중에도 불성 사상을 상키야 학파와 매우 유사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상키야 학파는 인도 대승불교 논사들의 가장 주된 논적 중 하나였고 그들의 학설은 유식, 중관의 논서에서 주요한 논파대상으로 등장한다.

일체는 모든 방식으로 모든 경우에 공(空)하며, 구름과 꿈, 환화(幻花)의 상(相)과 유사하다고 알아야 한다고 여러 곳에서 설해졌다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불성은 각각의 중생 속에 있다고 제불(諸佛)께서는 설하셨는가?

의기소침한 마음과 열등한 중생들에 대한 경멸, 허망한 것에 대한 집착과 진실한 법에 대한 비방 그리고 과도한 자아에 대한 애착이라네. 그들에게 그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설하는 것이라네.

《구경일승보성론》

견혜보살, 《보성론》(안성두 譯)


긍정적, 기체적(基體的) 묘사로 인해 자칫 힌두의 아뜨만 같은 개념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성, 여래장은 필경 모든 중생이 성불한다는 가르침인 구경일승(究境一乘)의 주된 근거가 되므로 불성, 여래장은 티베트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적 위상을 차지한다(다만 티베트 불교에서 불성, 여래장의 궁극적 본질은 '마음의 공성' 내지 실공(實空)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보성론》에서는 불성을 설한 목적을 다섯 가지 허물을 제거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을 모르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허물이 생긴다.

  • '내가 어떻게 성불할 수 있을까' 하여 마음의 힘이 약해짐
  • 다른 중생에게도 '이 중생이 어떻게 성불할 수 있겠나' 하면서 무시함
  • 마음의 본성을 몰라 자타의 고통을 생기게 하는 탐욕과 분노를 대치하지 못하고, 탐욕과 분노의 원인인 '실체로 성립한다'는 상(相)에 미혹되는 증익(增益: 없는 것이 억지로 더해짐)
  • 일시적인 모든 장애들을 정화시킬 수 있고 여래의 모든 공덕들이 생길 수 있는 토대인 여래장을 없다고 보는 손감(損減: 있는 것이 억지로 덜어짐)
  • 원만성취의 주된 원인인 (중생에 대한 자비로 생긴) 보리심에 대한 주된 장애인 '나'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이기심
게쉬 텐진 남카,《심오한 중도의 새로운 문을 여는 지혜의 등불》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불성, 여래장 경전에 밀교의 광명심(光明心)을 암시하는 심오한 가르침이 들어있으며, 불성, 여래장 사상을 배우는 목적은 우리에게 본질적인 결함이 존재하지 않으며 완벽하게 될 수 있고 이미 마음에 그런 측면이 존재하기에 마음을 정화시키고 완전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였다.
제14대 달라이 라마, 툽텐 최된, 《달라이 라마의 불교 강의》(주민황 譯)

유(有)를 물으면 무(無)로 대답해야 하며 무를 물으면 유로 대답해야 한다. 범부(凡夫)에 대해 물으면 성인(聖人)으로 대답하고 성인에 대해 물으면 범부로 대답하라. 두 가지 길이 서로 의존하여 중도의 뜻을 생한다.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김성철 譯)


한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는 “무(無)!”라고 답했다. 그 스님은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 게는 없는 것입니까?”라고 말했다. 조주는 “그 놈에게는 [불성이 아니라] 업식(業識)이 있느니라.”라고 말했다. [오조 법연]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대중 여러분은 평소에 어떻게 [수행]하려고 하는가? 노승은 평소에 다만 그냥 ‘무’자만 든다. 여러분이 만일 이 한 글자를 뛰어넘으면 천하의 그 누구라도 여러분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뛰어넘어서 끝장을 본 사람이 있는가? 있으면 나와서 말해 보거라. 나는 여러분이 ‘유(有)’라고 말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고 여러분이 ‘무(無)’라고 말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으며 여러분이 ‘불유불무(不有不無)’라고 말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여러분은 어떻게 말하겠는가? 소중히 여겨라.

《법연선사어록(法演禪師語錄)》(김성철 譯)


티베트 불교에서 중관사상과 불성사상이 융합되었듯이, 선불교 또한 반야공관과 불성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김성철 동국대 교수는 선불교와 반야중관의 관계를 고찰하면서 선불교 조사들의 교화방식에서 드러나는 불성의 중도적 해석에 주목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조주의 “무!”라는 대답은 ‘상대의 생각을 중화시키는 작용’이었다. ‘개’와 ‘불성’과 ‘있음’이라는 분별을 타파하는 ‘작용’이었다. 선승들의 이와 같은 교화방식은 가까이는 육조 혜능(慧能)의 사상, 멀리는 동아시아의 중관학인 삼론학의 중도불성론(中道佛性論)에 기원을 둔다.

《열반경》에서 가르치듯이 일체의 중생에게 불성이 있기에 개에게도 불성이 있을 것이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有)는 대답을 기대하고서 조주 스님에게 물었다. 그러나 조주는 없다(無)고 대답한다. 기대와 다른 대답이다. 다름을 떠나서 상반된 대답이다. 혜능이 “유를 물으면 무로 대답해야 한다.”고 가르친 대로, 불성이 있다는 대답을 원했는데 없다고 답한다. 조주의 답을 통해서 ‘유의 극단’에 치우쳤던 질문자의 생각이 중화된다.
김성철, 《선불교의 뿌리(인도 중관학과 동아시아 삼론학)》


김성철 동국대(경주) 교수, 《조현TV 휴심정 "불성은 원래 있던 것인가 새로 생기는 것인가-중도불성론, 오종불성론"》

《중론》의 4구부정처럼 유, 무, 비유비무(非有非無) 등을 모두 차단하는 중도적 성격의 선관(禪觀)은 삼론학을 확립한 고구려 출신의 고승 승랑의 중도불성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중도불성론은 거슬러 올라가면 중관의 시초인《중론》의 팔불중도(八不中道)와 초기불교 경전인《가전연경》의 유무중도(有無中道)에서 나타나는 중도 사상에 시원(始原)을 둔다. 결국 선불교에서 추구하는 불성 내지 "참 나"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고정불변한 실유(實有), 집유(執有)가 아닌 유무의 개념적 극단을 떠난 중도로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중도의 다른 이름인 연기, 무자성, 공성과 불성은 같은 지향점의 서로 다른 이름일 뿐이다.[123]

문: 만일 이처럼 당신이 사물들이 자성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립한다면 이로써 세존께서 "자신이 행한 업의 성숙은 자신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라고 설한 모든 것이 부정될 것이며, 행위와 과보를 부정(손감)하기 때문에 당신은 허무주의자(단견자斷見者)의 선봉이 될 것이다.

답: 답한다. 우리는 없음을 말하는 자(단견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존재와 비존재 두 가지로 주장하는 것을 부정하여, 둘이 없는 도(道)로 열반의 경지에 나아감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행위와 행위자, 과보 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하면 '이것들이 자성이 없다'고 확립하는 것이다.

짠드라끼르띠,《명구론》(게쉬 텐진 남카 譯)

게셰 텐진 남카,《심오한 중도의 새로운 문을 여는 지혜의 등불》


어떤 이가 윤회와 열반, 그리고 모든 존재의

원인과 결과에 결코 거짓이 없음을 자각하여

인식의 대상마저 전부 없어진다면

그는 부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의존하여 발생함을 보는 것에 거짓이 없음과

공성을 인정하는 것이 무관하게 생각되어

각각으로 보이는 한

여전히 부처님의 의중을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번갈아 보이는 것이 없어지고

의존하여 발생한 것이 거짓됨 없이 보이는 것과 함께

인식한 모든 대상이 없어지면

그 때 견해의 분석이 끝난 것 입니다.

더불어 보는 것으로 있다는 견해를 없애고

공성으로 없다는 견해를 없애니

공성이 원인과 결과로 나타나는 이치를 이해한다면

양 견해에 현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쫑카빠, 《수행의 핵심이 되는 세 가지 법》(양지애 譯)


"조건에 의지한 어떤 것도 그 모두 실체가 없다"는

말씀보다 더 경이로운 가르침이 어디 있겠는가. [...]

그러므로 "연기하지 않는 어떤 존재도 없기에 자성 없는 공을 벗어난 어떤 존재도 없다"고 가르치셨네.

"자성은 변할 수 없기에 모든 존재에 자성이 있다고 한다면 열반은 불가능하며 무명은 멸할 수 없게 된다"고 말씀하셨네. [...]

"의지해서 존재하기에 극단의 견해에 빠지지 말라."고 바르게 설하셨기에 부처님이 최상의 설법자임을 증명하네.

"제법의 본래 공함과 연기로 나타나는 인과법" 이 둘에 대한 이해는 모순 없이 서로를 돕는다고 말씀하셨네. [...]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은 본래부터 자성이 없음에도 마치 실재처럼 보이는 것이 환영과 같다"고 말씀하셨네

쫑카빠, 《연기찬탄송》(게쉬 소남 걀첸 譯)

게시 소남 걀첸,《티베트 스승에게 듣는 연기법의 지혜》


불성, 여래장이라는 교설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마음의 공성이라면, 불성, 여래장 사상에서 유래한 불교적 "참 나"가 가리키는 바 역시 공성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일 공하지 않고 자성이 있다면 열반의 성취와 번뇌의 소멸은 불가능하다. 자성은 이전에 있다가 이후에 없어지는 변함이 있을 수 없기에, 윤회계와 해탈계의 모든 존재가 자성이 티끌만큼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이전에 없었던 열반을 새롭게 얻을 수 없게 되며, 이전에 있었던 윤회계의 무명(無明) 등 모든 희론(戱論)을 멸할 수 없게 된다고 석가모니 붓다는 말했다.

반야중관의 공성은 '없음(단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아, 공성은 '의존하여 생김(연기)'과 같은 의미이며 따라서 행위와 행위자, 과보 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자성이 없음'을 확립할 뿐이다. '자성이 없음', 즉 공성으로 존재한다는 상견을 여의고, 연기로써 비존재한다는 단견을 여읜 두 극단이 없는 중도로 열반의 경지로 나아간다(혹은 공성으로 단견을 여의고 연기로 상견을 여읜다).[124]

만일 성자(聖者)들처럼 승의제의 공성과 세속제의 연기를 서로 모순이 없고 서로 도움이 되는 것으로 함께 인식할 수 있다면 석가모니 붓다의 의도대로 참다운 진여(眞如), 실다운 실상(實相)을 본 것이다. 오온에 의존하여 성립한 "나" 또한 고정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가 아닌 자성(自性)으로 공(空)하고 오직 명언(名言)으로 가립(假立)된 "나"일 뿐이며, 이를 두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위없는 진리에 부합하는 "참 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티베트인들에게 "참 나"는 매우 생경한 표현으로, 불교 용어로 쓰이기엔 부적절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음을 덧붙인다. 오랜 세월 무아, 공성 교의에 영향을 받은 티베트인들은 "나(ང་།)"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는 것마저 꺼리는 습속을 가지고 있다. "나, 나, 나"를 번번히 입에 올리는 것은 그만큼 아집이 강하다는 방증으로 여겨지고, 또한 역으로 그러한 언어의 사용이 사고에 영향을 주어 아집을 강화할 수 있다고 본다.)

또 『화엄경』에서 말씀하셨다.

"생사와 열반 이 둘 모두 허망하나니 어리석음과 지혜도 이와 같아 두 가지 모두 진실이 없다네."

이 『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는 (수보리가 여러 천자들에게) ‘색色·수受·상想 등은 환상과 같고 꿈과 같으며, 나아가 열반마저도 환상과 같고 꿈과 같다. 만약 열반보다 훌륭한 법이 있게 된다 해도 나는 그것 역시 환상과 같고 꿈과 같다고 말하리라.’고 하였다. 마땅히 알라. 이 경은 저 『화엄경』과 같아 이보다 나은 것은 없고, 이것을 포용하는 것도 없다. 다만 그 가르치는 방법이 각각 다르거나 같을 뿐이다.

원효, 《대혜도경종요》(동국대 역경원 譯)


다시 말해 "참 나"나 불성, 열반, 법신 혹은 그 이상의 어떠한 수승한 법일지라도 모든 법은 무자성, 공이다. 원효에 따르면 이러한 《반야경》의 무상(無相) 법문은 동아시아 불교, 특히 한국 불교에서 중시하는 《화엄경》의 교지(敎旨)와도 다르지 않아 두 경전은 동등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는 《대혜도경종요》에서 중국 교상판석의 시초가 되는 이교오시설(二敎五時說)과 《해심밀경》에 의거한 법상종(法相宗)의 삼시설(三時說)이 갖는 오류를 지적하면서, 《대지도론》에 근거하여 《반야경》이 "논쟁할 여지가 없는(無諍處)" 가르침이며 성문ㆍ연각ㆍ보살의 모든 승(乘)을 위한 제3시의 요의법륜(了義法輪)적 성격을 갖는다고 보았다.[125]

또한 원효는 '생사와 열반, 어리석음과 지혜가 모두 허망하고 진실하지 않다'는 《화엄경》의 궁극적인 깨달음과 '열반보다 훌륭한 법이 있더라도 환(幻)과 같고 꿈과 같다'는 《마하반야바라밀다경》의 가르침이 일치한다고 말하였다. 즉 원효의 해석에 따르면 반야교와 화엄교 모두 일체법의 공(空)·무자성(無自性)·무생무멸(無生無滅)·본래적정(本來寂靜)·자성열반(自性涅槃)·무자성성(無自性性)을 설시하고 있으며, 따라서 두 전승 중 어떠한 것을 요의로 간주하더라도 불성, 여래장, 열반, 법신 그리고 그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참 나" 또한 고정불변한 실체가 아니라 무자성, 공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이기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

■ '산은 산, 물은 물(山是山 水是水)' 의 반야중관적 해석

이 노승이 30년 전 참선을 하기 이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山是山 水是水)’으로 보였다. 그러던 것이 그 뒤 어진 스님을 만나 깨침의 문턱에 들어서고 보니, 이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더라(山不是山 水不是水).’ 그러나 마침내 진실로 깨치고 보니, ‘산은 역시 산이고, 물은 역시 물이더라(山祗是山 水祗是水)’.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서로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만일 이것을 터득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노승과 같은 경지에 있음을 내 허용하리라.

《속전등록(續傳燈錄)》(김종욱 譯)

송대(宋代) 청원 유신(靑原 惟信) 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山是山 水是水)' 공안은 공성과 연기의 쌍운(雙運), 혹은 진공묘유(眞空妙有)제법실상(諸法實相)을 표현한 공안이다. 공안의 세 구절은 각각 다음의 인식들과 상응한다.

* 자성(自性)으로 성립한다고 여기는 세속의 전도(顚倒)된 인식

* 공성삼매(空性三昧) 중 근본지(根本智)(=무분별지無分別智)와 공성이 물에 물을 따르듯, 버터에 버터를 따르듯 하나되어 일체의 차별상을 여읜 인식

* 후득지(後得智)를 통해 일체법이 신기루, 환(幻)과 같이 자성으로 현현하는 것을 분별하는 인식[126]

[127]

김종욱 동국대 교수는 청원 유신의 공안을 하이데거와 불교 양자의 관점에서 비교철학적으로 분석하였는데, 그 중 (주로 반야중관에 입각한) 불교적 관점에서의 해석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山是山 水是水)’

'산은 산이다’ 또는 ‘산은 산으로서 있다’는 것을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산은 자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자성(自性, svabhāva)이란 문자 그대로 ‘스스로 있다(sva-bhāva)’는 측면에서는 ‘자기만의 존재 방식을 지니고 있는 것’을 뜻하고, ‘언제나 있다(sarvadā-bhava)’는 측면에서는 ‘삼세의 매 찰나마나 실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산이 산으로서 있다’는 것은 설일체유부식으로 표현하면, ‘산은 색법으로서 자성적으로 있다’는 말이 된다. 즉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저 산은 매 찰나마다 변화해 가는 무상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특정한 모양과 색깔을 지닌 어떤 물질적인 것이라는 점, 다시 말해 색법(色法, rupa-dharma)이라는 점에서는 삼세에 걸쳐 실유하는 자성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무상한 변화 과정을 인정하면서도 그 배후에 연속적으로 항유하는 기체적(基體的) 요소를 상정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변화 현상 이면의 불변적 본체를 존재자성이라는 형식으로 찾고자 한 서양의 전통적 형이상학의 발상법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삼세에 걸쳐 항유하는 자성과 영속적으로 현존하는 존재자성은 산을 산으로서 있게 하는 근거와도 같은 것들이고, 여기에 토대를 두고 있기에 ‘산은 산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2.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더라(山不是山 水不是水).’

'산은 산이 아니다’라는 말은 ‘산은 자성적으로 있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은 소위 반야의 통찰에 의해 얻어진다. 반야는 개념적 분별을 넘어선 직관적인 통찰이며 또한 있는 그대로를 보는 여실지견(如實知見, yathābhūta-ñāṇa-dassana)이라는 의미가 있다. 분별을 넘어선 직관이기에, 반야는 주객 분리의 이원적 사고가 극복된 무분별의 지혜(無分別智)이며, 그런 무분별적 불이(不二)의 집중(samādhi, 三昧, 定)을 통해 주어지는 근본적인 체험이다. 또한 반야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연기(緣起)의 원리에 따라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인 것으로 본다는, 일체법에 대한 연생적(緣生的) 통찰을 의미한다. 즉 반야의 시야 한가운데서 일체법의 총체적 모습이 무상과 무아의 것으로 드러나는데,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공(空)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하며, 이 공이 바로 자성(自性)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자성에 대한 전면적 부정, 그것이 공(空, śūnyatā)이다. 연기한 모든 것에 자성이 없으므로 일체는 모두 공이다(一切皆空). 이렇게 자성을 부정하여 ‘공을 설하는 목적(空用, śūnyatā prayojana)’은 희론의 적멸에 있다. 희론(戱論, prapañca)이란 문자 그대로 허위의 쓸모없는 이론을 말한다. 이처럼 지혜를 얻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희론이란, 자성을 상정함으로써 일어나는 사유 구성, 혹은 결정화되고 대상화된 분별(vikalpa), 한마디로 자성적 분별심을 뜻한다.

분별하고 나서는 그렇게 분별된 것이 있다거나 없다라는 양자택일적인 판단을 내린 다음, 그 극단적인 판단 내용의 어느 하나에 집착하게 된다. 무수한 조건들의 상호 작용하는 모습을 각 측면에 따라 ‘생(生)이다’ ‘멸(滅)이다’ 등으로 나누지만, 그것들 자신이 어떠한 자성도 지니고 있지 못하므로 확정적으로 단정지을 만한 생과 멸의 상(相)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생과 멸에는 애당초 자성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생을 부정하면 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생이 부정되므로 멸 또한 부정되어 불생 불멸이 된다. 따라서 연기한 모든 것에는 자성이 없어 불생불멸(不生不滅), 불상부단(不常不斷), 불일불이(不一不異), 불래불거(不來不去)한 것이므로(八不), 양극단의 어느 하나에도 집착해서는 안 되는 것(中道)이다. 이렇게 무자성(無自性, nihsvabhāva)이어서 무분별(無分別, nirvikalpa)이고 무집착(無執著, anabhiniveśa)인 중도에 설 때, 희론은 종식된다.

3. ‘산은 역시 산이고, 물은 역시 물이더라(山祗是山 水祗是水)’

'산은 역시 산이다’라는 것을 불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일체를 철저히 공화(空化)시킴으로써 일체가 신비롭게 드러난다는 것, 다시 말해 진공(眞空)이 곧 묘유(妙有)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모든 현상이 공한 것이라면, 일체를 허무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으나, 공이란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중도로서 다만 무자성의 연기를 의미할 뿐이다. 연기한 것을 공이라 하는 이유는, 연기한 것에는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이 곧 연기한 것을 가리키는 이상, 공이야말로 모든 것을 연기적으로 성립시켜 주는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공의 이치가 있음으로써 모든 것이 이루어지니, 공의 이치가 없다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이 곧 물질적인 것이다(空卽是色)’고 한다. 오히려 공이기 때문에 공허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공이 이렇게 일체를 성립시켜 주는 것이라면, 공은 현상 이면의 절대적 본체가 아닐까 하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무자성의 공이 자성화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이에 대해 용수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응당 공한 것도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 공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어떻게 공한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즉 모든 것이 공이므로(一切皆空), 공 또한 역시 공하다(空亦復空)는 말이다.

색과 공 모두 무자성의 공이므로 색은 곧 공이 되고 공은 곧 색이 된다. 그리하여 색은 곧 공이라 하여 일체를 철저하게 공화시키는 것(眞空)과, 공은 곧 색이라 하여 그렇게 공화됨으로써 일체가 신비롭게 드러난다는 것(妙有)이 둘이 아닌 것이 된다. 즉 진공이 곧 묘유로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부정(眞空)을 통해 대긍정(妙有)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대부정(眞空)과 대긍정(妙有)에 차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진공이기도 하고 묘유이기도 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과 긍정의 어느 하나로 고정적으로 분별되지 않기 때문에, 그저 같고도(如) 같다(如)고 할 따름이다. 그저 ‘같고도 같은 것(如如, tathatā)'은 '진실로 같은 것(眞如, bhūta-tathatā)'이며, '참으로 있는 그대로의 것(如實, yathā-bhūta)'이다. 바로 이런 진여가 일체의 진상(諸法實相)인 것이다.

