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굿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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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굿윈.jpg
이름
알프레드 조지 굿윈
(Alfred George Goodwyn)
생년월일
1850년 3월 13일
사망년월일
1874년 3월 14일 (항년 24세)
국적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출신지
영국 동인도 회사령 인도[1] 루히르
포지션
하프백
신체조건
미상
소속팀
로얄 엔지니어스 AFC (1871-1873)
국가대표
1경기 0골 (1873)



1. 개요
2. 생애[2]
2.1. 선수 생활
2.2. 사망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4. 뒷이야기
5. 수상
5.1. 클럽



1. 개요[편집]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3][편집]


굿윈의 아버지 알프레드 조지 굿윈 소장(1819.8.17-1873.4.11)과 어머니 마리아 앤은 1844년 4월 11일에 결혼했고 이들 부부는 조지 외에도 엘리자베스[4](1846.6.7), 에밀리(1848.10.18), 마리일 알프레드 조지(1851.4.13), 아서 로스(1851.9.28), 마리아 캐서린(1854.4.9), 헨리 에드워드(1855.10.11), 테레사 콘스탄스(1859.11.9) 등의 자식을 두었다.

1851년과 1861년의 인구조사 기록에 의하면 굿윈의 가족은 당시 인도에 거주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187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굿윈은 런던 울리치의 육군 병영 막사와 왕립 육군 사관학교의 신사 생도였다.


2.1. 선수 생활[편집]



2.1.1. 클럽[편집]


울리치의 왕립 육군 사관학교에서 복무하면서 그는 로얄 엔지니어스 팀의 하프백으로 뛰었다.


2.1.2. 국가대표[편집]


1873년 3월 8일, 잉글랜드스코틀랜드를 상대로 4대2로 승리한 경기에서 굿윈은 22세 360일의 나이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는 크리켓 구장에서 열린 경기였다.

로얄 엔지니어스 소속으로는 국가대표팀에 뛴 최초의 선수 둘 중 한명이었다. 다른 한명은 호레이스 바넷.


2.2. 사망[편집]


1874년 3월 14일 화요일, 동인도 제도에서 근무하던 그는 벵골 회장단의 루키 14번가에서 말을 타다가 낙마사고로 부상을 입었고 사망한다. 참고로 이 사망사고는 그의 생일 다음날이었다.

그의 사망으로 어머니인 마리 앤에게 1,000파운드[5] 상당의 위로금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굿윈의 백 플레이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1873년 3월 10일 월요일자 글래스고 해럴드


1873년 당시에 기록된 국가대표팀 경기 보고서를 인용하면 수비수, 정확히 하프백으로써 좋은 플레이를 보였다.

또한 FA컵 결승에 이르기까지 3번의 무실점 경기가 있었고 그 경기에서 뛰던 로얄 엔지니어스 소속 국가대표팀 선수는 상술했듯 단 두명이었으므로 당시 축구계에서는 꽤 뛰어난 수비수였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4. 뒷이야기[편집]


  • 굿윈은 잉글랜드 대표팀 출전 경력이 있는 선수들 중 최초로 사망한 선수이며 1881년 이전까진 국가대표팀을 뛰었던 선수 중 최연소 사망자였다. 현재까지도 잉글랜드 대표팀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 3번째로 어린 사망자로 기록되어 있다.


5. 수상[편집]



5.1. 클럽[편집]


  • FA컵 준우승 1회: 1871-72(로얄 엔지니어스 AFC)

[1] 현재는 방글라데시의 영토이다.[2] 출처: 위키피디아, 잉글랜드 풋볼 온라인[3] 출처: 위키피디아, 잉글랜드 풋볼 온라인[4] 괄호안은 생년월일이다.[5] 2019년 환산액으로는 113,930파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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