김종욱, 《하이데거와 불교의 만남》


12.2. 족첸, 마하무드라, 중관에서의 "마음의 본성"[편집]


무엇이 일심(一心)인가? 이르길 염오와 청정의 모든 법(法)이 그 성(性)이 둘이 아니고 진실과 허망의 두 문(門)이 다름이 있을 수 없기에 일(一)이라고 이름하고, 이 둘이 아닌 자리가 모든 법 가운데 실(實)로서 허공과 같지 않아 성(性)이 스스로 신묘하게 알기에 심(心)이라고 이름한다.(何爲一心 謂染淨諸法其性無二 眞妄二門不得有異 故名爲一 此無二處 諸法中實 不同虛空 性自神解 故名爲心)

《대승기신론소기회본(大乘起信論疏記會本)》


제법이 모두 공한 곳에 신령한 앎이 어둡지 않으니 즉 이러한 공적영지의 마음이 그대의 본래면목이다.(諸法皆空之處 靈知不昧 卽此空寂靈知之心 是汝本來面目)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원효는《대승기신론》을 통해 대승의 양대 사상인 중관과 유식을 여래장으로 융합한 일심(一心) 사상을 주창하면서 일심에 갖춰진 본래적 각성(本覺)을 논하였고, 본각에 관하여 '마음의 본성이 스스로 신묘하게 앎(性自神解)'이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지눌은《수심결》에서 '공하고 고요한 가운데 신령스러운 앎(空寂靈知)'이 있으니 이것이 곧 '본래면목'이고 마음의 본성이라고 일컬었다. 티베트 불교에서도 역시 궁극적 깨달음은 마음의 본성/특성/자성(自性)/법성(法性)을 앎으로써 가능하고, 마음의 본성은 곧 '공성과 본연의 지혜의 결합'이라고 말한다.

한국과 티베트 모두 스승과 제자 간의 심전(心傳)으로 마음의 본성에 관한 가르침이 전해져왔으나, 차이가 있다면 중관 사상이 발달한 티베트에서는 마음의 공(空)한 본질에 대한 논의가 보다 심도있게 이루어져왔다는 것이다. 만일 한국 불교의 수행 전통에도 그간 미약했던 중관적 시각이 강화된다면 '일심', '진여', '본각', '공적영지심' 등을 실체화, 관념화하여 집착하는 위험을 감소시키고, 《기신론》을 통해 중관과 유식, 공(空)과 유(有)의 화합을 모색했던 원효가 그러했듯 더욱 균형잡힌 교학적, 수행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은 족첸, 마하무드라, 중관에서의 마음의 본성에 대한 닝마, 까규 스승들의 설명이다.

극단에서 벗어난 자유에 관한 족빠 첸뽀(Dzogpa Chenpo)의 견해는 귀류논증 중관의 견해와 대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주요한 차이점은 중관의 기본 견해가 허공과 같은 공(空)한 측면에 관한 것이라면, 족빠 첸뽀의 기본 견해는 언설(言說)로 표현 불가능하고 간단(間斷)없으며, 본초(本初)적으로 청정하고 벌거벗은 본연의 앎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족빠 첸뽀에 따르면, 본연의 앎과 그 안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은 허공에 한계가 없는 것처럼 모든 극단을 벗어나 있다.

롱첸 랍잠(Longchen Rabjam)

Longchen Rabjam, 《A Treasure Trove of Scriptural Transmission: A Commentary on The Precious Treasury of the Basic Space of Phenomena》


밀교에는 족첸(dzog chen)이나 마하무드라(mahamudra)와 같이 마음을 조작하지 않고 바로 직지심체(直指心體)하여 본성에 안주하는 명상이 있다. 족첸이나 마하무드라에서는 마음 그 자체가 마음의 본성과 하나되어[128] 그 상태에 머물게 된다. 족첸에서 말하는 릭빠(rig pa)나 무상요가 딴뜨라에서 말하는 정광명(淨光明, ‘od gsal) 등은 모두 마음의 본성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마음의 본성은 모든 분별을 여의고 오로지 순수한 앎 뿐인 명료함을 특성으로 갖고 있다.

《최잉 쬐(Chöying Dzöd)》와 다른 족빠 첸뽀 문헌들은 귀류논증 중관의 견해를 찬탄한다. 그래서 부정대상 제한(dgag bay's mtshams 'dzin)의 정의에 관하여 족빠 첸뽀와 귀류논증 중관은 서로 일치한다.

제3대 도둡첸(Dodrupchen) 린뽀체

Longchen Rabjam, 《The Precious Treasury of Philosophical Systems: A Treatise Elucidating the Meaning of the Entire Range of Spiritual Approaches》


중관은 "개념들을 초월하는 것" 4가지로 설명한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도, 비존재하는 것도, 존재하면서 동시에 비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도 않고 비존재하지도 않는 것도 아닌 무언가이다. 이러한 4가지 가능성 외에 무엇이 있는가? 없다. 비록 지적인 방식으로만 접근해보았지만, 이는 중관의 궁극적인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분석적인 방법으로써, 이러한 결론은 족첸에서도 옳은 결론이다. 나가르주나의 추론은 수승하다.

최걀 남카이 노르부(Chögyal Namkhai Norbu)

Chögyal Namkhai Norbu, 《Dzogchen Teachings》


'마음의 본성'이란 표현 때문에 마치 자성(自性)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마음의 본성' 혹은 '마음의 법성(法性)', '가장 미세하고 청정한 의식', '불성(佛性)' 또한 본질은 공(空)이며, 따라서 릭빠나 정광명을 증득한다는 것은 '주체(혹은 마음/의식)의 무자성(無自性)=주체의 공(空)함'을 온전히 깨닫는 것에 다름 아니다.《중론》에서 "그것(공성)은 실로 중(madhyamā)의 실천(pratipad)이다."라고 말한 것 같이 중관의 공성은 유(有), 무(無), 역유역무(亦有亦無), 비유비무(非有非無)의 네 가지 개념적 극단을 여읜 중도(中道)이며,[129] 세속제(世俗諦)의 현현과 승의제(勝義諦)의 공성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쌍운(雙運)한다.

닝마는 자공(自空, rang stong)도 타공(他空, gzhan stong)도 아닌 숭죽, 즉 쌍운(雙運, Skt. yuganaddha, Tib. zung 'jug)의 견해를 따른다. 쌍운의 견해란 현상과 공성의 불가분성(현공불이顯空不二), 밝음과 공성의 불가분성(명공불이明空不二), 대락(大樂)과 공성의 불가분성(낙공불이樂空不二), 지혜와 공성의 불가분성(각공불이覺空不二) 등을 의미한다. [...] 중관논사들은 귀류논증을 완벽한 자공(自空)의 견해라고 여긴다. 족첸 텍최(trekcho)[130]

의 카닥에 관한 견해와 귀류논증 중관의 견해는 같다. 두 견해에서 모두 공성은 같은 개념이며 차이가 없다. (본초청정(카닥)은 귀류논증 중관의 공성을 가리키는 족첸의 용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롱첸빠(Longchenpa), 직메 링빠(Jigme Lingpa), 미팜(Mipham) 등 과거 닝마 스승들은 귀류논증 중관논사들이었다. 미팜 린뽀체에 따르면 귀류논증 중관의 공성과 족첸의 공성은 완벽히 일치한다. 차이란 없다. 100% 같다.

켄첸 릭진 도제(Khenchen Rigdzin Dorje) #


다시 말해, 마하무드라는 무주(無住, apratiṣṭhita)의 견해, 그리고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지는 수행과 연관이 있다. 이는 개념적으로 만들어진 극단을 멀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어 부분들에 의해 가립(假立)된 법(法)들의 자성(自性) 같은 개념으로부터 끊임없이 주의를 물러나게 함으로써 극단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이러한 비개념성의 극치에 다다른 상태는 진정한 마음의 본성에 대한 대락(大樂)의 마하무드라의 깨달음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고, 이는 부작의(不作意, amanasikāra)의 밀교적 의미인 "광명(光明)의 자관정(自灌頂)"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과(果)로서의 대락(大樂)은 또한 오직 그러한 대락의 공성(空性)을 깨달을 때만 안정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집착의 대상으로 구체화되어 고통의 원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마하무드라와 중관의 융합은 싯다(siddha)들의 새로운 가르침들과 수행들을 주류(mainstream) 불교로 통합시키는데 상당히 기여하였다. [...]

[...]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정의 세 번째 순간을 올바로 확인하는 것에 대한 마이뜨리빠(Maitrīpa)[131]

의 해석은 비이원적(非二元的)인 알아차림(즉, 부동불인(不動佛印, Akṣobhya seal) 또는 유가행의 공성) 뿐 아니라 그러한 알아차림의 자성(自性)이 공(空)하다는 동시적(同時的)인 확인(즉, 금강살타인(金剛薩陀印, Vajrasattva seal) 또는 중관의 공성)까지 포괄한다. 마이뜨리빠는 만약 유가행(유식)의 일시적인 깨달음들이 중관에 의해 더욱 정제될 수 있다는 방식으로 유가행의 교리가 시설(施說)된다면, 그러한 유가행 교리들은 (중관에 도달하는) 필수적인 단계적 접근이 되고 유용하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세번째 대락(大樂)은 성불(成佛)의 목표를 나타내기 때문에, 그러한 대락은 비이원성(非二元性)인 부동불인(不動佛印) 뿐만 아니라 비이원적인 대락 또한 그 자성(自性)이 공(空)하다는 금강살타인(金剛薩陀印)으로도 인(印)쳐져야 한다.

Klaus-Dieter Mathes, 《Maitripa: India's Yogi of Nondual Bliss》


마찬가지로 족첸, 마하무드라의 견해에 따르면, 마음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공하면서 현상적으로는 명료한 앎을 드러내기 때문에 공성과 명료한 앎은 분리할 수 없다. 공성만을 강조하고 현상을 부정하는 것은 허무주의, 단멸론(斷滅論)에 해당하며, 반대로 현상의 본질을 '영원한 자아', '영혼(anima)', '아트만(Ātman)', '참나(眞我, True Self)'처럼 독립적이고 변하지 않는 자성이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영원주의, 상주론(常住論)에 해당한다. 따라서 족첸, 마하무드라 전승에서 진정한 마음의 본성은 극단을 배제한 공성과 현상의 불가분(不可分) 혹은 쌍운(雙運)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의(作意)를 여읜 것이 대수인(마하무드라)이요

양변(兩邊)을 여읜 것이 위대한 중도(중관),

이를 모두 포함하면 대원만(족첸)이라 하니

하나를 앎으로써 일체를 깨닫는 확고함을 얻게 하소서.

제3대 까르마빠 랑중 도제, 《마하무드라 발원문》(까규 대기원법회 번역팀 譯)

랑중 도제는 이 발원문을 다음과 같은 사항을 가르치기 위해 지었다: 본성의 완벽한 깨달음은 "모든 작의로부터의 자유로움"이다. 그것이 바로 마하무드라(위대한 수인)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또한 그것은 중도(중관)란 다른 이름도 있다. 왜냐면 모든 극단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모든 법의 깨달음이 포함되어 있기에, 그것은 또한 대원만(족첸)이라 일컬어진다. 우리는 하나의 진정한 본성을 앎으로써 모든 법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제8대 타이 시투빠(ta'i si tu pa)

Peter Alan Roberts, 《Mahamudra and Related Instructions: Core Teachings of the Kagyu Schools》

(발원문의) 네 번째 줄은 비록 "세 가지 위대함"이란 다른 이름들이 있지만, 그러한 용어들은 오직 깨달음의 다양한 측면들을 묘사하기 위해 쓰여진다는 것을 일러준다. 용어들은 깨달음을 묘사하면서 단지 그렇게 묘사된 것 외에 더 깨달을 것은 없음을 알려주고자 한다.

고귀한 랑중 도제는 어떤 사람들이 (깨달음의) 한 측면을 다른 측면보다 더 심오하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수행자들은 마하무드라가 족첸보다 수승하다고 여겼고, 반면 어떤 수행자들은 중관이 더욱 심오하다고 주장했다. 과(果)의 측면에서 모든 수행은 동일하다. 차이점은 오직 세속적인 이해를 통해서만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러나 지적(知的)인 서술로는 결코 궁극적인 본성을 묘사할 수 없다. 마하무드라, 중관, 족첸-이 세 가지 용어들은 모두 동의어이다. 도(道)의 측면에서도 또한 차이는 없다. 그러나 수행자들의 다양한 성향과 각기 다른 능력 및 요구로 인해 도의 적용에 있어 차이들이 생겨날 뿐이다.

제3대 잠곤 꽁뚤(ʽjam mgon kong sprul) 린뽀체#


"비록 무언가 있지만, 우리는 이러한 이원적(二元的)인 현상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 대상의 부정을 가장 중시하는 이(귀류논증 중관학파)들은 기뻐하시오! "

최걈 트룽파(Chögyam Trungpa), 《대락(大樂)의 음악(The Music Of Great Bliss)》[132]

마하무드라의 본성을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본성을 《마하무드라 발원문》[133]

에 쓰여진 것처럼 묘사한다.

"있지 않다, 부처조차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없지 않다, 윤회와 열반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윤회와 열반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원적인 현상들이 진실로 성립한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본성은 오직 부정대상의 부정일 뿐이라는 귀류논증 중관학파들은 기뻐해야 한다. [...]

4개의 인도 철학 학파들(유부, 경량부, 유식학파, 중관학파)과 4개의 티베트 불교 종파들(사캬, 겔룩, 닝마, 까규) 중에, 그들의 의도에 있어 실질적인 모순은 없다. 몇몇 용어들은 서로 화합할 수 있고 다른 몇몇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의미에 있어 실제 차이는 없다.

"내적(內的) 의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백 가지 문헌들의 밀의(密義)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네.

내가 당신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은 아니니

만일 이 말이 당신의 신경을 건드렸다면 양해를 구합니다."[134]

내적 의미에 익숙하지 않고 수행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들은 사상들과 가르침들의 요점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말에 있어 몇몇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무례하고자 한 의도는 아니다. "만일 이 말이 당신의 신경을 건드렸다면 양해를 구합니다." 그러므로 부디 화내지 말라-의미에 모순은 없기에.

켄첸 탕구 린뽀체(Khenchen Thrangu rinpoche)

Khenchen Thrangu, 《A Harmony of Views: Three Songs by Ju Mipham, Changkya Rolpay Dorje, and Chögyam Trungpa》


족첸, 마하무드라와 귀류논증 중관은 현상과 공성을 설명하는 방식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각 전승의 견해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조화와 일치를 이룬다. 족첸, 마하무드라와 귀류논증 중관 모두 단변(斷邊)과 상변(常邊)의 양 극단을 여읜 중도로서 자성이 없는 공을 설하고 있다. 족첸, 마하무드라의 공성과 귀류논증 중관의 공성은 일치하며, 귀류논증 중관적 접근은 족첸, 마하무드라의 견해를 이해하는 교학적, 수행적 토대[135]가 된다. 특히 무상요가 딴뜨라, 족첸, 마하무드라 등에서 말하는 공성은 현교의 귀류논증 중관학파에서 정의한 공성에 해당하며 유식학파나 자립논증 중관학파에서 정의하는 공성이 아니다.

족첸의 본질을 깨닫기 위해 나가르주나(Nagarjuna)의 추론에 의지해야 하며, 마하무드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티벳의 셰드라(티베트 불교 강원)에서는 《중론》과 짠드라끼르띠(Candrakīrti)의 《입중론》 그리고 다른 비슷한 문헌들을 여러 해 동안 공부한다. 

그러나 마하무드라와 족첸은 따로 배우지 않는데, 왜냐하면 중관 텍스트들이야말로 서로 다른 주장들과 논리적 추론들의 광대한 집합체로서, 그것들을 미묘하고도 심오한 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하무드라 전승에서도 역시 제3대 까르마빠 랑중 도제(Karmapa Rangjung Dorje)의《마하무드라 발원문》과 같은 다음의 문장들을 찾을 수 있다.

"마음에 관해 말하자면, 마음이란 것은 없다! 마음의 자성은 공하다."

만약 4구부정 등의 추론을 통해 분석한 결과 마음의 자성이 공함을 확신하게 된다면, 마하무드라에 대한 이해는 심오해질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구절을 암송할 수야 있겠지만 마음 속으로는 일종의 의견이나 추측 정도로만 여기게 된다.

만일 《중론》의 추론들을 익힌다면, 마하무드라와 족첸의 공성과 무자성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을 때 이미 익숙한 것들이라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팜 린뽀체는 《결정보등(決定寶燈, nges shes sgron me)》이란 간략한 문헌을 지었는데, 그는 거기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닥(ka dag, 本初淸淨)[136]

에 대한 완벽한 확신을 얻으려면 반드시 귀류논증 중관의 견해를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

카닥 혹은 본연의 본초청정은 족첸의 견해로서, 그 견해를 완벽하게 얻기 위해선 귀류논증 중관의 견해를 완벽히 얻어야 한다. 이는 족첸의 카닥 견해와 짠드라끼르띠의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견해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켄뽀 출팀 걈초(Khenpo Tsultrim Gyamtso)

Khenpo Tsultrim Gyamtso, 《The Sun of Wisdom: Teachings on the Noble Nagarjuna's Fundamental Wisdom of the Middle Way》


이미 상술하였듯이 "미세의식", "청정의식", "마음의 본성", "비이원적인 알아차림", "광명", "대락"과 같은 밀교 용어와 표현들을 피상적으로 이해하여 마치 아뜨만이나 "참나"와 같은 고정불변한 실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오독(誤讀)해서는 곤란하다. 특히 공(空)을 '텅 빈 자리', '형상 없음' 등으로 단순하고 안일하게 해석할 경우 유변(有邊)이나 무변(無邊)의 극단에 치우치기 쉽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금강경》에서 척파해야 할 사상(四相)으로 등장하는 아상(我相, ātmasaṁjñā)=아뜨만(Atman), 중생상(衆生相, sattvasaṁjñā)=사트바(Sattva), 인상(人相, pudgalasaṁjñā)=뿌드갈라(Pudgala), 수자상(壽者相, jīvasaṁjñā)=지바(Jiva)은 '오온과 같지 않으며 형체도 없지만 불변하는 실체'가 있음을 상정한 관념들이다.[137] 반야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모두 '토끼의 뿔'과 같은 허구의 망상(妄想)이고 근본 번뇌인 아집(我執)의 소산이다. 이러한 개념적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불교의 무아, 공성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기법(緣起法)을 통해 일체법이 무자성(無自性)임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성을 파악해야 한다.

일체법의 무자성(無自性)을 논하는 현교의 귀류논증 중관과 밀교는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닝마ㆍ사캬ㆍ까규ㆍ겔룩 등 티베트 불교 4대 종파들은 모두 귀류논증 중관을 종지(宗旨)로 삼아 불교 4대 학파(유부, 경량부, 유식, 중관)의 견해를 아우르는 매우 정교하고 방대한 교학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일찍이 현밀겸수(顯密兼修) 체계가 확립된 인도-티베트 불교 전승의 밀교 문헌들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현교 교학 및 밀교 경전의 주석서들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138][139]

본 문단은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 내 전승들(특히 닝마, 까규) 간의 공통점을 위주로 간략히 서술되었다. 때문에 각각의 견해들을 상세히 설명하는 글은 아니다. 국내에 단편적으로 소개된 티베트 밀교 문헌들에 대한 몇몇 오해를 불식시키고 중관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더불어 한-티 불교간 사상적 교섭의 가능성을 언급하고자 작성된 글임을 밝힌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귀류논증 중관이란 공통된 토대 위에서 무아, 공성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13. 기타[편집]



13.1. 밀교와 성(性)?[편집]



13.1.1. 오해와 편견[편집]


파일:vajradhara.jpg
얍윰(yab yum)[140] 형상을 한 지금강불. 존재 내면의 남성적 에너지와 여성적 에너지의 통합을 상징한다.
대락(大樂)을 상징하는 남성 에너지와 불이(不二)의 지혜를 상징하는 여성 에너지의 결합을 통해 참된 본성을 자각할 수 있다.

후기 밀교 수행법 중에는 성에너지를 이용한 수행도 있으나 이를 '저급하다', '좌도 밀교'라고 표현하는 것은 딴뜨리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과거 서구의 기독교적 편견(혹은 동양의 유교적 편견)에 해당한다. 밀교에 대한 이해가 축적된 현대에는 이미 불교의 철학적 개념에 대한 상징적, 은유적 표현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밀교의 부모불(혹은 쌍신불, 얍윰Yab-yum)은 지혜와 방편, 혹은 현상과 공성의 합일을 상징한다. 수행에 있어서도 실제 딴뜨릭 수행자 간의 직접적인 육체적 결합 대신 관상(觀想)[141]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불교학자 정성준은 딴뜨리즘의 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근대학자들은 힌두교의 샤끄띠파의 성을 매개로 한 성력(性力)적인 수행을 좌도밀교(左道密敎, the Left-hand path)라 지칭하여 비판하고, 이에 비해 윤리적이고 사회적 도덕성을 강조한 쉬바나 비슈뉴파 등은 우도밀교(右道密敎, the Right-hand path)라고 말하여 구분하였는데, 이는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 속성이 다른 용어를 강제로 결합시킨 말이 되며, 이러한 언어적 오류가 한국불교에도 해명되지 않은 채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좌도밀교는 원래 ‘힌두딴뜨리즘의 샤끄띠파의 성력(性力)사상이나 그 실천체계’라고 불러야 정확한 말이 된다.

인도 후기밀교의 경우 전법스승인 아사리(阿梨)와 수행을 전수받기 위한 제자의 자격은 오계를 비롯해 보살계 뿐만 아니라 삼매야계와 같이 행위가 아닌 내면적 의식을 문제삼는 등 엄격한 계율에 의해 자격을 심사받으며, 밀교수행의 자격도 현교(顯敎)의 경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시험을 거쳐야만 비로소 관정(灌頂)의식을 통해 밀교수행에 참여할 수 있다. 실제 인도의 밀교수행의 전통을 계승한 티벳사원의 현실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원칙에 의해 수행이 이루어지며, 밀교의 관정의식과 입문의식에 동원되는 성과 관련된 도구들도 남존의 보리심을 상징하기 위한 술이나, 여존을 상징하는 염색된 물을 이용하는 등 인간의 실상을 불성으로 관조하고 자각하기 위한 상징적 도구들이 사용되고 있다.

후기밀교의 한 시대에는 관상(觀想)에 의지하더라도 성적(性的) 관상을 실천하는 수행이 전통적인 비구계의 율의를 범한 것이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는데, 이와 관련한 대목이 《비밀집회딴뜨라》의 관정의식을 다룬 《제4관정의궤, Sakiptbhiekavidhi》에 전해진다. 저자는 위끄라마실라(Vikramala)사의 육현문(六賢門)의 한 사람인 와기슈와라(Vgvara)로 그는 《비밀집회딴뜨라》의 유파인 즈냐나빠다류에 속하며, 현밀(顯密)과 계학(戒學)에 능통한 당시 인도에서 가장 번영한 사원의 학두(學頭)였다.

그가 다룬 제4관정은 인도후기밀교에서 중요시되는 것으로 ①병(甁)관정, ②비밀(秘密)관정, ③반야지(般若智)관정, ④제사(第四)관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략히 소개하면 병관정은 물, 보관, 금강저, 금강령, 명명식(命名式)의 다섯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동원되는 기물들은 만다라의 중심을 이루는 오불(五佛)의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 아사리는 제자에게 기물을 부여함으로써 오지(五智)를 성취할 것을 명하는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인 비밀관정과 세 번째 반야지관정은 성적인 요가를 수반하는 과정이다. 먼저 제자는 관상(觀想)을 통해 스승에게 반야모(般若母)를 바치는데 《비밀집회딴뜨라》에는 “푸른 연꽃의 눈을 가졌고, 16세의 나이로 아름다우며 도살자(屠殺者)의 딸이다”라고 묘사하고 있으나, 문헌에는 즈냐나빠다류의 전통에 입각해 문수금강(文殊金剛)의 화현으로 대신하고 있다.

비밀관정은 아사리에 의해 공성(空性)을 상징하는 반야모와 육신의 현상세계로 현현한 방편(方便)의 합일을 통해 반야와 방편의 합일이라는 상징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이며, 반야지관정은 제자로 하여금 합일을 상징화한 매개물을 통해 반야(般若)의 대락(大樂)을 체험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의 제4관정은 ‘언어에 의한 관정’으로 아사리는 구두(口頭)로 제자에게 비의(秘義)를 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제4관정의궤》에는 대론자가 “(반야와 방편의 합일을 상징한) 이근교회(二根交會)의 의식이 어찌 비구의 율의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와기슈와라는 “삼계에 태어난 인간과 제천(諸天) 등의 아름다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유루(有漏)의 애착을 향수하는 것으로 탐욕을 향수하는 것은 비나야 등에서 금해지고 있는 것이지만, 삼계(三界)를 초월한 신체를 지니고, 유식(唯識)을 자성으로 하는 문수금강(文殊金剛) 등이 현현한 여성들은 그런 류가 아니다”라고 반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론자는 다시 “비나야 등에서 금지되고 있는 외적인 갈마인모(羯磨印母)에 대해서는 어떻게 적정(適正)하다고 할 것인가?”라고 반론하고 있다. 여기서 갈마인모란 현실세계의 육체를 가진 반야모를 가정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와기슈와라는 “진언이취에 있어서 실재하지 않는 색 등의 일체의 사물을 자심의 현현(顯現)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꿈과 같은 문수금강을 본성으로 전변한 갈마인모들도 환(幻)과 같은 것이다. 때문에 그녀와의 성적유가를 포함한 관정을 실수(實修)한다 하더라도 청정하며, 과실이 없기 때문에 계율을 범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한다.

반면 와기슈와라 후대에 생존했던 인물로 같은 사원의 대학승(大學僧)이었던 아티샤(Atiśa)는 그의 명저인 《보리도등론(菩提道燈論)》에서 “범행자(梵行者)는 비밀과 반야의 관정을 실수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하고, 계를 범할 시 악취에 떨어지는 죄과를 받는다고 경고하고있어 와기슈와라와 반대의 입장에 있다.

같은 시대의 아브야까라굽타(Abhaykaragupta)는 《금강의 화환(Vajrāvalī)》에서 “일체가 공성이기 때문에 갈마인모도 또한 공성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그녀와의 유가도 율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를 펴고, 반면에 " ‘결고한 진실을 신해하지 않는 비구’인 경우 갈마인모(磨印母)가 아니라 지인(智印)을 사용한다" 하여 와기슈와라와 아티샤와의 절충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청사(靑史)》에는 아브야까라굽타 자신은 위끄라마실라사의 학두로 있으면서 평생 비구의 불범계(不犯戒)를 지키며 결정코 성적 유가를 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정성준, 《밀교와 성에 대한 이해》

파일:Buddha-Weekly-vajrayogini-high-Buddhism.jpg
지혜의 다끼니(dakini, 空行母) 본존인
바즈라요기니(Vajrayogini)

여성을 단순히 성력의 심볼로만 취급한다는 주장도 온당치 못하다. 밀교에서는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남녀 모두 동등한 수행자로 취급되며, 때로는 여성이 스승이 되어 남성 수행자를 지도하는 등 밀교 수행자로서의 여성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밀교의 계율인 사마야(samaya)에서는 여성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미란다 쇼(Miranda Shaw) 리치몬드대 교수는 미란다 쇼,《열정적 깨달음: 딴뜨릭 불교의 여성들》(조승미 譯)에서 딴뜨릭 불교는 대승 불교의 윤리적, 철학적 원칙을 함께하지만, 상징과 의식 분야에서 친밀감과 성(性), 젠더와 체현을 해탈의 길에 포함시키는 특징을 보인다고 말하였다. 남녀가 나란히 등장하는 패턴은 남성과 여성이 착취하거나 강제하지 않고 서로 일깨워주는 관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과 숭고한 이상을 나타낸다.

여성과 여성의 가르침이 등장하고 여성의 에너지와 영적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딴뜨릭 종교성의 특징이다. 딴뜨릭 불교의 여성들은 격렬한 지혜의 화염 속에서 즐겁게 춤추며 태연히 번뇌의 시체를 밟는 거침없고 대담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들은 가부장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 열정적이고 자유로우며 깨달은 여성들이었다.

리타 그로스(Rita Gross) 위스콘신대 교수 또한 그녀의 저서 리타 그로스,《불교 페미니즘: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옥복연 譯)에서 금강승 불교만큼 여성의 정신적 발달과 성숙에 유리한 종교를 찾기 힘들다고 강조하였다. 그로스는 불교 전반에 걸친 남성 중심적 관행과 가부장성, 그리고 비구니 승단 없이 사미니 승단만 존재하는 티베트 불교 교단 내의 열악한 여성수행자의 지위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비판하였다.[142]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타 그로스는 티베트의 금강승 불교가 다른 어떤 불교 분파보다 여성성을 중시하고, 뛰어난 여성 스승들이 많이 존재하며, 수행에 필수적인 여성 상징들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불교의 가부장성을 극복하고 불교를 성평등적으로 재구축하는데 매우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통상적으로 우리를 한 가지 불만상태에서 또다른 불만상태로 몰아대는 것과 동일한 욕망 에너지가 딴뜨라의 연금술을 통해서 초월적인 희열과 지혜를 체험하는 것으로 변화된다. [...]

욕망의 에너지가 우리의 불만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불만의 원인, 즉 실제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무지를 없애는 방식으로 이용된다.

티베트의 딴뜨라불교에서는 이렇게 욕망의 에너지를 변화시키는 것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한다. 나무에서  생겨난다는 어떤 벌레들이 있다. 그들의 생애는 나무줄기 속 깊은 곳에서  부화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에는 자신들이 태어난 바로 그 나무를 먹으면서 자란다. 그와 마찬가지로 딴뜨라의 변화 수행을 통해서 욕망은 통찰적 지혜를 낳고 그  다음에 그 지혜는 그 자신을 태어나게 한 욕망을 포함해 우리 마음을 가리고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모두 없애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통상적인 욕망의 작용과 깨달은 이의 작용은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딴뜨라에서는 욕망에서 일어나는 희열의 체험이 마음을 확장시켜서 우리가 모든 제한을 극복할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욕망의 대상과 접촉하는데서 오는 쾌락은 우리의 주의를 제한하고 더 강하고 더 좋은 쾌락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라마 툽텐 예셰, 《딴뜨라 입문》(주민황 譯)


어떤 때에는 잡신(雜神)들이 잘생기고 피부 좋고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 매력적인 청년으로 변신하여 나타나기도 했다. [...] 음욕을 일으키는 여러가지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 색정을 일으키는 여러가지 행위를 했지만 그 자체를 환상으로 보는 삼매에 드니 대부분 실체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어 보살의 대치법(對治法)을 수행하니 몇몇은 검은 시체로, 몇몇은 늙고 추한 모습으로, 몇몇은 문둥병 환자로, 몇몇은 귀머거리, 장애자, 바보와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여 모두 사라져버렸다.

겔와 장춥,《예세초겔의 삶과 가르침》(설오 譯)


현교, 특히 성문승에서는 대체로 욕망을 억제하는 점진적인 방법을 통해 적정(寂靜)을 유지하고 지혜를 추구한다. 반면 대승의 바라밀승에 이르게 되면 《유마경》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 보살은 때로 욕망을 회피하지 않고 불이(不二)의 견지(見地)에서 욕망을 중생 제도의 방편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며, 더 나아가 밀승에 이르러서는 독초(毒草)를 이용해 효능 좋은 약을 만들듯이 더욱 적극적으로 욕망을 활용하여 빠르고 효과적으로 수행의 결과를 얻는 특별한 방식을 따른다. 그러나 밀교에서도 현교와 마찬가지로 번뇌는 고통의 원인이기에 극복의 대상이며, 최종적으로 "나무에서 생겨난 벌레가 나무를 갉아먹듯" 번뇌에서 얻는 에너지는 수행을 통해 번뇌 그 자체를 제거하는데 이용된다.

밀교의 성적 요가는 범속한 성행위와는 다르다. 성적 요가를 수행하려면 현교보다도 더욱 크고 확고한 출리심, 보리심, 공성의 지혜를 기반으로 대부분의 거친 번뇌를 제거하고 미세한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예를 들어 티베트의 대표적인 여성 수행자 예세 초겔(ye shes mtsho rgyal)은 성적 요가를 행한 밀교 수행자였지만, 여러 잡신(雜神)들이 매혹적인 남성의 몸으로 유혹하여도 전혀 동요하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번뇌만이 남아있던 상태였다. 또한 예세 초겔은 기(prāṇa), 맥(nāḍī), 명점(bindu) 수행으로 신체의 미세한 에너지를 조절하여 자재(自在)한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라마 툽텐 예셰(Lama Thupten Yeshe)의 설명처럼 성적 요가시 가장 미세한 의식을 활용해 공성을 깨닫게 되면, 번뇌와 지혜라는 두 상반된 마음은 함께 공존할 수 없어 공성을 깨닫는 즉시 성욕을 비롯한 모든 번뇌는 사라지게 된다. 반대로 통상적인 성적 행위는 끝없는 갈망과 불만, 흐릿하고 둔한 의식 상태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밀교에서는 단순한 성적 희열만을 깨달음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욕망에 의해 일어난 지복(至福)이 불이(不二)의 지혜와 결합하여 도(道)로 전환되는 과정은 밀교계의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확고한 출리심, 보리심, 공성의 지혜를 갖춘 소수의 이례적인 사람만이 수행 가능하다.

출가한 사미, 사미니나 비구, 비구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일지라도 이 수행에 참가하지 않는다. 일체 음행을 금하는 출가계를 수지하였기 때문이다. 아티샤가 《보리도등론》에서 밝혔듯 무상요가를 통해 얻는 공덕보다 출가의 공덕이 더욱 크고, 또한 만일 구족계를 수지한 승려가 성적 요가를 수행할 경우 바라이죄[143]를 범하여 매우 엄중한 과보를 받게 되므로 수행을 성취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지옥에 떨어지는 원인을 얻게 된다. 대신 비구, 비구니 같은 범행자(梵行者)는 직접적인 육체적 결합 대신 관상(觀想)으로 대체하거나 성적 요가를 제외한 다른 밀법을 수행할 수 있다.[144]

13.1.2. 사상적 배경[편집]


불교학자 정성준은 밀교의 성, 육체, 번뇌 개념에 관한 사상적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밀교를 통해 성과 육체, 번뇌를 다룬 내용은 기존의 대승불교(顯敎)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밀교의 교리와 수행체계를 최초로 체계화한 《대일경》은 대승불교사상이 다양한 측면에서 결합된 것으로, 중관, 유식, 여래장사상이 경전에 반영되어 있다. 경전의 비로자나여래는 절대법신인 《화엄경》의 비로자나불을 계승한 것이지만 보살과 같이 공성에 머물면서 중생구호를 위해 다양한 신변을 나투는 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밀교의 붓다들은 열반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수용신과 육신을 통해 중생을 직접적으로 구호하는 존재들이다.

현교의 경우 중생의 세계에 드나드는 존재는 중생구제를 위해 성불을 포기한 대비천제(大悲闡提)인 대보살들로서 관세음보살이나, 보현보살, 문수보살 등이 그 예이다. 열반을 성취한 현교의 붓다는 열반이라는 절대세계에 도달한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지혜의 광명인 수용신의 범주를 넘지 않으며, 중생의 현실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대보살의 몫이다. 그러나 유식계의 논서를 통한 불신론(佛身論)의 전개는 붓다의 몸은 법신, 수용신, 화신의 세 가지가 있으며, 열반의 절대신이라도 삼계의 범주를 다양한 불신을 통해 넘나드는 것으로 이론화하였다.

《대일경》 이후 성립된 《금강정경》에는 중생의 의식과 우주법계의 현상세계가 오불의 속성(屬性)을 지니고, 이에 입각해 현화한다고 보는 부족사상(部族思想)을 체계적으로 설하였다. 오불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아촉불, 보생불, 무량수불, 불공성취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도 후기 밀교경전에는 경전마다 다르지만 오불의 범주에 번뇌를 포함시켜, 탐진치(貪瞋癡)와 아만(我慢), 질투(嫉妬)의 다섯 번뇌도 불성의 부족으로서 성불한 붓다에게 중생을 구호하기 위한 의지와 갈망의 대번뇌로 전변한다고 설하고 있다.

《금강정경》에 설해진 부족사상과 번뇌의 긍정은 인도 후기밀교의 성과 번뇌의 긍정이라는 대전제를 이끌어내는 핵심사상이 된다. 그러나 밀교의 긍정은 중생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성의 지혜에 입각한 불지(佛智)에 의해 조명되었을 때 비로소 대번뇌로 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금강정경》에서 설해진 오상성신관(五相成身觀)의 수행은 일체의성취(一切義成就)보살이 육신을 사바세계에 둔 채 수용신(受用身)의 몸으로 색구경천(色究竟天)에서 일체여래의 가르침에 의해 성불한다는 내용이 설해지고 있는데, 오상성신의 증금강신(證金剛身)의 수행은 중생의 삼업(三業)의 현실을 신금강, 어금강, 의금강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그 이론적 배경은 마음의 자성을 깨닫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수행이념이 경전을 통해 형식화된 것이다.

한편 대반야경에 소속된 《반야이취분(般若理趣分)》은 공성의 지혜를 통해 정(淨)과 부정(不淨)의 분별을 초월한 보살에게 번뇌와 육체적 현실은 청정한 진여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극적인 표현을 볼 수 있는데, 같은 품은 독립적인 밀교경전으로 조직화되어 《이취경(理趣經)》으로 출현하고, 여기에는 인간의 감촉과 애욕의 수용과정을 17가지로 분류한 ‘17청정구(淸淨句)’로 표현되어 있다. 이에 대한 인도후기밀교의 주석은 17청정구를 포옹과 결합을 통해 일어나는 애락(愛樂)을 향수하는 남녀의 성교(性交)로 해석한 주석서도 존재한다.

이처럼 대승불교의 밀교화는 외교적 요소를 단기간에 수용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반야와 중관, 유식사상 등의 대승불교사상을 점진적으로 반영시켜 경전화된 과정을 여러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승불교의 밀교화가 외교의 수행을 급작스럽게 받아들인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성장과정에 의해 경전화되고 출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밀교에 있어서 육체뿐만 아니라, 번뇌와 성마저도 불지(佛智)에 의해 관조할 때 현실은 실제(實際)로서 법계의 현현인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연원은 연기법의 무아사상으로부터 반야, 공, 유식 등 불교사상의 전개에 따른 것으로 밀교는 딴뜨리즘에 의해 문제시 되었던 성과 번뇌를 전통적인 불교사상의 영역에서 해석한 것이다.
정성준, 《밀교와 성에 대한 이해》

"선남자여, 나는 ‘욕심을 떠난 실제(實際)의 청정한 법문’을 성취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이 나를 보면 나는 천녀가 되고 사람이 나를 보면 나는 인녀(人女)가 되며, 내지 비인(非人)이 나를 보면 나는 비인녀(非人女)가 되는데 그 몸이 곱고 묘하며 광명과 빛깔이 뛰어나고 훌륭하여 견줄 데 없느니라.

욕심에 결박된 중생이 내게 오면 나는 설법하여 그들이 모두 욕심을 떠나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 삼매를 얻게 하고 나를 보는 중생은 환희(歡喜) 삼매를 얻으며, 나와 말하는 중생은 걸림없는 묘한 음성 삼매를 얻고 내 손을 잡는 중생은 일체 부처 국토에 나아가는 삼매를 얻으며, 나와 함께 자는 중생은 해탈 광명 삼매를 얻고 눈으로 나를 보는 중생은 고요한 모든 행의 삼매를 얻느니라.

또 내 빈신(頻申)을 보는 중생은 외도를 깨뜨리는 삼매를 얻고 나를 관찰하는 중생은 일체 부처님 경계의 광명 삼매를 얻으며, 나를 껴안는 중생은 일체 중생을 포섭하는 삼매를 얻고 나와 입맞추는 중생은 모든 공덕의 비밀한 창고 삼매를 얻나니, 내게 오는 이런 일체 중생은 다 ‘욕심을 떠난 실제 법문’을 얻느니라."

《대방광불화엄경》〈입법계품〉(이운허 譯)


《화엄경》에서는 바수밀다(Vasumitra, 婆須蜜多/伐蘇蜜多)를 53선지식 중 하나로 소개하며 탐욕이 지혜로 바뀌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과정을 보여준다. 금강승의 사부ㆍ행부ㆍ요가부ㆍ무상요가부는 수행자가 욕망의 에너지를 정신적인 수행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각각 관락(觀樂), 소락(笑樂), 집수락(執手樂), 옹포락(擁抱樂)의 〈사락(四樂)〉으로 비유되는데, 그 출처가 바로 《화엄경》〈입법계품〉의 바수밀다 일화이다. 금강승에서는 욕망을 지혜로 전환할 근기가 되지 않은 이에게는 금강승의 가르침을 비밀로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 관락(觀樂)에 비유되는 소작 딴뜨라(Kryatantra)는 관상의 대상인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생긴 탐심의 즐거움을 수행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기로 본존요가의 수행보다 외적인 의례에 중점을 둔 밀경이나 밀교 수행이다.
  • 소락(笑樂)에 비유되는 행 딴뜨라(Caryatantra)는 관상의 대상인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생긴 탐심의 즐거움과 서로의 눈을 보며 교감하는 탐심의 즐거움까지 수행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기로 본존요가의 수행과 외적인 의례를 동등하게 중시하는 밀경이나 밀교 수행이다.
  • 집수락(執手樂)에 비유되는 요가 딴뜨라(Yogatantra)는 관상의 대상인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서로의 눈을 보며 교감하면서 생긴 탐심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서로 손을 잡아서 생긴 탐심의 즐거움까지도 수행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기로 본존요가의 수행에 중점을 둔 밀경이나 밀교 수행이다.
  • 옹포락(擁抱樂)에 비유되는 무상요가 딴뜨라(Anuttarayogatantra)는 관상의 대상인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서로 눈을 보며 교감하고, 손잡아서 생긴 탐심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서로 껴안아 합일해서 생긴 탐심의 즐거움까지도 수행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기로 본존요가의 수행을 위주로 한 밀경이나 밀교 수행이다.


13.1.3. 원리, 자격, 금기[편집]


금강승의 성적 요가는 중관, 유식, 여래장 등 대승 불교 철학과 금강승 고유의 인체 생리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금강승의 입문은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무상 요가 딴뜨라의 성적 요가는 극소수의 자격을 갖춘 최상근기의 수행자-"생각 만으로 땅에 떨어진 열매를 다시 가지에 붙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초월적인 능력을 갖춘-에게만 허용된다. 출가계를 수지(受持)한 출가 수행자는 직접적인 결합 대신 관상(觀想)으로 대체한다. 또한 성적 요가 중에는 복잡하고 때로 위험할 수 있는 수행 절차를 거치며, 반드시 정해진 금기를 준수해야 한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1981년 하버드대에서 열린 초청법회에서 딴뜨라와 성교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 현재 미국에는 성교(性交)와 딴뜨라를 연결시켜서 성교를 수행이라 하고, 성교를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선전하는 책이나 단체들이 많습니다. 전통적인 딴뜨라의 가르침에서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성교의 역할이 무엇인가요? 독신생활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 사실 딴뜨라에 대해서 오해할 위험이 큽니다. 앞서 말한 대로, 여러 가지 단계의 의식이 있고, 가장 미세한 의식을 수행에 이용할 때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 우리가 미세한 단계의 의식을 경험하는 것은 포착하기 쉬운 단계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중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에서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거나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미세한 의식의 힘을 실제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행자가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 포착하기 쉬운 단계의 의식을 고의적으로 제어하고 정지시킬 수 있다면 미세한 단계의 의식이 작용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미세한 의식이 작용할 뿐 아니라, 그 의식은 방심하지 않고, 예민하고, 명석합니다. 이 미세한 단계의 의식은 공성과 무아를 이해하는 지혜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수행자는 포착하기 쉬운 단계의 의식을 중단시키려고 노력해야 되고, 그러려면 백보리(白菩提)와 적보리(赤菩提)[145]

같은 근본적인 요소들을 이동시켜서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딴뜨라 수행에는 성교가 그런 식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여기서 말하는 결합은 통상적인 의미의 성교가 아닙니다. 인간의 육체는 여섯 가지 근본 요소로 구성됩니다. 어떤 설명에 의하면, 그 중 세 요소는 어머니에게서 받고, 세 요소는 아버지에게서 받는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서 받는 세 요소는 뼈와 골수와 정액이고, 어머니에게서 받는 세 요소는 살과 피부와 피라고 합니다. 또 다른 설명에 의하면 여섯 가지 요소는 지, 수, 화, 풍, 맥, 명점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지구상에 태어난 인간의 물리적 육체라는 특별한 조건으로 인해서, 육체 안의 요소들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미세한 단계의 의식의 안에 변화가 옵니다. 예를 들어 재채기를 하거나 하품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성교를 하는 동안에도 그런 의식의 변화가 잠시 일어납니다.[146]

의식에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본성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의식의 변화는 성교를 하는 동안에 일어납니다. 수행자는 그것을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딴뜨라 수행에서는 성교를 방편으로 이용합니다.[147]

욕계에 살면서 아직 욕망을 버리지 못한 어느 딴뜨라 수행자가 수행의 일부로서 고의적으로 마음에 욕망을 일으킨 다음에, 근본 요소들이 변화하고, 포착하기 쉬운 단계들의 마음 대신에 미세한 마음들이 작용하는 동안, 딴뜨라 수행자는 가장 미세한 단계의 의식을 이용해서 공성을 깨닫습니다. 하나의 의식이 두 가지의 상반된 유형(번뇌와 지혜)의 이해를 동시에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가장 미세한 의식이 공성(空性)을 깨달을 때 욕망을 일으킨 마음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맥과 기와 명점에 변화를 유발하는 집착과 욕망의 마음이 일어나도록 돕는 것은 본래적 존재가 있다는 생각(아집我執과 법집法執)입니다. 하지만 그런 욕망으로 인해 나타나게 된 미세한 마음이 공성을 깨달으면, 그 미세한 마음은 욕망을 일으키도록 도왔던 '본래적 존재를 생각하는 의식'을 없애는 치료제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나무에서 생겨난 벌레가 결국은 그 나무까지 갉아먹는다는 예로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수행들을 하는 사람은 공성과 무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거나 경험을 해야 하고, 둘째로 그런 수행의 목표는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므로 수행자는 다른 중생들을 돕기 위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겠다는 이타적인 의도를 가져야만 합니다. 공성을 이해하고 이타적인 의도를 갖지 않으면, 그런 딴뜨라 수행의 기법들이 적절하게 사용될 수가 없습니다.

무상 요가 딴뜨라의 몇몇 수행들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몸 안의 기가 중맥(中脈)으로 들어가게 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제가 말한 육체적 변화는 주로 기가 중앙 기맥으로 들어가서 그 안에 머물다가 사라지는 결과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강력한 방법은 목의 맥도(脉道)들을 죄는 것인데, 그 방법을 올바르게 아는 사람을 성공할 수 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죽음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방법들이 딴뜨라 수행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실행하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딴뜨라 수행을 밀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수행한 숙련된 스승을 만나지 못했거나 수행자가 자격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거나 딴뜨라 수행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지식을 쌓지 않았다면 딴뜨라 수행은 불가능합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달라이 라마 하버드대 강의》(주민황 譯)



13.1.4. 논란[편집]


티베트의 금강승 불교가 여성성을 중시하고 다수의 뛰어난 여성 수행자들을 배출하였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페미니스트 여성 학자들 사이에서는 금강승의 성적 요가가 여성에게 능력을 부여하는지 반대로 여성을 착취하는지 여부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이 있었다. 특히 티베트 불교가 현대에 이르러 북미, 유럽 등 서구 사회에 널리 전파되면서 문화적 차이와 밀교의 폐쇄성으로 인해 많은 오해와 논란이 야기되었다.

성적 요가의 효용을 인정하면서도 성적 요가의 실천을 엄격히 제한했던 겔룩과는 달리 닝마, 까규 등 밀교 수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종파들은 성적 요가 수행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었다. 티베트 불교가 서구에 도입되던 초창기에 히피(Hippie) 문화와 68운동의 열풍에 힘입어 서구 사회에 널리 알려진 티베트 불교 종파도 밀교 수행을 강조하는 닝마, 까규였다.

서구 사회 포교에 나섰던 재가수행자 스승들 중에는 자신의 서양인 제자에게 성적 요가를 함께 수행할 '영적 배우자' 혹은 '비밀 배우자'인 쌍윰(gsang yum)이 되어줄 것을 제안하는 경우가 있었다. 개중에는 스승과 원만한 동반자 관계를 맺는 제자도 있었지만,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며 후회하고 스승을 비난하거나, 수행 공동체 내에서 배척당하고 가쉽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제자들도 종종 있었다.

홀리 게일리(Holly Gayley) 콜로라도대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 배경에 서구인들의 티베트 불교에 대한 환상과 문화적 차이, 밀교의 폐쇄성으로 인한 정보 부족이 있다고 보았다. 오늘날 밀교 관련 유물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밀교 서적이 서점의 베스트셀러 항목에 오르는 등 밀교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에게 널리 공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밀교 경전 일부는 번역이 금지될 정도로 밀교 교의(敎義)의 공개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밀교의 계율인 싸마야에서 밀교를 수행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밀교의 가르침을 공개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Holly Gayley, 《Revisiting the Secret Consort (gsang yum) in Tibetan Buddhism》

2000년대 미투 운동의 발흥과 북미, 유럽, 인도 등에서 발생한 티베트 불교 지도자들의 잇단 성추문으로 인해 금강승의 교리도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다. 일련의 성 스캔들은 종파를 불문하고 발생하였으며, 성적 요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148] 그러나 구루 요가, 싸마야(Samaya)계, 청정 인식같은 여타의 금강승 교리가 왜곡되고 변질되어 사태가 악화된 측면이 있다.

금강승에는 스승을 비롯한 일체 대상을 청정하고 원만한 본성으로 인식하는 청정 인식(dag snang)이란 가르침이 있다. 진정한 청정 인식은 참된 진리의 세계, 진여실상(眞如實相)을 인식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청정 인식이 맹목적인 도그마로 변질되면서 스승의 부적절한 언행까지도 일종의 "방편(Skt: upaya)" 혹은 파격적인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게 하는 “미친 지혜(Tib: ye shes ’chol ba)"로 정당화되었고, 계율, 자비와 같은 불교의 다른 주요한 가치들이 실종되면서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149]

이와 관련하여 독일 루트비히 막시밀리안스 대학의 안네 이리스 미리암 안더스(Anne Iris Miriam Anders)는 불교 단체의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청정 인식이나 업의 정화(karma purification)와 같은 금강승의 개념이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착취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고, 스승의 가피를 구하는 금강승의 구루 요가(Guru Yoga)는 자기 책임을 방기(放棄)하고 스승에게 의존하는 성향을 강화시켰다고 분석하였다.
Anne Iris Miriam Anders, 《Silencing and Oblivion of Psychological Trauma, Its Unconscious Aspects, and Their Impact on the Inflation of Vajrayāna. An Analysis of Cross-Group Dynamics and Recent Developments in Buddhist Groups Based on Qualitative Data》

스캔들에 연루된 지도자들 중 까규/닝마의 사쿙 미팜(Sakyong Mipham) 린뽀체 #, 겔룩의 닥리(Dagri) 린뽀체[150] # 등은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단체의 직위에서 사임하거나 스승 자격을 영구히 박탈당했다. 그러나 일부는 여전히 논란에 휩싸여 있다. 소걀(Sogyal) 린뽀체의 경우 논란이 일자 그는 자신이 설립한 수행 단체 릭빠(Rigpa)의 지도자 직위에서 사퇴하였다. 그러나 그는 혐의를 인정하거나 사과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다만 자신의 의도가 잘못 전달되어 안타깝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2018년 릭빠에서는 외부 변호사의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심각한 수준의 학대 행위가 있었음을 밝힌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 그러나 소걀 린뽀체는 생전에 한 번도 법적으로 기소되거나 처벌을 받은 바 없다. # 논란 이후에도 소걀 린뽀체의 지지자들과 여러 유력한 티베트 불교 지도자들은 소걀 린뽀체를 진정한 스승으로 여겼고 2019년 그가 태국에서 폐색전증으로 사망하자 일제히 조의를 표하였다. #

제17대 까르마빠 오겐 틴레 도제(O rgyan 'Phrin las Rdo rje)는 2019년 7월 까르마 까규빠 사미니 출신의 중국계 캐나다인 여성 비키 후이 신 한(Vikki Hui Xin Han)으로부터 배우자 비용 청구 소송을 당했다.# # # 2021년 5월 17일(현지 시각)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대법원은 비키 한의 소송 제기를 허가하였다. 대법원의 허가 결정은 둘의 관계에 배우자 관계를 정의하는 전통적 요소가 미비함에도 불구하고(합의되지 않은 폭행에 의해 관계가 시작된 점, 부부가 함께 산 적이 없는 점), 결혼과 같은 관계를 '탄력적' 개념으로 해석하였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재 1차 재판일은 2022년 4월로 예정되어 있다.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주 대법원 결정문 전문 또한 그녀는 2022년 3월 23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주 법정에 까르마 트라이야나 다르마차크라 사원(Karma Triyana Dharmachakra Monastery)과 까르마 까규 인스티튜트(Karma Kagyu Institute)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151] # 대만 출신의 제인 황(Jane Huang, 본명 黃子瑗), 홍콩 출신의 우 행 이(Wu Hang Yee, 본명 鄔幸兒)라는 2명의 여성도 틴레 도제를 성적 학대의 가해자로 지목한 바 있다. 이들은 비키 한과 달리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언론과 SNS를 통한 미 투(Me Too) 폭로에 집중하였다.

티베트 불교 교단 내 성적 남용이 이슈화되면서 티베트 불교계 지도자들도 이에 관한 입장을 표명하였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불교 교단 내부의 비윤리적인 행동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그는 201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성학대 피해자들과 면담을 갖고 "불교 지도자들의 성학대를 25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면서 학대에 연루된 지도자들이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 종사르 켄체 린뽀체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외부의 잣대로 티베트 불교 전통이 훼손당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스승의 모든 지시를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는 금강승의 스승-제자 관계가 갖는 의미를 면밀히 파악하고 스승을 모시기 전에 신중하게 고려할 것을 당부했다. # 여성 환생자 스승인 칸드로 린뽀체는 상식과 계율에 의거하여 판단하고, 의문스런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조사할 것을 권장했다. # 밍규르 린뽀체는 신체적ㆍ성적ㆍ심리적 학대는 가르침의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수행 공동체 내부의 심각한 윤리적 위반은 공개되어야 하고 만일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으면 외부에 알릴 것을 권고했다. #

일련의 사태로 인해 금강승의 가르침이 잘못 이해되는 것을 우려하는 스승들도 있었다. 종사르 켄체 린뽀체는 피해자들의 입장에 공감을 표하는 한편, SNS와 공개 대담을 통해 현대 서구인들의 금강승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노력했다. 아래는 2018년 프랑스 몽펠리에 레랍 링(Lerab ling)에서 열린 대담의 요약문이다(※ 공식적인 요약문이 아닌, 작성자의 주관적이고 거친 요약문임을 고려할 것).

금강승이 비밀스럽게 전수되는 이유는 기괴하고 이상해서가 아닌, 반대로 너무나 심오하고 소중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금강승은 스승과 제자 간 일대일로 은밀히 전수되는 가르침이었지만 티벳으로 전해지며 공개적인 의례로 변형된 부분이 있다. 금강승의 상징, 의례, 기물 등으로 인해 컬트(cult)로 오해받기도 하고 사성제, 사법인, 공성, 보리심 같은 가르침이 안타깝게도 뒷전으로 밀려날 때도 있었다.

금강승은 불교의 팔만사천가르침 중 하나이며 굳이 금강승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만일 금강승에 입문한다면 먼저 금강승에서의 스승의 의미와 스승-제자 관계가 여타 가르침과 다름을 알아야 한다. 금강승의 스승을 선택할 때는 먼저 반드시 스승의 자격을 살피는 과정을 거친다. 스승이 될 인물을 관찰하는 기간은 정해진 기한이 없다. 스승의 자격을 검증할 때는 분석과 회의, 의구심을 총동원하여 매우 신중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만일 다른 요인으로 인해 스승의 자격을 검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검증 대상인 인물과 자신 간에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없거나 아직 인연이 무르익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스승을 찾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다.

일단 금강승의 스승으로 모시기로 서약한 후에는 스승에게 헌신하고 그의 모든 행위를 깨달은 행위로 여겨야 한다. 이는 마치 위험한 절벽을 처음 오를 때 숙련된 가이드의 지시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과 같다. 만일 스승에 대한 헌신과 청정 인식이 없다면, 제자의 이분법적인 마음은 끊임없이 스승에게서 결점과 결점 아닌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수정하려 할 것이다. 또한 스승에게 헌신하고 복종한다는 것은 자신의 에고(ego)를 제거하기 위함이다. 만일 에고를 제거하지 못하는 가르침이라면 그것은 또 하나의 영적 물질주의(spritual materialism)에 불과하다.

그러나 스승의 모든 행위를 깨달은 행위로 본다고 하여 곧 스승이 아무 행위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금강승에서는 스승에 대한 헌신 뿐 아니라 제자에 대한 헌신도 중요하다. 진정한 금강승의 스승에게 제자란 친자녀 이상의 존재이고, 제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스승에게도 엄청난 위험과 부담을 감수하는 일이다. 또한 아무리 높은 깨달음을 얻은 스승이라도 그의 행위는 업과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승은 지혜로써 모든 행위를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고, 바로 그러한 다양한 방편이 금강승의 강점이기도 하다.

금강승의 방편 중 하나인 구루 요가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스스로를 의지하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스승에는 외(外), 내(內), 밀(密)의 스승이 있는데 스승으로 섬기는 인물은 외적 스승에 해당한다. 구루 요가에서는 최종 단계에 외적 스승이 제자에게 흡수되어 스승과 제자가 불가분(不可分)으로 하나되는 관상(觀想)을 한다. 이는 내적, 밀적 스승이자 진정한 의미의 스승인 제자의 참된 본성을 깨닫는 과정이며 이 때 외적 스승은 본성을 깨닫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미친 지혜(ye shes ’chol ba)"는 남을 때리고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이 아니다. 미친 지혜 역시 에고에 반(反)하는 수행의 방식 중 하나이다. '미쳤다'라는 것은 정상에서 벗어남, 초월함을 의미한다. 마치 아늑한 러그(rug)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러그를 치워버리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며 마음챙김 명상을 하고 "불교"를 믿는 정상적인 영역에 머물지만, 그러나 불교적인 맥락에서 보면 그들이 진정으로 영적인 인물이라고는 볼 수 없다.

스승의 모든 행위를 깨달은 행위나 방편으로 보는 것은 맹목적일 수 있고, 만일 그렇게 보지 않으면 싸마야를 어기는 것이 되어 딜레마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사실 이는 일종의 축복이다. "미친 지혜"와 마찬가지로 정상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전위적인(avant-garde) 방식이다. 싸마야계는 다른 계에 비해 복구하기도 훨씬 쉽다. 우리 본성이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제자에게 스승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방편으로 쓰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금강승의 싸마야계를 받으려고 너무 서둘러서는 안된다. 먼저 성문승(소승), 대승의 가르침부터 익힐 필요가 있다.

구루(Guru)를 투표와 같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해야 된다는 둥 금강승의 전통을 자기 입맛대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은 자기중심적인 발상이지 자비로운 방식이 아니다. 프랑스 출신 작곡가 비제(Bizet)의 곡에 자기 취향대로 폭포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 천둥 소리들을 추가하다보면 점점 원래 비제의 곡은 잊혀지고 나중에는 캘리포니아에서 폭포소리로 뒤덮힌 프랑스인 비제의 곡을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Dzongsar Jamyang Khyentse Rinpoche, 《Vajrayana Buddhism in the West: The Challenges and Misunderstandings of our Times》


2021년 종사르 켄체 린포체는 2010년대 금강승 구루 관련 스캔들로 야기된 금강승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Dzongsar Jamyang Khyentse,《Poison is Medicine:Clarifying the Vajrayana》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상기한 레랍 링에서의 대담을 포함하여 2018년 초 베를린, 파리, 런던, 레랍 링에 위치한 릭빠 센터에서의 대담들을 기반으로 저술되었다. 저자가 이끄는 수행 단체 '싯다르타즈 인텐트(Siddharta's Intent)'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ePUB, PDF 파일 양식의 전문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며, 관련 질문을 보낼 수 있는 메일 주소도 함께 공개되어 있다.


13.2. 승려의 결혼?[편집]


파일:img-16.jpg
파일:unnamedani.jpg
재가 수행자 응악빠
출가 승려

티베트 불교를 대처승을 허용하는 불교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티베트 불교의 최대 종파인 겔룩을 비롯하여 닝마, 까규, 사캬 등 모든 종파의 출가계를 받은 승려는 독신을 지키는 청정 비구이다.

출가 승려와는 별개로 닝마 등 일부 종파에는 대승불교의 재가 수행자 전통을 계승한 응악빠(sngags pa, 남성)/응악마(sngags ma, 여성)라는 재가 수행자들이 존재한다. 대승 불교는 재가자 또한 출가자와 동등한 수준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천명하였다. 대승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인 보살은 대부분의 도상(iconography)에서 재가자로 묘사되며, 대승 경전의 도입부에서도 성문승가와 별도의 집단인 보살 승가 혹은 보살중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성문의 출가 승려들과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교단을 지탱하는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인도의 마하싯다(mahasiddha)와 빤디따(pandita) 중에는 출가자 뿐만 아니라 재가자도 존재하며[152] 티베트의 빠드마삼바와, 예세 초겔, 돔뙨빠, 밀라레빠 등도 불보살의 과위를 성취한 재가자 출신의 성현으로 여겨진다. 특히 불교 딴뜨리즘의 경우 요기니 딴뜨라(yogini tantra)의 등장 이후 승원 외부의 재가자 요기(yogi), 요기니(yogini)들 중심으로 딴뜨릭 수행이 성행했으며, 출재가자 여부와 신분 계급의 차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수행을 통해 밀교의 성취자인 싯다(siddha)가 될 수 있었다. 최경아, 《인도초기대승의 수행문화 -출가보살과 재가보살의 기원과 전개》 안성두, 《대승경전 찬술의 배경과 과정》

재가 수행자인 응악빠/응악마는 밀교 수행자로서 우바새/우바이계, 보살계와 밀교계를 받고 그들의 사원에서 각종 의식을 집전하며 수행에 전념하므로 일반적인 세속의 재가 불자와는 구별된다. 이들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질 수 있다. 응악빠에는 혈통을 통해 대(代)를 거쳐 이어지는 전승과 법맥의 전수를 통해 이어지는 전승 두 종류가 있다. 사캬의 수장인 사캬 티진(sa skya khri 'dzin)의 직위도 쾬(Khon)족 혈통에 의해 계승되는 응악빠의 일종이다.

티베트 불교의 환생자들 중에는 출가 비구인 환생자도 있지만 결혼을 하는 환생자도 있다. 출가 수행자가 되기를 원치 않거나, 성적 요가의 성취를 위해 재가 수행자로 남기를 원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다른 환생자가 수승한 법연(法緣)을 갖춘 환경에서 다시 환생할 수 있도록 태(胎)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또한 환생자들 중에는 뗄된(gter ston)이기 때문에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뗄된이란 뗄마(gter ma)라는 빠드마삼바와와 예세 초겔의 보장(寶藏)을 발견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일컬으며, 주로 닝마빠 수행자 중에 많다. 만약 뗄된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단명(短命)하거나 보장을 발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뗄된이 뗄마를 발견하는 과정 역시 남성성과 여성성의 상보적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한 환생자들은 출가계를 받지 않거나, 환계 후 환속한 재가 수행자이며 출가 수행자가 아니다.

파일:Padmasambhava-Shantarakshita-Trisong_PSL-gonpa.jpg
닝마에는 일찍이 출가 수행자와 재가 수행자 두 전통이 공존했다.

출가 수행자, 즉 사미, 사미니인 게출빠(dge tshul pa, 남성)/게출마(dge tshul ma, 여성)나 비구, 비구니인 겔롱빠(dge slong pa, 남성)/겔롱마(dge slong ma, 여성)는 일체 음행을 금하는 출가계에 의거하여 결혼을 할 수 없고 성관계도 당연히 가질 수 없다. 승려의 경우 무상요가 딴뜨라 수행 가운데 하나인 성적 요가도 직접적인 결합 대신 관상(觀想)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티베트 불교에는 출가계를 받았음에도 결혼한 이른바 '대처승'은 없다. 만일 승려가 결혼을 원한다면 다른 불교 교단과 마찬가지로 출가계를 환계(還戒)하고 환속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티베트 불교의 최대 종파인 겔룩은 계율을 특히 강조하여 구성원 대다수가 비구계나 사미(니)계를 받은 승려인 출가 수행자이며, 재가 수행자는 환속한 소수에 불과하다.

전통적으로 티베트 불교에서는 용수보살부터 아티샤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요한 대승불교 논사들이 음행(淫行)을 범하지 않는 청정 비구의 신분으로 밀교를 수행했다고 본다. 다만 학계에서는 용수(나가르주나)나 성천(아르야데바) 등 용수와 그의 제자들이 저술하였다는 용수류(龍樹流) 혹은 성자부자류(聖者父子流) 밀교 관련 논서들을 9~10세기에 지어진 후대의 저작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용수 같은 초기 중관 논사들이 밀교수행자였는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아티샤 등 후기 대승 논사들이 밀교수행자였으며 동시에 범행자(梵行者)의 성적 요가를 엄격히 금지하여 범계(犯戒)에 유의했음은 문헌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승려의 계율을 중시했던 겔룩의 창시자 쫑카빠도 평생 독신의 비구 신분이었고 대신 중음(中陰)에서 밀교 수행법을 통해 불과(佛果)를 성취했다고 알려졌다.

《초불(初佛)대(大)딴뜨라》에서

애써 금하기 때문에

비밀(秘密)과 지혜(智慧)의 관정을

범행자(梵行者)는 받아서는 안된다.

만약 관정을 받는다면

범행의 고행에 머물면서

금한 것을 행한 것이 되기 때문에

고행의 율의를 잃게 된다.

금계(禁戒)를 가진 이가

바라이(波羅夷)를 범하게 되고

그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에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아티샤, 《보리도등론》 (양승규 譯)


티베트 불교에는 많은 재가 수행자 요기, 요기니들이 있지만, 티베트 불교의 기반은 다른 불교 종파와 마찬가지로 승원(僧院, monastery) 중심의 출가불교라고 할 수 있다. 쫑카빠는 《보리도차제광론》에서 경론에 의거하여 재가자의 허물과 출가자의 공덕에 대해 분명히 밝혔다. 쫑카빠는 세속에서 수행하기 어렵고 출가의 공덕이 크기 때문에 재가자는 출가자가 되기를 발원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바라밀승은 물론 금강승을 수행하여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이루는데도 출가자가 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또한 쫑카빠는 별해탈계, 보살계, 금강승계 등 삼종율의(三種律儀)에 있어서 별해탈계가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이므로 별해탈계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쫑카빠, 《보리도차제광론》(청전 譯) 관련 내용" 펼치기ㆍ접기】
지금 여기서 재가자는 법을 닦음에 장애가 많으며, 많은 허물에 잘못 집착하는데, 출가자는 이와는 반대로 생사윤회를 끊어버리는 몸으로서, 최고의 출가인이 되었기에 지혜로운 자는 출가를 진실로 기뻐해야 한다.

재가의 허물과 출가의 공덕을 거듭 생각한다면, 이미 출가한 사람으로서는 뜻을 견고히 하고, 출가하지 않은 사람들은 착한 습관을 수립하고 각성해야 하므로 이 도리를 약간 설명하려 한다. 여기서 재가자는 부유하다면 그것을 지키는데 고통이 있고, 가난하다면 부를 구하고 고통으로 간난신고(艱難辛苦)가 있다. 이로써 안락이 없음에도 어리석음으로 안락을 삼는데, 이것은 악업의 과보임을 알아야 한다.

《본생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감옥과도 같은 가정을
조금도 안락이라고 생각지 말라.
부자이건 가난하건 간에
가정에 머무름은 큰 병이어라.

첫째는 지키려는 데에 번뇌하고
둘째는 구하려는 데에 피로하구나.
부자이건 가난하건 간에
어디에도 안락은 없다네.

이에 즐거워하여 어리석다면
죄악의 과보만 익어간다네."

그러므로 많은 물건을 갖추고 만족할 줄 모르고 구함은 출가인의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재가자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또한 가정에 머무름은 법과 어긋남으로써 집에서는 법을 닦기가 어렵다.

또 이 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으니 이런 등등의 재가의 허물을 거듭 생각하고, 출가하기를 발원해야 한다.

"만일 재가의 업을 한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고
타인에 죄를 짓는 자에게 처벌을 하지 않을 수 없네.
만일 법을 행하려 가업을 버리고서도 가정을 돌아본다면
어찌 법을 얻을 수 있으랴.

법의 일은 지극히 평화롭네.
집안의 일이란 완력으로 얻어야 하나니
그것은 법과 어긋나는 허물이 있으므로
자기에게 이로움을 원하는 자라면 누가 집에 머무랴.

(가정은) 자만과 교만과 어리석음과 같은 뱀의 굴.
그것은 적정의 기쁨을 부숴버리네.
참을 수 없는 많은 고통이 있는 곳이니
그 누가 뱀굴과 같은 집에 머무랴."

그리고 또한 조악한 법의(法衣)와 초라한 바리때와 걸식으로써 만족하고 적정처에서 자기의 번뇌를 청정히 하여 타인의 복전이 되기를 발원해야 한다.

《칠동녀인연론 七童女因緣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원컨대, 머리를 깎은 자가 되어서
분소의를 걸치고
절(도량)에 머물기를 원하나니
언제나 그렇게 되어 볼까.

앞을 바라보는 것은 멍에의 길일 뿐
손에 든 것은 흙바리때라네.
차별 없이 집에서 집으로
언제나 걸식을 해볼까나.

이양(利養)과 공경(恭敬)을 탐하지 않고
번뇌가시의 수렁을 맑히고
번뇌를 맑게 닦아
언제 마을의 보시 공양처가 되어 볼까나."

(출가자들은) 풀로써 깔개를 하고 지붕 없이 잠을 자며, 이슬과 서리가 옷을 적시고, 조악한 음식으로써 만족해하며 나무 밑에서 잠을 자고, 풀자리에 자고 눕는 법락(法樂)으로써 살아가기를 원해야 한다.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칠동녀인연론에서》)

"어느 때 풀섭에서 일어나랴.
서리와 이슬이 옷을 무겁게 적시고
조악한 음식 정도로써
이 내 몸을 탐함이 없는 때이라

나무 곁의 앵무새처럼
푸른색의 보드란 풀이 내 옷이 되어
법이 드러남을 보는 즐거움의 기쁨이 생길 때라야
그때 나는 누워 잘 수 있으리."

선지식 뽀또와는 지붕 위에 눈이 쌓인 후, “어제 밤에 칠동녀 인연을 말한 것과 똑같이 되어서 마음이 기쁘다. 그런 식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것 이외는 다른 것이 없노라”라고 하였다.

약초밭과 강기슭에 머물러, 물결의 생김과 무너짐이 자기 몸과 목숨 같음을 생각하고, 삼유의 근본이 모두 나쁜 견해를 생기게 하는 아집을 관찰혜(觀察慧)로써 멸제하고, 윤회의 환락과 염오하고 세간이 환화(幻化)와 같음을 거듭 거듭 사유하고 기원함이란, 다음과 같이 소망해야 하나니, 이 모든 것은 출가한 몫으로서, 이 일을 하는 데에 서원을 세워야 한다.

"어느 때 강기슭 약초밭에 앉아.
물결의 무상함을 보면
살아 있는 사람의 세간과 똑같을 것이니
거듭거듭 관찰해 보라.

모두가 악견이 되어버리는
신견을 부숴버려라.
윤회의 수용을 즐기지 않음에
내 언제 그리 되어 보랴.

꿈 · 신기루 · 환영 · 구름
심향성(尋香城)과 같은
동(動) 부동(不動)의 모든 세간
내 언제 깨닫게 되랴."

선지식 체까와는, “고행의 산간에 신선의 행동으로서 안주할 수 있다면, 이제야 아버지가 자식을 기르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고, 샤라와도 “재가자가 일이 많아 바쁠 때엔 좋은 옷을 잘 차려 입고 그에게 찾아가서 출가가 얼마나 좋은가를 생각하게 하여 미래에 출가의 습기를 심어 놓으라” 라고 하였다.

《용맹장자청문경 勇猛長者請問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 또한 고통의 본거지인 가정에서 떠나려 하지만 언제 이렇게 행할 수 있으랴. 나 또한 언제 승가의 일, 포살의 일, 해제의 일, 예경의 일에 머무를 수 있을까. 생각하여 이와 같이 출가의 마음을 즐겨야 하리라."

이는 보살이 가정에 머물기에 그렇게 서원해야 한다고 말하였는바, 이것은 주로 비구계를 바라야 함을 말함이다.

《장엄경론》에서, “출가 자체가 무량의 공덕을 갖추고 있나니, 이 때문에 서원을 지키는 이는 재가자보다 월등하여라”라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수행하는 데에 삶[生]이 출가한 것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바라밀승과 금강승의 방식으로 일체 종지를 수행하는데 있어서도 또한 출가를 최상의 삶[生]이라고 말한다. 출가의 율의는 삼률의(三律儀) 안에서 바로 별해탈이므로, 거룩한 가르침의 근본인 별해탈을 존경해야 한다.


계율, 의식, 예법, 복식 등에 있어서도 출가 수행자와 재가 수행자의 구분이 있다. 일반적으로 인도 불교 전통에 따라 티베트 불교의 재가 수행자는 머리를 기르고 백색 의복을 입지만, 출가 수행자는 삭발하고 사프란(saffron)색 가사를 입는다.[153] 하지만 때로 복식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아 혼동을 주는 경우도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13.3. 육식?[편집]


티베트는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농경보다는 목축이 주를 이루었다. 식생활도 보리같은 곡물과 육류, 유제품 위주이며 여기에 차(茶)를 더하여 부족한 비타민 등을 보충한다. 농작물을 구하기 힘든 티베트 민족에게 육식은 불가피한 생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티베트 민족의 식습관을 두고 육식을 기피하는 동아시아 불교권의 불자들은 혹 육식이 불교의 계율을 어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표할 때가 있다.

그러나 육식이 계율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티베트 불교에서 따르는 근본설일체유부 계통의 《율경근본율(Vinayasūtra) 》이나 동아시아 한문권 불교에서 따르는 법장부 계통의 《사분율(四分律)》, 남방 상좌부 불교의 율장인 《위나야 삐따까(Vinaya Piṭaka)》 등은 모두 '삼정육(三淨肉)'과 같은 예외 사항을 만들어 육식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육식을 금하는 것은 주로《범망경(梵網經)》의 대승계 때문이다.[154] 그러나 티베트 불교는《범망경》의 대승계가 아닌 《입보살행론(Bodhisattvacaryāvatāra)》, 《대승집보살학론(Śikṣāsamuccaya)》의 대승계와 《유가사지론(Yogācārabhūmi-Śāstra)》 〈계품〉의 대승계를 따르는데, 여기에는 육식을 직접적으로 금하는 조항이 없다. 따라서 티베트 불교도가 삼정육을 섭취하는 것은 별해탈계나 보살계를 어기는 것이 아니다.

계율 문제와는 별개로 티베트 불교에도 자발적으로 채식을 실천하는 수행자들이 있다. 과거 까담의 아티샤(Atisha)나 겔룩/닝마의 샵카르(Shabkar) 같은 고승들은 평생 채식을 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에는 닝마의 차트랄 상게(Chatral Sangye) 린뽀체, 뻬마 왕걀(Pema Wangyal) 린뽀체나 까르마 까규의 제17대 까르마빠(Karmapa) 오걘 틴래 도제(Orgyen Trinley Dorje), 밍규르(Mingyur) 린뽀체, 그리고 겔룩의 삼동(Samdhong) 린뽀체, 라마 소빠(Lama Zopa) 린뽀체 등이 티베트 불교 내의 대표적인 채식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도 인도 망명 이후 1964년부터 스무 달 가량 완전 채식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급격한 식습관의 변화로 인해 심한 황달이 발생하고 담낭에 결석이 생겨[155] 담낭을 적출하는 수술 끝에 채식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육류 섭취를 제한하며, 공장식 축산업을 지양하고 불살생과 채식을 권장하는 법문을 여러 차례 설한 바 있다.

달라이 라마는 2020년 세계 동물의 날(World Animal Day)을 맞아 "생명 존중과 환경 보호를 위해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식을 권장할 필요가 있다. 동물 착취를 줄이고 채식을 하는 것이 보다 자비롭고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가령 티벳 북부나 몽골처럼 추운 기후 때문에 대대로 가축에 생계를 의지하던 사람들까지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반면 인도는 농작물이 풍부하고 채식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메세지를 전했다. 달라이 라마의 메세지처럼 인도 내 티베트 불교 대학이나 티베트 불교 사원에서는 최근 채소와 과일 식단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채식 공양만을 하는 사원들도 있다.
  • 2012년 세계 자비의 날(World Compassion Day) 제정 기념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동물복지 진흥 및 채식 장려 메세지 # #
  • 2020년 세계 동물의 날(World Animal Day) 기념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채식 장려 메세지 # #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달라이 라마의 메세지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우리들의 집》

외적인 의례를 중시하는 소작(所作) 딴뜨라, 행(行) 딴뜨라는 관정(灌頂) 등의 의식을 치를 때 육류, 어패류, 계란, 오신채 등의 섭취를 엄격히 금한다. 또한 무상요가 딴뜨라에 속하는 칼라차크라 딴뜨라(Kālacakratantra)에서도 육식을 엄격히 금하며, 닝마의 족첸 수행자 중에서도 채식주의자들이 많다.

무상요가 딴뜨라의 회공(會供, gaṇacakra) 때 청정과 비청정의 집착을 벗어난 '이원성의 초월(不二性, advaya)'을 목적으로 고기, 대소변, 혈액, 정액 등의 부정물(不淨物)을 오종육(五種肉, Sha lnga, sha chen sna lnga)과 오감로(五甘露, bdud rtsi lnga)라 하여 공양물로 쓰는 경우가 있으나 후대에는 요거트, 과일즙 등의 온건한 물질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의궤는 무상 요가 수행의 자격과 근기를 갖춘 극소수 수행자들이 세간에서 더럽다고 여기는 것들을 이용하여 고도의 선정력(禪定力)을 바탕으로 미세한 분별심을 정화시키기 위해 행하는 것이지 절대 일반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행이 아니다.


13.4. 초야권?[편집]


원대(元代)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몽골인들이 한족에게 초야권을 행사했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상 루머 취급을 받으며 주류 학계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초야권 설은 야사(野史)에 해당하는 《신여록(燼餘錄)》이란 문헌에 처음 등장하였지만 근대 학자들에 의해 《신여록》은 위서(僞書)로 판명되었고, 몽골의 잔혹성을 입증하기 위해 원대 역사를 왜곡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56] # 정사(正史)인 《원사(元史)》, 《신원사(新元史)》 등에는 초야권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

원대 초야권이 실시되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현대 중국의 언론인 신력건(信力建)이 있으나 신력건은 중산대학(中山大学) 중문과를 졸업하고 역사학 관련 학위가 없는 비전문가이며# 근거도 빈약하다. 청말민초(淸末民初)에 출간된 민속학자 주작인(周作人)의《담룡집(談龍集)》 등 초야권과 관련된 민담, 풍습을 다룬 산문집과 그 영향을 받은 일부 대중역사서들로 인해 실제 초야권이 실시되었다는 루머가 퍼진 적도 있지만, 현재는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부정되고 # # 바이두 백과 초야권 항목 # 이나 중국어 위키백과 초야권 항목 # 에서도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바이두 백과에는 百科TA说로 원대 초야권의 허구를 상세히 입증하는 글이 링크되어 있다.[157] 《“蒙元初夜权”,一个历史谣言的原型、变形与事实。 》

초야권설이 유포된 배경에는 원(元)과 원을 계승하여 몽골의 대칸을 자처한 청(淸) 등 전대(前代) 이민족 왕조에 대한 한족 지식인들의 반감이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의 중국이란 이데올로기를 따라 원, 청도 중국 왕조 중 하나로 인식하는 현대 중국의 중화주의적 역사관이 강화되면서 중국인들이 굳이 근거 없는 초야권설로 원나라를 비하하고 한족 스스로를 치욕스럽게 만들 이유도 사라졌다.

또한 인터넷상에는 외몽골 같은 일부 티베트 불교권 지역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승려가 초야권을 행사하여 매독(syphilis) 감염의 주요 경로가 되었다는 출처 불분명한 주장이 있다. 과거 몽골 승려들 중 일부는 가정을 갖는 등 성적 금기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넷상의 주장처럼 몽골 승려에게 초야권이라는 명시적인 권리가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캠브리지대 사회인류학과의 바산자브 테르비쉬(Baasanjav Terbish)는 딴뜨리즘의 성력(性力) 수행만으로는 몽골 승려들의 성생활을 설명하기 힘들다고 보았다. 딴뜨리즘의 성력 수행은 범속한 성행위와는 달리 열반을 성취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근기를 갖춘 극소수 수행자에게만 허용된 고도의 수행 방식이기 때문이다.

테르비쉬는 딴뜨리즘 뿐만 아니라 세속 사회와의 근접성과 사원의 경제활동에도 주목하였다. 몽골의 승려들은 출산을 돕고 불임 부부의 임신을 축원하며, 결혼할 길일(吉日)을 택해주고 이혼을 허가하는 등 유목민 사회의 신체적, 성(性)적 문제에 관여하였고 일부는 성력 수행을 하며 자연스럽게 속인화(俗人化) 되었다. 또한 불교 사원들이 상업, 운송, 숙박 등 각종 경제활동에 참여하여 사원의 부가 증대함에 따라 승려들의 사유 재산 소유가 허용되었고, 사원의 부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승려가 자신의 적자(嫡子)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방식이 선호되었다.
Baasanjav Terbish (2013), 《Mongolian Sexuality: A Short History of the Flirtation of Power with Sex》

13.5. 복식[편집]


계를 수지한 티베트 승려는 하의로 모두 샴탑이라고 하는 붉은색 통짜 천을 두른다. 전통적인 상의를 보면 종파를 대강 구분할 수 있다. 닝마는 울렌이라고 하는 차이나 컬러에 소매가 없는 조끼만 입으며 싸꺄와 까규는 울렌 위에 뙨까라고 하는 붉은색 조끼를 덧대입는다. 그리고 겔룩은 울렌 대신 뙨까만 입는다. 또한 의식에 쓰는 모자가 겔룩은 노란색이어서 황모파(黃帽派), 나머지 닝마, 쌰까, 까규는 붉은 색 모자를 쓰기 때문에 홍모파(紅帽派)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황모파, 홍모파 등 복식에 의한 종파 분류는 중국인들이 편의상 이름 붙인 것에서 유래한 분류이며 티베트 불교 내부에서 쓰이는 공식적인 분류는 아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2-07-09 21:04:00에 나무위키 티베트 불교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1. 용수(150~250 / 龍樹 / དཔའ་མགོན་ཀླུ་སྒུབ་ / Nagarjuna)
2. 성천(170~270 / 聖天, 提婆, 聖提婆 / འཕགས་པ་ལྷ་ / Aryadeva)
3. 덕광(394-468 / 德光, 功徳賢 / ཡོན་ཏན་འོད་ / Gunaprabha)
4. 진나(480~540 / 陣那, 域龍, 大域龍 / ཕྱོགས་ཀྱི་གླང་པོ་ / Dinnaga)
5. 청변(490, 500~570 / 淸弁 / ལེགས་ལྡན་འབྱེད་ / Bhavaviveka)
6. 불호(470-540 / 佛護, / སངས་རྒྱས་སྐྱངས་ / Buddhapalita)
7. 월칭(600~650 / 月稱 / ཟླ་བ་གྲགས་ / Chandrakirti)
8. 적천(685~763 / 寂天 / རྒྱལ་སྲས་ཞི་བ་ལྷ་ / Shantideva)
9. 무착(395~470 / 無着 / ཐོགས་མེད་ / Asaga)
10. 세친(400-480 / 世親 / དབྱིག་གཉེན་ / Vasubandhu)
11. 석가광(8세기 초 / 釋迦光 / ཤཱ་ཀྱ་འོད་ / Shakyaprabha)
12. 법칭(6-7세기 / 法稱 / ཆོས་གྲགས་ / Dharmakirti)
13. 사자현(8세기 중엽 / 師子賢 / རྒྱལ་སྲས་སེང་གེ་བཟང་པོ་ / Haribhadra)
14. 성해탈군(6세기경? / འཕགས་པ་རྣམ་གྲེལ་སྡེ་ / Araya Vimuktisena)
15. 적호(725~790, 728~788/ 寂護 / ཁན་ཆེན་ཞི་བ་འཚོ་ / Shantarakshita)
16. 연화계(740~795 / 蓮華戒 / པད་མའི་ངང་ཚུལ་ / Kamalashila)
17. 아티샤(982-1054 / 燃燈吉祥智 / ཇོ་བོ་རྗེ་ / Atisha Dipankara Shrijnana)
[2] 각 종파 별로 열리는 대(大)기원 법회. 사부대중이 모여 수 일간 기도, 공양, 토론, 명상 등을 하며 세계 평화와 불법(佛法)의 지속 및 흥왕을 기원한다. #[3] 대승 불교(Mahayana buddhism), 테라와다 불교(Theravada buddhism)에 이어 불교 종파 중 규모 3위에 해당한다. Peter Harvey, 《An Introduction to Buddhism: Teachings, History and Practices》[4] 《입보살행론》과 《중론》의 게송은 각각 대승불교의 핵심인 보리심과 공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오온(五蘊)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란 다섯 가지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를 가리킨다. 달라이 라마는 아침마다 《입보살행론》의 게송을 사유하며 모든 중생을 향한 자비와 보리심을 일으키고, 《중론》 게송의 '여래'를 '나'로 바꾸어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지 늘 사유한다고 한다.[5] 김성철, 《중론 개정본 - 산스끄리뜨 게송의 문법 해설을 겸한》 번역 참조.[6] 티베트인은 티베트 자치구 바깥쪽 쓰촨성, 윈난성, 칭하이성, 간쑤성 등지에도 많이 살고 있고, 혹은 티베트인이 아닌 중국의 다른 민족 중에도 티베트 불교를 믿는 인구가 어느 정도 있다.[7] 한국 불교가 중국 불교의 선교(禪敎) 전승에서 유래하였듯이, 티베트 불교도 인도 불교의 현밀(顯密) 전승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티베트 불교=밀교"라는 잘못된 통념 때문에 티베트 불교 내 현교의 존재가 간과되기도 하고, 원류(源流)에 해당하는 인도 밀교가 티베트 불교와 도매금으로 취급당하는 웃지 못할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인도 밀교를 전공한 불교학자 방정란은 인도 밀교와 티베트 불교의 관계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아직까지도 밀교가 단순히 티벳 불교를 지칭하는 것으로 취급받는 일들이 국내학계에서 종종 벌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이 분야가 얼마나 변방의, 소외된 학문으로 오해를 받아 왔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라고도 할 수 있다. 금강승(Vajrayāna) 혹은 진언승(Mantrayāna)이라고 불리는 인도 밀교는 인도 대륙에서 불교가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하는 기원후 12-13세기 무렵까지 가장 번영하고 발전된 형태의 불교의 모습 중 하나였다. 그 영향력은 네팔을 넘어 티벳 등지로 퍼져나갔고, 방대한 양의 인도찬술 밀교 경전과 주석들은 티벳어로 번역되어 밀교사 연구에 중요한 유산이 되었다. 인도 밀교가 티벳 불교의 뚜렷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원천이 된 것은 자명하나, 인도밀교와 티벳밀교의 교집합의 존재가 인도 밀교가 티벳 불교로 포섭된다는 비약으로 전개돼서는 안 된다."방정란, 《[서평] 하루나가 아이작슨&프란체스코 스페라 (공저), 『마이뜨레야나타의 『세까니르데샤』와 라마빨라의 『세까니르데샤판지까』, 산스끄리뜨와 티벳역의 비판 편집본과 영역, 그리고 사본 복제』》[8] 용수보살의 탄생을 예언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불성(佛性)에 관한 10대 경전 중 하나이다.[9] 대승 불교 전통에서는 석가모니가 반열반 이후에도 용수보살을 비롯한 미래의 선지식들로 화현하여 계속 중생 제도를 이어갈 것임을 예언한 구절이라고 해석한다.[10] 이와 유사하게 한역 불전에서도 불교를 내도(內道)/내교(內敎), 불교 외의 종교, 신앙, 사상은 외도(外道)/외교(外敎)라고 지칭한다.[11] 기존에 마하연은 북종선 계열의 선승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남종선 계열 혹은 양자 모두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이수경(성제), 《티벳 불교의 쌈예 논쟁에 대한 재검토》[12] 화상(和尙)이란 승려를 높여 부르는 한자어이다.[13] 윗 열 : 티베트 불교의 장수삼존(長壽三尊)인 백색 따라(Tara), 무량수불(Amitayus), 불정존승모(Namgyalma). 아랫 열 : (左) 아티샤의 수제자인 돔뙨빠 걀웨 중네('brom ston pa rgyal ba'i 'byung gnas), 황재신(黃財神) 잠발라(Jambhala), 돔뙨빠의 수제자 뽀또와 린첸 쌀(po to ba rin chen gsal)[14] 그 밖에 주로 신흥 상인계급과 왕족의 지지를 받아 민중계급에는 불교가 널리 퍼지지 못한 점, 불교의 힌두이즘화(Hinduism 化) 등 여러 가지 원인설(說)이 제기되었다.[15] 모든 번뇌를 자르는 반야이검(般若利劍)과 모든 경전 중에 가장 중요하다는 《반야경》을 지물(持物)로 갖고 있다. 지혜의 화염에 휩싸인 반야이검은 각각 무지(無知)의 어둠을 밝히는 불, 무지의 뿌리를 끊는 검으로 해석한다.[16] 본 문서에서 '소승'은 티베트 불교에서 정의한 불교 4대 종파에 속하는 설일체유부, 경량부를 주로 지칭한다. 대승불교 전통에서 '소승'이라 일컫는 부파는 주로 유부, 경량부 등 북방 상좌부 계열에 해당하며, 현존하는 남방 상좌부 계열과는 무관하다. 소승 대신 성문승(聲聞乘, Śrāvakayāna) 등의 대체어를 사용할 때도 있으나, '대승과 사상적으로 대립하며 역사상 실존했던 불교 부파들'이란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해 소승이란 용어가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대신 현존하는 남방 상좌부 불교의 경우 '상좌부 불교', '테라와다 불교' 등의 명칭으로 최대한 지칭하였다.[17] ཉི་ཚེ་བའི་ཐེག་པ་(니체와 텍빠):  일부승. 단편적인 부분의 승인 소승(小乘) མཐའ་དག་པའི་ཐེག་པ་(타닥빼 텍빠) = ཐེག་པ་ཐམས་ཅད་པ་(텍빠 탐쩨빠):  전체승. 대승(大乘)[18] 물론 티베트 불교 승려 모두가 강원과정 전체를 이수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수준과 여건에 맞는 공부와 수행을 하며 기도, 의식, 행정 등의 직무를 담당하는 승려들도 많다. 또한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재가 불자들을 위해 람림, 로죵 위주로 축약된 교학과정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19] 2016년 9월 2일 동아일보 A28면[20] 샨타락시타(Shantarakshita)의 논서인 《진실강요(Tattvasaṃgraha)》에서 인용한 경전 어구이다. 현존하는 경전(經, sūtra)에서는 1차 출처를 찾을 수 없으나 《Śrīmahābālatantrarāja》라는 밀교 속전(續, tantra)에서는 거의 동일한 어구를 찾을 수 있다.[21] 바수반두, 아상가, 디그나가는 유식학파인데 비해《입중론》등에서 공성(空性)에 대한 유식의 견해를 비판한 짠드라끼르띠는 귀류논증 중관학파에 해당한다.[22]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람림 맹악빠, 람림 문헌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람림 슝빠와 등[23] 비판과 분석, 대론을 강조하는 것 못지 않게 스승과 법맥을 중시하는 티베트 불교에서 자신의 스승이나 자신이 속한 종파의 견해와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대론 과정에서 여러 의견들이 자유롭게 오고 가지만 그런 논의를 자신의 견해라고 규정하지는 않는다. 티베트 승려들에게 그들의 견해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그저 스승으로부터 배운 가르침을 전달할 뿐이며 아직 연구하는 중"이라는 겸손한 답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티베트 불교에서 견해를 정립하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막연한 추측이나 주관적인 선호가 아니라, 철저한 탐구와 분석을 거쳐 진리로 간택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4] 금강승(밀교)도 비판적 분석과 논리로 접근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티베트 스승들에 따라 약간씩 설명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소승의 출리심, 대승의 보리심처럼 금강승은 스승에 대한 믿음과 헌신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겔룩의 다걉 린뽀체는 금강승이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딴뜨라 또한 정신적 기질을 향상시키는 매우 정밀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딴뜨라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딴뜨라 수행 중 어느 한 작은 부분도 들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각 과정들은 서로 매우 강하고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딴뜨라에 내재된 논리를 제대로 이해했을 때, 비로소 소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강력하게 생겨날 수 있으며 이는 맹목적인 믿음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반면 닝마의 종사르 켄체 린뽀체 같은 경우 논리, 분석과 믿음, 헌신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는 논리, 분석같은 지적인 접근을 통해 얻는 앎에는 한계가 있으며 (특히 금강승에서) 믿음, 헌신을 통해 비로소 심오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스승에 대한 헌신이 금강승의 가장 주요한 방편이며, 헌신으로 여타의 수행들을 포괄할 수 있다는 식으로 헌신의 중요성을 보다 강조하는 편이다.# #
금강승에서도 분석과 믿음, 양자(兩者)는 모두 필요한 요소이기에 두 스승의 설명이 완전히 상충된다고 볼 수는 없다. 강조하는 부분이 서로 다르다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한 해석일 것이다. 분석과 믿음은 모두 금강승의 방편에 해당하며 금강승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행자 자신의 불성(佛性)을 증득(證得)하는데 있다.
[25] 사의법(四依法) 중에 가장 오해하기 쉬운 구절이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依法不依人).'이다. 이 구절은 법을 전하는 스승이나 승가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 구절을 잘못 해석하면 사람을 멀리하고 홀로 경전에만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티베트 불교 스승들은 "정법(正法)인지 아닌지 여부로 법을 판단해야 하며, 법을 전하는 사람의 외모, 화술, 학력, 명성, 지위 등 부차적인 요소를 법의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안된다"는 뜻으로 가르치고 있다.[26] 요가(Yoga)는 신체적, 정신적, 영적 수행을 통칭하는 말로 궁극적인 요가의 목적은 마음, 의식의 변화에 있다. 요가는 비단 요가학파 뿐만 아니라 인도 종교와 사상 전반에 걸쳐 통용되는 용어이다.[27] 산스크리트어 ‘acintya’를 번역한 ‘불가사의(不可思義)’는 마음 속으로 헤아려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란 뜻으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월한 매우 놀라운 상태를 일컫는 불교용어다. 경전에서 언급하는 불가사의의 예는 다음과 같다.
1.《증일아함경》: 1) 세계(lokadhātu), 2) 중생(sattva), 3) 용(龍)의 힘(nāgaviṣaya), 4) 부처의 힘(buddhaviṣaya)
2.《앙굿따라 니까야》: 1) 부처의 힘(buddhavisayo), 2) 선정(禪定)의 힘(jhānavisayo), 3) 업의 과보(kammavipako), 4) 세계에 대한 사색(lokacintā)
3.《대보적경》: 1) 업의 힘(karmaviṣaya), 2) 용의 힘(nāgaviṣaya), 3) 선정의 힘(dhyānaviṣaya), 4) 부처의 힘(buddhaviṣaya)
여기서 산스크리트어 'viṣaya'나 빠알리어 'visayo'는 작용, 행위, 세력 등이 미치는 영역, 경계, 범위 따위를 뜻하며 한역(漢譯)에서는 '힘(力)'으로 번역하였다. 그 밖에 《화엄경》, 《유마경》,《대지도론》,《현양성교론》등의 경론에서도 불가사의를 언급한다. # #
[28] 제임스 도티(James Doty), 폴 에크만(Paul Ekman), 에밀리아나 사이먼-토마스(Emiliana Simon-Thomas), 아서 자욘스(Arthur Zajonc) 등[29] 2005년 당시 반대 측 과학자들이 내세운 '과학적 근거 부족'이란 명분은 이후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활성화로 인해 그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가령 불교 명상에서 파생된 마음챙김(mindfulness)의 경우 1966년부터 2021년까지 마음챙김에 관한 16,581건의 출판 논문이 확인되었다. 특히 2006년 이후 출판물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있었다. 출판물의 거의 절반(47%)이 심리학, 약 5분의 1(20.8%)이 정신 의학 출판물이었다. 대부분의 출판물은 서양에서 비롯되었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대표성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의 연구 트렌드(2016–2021)는 메커니즘과 조정자(mechanisms and moderators), 장기간 명상(long-term meditation), 신경과학적 연구(neuroscientific studies), 스마트폰/온라인을 통한 중재 전달(smartphone/online delivery of interventions)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nuradha Baminiwatta & Indrajith Solangaarachchi, 《Trends and Developments in Mindfulness Research over 55 Years: A Bibliometric Analysis of Publications Indexed in Web of Science》[30] 1944~ . 이 사람은 유대인 출신으로 1973년 스리랑카에서 비구계를 받고 불교에 귀의해 승려가 되었다. 2002년부터 미국에 머무르며 저서를 펴내고 있으며, 니까야를 번역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그의 저서로 <아비담마 연구>와 <분노와 논쟁 사회에 던지는 붓다의 말>이 번역되어 있다. #[31]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돈오에 대한 티베트 불교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소수의 티베트 원전들은 점진적 수행의 구조에 한정되지 않는 갑작스럽거나 즉각적인 접근 방식을 언급하고 있다. 나는 마하무드라(Mahāmudrā)를 돈오 수행으로서 명확하게 설명한 까규빠(Kagyupa)의 원전을 읽었다. 사꺄빠(Sakyapa)의 저술들에서는, ‘깨달음과 해탈의 동시성’에 대한 언급을 발견할 수 있고, 닝마빠(Nyingmapa)의 족첸(dzogchen) 수행도 이것에 대해 말한다. 쫑카빠 스님은 동시성과 즉각적인 해탈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쫑카빠는 돈오(頓悟)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원인이 함께 쌓여진 것의 정점이라고 지적한다. 부처님에게서 사제(四諦)에 대한 가르침을 한 번 들은 직후에 공성을 깨달았던 최초의 다섯 제자들의 경우와, 밀라레빠(Milarepa)가 그 생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에 많은 생애 동안에 진지한 수행을 했던 것이 그런 경우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점오를 말하든 돈오를 말하든 간에, 진실한 종교적 발달을 위해서 원인과 조건을 오랫동안 쌓을 필요가 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 툽텐 최된,《달라이 라마의 불교 강의》(주민황 譯)
겔룩 뿐 아니라 닝마, 까규, 사캬 등 모든 티베트 불교 종파들은 사실상의 점수(漸修) 체계를 갖추고 있다. 현교의 경우 삼사부(三士夫) 도차제(道次第)를 강조하는 까담 전승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밀교 역시 온드로(Ngöndro)라고 일컬어지는 기초 수행을 비롯해 생기차제(生起次第), 원만차제(圓滿次第) 등으로 구성된 밀교의 도차제(道次第)를 따른다.
[32] 객진(客塵, གློ་བུར།) 번뇌는 모든 법의 체성(體性)에 대하여 본래의 존재가 아니므로 객(客)이라 하고, 미세하고 수가 많으므로 진(塵)이라 함.[33] 혹은 전자를 자성열반(自性涅槃), 후자를 택멸열반(擇滅涅槃)이라 한다.[34] 여래장을 '유위(有爲)의 여래장'과 '무위(無爲)의 여래장'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유위의 여래장은 부처가 되기 전 마음(의식)의 흐름(심상속心相續)을 뜻하며, 무위의 여래장은 그러한 마음의 흐름의 공성을 뜻한다. 객진번뇌에 의해 가려져 있지만 마음 자체는 본래 청정하며, 공성을 인식하는 지혜로서 마음이 작용하여 해탈에 도달할 수 있기에 '불성', '여래장'이라 한다. 마음이 본래 청정하며(심성본정心性本淨), 번뇌는 우발적인 현상이기에(객진번뇌客塵煩惱) 누구나 번뇌를 제거하여 해탈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본래청정한 의식에 관하여 아함경, 니까야 등의 초기경전에서는 광명심(光明心, Skt: prabhāsvara-citta or ābhāsvara-citta, Pali: pabhassara citta)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Bhikkhu Anālayo,《The Luminous Mind in Theravāda and Dharmaguptaka Discourses》 Wikipedia, 《Luminous mind》[35] 원만보신의 5가지 특징(ལོངས་སྐུའི་ངེས་པ་ལྔ།)은 다음과 같다. ①장소: 18구경천의 윤회하지 않는 정토(구경천밀엄찰토)에서 ②시간: 윤회계가 다할 때까지 영원히 머무심 ③몸: 32상 80종호를 갖춤 ④권속: 대승의 제자로 초지부터 십지의 대보살 ⑤설법: 대승의 법만 설함[36] 3가지 종류의 화신(སྤྲུལ་སྐུ་གསུམ།) ① 최승화신(最勝化身):  보신을 바탕으로 예를 들어 남섬부주에 사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32상80종호를 장엄하여 출현하신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분. ② 사업화신(事業化身):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능공 등으로 나타난 화신. ③ 수생화신(受生化身): 중생구제를 위해 제석천, 사슴, 새, 물, 다리, 나무 등으로 다양하게 태어난 화신.[37] 상좌부 불교를 비롯한 부파불교에서는 부처나 아라한이 번뇌를 완전히 소멸한 후 반열반(般涅槃, parinirvana)에 이르게 되면 물질과 의식 등 온(蘊)들의 연속 또한 완전히 소멸된다고 본다. 반면 티베트 불교를 비롯한 대승불교 일부에서는 윤회를 지속시키는 업과 번뇌 등의 원인이 완전히 소멸되면 오염된 온(蘊) 또한 더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청정하고 자각하는 본성을 가진 마음의 연속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이러한 연속을 단절시킬 다른 원인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티베트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부처의 출생부터 반열반까지의 일생인 12상(相) 혹은 8상(相)은 중생을 교화하여 수행으로 이끌기 위해 보인 방편에 해당하며, 반열반 이후에도 부처의 청정한 마음의 연속은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부처는 오염된 오취온(五取蘊)이 아닌 무루(無漏)의 오온, 혹은 부처의 사신(四身)을 통해 일체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한 제도행을 끊임없이 행하고 있다.[38] 특히 겔룩은 중관의 견지에서 여래장을 공성, 무자성과 동일하다고 해석한다.[39]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상존(常存)하는 현실세계와 중도(中道)의 의의에 대하여 초기불교에서 밀교까지 통시적 관점에서 고찰한 마성스님의 기고문도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마성, 《마성스님의 법담법화 59. 세상을 바라보는 두 시각》 마성스님이 강조한대로 붓다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중도라고 볼 수 있지만, 중도를 증득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긍ㆍ부정을 자재로이 넘나드는 다양한 교설(敎說) 언어의 기능성, 효용성이 간과되어선 안될 것이다. 다만 긍정 혹은 부정에 치우쳐 현실세계를 직시하지 못할 수 있다는 마성스님의 우려처럼, 특정 어구(語句)나 특정 경전의 표면적인 의미에 집착하면 개념적 사고의 극단에서 벗어날 수 없고(심지어 '중도'라는 법(法) 역시 또 하나의 개념적 존재로서 취착 대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무의미한 혼란과 논쟁이 반복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교설이 진정한 방편으로서의 의의를 갖기 위해서는 "말에 의지하지 말고 뜻에 의지하라"는 《대승열반경》의 가르침처럼 학습과 사유, 수행을 통해 교설 언어가 가리키는 본의(本義)가 무엇인지 심도있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40] 이와 관련하여 홍창성 미네소타주립대 교수는 연기, 공 같은 불교의 가르침이 형용사, 동사 등 술어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이러한 술어들의 명사화(nominalization)가 자칫 실체화, 실재화를 유도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홍창성, 《홍창성의 철학하는 삶 34. 허깨비 찾기》 또한 홍창성은 대승 불교의 불성(佛性) 개념이 이름으로만 존재할 뿐 실체로 존재할 수 없음을 논증하면서, 동시에 불성의 기능성에 대해서는 긍정한 바 있다. 홍창성, 《홍창성의 철학하는 삶 46. 불성의 불교적 이해》[41] 동아시아 한문권 불교에서는 《화엄경》에 의거하여 수행론과 결과론을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는 네 단계로 구분한다.[42] 동아시아 불교의 경우 현장에 의해 디그나가의 《인명정리문론》, 상카라스와민의 《인명입정리론》이 한역(漢譯)되었고 이에 관한 주석서인 규기의 《인명대소》, 원효의 《판비량론》등이 저술되었다. 관련된 국내 자료는 다음과 같다.
*《인명정리문론》: 《한글대장경 250 논집부5 입세아비담론 외 (立世阿毘曇論 外)》
*《인명입정리론》: 《니야야빈두 외》, 《인명입정리론의 분석》, 《인명입정리론 산스끄리뜨문 번역》( 《인명입정리론》에 관한 김성철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의 강의가 유튜브에 공개되어 일반인도 청강 가능하다. 김성철 동국대(경주) 교수 불교인식논리학 강의)
*《판비량론》: 《중변분별론소 제3권 외》, 《원효의 판비량론(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로 풀어본)》, 《원효의 판비량론 비교 연구》, 《원효의 판비량론 기초 연구》, 《원효 판비량론의 신역주》
[43] 상부: (左) 석가모니불 (右) 금강살타보살. 금강수보살은 모든 번뇌와 마라를 항복시키는 분노존(忿怒尊, krodhakaya)의 형상을 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금강저, 왼손에는 갈고리를 들고 있다. 금강수보살은 대세지보살 혹은 금강살타보살의 분노존으로 알려져있다. 분노존의 분노는 번뇌로서의 분노가 공성(空性)의 지혜에 의하여 중생을 위한 대자비로 전환된 형태이다. 이 경우 분노는 오염을 여읜 청정하고 강력한 에너지로 작용한다.[44] 한국의 밀교는 조선조 불교 탄압으로 인해 독자적인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른 종단들과 함께 통폐합되어 사라졌다. 때문에 밀교의 영향을 받은 일부 의식, 재례, 도상, 법구 등이 전해질 뿐이다. 현재 한국에 밀교를 표방하는 진각종, 총지종 등의 종단들이 있으나 이들은 모두 근현대에 새로 창종된 종단들이다.[45] 자성신(自性身), 법신, 보신, 화신[46] 지금강불의 짙은 푸른색은 허공같이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의미하고, 금강저와 금강령의 교차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을 의미한다. 84명의 마하싯다는 고대 인도의 대표적인 밀교 대성취자들이다.[47] 대승 불교의 불신론(佛身論)에 따르면 석가모니불은 교화 대상인 중생의 근기를 따라 화현한 화신불(化身佛)이다.[48] 업을 짓고 쌓는 힘이 왕성하고 쉽게 성숙해서, 생의 전반에 쌓은 업이 생의 후반에 익는 땅을 말한다.[49] 문수보살이 성불하여 이룬 부처[50] 구루 빠드마삼바와가 생전에 자신과 닮았다며 가피를 내리고 "이제 이 불상은 나 자신과 다름없다"고 한 불상이다. 쌈예 사원에 있었으나 문화대혁명 때 파괴되었고, 인도 시킴(Sikkim) 국왕의 모후가 찍은 사진만 전해진다.[51] 특히 겔룩, 사캬의 경우가 그렇다.[52] 원만차제의 수행단계에는 신적(身寂), 어적(語寂), 심적(心寂) 셋으로 구성된 삼적(三寂)이 있다. 여기서의 적(寂)은 범부의 신ㆍ구ㆍ의 삼문(三門)의 범속한 견문각지(見聞覺知)와 집착을 벗어나서 본존의 청정한 신ㆍ구ㆍ의 삼금강(三金剛)을 성취함을 말한다. 이 중 심적은 전신의 생명의 바람들을 심장의 불괴명점(不壞明点) 속으로 완전히 용해시켜서, 일체의 분별들이 소멸된 법신(法身)의 정광명(淨光明)을 발생시켜 여래의 의금강(意金剛)을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양짼 가외로되,《밀교의 성불 원리》(중암 譯)[53] 바라밀승은 지혜와 방편을 합일하는 법에 대해 "지혜는 보시 등 이전에 행했던 힘의 영향을 받고, 방편은 공(空)에 대한 명상을 했던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바라밀승의 수행자들은 마음이 공성과 계합한 연후에 ‘모든 법이 공하다’는 관조력을 잃지 않고 보시, 지계, 인욕을 닦아야 하며, 동시에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보리심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공성을 관(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라밀승에서 말하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이다. 그러나 금강승의 관점에서 볼 때 바라밀승에서 말하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은 완벽한 합일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독립된 두 의식에 해당한다.[54] 보리(菩提)와 열반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선근공덕 (善根功德)[55] 예를 들어 "진언이나 사다나(sadhana, 본존 성취의궤)를 하루에 몇 번 해야 된다."라는 식으로 관정을 준 아사리가 제자에게 수행 의무를 줄 때가 있다. 만일 이때 수행을 하기로 발원하고 약속했다면 꼭 준수해야 한다.[56] 불교 교단의 스승의 총칭[57] 부처가 제자의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미래에 제자가 성불할 것을 예언하는 행위[58] 5부대론을 배우는 커리큘럼 역시 나란다 사원의 교육과정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현장(玄奘), 의정(義淨) 등 당나라 구법승(求法僧)들의 기록을 보면, 그들이 나란다 사원에서 유식, 인명, 구사 등을 배웠다는 내용이 나온다.[59]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60] 자량도, 가행도, 견도, 수도, 무학도[61] 앞줄 좌(左)부터 닝마의 뒤좀(Dudjom) 린뽀체, 까르마 까규의 제16대 까르마빠(Karmapa), 사캬의 제41대 사캬 티진(Sakya Trizin), 겔룩의 제14대 달라이 라마(Dalai lama), 링(Ling) 린뽀체, 티장(Trizang) 린뽀체, 바쿨라(Bakula) 린뽀체.[62] 좌(左)로 부터 1열: 보신불 금강살타(Vajrasattva), 법신불 보현왕여래(Samantabhadra), 화신불 가랍 도제(Garab dorje). 2열: 법신 아미타불, 보신 관세음보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빠드마삼바와는 법ㆍ보ㆍ화 삼신(三身)의 관계로 알려져 있다). 3열: 예세 초겔(Yeshe tsogyal), 빠드마삼바와의 적정존(寂靜尊) 구루 촉게 도제(Guru Tsokyé Dorje), 만다라와(Mandarava). 4열: 빠드마삼바와의 분노존 구루 닥뽀(Guru Dragpo), 호법존 싱하무카(Simhamukha) 5열: 샨타락시타(Shantarakshita), 티송 데첸(Trisong detsen)[63] 《티베트 사자의 서》로 알려진 《바르도 퇴돌 첸모》도 까마가 아닌 뗄마 전승에 속한다. '바르도 퇴돌 첸모'란 '중음(中陰, 죽음과 환생 사이의 시간)에서 듣는 것만으로 얻게 되는 해탈'이란 뜻이다.[64] 19세기 티베트 불교에서 일어난 초(超)종파 운동[65] 가장 널리 알려진 족첸 수행 전승 중 하나인 롱첸 닝틱(Longchen Nyingthig)을 발견하고 홍포한 직메 링빠(Jigme Lingpa)의 4명의 수제자들을 일컫는다. 4명의 이름에 모두 "직메"가 포함되어 일명 "4명의 직메"라 일컫는다.[66] 좌(左)로부터 1열: 틸로빠(Tilopa), 지금강불(Vajradhara). 나로빠(Naropa). 2열: 성취자(siddha) 마이뜨리빠(Maitripa), 샹빠 까규(Shangpa Kagyu)의 창시자 케둡 큥뽀 낼죨(Kedrub Kyungpo Naljor). 중앙: 마르빠(Marpa). 3열: 밀라레빠(Milarepa), 감뽀빠(Gampopa). 4열: 까르마 까규(Karma Kagyu)의 창시자 두숨 켄빠(Dusum Kyenpa), 팍두 까규(Pagdru Kagyu)의 창시자 팍모 둡빠(Pagmo drupa).[67] 로짜와(lotsawa)는 '역경사'라는 뜻의 티벳어이다.[68] 제17대 까르마빠 직위를 둘러싼 분쟁이 있다. 본문에 소개된 오겐 틴레 도제 뿐 아니라 틴리 타예 도제(Phrin las Mtha' yas Rdo rje)라는 인물 또한 자신이 제17대 까르마빠임을 주장 중이다. 까르마 까규의 2인자인 제14대 샤마르빠(Shamarpa)는 틴리 타예 도제를 까르마빠로 인정한 반면(본래 까르마빠와 샤마르빠는 겔룩의 달라이 라마와 빤첸 라마처럼 서로의 환생자를 찾아주는 관계였다), 타이 시투(Tai situ) 린뽀체, 고시르 걜찹(Goshir Gyaltsab) 린뽀체를 비롯한 다른 까르마 까규의 주요 지도자들과 제14대 달라이 라마, 중국 정부는 오겐 틴레 도제를 까르마빠로 인정하였다(중국 정부에게 인정 받은 점 때문에 인도 정부는 2000년 당시 인도로 망명한 오겐 틴레 도제에게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2011년 중국의 자금이 까르마빠 측에 전해졌다는 혐의로 오겐 틴레 도제를 중국의 스파이로 기소한 바 있다. 그의 사원에서 중국 위안화가 발견되었지만 이는 나중에 합법적인 기부금으로 판명 났다. 인도 정부와의 갈등으로 인해 2015년 이후 오겐 틴레 도제는 인도를 떠나 현재까지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서구권에서 체류 중이다). 현재 까르마 까규 구성원 중 약 80%는 오겐 틴레 도제, 약 20%는 틴리 타예 도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과거 양측은 까르마빠가 주석(主席)하는 까르마 까규의 본산인 룸텍(rum theg) 사원의 소유권을 두고 폭력 사태와 법정 소송을 겪으며 극한 대립에 치달은 적도 있으나, 2018년 10월 프랑스에서 두 까르마빠가 처음으로 직접 대면하여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2020년에는 사망한 제14대 샤마르빠의 환생자 선정에 대해 함께 의논하는 등 어느 정도 갈등이 진정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Wikipedia, 《Karmapa controversy》[69] 까르마빠 환생자 전승은 티베트 최초의 환생자 전승으로, 따라서 가장 오래된 환생자 전승이기도 하다. 자세한 설명은 티베트 불교/환생자 제도 항목 참조.[70] 2002년 미국 위스콘신-메디슨 대학에서 뇌신경과학자들이 자비명상(compassion meditation) 중인 밍규르 린뽀체의 EEG와 fMRI의 변화를 측정한 결과 감마파의 증대와 뇌세포 간 감마파의 동기화 증대를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실험 결과로 인해 당시 실험 대상자로 참가한 밍규르 린뽀체와 마티외 리카르(Matthieu Ricard) 등은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71] 사캬의 실질적인 성립은 꾄촉 겔뽀의 손자인 사첸 꿍가 닝뽀부터 시작된다. 지금강불 아래에 꿍가 닝뽀를 위시한 다섯 명의 사캬 창시자가 있다. 1. (가운데) 사첸 꿍가 닝뽀(Sachen Kunga Nyingpo) (1092–1158) 2. (왼쪽 위) 소남 체모(Sonam Tsemo) (1142–1182) 3. (오른쪽 위) 제쭌 닥빠 갤첸(Jetsun Dragpa Gyaltsen) (1147–1216) 4. (왼쪽 아래) 사캬 빤디따(Sakya Pandita) (1182–1251) 5. (오른쪽 아래) 도괸 최걀 팍빠(Drogön Chögyal Phagpa) (1235–1280)[72] 1열: 석가모니불. 2열: (左) 쫑카빠의 두 수제자인 제2대 간덴 티빠(dga’ ldan khri pa) 겔찹 제(rgyal tshab rje), 초대 판첸 라마(pan chen bla ma) 케둡 제(mkhas grub dge). 중앙: 쫑카빠(Tshong kha pa) 3열: (左) 문수보살, 문수보살의 분노존 야만따까(Yamantaka), 백색 따라.[73] 링 린뽀체 전승은 겔룩의 주요 환생자 전승 중 하나이다.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자 제97대 간덴 티빠로 잘 알려진 제6대 링 린뽀체 외에도, 초대 링 린뽀체는 제48대 간덴 티빠, 제2대는 "에르티니 달라이 호토투(Ertini Dalai Hothothu)" 타이틀, 제4대는 제75대 간덴 티빠이자 제11대 달라이 라마의 스승, 제5대는 샤르빠 최제(간덴 사원 내 싸르체 강원의 방장이자 간덴 티빠의 후보직)이자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다.[74] 정치적 이유가 주(主)이고 사상적 문제는 부수적이다. 17세기 중반 제5대 달라이 라마와 그를 지원하는 몽골 세력이 중앙 티베트인 짱(Tsang) 지역 지배권을 두고 조낭과 충돌하면서 조낭은 겔룩 세력권인 짱 지역에서 축출된다.[75] '대중관'이란 표현은 타공론자(gzhan stong pa) 뿐만 아니라 쫑카빠와 같은 자공론자(rang stong pa)들도 "위대한 중관(혹은 중도)"라는 의미로 중관 사상을 예찬할 때 종종 사용하므로 티베트 불교에서 반드시 대중관이 타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76] 될뽀빠는 《보성론》 등 《미륵오론》과 《승만경》등 여래장 계열 경전 외에도 나가르주나의 《중론》, 《찬법계송》을 자신들의 논거로 삼았다. 그들은 《찬법계송》의 "화완포(火浣布:타지 않은 직물)가 불 속에 들어가면 더럽혀지지 않고 때를 제거하면 베는 본래같이 더욱 빛나는" 비유처럼 '지혜의 불이 객진번뇌를 태워도 광명심 혹은 법계는 불변하다'는 해석으로 타공설을 뒷받침하였다. 물론 나가르주나의 이름을 가탁한 다른 수많은 논서들처럼, 나가르주나의 실제《찬법계송》저술 여부는 확실치 않다.[77] 자공-타공 논쟁은 이론적, 사변적 성격이 강한 반면 타공에 영향을 준 족첸, 마하무드라, 깔라짜끄라 등은 실천적, 체험적 성격이 강한 밀교 전승이기 때문에 자공, 타공의 구분에 연연하지 않고 족첸, 마하무드라, 깔라짜끄라 수행을 하는 경우도 많다.[78] 엄밀히 말해 겔룩과 조낭 내에서도 견해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조낭 내에서도 될뽀빠와 따라나타 간의 견해 차이가 있고, 겔룩 내에서도 타공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또한 특정 견해에 천착하지 않는 실용주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있는데, 가령 타공을 주창한 될뽀빠는 명상 중에 자공의 견해를 취하는 것이 개념의 제거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79] '타공'은 될뽀파 등에 의해 새로이 창안된 용어이며 이전 인도, 티베트 문헌에서는 그 용례(用例)를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공이란 용어는 겔룩의 종파주의에 대항하여 서로 다른 종파들 간의 사상적 유사성을 강조하는 일종의 슬로건처럼 여러 종파에서 널리 통용되었다. 대체적으로 타공은 밀교에서 주로 논하는 미세한 수준의 의식 상태를 가리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타공의 세부적인 의미는 이미 서술하였듯이 종파, 전승, 인물마다 차이가 있다.[80] 물과 우유는 서로 화합하되 일치하지 않는다. 《섭대승론》에서도 청정한 법계(法界)의 흐름인 바른 문훈습(聞熏習)과 근본식인 아뢰야식이 서로 공존하는 양상을 물과 우유의 화합에 비유하였다. 인도 설화에 등장하는 거위 '함사'(haṃsa)가 물과 함께 섞인 우유 중 우유만을 골라마시는 것처럼, 《섭대승론》에서는 근본식은 멸하더라도 근본식이 아닌 문훈습과 같은 청정한 종자는 멸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81] 조낭빠 깔라차끄라 딴뜨라, 닝마빠 족첸의 체험적 공성과 시간의 개념을 비교하고 이를 들뢰즈의 시선에서 바라본 티베트학자 조석효의 논문도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조낭의 될뽀파가 깔라짜끄라와 여래장을 결합하여 '항상한 실재'를 상정한 반면 닝마의 롱첸빠는 족첸과 귀류논증 중관을 결합하여 '궁극적인 것의 비결정성(불확정성)'을 주장한 점, 조낭은 동시적 수행을 부정하고 점진적 수행만을 인정한 반면 닝마는 동시적 수행을 강조하는 기조 속에 점진적 수행이 병존하여 둘의 경계가 불분명한 점 등이 두 교파의 주요한 차이점이다. 조석효, 《공성과 아이온의 시간: 티벳 불교 수행 해석의 한 가능성》 참고로 닝마의 주요 사상가 중 롱좀빠(rong zom pa)는 공성, 롱첸빠(klong chen pa)는 현상을 보다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고 후대의 미팜은 둘의 견해를 종합한 공성과 현상의 불가분(Skt.yuganaddha, Tib.zung 'jug)을 확립했다고 평가받는다.[82] 자공론자들은 스스로를 '자공론자'라고 칭하지 않는다. 타공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관학파(dbu ma pa)와 그 외 다른 견해를 가진 자들이 존재할 뿐 자공과 타공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타공은 왜곡된 중관 내지 중관 외적(外的)인 견해에 해당된다고 말한다.[83] 중국 삼계교(三階敎)에 의한 찬술설, 혹은 삼계교를 믿는 신라인 승려에 의한 찬술설도 제기되었다.[84] 중화민국 22년(1933) 중국 섬서성 서안(西安) 흥교사(興敎寺) 입석(立石) 탁본. 원주 고판화박물관 소장. 다소 기이해보이는 모습은 원측에 대한 당(唐), 송(宋) 불교계의 반감이 반영된 것이란 지적도 있다. 원측의 서명파(西明派)는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을 주장했던 규기(窺基)의 자은파(慈恩派)와 사상적으로 대립하는 사이였다.[85] 썸네일에 나온 탕카 속 원(元)의 제후 복장을 한 인물이 충선왕일 것으로 추정된다.[86] 명(明)의 황제들은 까규, 사캬, 겔룩의 지도자들에게 각각 대보법왕(大寶法王), 대승법왕(大乘法王), 대자법왕(大慈法王) 등의 법왕 칭호를 하사하며 국사(國師)로 대우하였다. 이 중 까르마 까규의 수장 까르마빠에게 수여된 대보법왕의 서열이 가장 높았다. 명의 티베트 불교에 대한 존숭에는 원(元), 청(淸)이 그러했듯 종교적 이유 뿐 아니라 이민족인 티베트를 통제하려는 정치적인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락제는 티베트 불교 내 다른 종파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까르마빠가 속한 까르마 까규를 선양한다는 명목으로 티베트에 군대를 파견하고자 했으나, 제5대 까르마빠는 다양한 종파의 필요성을 설파하며 영락제의 제안을 거절한다. 덕분에 명대(明代) 300년 가량 티베트는 중원의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87] 명대(明代) 이전에는 원세조 쿠빌라이 칸이 사꺄의 지도자 도괸 최걀 팍빠(ʼgro mgon chos rgyal ʼphags pa)에게 '대보법왕'(大寶法王)이란 동일 칭호를 수여한 바 있다. 청대(淸代)에 이르러서는 겔룩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나 사캬 빤디따의 환생으로 알려진 빤첸 라마도 세간에서 '대보법왕'이란 칭호로 일컬어졌다. 각 종파의 지도자가 '대보법왕'으로 일컬어진 시기(사꺄-까르마 까규-겔룩 순)와 해당 종파가 종교적, 세속적 권력의 우위를 점했던 시기가 대략 일치한다. 현대 중화권에서 '대보법왕'은 주로 까르마 까규의 지도자인 까르마빠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88] 제5대 까르마빠는 1403년 영락제의 초청으로 티베트에서 출발하여 1407년에 이르러서야 난징에 도착하는데 그 때 그의 나이 만 23세였다. 안노생은 1406년 명의 사신으로 파견되어 1407년 조선으로 돌아온다.[89] 찬불시 전문(全文)이 태종실록 동일 기사에 수록되었다.#[90] 실록 원문의 '마정수기언'(摩頂授記焉)을 '이마를 땅에 대고 기(記)를 받았다'라고 옮긴 국사편찬위 조선왕조실록 DB의 번역은 명백한 오역으로 사료된다. '마정수기'(摩頂授記)란 부처가 제자의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미래세에 성불(成佛)할 것을 예언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고유 명사를 일반 명사처럼 풀어 해석하는 오류는 실록 번역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문제점 중 하나이다. 조선왕조실록번역의 문제점 문단 참조.[91] 실제 까르마빠가 마정수기(摩頂授記)를 주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티베트 불교에 마정수기를 주는 의례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설사 까르마빠가 생불(生佛)의 자격으로 마정수기를 준다 하더라도 일반 대중들에게 무분별하게 수기를 내릴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마정수기는 부처가 보살의 정수리를 만지며 미래세(未來世) 성불(成佛)을 알려주는 예언적 행위이며, 수기를 줄 때 보통 성불하는 시기와 성불 후 갖게 되는 부처의 명호(名號), 불국토의 이름, 수명, 권속 같은 자세한 사항도 함께 일러주는 경우가 많다. 티베트 불교에도 간혹 스승이 제자의 성취를 예언하는 일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뛰어난 근기를 가진 제자에 한정된다.
이는 라마(lama)들이 상대방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대어 가피를 주는 일상적인 행위로서 '손으로 주는 관정'이란 뜻의 착왕(phyag dbang)을 동아시아의 불교 상식에 의거하여 마정수기로 해석한 것이라고 짐작된다. 《열하일기》에도 빤첸 라마가 그를 친견한 자의 이마에 손을 대어준다는 설명이 등장하며, 현재까지도 린뽀체들은 머리를 조아려 예를 표하는 신도들에게 답례처럼 착왕을 주곤 한다(심지어 '발로 주는 관정'이란 뜻의 샵왕(zhabs dbang)도 있는데, 가령 대중이 너무 많이 운집한 경우 고승이 대중들 위를 걸어가며 발로 가피를 줄 때도 있다). 착왕에는 마정수기처럼 미래세에 결정코 성불한다는 예언의 의미는 없다. 밀교의 수행 요건 문단에서 서술하였듯이, 티베트 불교 문화에 익숙치 않은 동아시아에서 관정이나 착왕을 마정수기로 착각하는 일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종종 반복되고 있다.
[92] 실록에 등장하는 조관(朝官)과 사인(士人), 즉 관료와 관직이 없는 지식인들이 명나라 사람인지 조선 사절단인지 여부는 실록의 문장만으로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실록의 전후 기사에도 상황을 유추할만한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 사대부들의 배불적(排佛的)인 성향을 고려하면 명의 관료, 지식인들을 가리킬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또한 '조관과 사인이 모두 달려갔다'(朝官士人皆奔趨)는 문장에 쓰인 '분추'(奔趨)란 표현은 '분추경리'(奔趨競利)라는 사자성어가 있듯, 이익을 위해 권력자의 거처를 분주히 드나드는 모습을 묘사하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표현이다. 따라서 실록의 해당 문장은 조선 사절단의 행적을 묘사한 문장이라기보다는, 황제의 공경과 믿음에 편승하여 까르마빠와의 친교를 바라던 당시 명나라 지배층의 세태를 묘사한 문장에 더 가깝다고 짐작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억불(抑佛) 정서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조선 초기란 점(태종의 경우 강도 높은 억불 정책을 시행하였고 세종의 집권 전반기까지 그러한 억불 기조가 이어졌지만, 집권 후반기의 세종을 비롯하여 여러 조선 전기 군주들은 불교에 대해 유화적이거나 호불(好佛), 숭불(崇佛)의 면모를 보이며 조선 왕실의 불교신앙을 면면히 이어왔다. 또한 사대부들의 경우에도 주류의 불교 탄압 이면에 일부에서는 불교계와 교류하며 국왕의 명으로 사찰에서 재(齋)를 지내고 경전 편찬, 사찰 건립 등의 불사(佛事)를 지원하는 등 조선 전기 사대부들의 불교관을 억불 일색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김성철, 《한국 종교의 정치종속성과 불교의 미래》), 황제의 의사에 민감한 사절 신분이라는 점, 조선 사신들이 예부(禮部)의 명으로 두 차례나 어제(御製) 찬불시(讚佛詩)를 차운(次韻)하여 올렸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조선 사절단을 지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93] '반선액이더니'는 강희제가 제5대 빤첸 라마에게 수여한 칭호로, 역대 빤첸 라마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반선'은 빤첸 라마의 '빤첸'이라는 티베트어('학자'를 뜻하는 산스끄리뜨어 '빤디따'(paṇḍita)와 '위대한'을 뜻하는 티베트어 '첸모'(chen mo)의 합성어), '액이더니'는 몽골어 단어를 그대로 빌린 만주어로 '보배'(珍寶)를 뜻하는 '에르데니'(erdeni)를 각각 음차(音借)한 한자어이다.[94] 밀교 종단인 대한불교 진각종이 주관하여 티베트 불교학자 최로덴이 《마니 깐붐》을 한국어로 완역한 바 있다.[95] 면(綿), 비단 아플리케(Appliqué) 등으로 만든 티베트 전통 불화(佛畵)를 가리킨다. 탱화의 어원이 탕카라는 설이 있다. 국내에는 화정박물관에 티베트 탕카 컬렉션이 있다.[96] 2014년 대대적인 출범 이전에도 '달라이 라마 방한준비위원회'가 있었다고 한다.[97] 이와 별도로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법회 법문을 한국인들에게 처음으로 통역한 사람은 안성 법등사 주지 설오스님이다. 스님 본인의 발언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 측의 공식 사료에도 기록된 사실이라고 한다. 1995년 당시 설오스님도 대만 유학 후 인도에 체류한 지 두 달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티베트어 직역이 아닌 중국어 통역을 거친 중역(重譯)으로 법문을 통역하고 중국어 법본을 번역했다고 한다.#[98] 달라이 라마의 지시로 인도 다람살라에 설립된 대학으로, 티베트 전통 강원 체계를 따르고 있는 승가대학이다. 일반 강원과 달리 재가자나 출가를 늦게 한 승려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어 있다는 점, 티베트 불교 내 초종파 운동인 리메(ris med)의 정신을 계승하여 겔룩 외에 다른 종파들의 논서를 강독하는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는 점 등이 특징이다.[99] 티베트 불교에서 법보를 중시하는 이유는 실제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불보는 법을 보여주고 가르쳐 준 스승, 승보는 법을 보전하고 함께 수행하는 도반이다.
신행(信行)생활에 있어서도 법보를 특히 중시하여 경전 위에는 불상도 올려놓지 않으며, 함부로 경전을 찢고 접거나 침을 묻히는 등 경전을 훼손하는 행위, 경전을 맨바닥에 내려놓거나 깔고 앉는 등 경전을 경시하는 행위 등을 매우 불경하게 여긴다. 이익을 위해 경전을 사고 파는 행위 역시 금기시되었고 지금도 원칙상으로는 그러하다.
하지만 중국의 티베트 병합 후 상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경전, 불상, 불화, 법구 등을 취급하는 시장이 발달하였고, 자본주의 체제 하의 현대 사회에서 시장 유통을 거치지 않고 경전을 구하는 일이 과거보다는 힘들어진 실정이다. 경제적인 이윤을 추구할 의도가 없더라도 시장의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통해 경전이 적재적소에 보급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이미 전세계 불교계가 출판시장을 통해 불교서적을 보급하고 있다.Alex John Catanese, 《Buddha in the Marketplace: The Commodification of Buddhist Objects in Tibet》
[100] 티베트 망명정부의 주한 대표부 역할을 하는 티베트 하우스 코리아(Tibet House Korea)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101] 2016년 중국 정부에 의한 대대적인 철거와 인원 제한 전까지 중국 내 최대 티베트 불교 사원이었던 닝마 오명불학원의 지도자 중 한 명. 중국 본토 등 중화권에서는 달라이 라마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티베트 불교 스승이며 서구권에서도 역시 잘 알려져 있다.[102] 한국어 전용 채널은 아니지만 2021년 '춘계 아니 찌최' 법문부터 한국어 동시 통역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한국어 통역의 상시 제공 여부는 고지된 바 없다.[103] 툽텐 진파는 승려일 당시 겔룩빠 강원 최고 학위인 '게쉬 하람빠' 학위를 받았고, 이후 케임브리지대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04] 용수사 주지 우르겐 스님은 2003년 한국을 첫 방문하고 2008년 용수사를 개원하여 15년 간 국내 네팔 이주민 지원 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2020년 7월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쓰러져 열흘 후 의식을 회복하였지만 반신마비 후유증을 겪게 된다. 용수사 운영위원회, 능인선원, 마하이주민단체협의회,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 국제포교사회, 한국다문화불교연합회 등 여러 단체에서 우르겐 스님을 후원하였으나 한국에서의 치료와 재활을 지속하기 힘들어져 결국 스님은 2021년 9월 네팔 귀국행을 결정하였다. 현재 파상 스님이 대신 용수사에 주석 중이고 서울 텍첸사의 쿤상 스님도 도움을 주고 있지만 우르겐 스님의 공백을 메꾸는 일은 쉽지 않다고 한다. # # 네팔 출신의 설래스님(타망 다와 치링 스님)이 우르겐 스님을 대신하여 용수사에서 네팔 이주민들을 지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설래스님은 카트만두 UDC monastery에서 출가 후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다시 사미계와 비구계를 수지하였고 동국대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국내 네팔불자모임을 통한 이주노동자 돌봄의 공로가 인정되어 2022년 '특별공로자' 자격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 #[105] 이 중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신자 수는 10만~20만여 명 정도이다.[106] 아이러니하게도 처이발상도 어린 시절 티베트 불교의 승려였고, 그가 죽을 때까지 쓴 이름 '처이발상'도 승려 시절에 받은 법명이었다.[107] 데뿡 사원에는 로셀링(Loseling), 고망 두 강원이 있다. 로셀링에 2,500여 명, 고망에 2,000여 명의 승려가 소속되어 있다.[108] 상좌부 불교 문화권인 미얀마와의 접경지대에 사는 경우에는 상좌부 불교를 믿기도 한다.[109] 자세한 내용은 종교적 소수자, 타타르의 멍에 문서 참조[110] 울란우데 근처의 이볼긴스키 사원(Ivolginsky datsan)과 치타 근처의 아긴스코예 사원(Aginskoe datsan)[111] 정교회,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112] 서구권 화교들과 달리 기독교 중에서는 정교회 세가 강하고 불교 중에서는 티베트 불교 세가 강하다.[113] 케냐, 남아공, 짐바브웨[114] 잘 들어보면 티베트어임을 알 수 있다.[115]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폴란드 등 다수의 유럽국가에 티베트 불교 사원과 수행센터가 있다.[116] 유명 헐리우드 배우 리처드 기어, 우마 서먼, 스티븐 시걸 등이 대표적인 미국의 티베트 불교 신자다. 리처드 기어는 달라이 라마의 제자이고 한 때 출가를 결심했을 정도로 독실한 티베트 불교 신자이다.
우마 서먼은 부친이 미국의 대표적인 티베트 불교학자인 컬럼비아대 교수 로버트 서먼(Robert Thurman)이다. 우마 서먼의 이름 중에 '우마(Uma)'란 퍼스트네임은 대승불교 사상인 '중관'을 뜻하는 티베트어이고 미들네임인 까루나(Karuna)는 '대비심'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이다.
스티븐 시걸은 티베트 불교도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1997년 닝마의 주요 지도자인 뻬놀(Penor) 린뽀체로부터 17세기 닝마의 뗄된이었던 충닥 도르제(Chungdrag Dorje)의 환생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러나 그의 환생자 신분에 대해서는 미국 불교계 내에 논란이 있다. 미국의 주요 불교 잡지 '트라이시클'(Tricycle)의 창립자 겸 편집자 헬렌 트워코프(Helen Tworkov)는 스티븐 시걸이 뻬놀 린뽀체의 사원인 쿤장 뺄율 최링 센터(Kunzang Palyul Choling center)에 기부를 함으로써 환생자 신분을 매수하였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117] 달라이 라마는 2018년까지 25차례에 걸쳐 일본을 방문하였으며(고령으로 인해 사실상 2018년 방문이 달라이 라마의 마지막 방일(訪日)이 되었다), 도쿄에 티베트 망명정부의 대표사무소를 두고 있다. 미국, 인도와 마찬가지로 일본(특히 일본 내 우익)도 대중(對中) 견제 정책의 일환으로 티베트 망명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 중이다. 또한 티베트 불교처럼 밀교 전승을 계승한 일본 진언종(眞言宗)의 본산 고야산(高野山)에 달라이 라마가 수 차례 방문한 바 있다.[118]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 티베트 불교 센터가 있다.[119] 대승불교권 국가인 베트남인들과 동남아의 화교들 위주로 티베트 불교도들이 존재한다.[120]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다.[121] 티베트 고위 승려중 처음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대표적인 저서로 《The tibetan book of living and dying》이 있다.[122] 김성철 동국대(경주) 교수와 김성철 금강대 교수는 동명이인 관계인 저명 불교학자들이다. 전자는 중관학의 대가, 후자는 유식학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123] 삼론학의 영향을 차치하더라도, 《열반경》, 《보성론》, 《불성론》등 불성ㆍ여래장 계통 문헌들에서 불성이 무아, 공성, 연기, 중도와 동치(同値) 관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124] 공성으로 단견을 여의고 연기로 상견을 여읨은 귀류논증 중관학파만의 특별한 법이다. 다른 학파들은 공성으로 상견을 여의고 상호의존하여 발생하는 연기로 단견을 여읜다고 말한다. 게시 소남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연기법을 이해하는 것이 공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어 실체가 있다는 견해인 상견을 없애고, 실체가 없다는 공성을 이해함이 인과와 가립(假立)의 연기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어 아무 것도 없다는 견해인 단견을 없애게 한다.[125] 물론 일반적으로 원효는 자신이 주석하는 경전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보는 경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반야경》을 요의경으로 확정한 티베트 불교와 달리 원효의 교판관은 우연적이고 중층적이다. 《대혜도경종요》에서 드러나는 원효의 교판관에 대해 불교학자 장석영은 "《반야경》을 《화엄경》과 동등한 자리에 놓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자 했던 원효의 교판론은, 단지 《반야경》만이 아니라 붓다가 설한 어떠한 경전이라도 관점과 입장에 따라 최상의 지위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화엄경》은 다만 그러한 경전의 가치론적 상대성을 논증하기 위한 대대(待對)의 기능을 담당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원효가 추구하고자 했던 대·소승, 일·삼승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교판관일 것이다."라고 해석하였다. 장석영, 《『대혜도경종요』에 있어서의 원효의 교판관 연구》[126] '자성으로 현현한다'는 말은 의지하여 발생한 일체법이 본래 무자성이지만 마치 자성이 있는 것처럼 각각의 차별상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단, 소지장(所知障)을 제거한 부처의 경우 자성으로 현현하는 것조차 사라지고 본래청정한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있는 그대로 여리(如理)하게 볼 수 있다.[127] 아집(我執)의 습기(習氣)가 남아있으면 이종현현(二種現顯)이 일어난다. 이종현현이란 세속제와 승의제가 전혀 별개처럼 나타나 보이는 현상이다. 또 세속제를 직관하는 동안에는 승의제를 보지 못하고, 승의제를 직관하는 동안에는 세속제를 직관하지 못한다. 세속제와 승의제를 동시에 직관하는 능력은 오직 부처님만이 갖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부처님은 돌멩이를 눈으로 보고 있는 순간에도 그와 동시에 돌멩이의 공성을 눈으로 보듯이 생생하게 직관한다는 것이다. 아집의 습기와 이종현현의 착란을 소지장이라 한다. 소지장은 다시 말해 일체종지(一切宗智)를 성취하는데 주로 방해가 되는 장애라는 뜻이다. 범천,《다 함께 잘 사는 길(대승불교 교학체계)》[128] 족첸에서는 마음을 일반적인 마음인 셈(sems)과, 공성과 순수한 앎이 결합된 마음의 본성인 셈니(sems nyid)로 구분한다. 셈은 분별하는, 이원적(二元的) 마음이며, 이와 달리 셈니는 분별을 여읜, 비이원적(非二元的)인 마음이다.[129] 사캬의 대학자 고람빠(go rams pa)는 겔룩의 쫑카빠와 조낭의 될뽀빠가 주장한 공관(空觀)을 각각 허무주의와 영원주의의 양 극단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인도의 중관 텍스트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공성은 '무자성일 뿐만 아니라 네 가지 개념적 극단을 여읜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고람빠의 해석은 사캬 뿐 아니라 닝마, 까규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개념적 정의를 거부하는 방식이 닝마, 까규의 명상 수행 전통과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겔룩에서는 고람빠의 견해가 너무나 많은 대상을 부정한다고 비판하였다. 만약 모든 개념을 제거한다면 어떻게 붓다의 일체지를 성취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쫑카빠는 실체에 대한 개념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또한 겔룩에 속한 반대자들은 '만약 고람빠의 주장처럼 깨달음의 궁극적 목표가 개념의 완전한 제거라면, 깊은 잠에 들거나 의식을 잃은 상태가 되더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고람빠는 '궁극적인 결과는 비개념적이지만, 단순히 사고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논리와 이성에 의한 분석과 명상 수행이 필요하다'고 답했다.Constance Kassor,《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Gorampa〉
[130] 족첸 수행 중 카닥과 관련된 수행을 '잘라 내기'라는 뜻의 텍최(khregs chod), 훈둡과 관련된 수행을 '직접적인 접근'이란 뜻의 퇴갈(thod rgal)이라 한다.[131] 인도의 학자이자 밀교의 대성취자(mahasiddha)로 마하무드라 전승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그의 스승으로 샤와리빠, 나로빠, 라뜨나까라샨띠 등이 있고 제자로는 아티샤, 마르빠, 큥뽀 낼죠르 등이 있다.[132] 까르마 까규의 스승 최걈 트룽파(Chögyam Trungpa)가 광명(光明)의 마하무드라의 견해에 대해 쓴 오도송(悟道頌)이다.[133] 제3대 까르마빠 랑중 도제(rang byung rdo rje)가 지은 《마하무드라 발원문》[134] 역시 최걈 트룽파가 지은 《대락의 음악》의 일부.[135] 중관의 분석은 교학의 가르침대로 연기와 공성을 관(觀)할 수 있고, 단견과 상견 등 잘못된 견해에 치우치거나 무기(無記), 혼침(昏沈)에 빠지는 위험이 적은 장점이 있다. 그러나 족첸, 마하무드라 전승의 관점에서 중관의 분석은 마음의 미세한 분별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 마음의 본성을 아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렇듯 티베트 불교 안에는 철학적 분석에 의존하거나 직접적인 경험에 의존하는 두 가지 전통이 있다. 전자를 '학자'라는 뜻을 가진 빤디뜨(pandit)의 전통, 후자를 '거지''라는 뜻을 가진 꾸살리(kusali)의 전통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거지'는 곧 사원 바깥의 저잣거리, 숲, 화장터, 강가 등에서 은밀히 밀교 수행을 하던 요기, 요기니들을 일컫는 말이다.[136] 족첸의 존재론(gzhi, 根)에서 마음의 본성은 본질(ngo bo)인 카닥(ka dag, 本初淸淨), 특성(rang bzhin)인 훈둡(lhun sgrub, 任運自成), 그리고 발현인 툭제(thugs rje, 大悲周遍)로 구성된다. 카닥은 공성, 훈둡은 현상을 가리키며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툭제는 마음의 본성이 대자비로 발현되어 윤회와 열반 등 무수히 많은 특정한 현상들로 나타나는 에너지를 뜻한다. 족첸에서는 마음의 본성을 거울에 비유한다. 거울의 비유에서 카닥은 '자기 자신'이라고 지칭할만한 실체가 없이 비어 있어 어떤 상(象)이든 비출 수 있는 거울의 본질, 훈둡은 저절로 끊임없이 상들을 비추는 거울의 특성, 툭제는 거울에 비춰진 무수히 많은 특정한 상들에 해당한다.[137] 《금강경》의 산스끄리뜨어 원전을 보면 사상(四相)이 곧 '고정불변하는 실체'를 전제로 브라만교, 자이나교, 소승 부파들에서 주장한 개념들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인도와 사상적 지형과 사고관이 다르고 산스끄리뜨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중국에서는 한역된 용어를 바탕으로 사상에 다소 변용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현진, 《산스끄리뜨 금강경 역해》[138] 물론 밀라레빠처럼 현교 교학에 정통하지 않아도 밀교 수행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만일 밀교 수행을 제대로 성취했다면 밀교 수행을 통해 얻은 견해와 현교의 견해가 서로 모순되지 않고 조화를 이룰 것이다. 티베트 불교 안에서도 교학과 수행에 비중을 두는 정도가 각기 다른데, 가령 겔룩이나 사캬의 경우 논리적 분석을 통한 공성 증득을 강조하는 반면 닝마나 까규는 직관적 경험을 통한 공성 증득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편이다. 또한 같은 종파라 할지라도 강원에서 체계적으로 교학을 익힌 승려와 그렇지 않은 승려 간에 차이가 있고, 밀교 수행자의 경우에도 반드시 모든 밀교 수행자들이 밀교 문헌을 전문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139] 같거나 유사한 언어라도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컨대 "공(空)"이라는 단어도 단멸론자에게는 절대적 비존재, 초기불교에서는 명상 상태의 일종이나 무아(無我), 아비달마에서는 빈 공간, 틈이 되는 유위(有爲)의 공계(空界)와 공간적 점유성과 장애성이 없는 무위(無爲)의 허공, 유식에서는 인식 주체(能取)와 인식 대상(所取)이 모두 식(識)의 현현이라는 능소이공(能所二空), 불성ㆍ여래장에서는 번뇌에 물들지 않음, 중관에서는 연기하므로 고정불변한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자성(無自性) 등 다양한 의미로 쓰일 수 있다. 또한 "영원하고 항구적이다"는 표현 역시 힌두의 아뜨만을 묘사할 때 쓰이기도 하고 열반 같은 무위법, 불성ㆍ여래장, 유식이나 중관에서의 진여, 공성 등 불교의 궁극적 진리를 묘사할 때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단지 특정 표현과 문구만으로 의미를 파악해서는 안되며 표현이 쓰인 전체 맥락을 고려하여 내포된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 사유해야 한다.[140] 티베트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얍'과 어머니를 뜻하는 '윰'이 합쳐진 단어로 남녀합신상(男女合身象)을 가리킴.[141] 본존, 만다라 등의 이미지를 심상화(心象化)하는 것[142] 인도에서 티베트로 불교가 전해질 때부터 비구니 계맥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티베트 불교 승단에는 초기부터 비구니 없이 사미니만 존재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일부 티베트 불교 여승들(특히 외국인 출신의 여승들)이 한국, 대만, 홍콩 등에서 비구니계를 받았고, 티베트 불교 종단에서도 이들을 비구니로 인정하였지만 티베트 불교 종단 자체적으로 비구니계를 수계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 여승들의 권리 확대에 관심을 갖고 티베트 불교 내부에 비구니계를 도입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달라이 라마는 여자 승려도 남자 승려와 동등한 승가교육을 받고 게쉬(dge bshes)에 상응하는 불교 박사 학위인 게쉬마(dge bshes ma)를 수여받을 수 있게 허용하였다. 또한 1987년부터 티베트 불교계에서는 달라이 라마의 주도 하에 붓다 재세 시에는 존재했던 비구니 승단이 왜 티베트에는 없는지, 티베트에서는 왜 비구니 구족계를 주지 않는지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만일 비구니 계맥을 유지하고 있는 동아시아 비구니 승단에게서 비구니계를 수계할 경우 첫째 티베트 불교가 자체적으로 원로 비구니 12명을 배출할 때까지 이부승(二部僧) 수계식은 외국인 비구니들이 집전할 것이라는 점, 둘째 동아시아 한문권 불교는 법장부의 《사분율》을 따르는 반면 티베트 불교는 근본설일체유부의 《율경근본율》을 따르므로 기준이 되는 계목이 다르다는 점 등의 이유로 티베트 불교 종단 내부의 반대 여론이 강하여 달라이 라마 역시 비구니계 도입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향순, 《여성불교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생각》
[143] 비구나 비구니가 승단을 떠나야하는 무거운 죄. 살인, 음행, 절도, 대망어(아직 깨닫지 못한 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깨달은 성자인 척 대중을 속이는 거짓말)가 이에 해당한다.[144] 단, 상속(相續)이 성숙한 특수한 경우는 예외가 될 수 있다. 계율을 어겨가며 성적 요가를 수행한 승려들은 대부분 발각 시 승단에서 축출되었으나, 예외적으로 스승과 종단의 인정을 받은 매우 특수한 몇몇 경우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파계 또는 환속하여 더 이상 승단에 머물지 못하고 재가수행자로 살아가게 된다.[145]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정혈(精血)을 의미한다. 미세한 몸과 의식의 차원에서 구경(究竟)의 깨달음을 산출하는 질료가 되므로 '보리심'이라고 한다.[146] 붓다슈리즈냐나(Buddhaśrījñāna)에 따르면 평상시 노력을 하지 않고도 미세한 단계의 의식을 경험할 수 있는 경우들이 있다. 가령 깊은 잠에 들었을 때, 성적인 희열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기절했을 때, 그리고 죽음의 순간이 그런 경우들이다. 딴뜨라 수행자는 이러한 네 가지 상황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을 때 특별한 명상을 수행하여 미세하고 청명한 빛의 마음(정광명淨光明)을 일으킬 수 있다. 정광명은 죽음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강렬하며 그 다음 깊이 잠들었을 때, 그 다음으로 성적인 희열을 느끼는 순간의 순으로 약해진다.[147] 이 때 수행자는 성적인 희열의 에너지를 참고 그 에너지를 방출, 즉 사정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만일 그 에너지를 붙들고 있지 못하고 흘려버리면 이는 아주 심각한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148] 직접적 관련은 없었지만,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들이 이전부터 알고 있던 밀교의 성적 요가 교의로 인해 피해사실을 인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149] 반야 사상의 절대 부정이 악취공으로 변질되어 막행막식을 초래했듯이, 불성 사상의 절대 긍정 역시 변질될 경우 윤리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비판불교(批判佛敎)'의 이론가인 마츠모토 시로(松本史朗)는 불성ㆍ여래장 사상의 전(全) 긍정이 사회적 불평등, 부조리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다고 지적하였다. 마츠모토의 비판적 관점은 '와(和)' 사상, 전체주의, 일본주의 등 주로 일본 사회에 한정적으로 적용되었지만, 동일한 관점을 티베트의 사원, 종단, 지역 사회나 전체 티베트 사회에 적용시켜 분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궁극적 진리의 차원은 절대 부정 혹은 절대 긍정의 영역으로 분별을 허용하지 않지만, 세속적 진리의 차원은 철저한 분별의 영역으로 인과와 그에 따른 선악의 구분이 엄존한다. 이제(二諦), 즉 승의제와 세속제란 두 층위의 진리를 조화롭게 파악하고 알맞게 적용해야 잘못된 견해에 함몰되는 폐해를 막을 수 있다. 때로 고착된 분별적 사고를 타파하기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언행으로 스승이 제자를 교화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매우 특수한 일부 사례에 해당하며 불교 전반은 물론이고 금강승에서도 일반적인 지도 방식은 아니다.
[150] 닥리 린뽀체에 의한 성추행 피해자 중에는 한국인 여성도 포함되어 있다.#[151] 비키 한은 2017년 뉴욕주 소재 까르마 트라이야나 다르마차크라(까르마빠의 북미 주석主席 사원)에서 3개월 간의 명상 안거(安居) 도중 사원 내 자신의 숙소에서 틴레 도제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152] 예를 들어 7세기 날란다 사원에서 유식학파를 대표하여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짠드라끼르띠와 논쟁했다고 알려진 짠드라고민(Candragomin) 역시 재가자 출신의 학자이다. '고민(gomin)'은 '소의 소유자'란 뜻으로 재가자를 의미하며, 출가자는 아니지만 승복을 입고 범행(梵行)을 실천하는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존재였다. 안성두, 《안성두의 대승의 보살사상 11. 초기 대승경전의 제작과 유통자》[153] 둑빠 까규의 무문관 수행자인 독덴(rtogs ldan, 남성) / 독덴마(rtogs ldan ma, 여성)는 응악빠처럼 머리를 기르고 흰색 의복을 입은 재가 수행자 복식을 취하지만 비구계를 받은 출가 수행자이다. 밀라레빠의 수행 전통을 이어받은 이들 독덴은 안으로는 비구계를 지키고 겉으로는 재가 수행자의 외형을 갖추었는데, 이는 비구로서의 의무를 다하되 비구의 특권은 포기함을 의미한다. 이들은 12년 간의 무문관 수행을 포함하여 일생을 수행에 헌신한다.[154] 《범망경》, 《능엄경》등 중국에서 찬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전들 외에 인도에서 편찬된《능가경》, 《대승열반경》, 《앙굴리말라경》등 여래장 계통 대승 경전에서의 육식 금지도 채식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음식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탁발과 달리 직접 농작물을 경작하고 조리하는 동아시아의 공양 문화도 적극적인 채식 실천에 영향을 주었다. 한편 대승불교에서도 청변(淸辯, Bhāviveka)처럼 전통적인 삼종정육(三種淨肉)의 육식을 옹호하고 채식주의를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다. 안성두, 《대승불교에서의 육식의 거부와 그 근거》[155] 의료진은 당시 인도인 측근의 권유에 따른 지나친 견과류 섭취가 담낭 결석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추측하였다.[156] 李則芬《明人歪曲了元代歷史》,《文史雜考》,1979年.[157] 百科TA说는 보다 심도 깊은 이해를 위해 바이두 백과 운영진이 전문가, 학자, 기관 등에게 작성 권한을 제공하는 항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