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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테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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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프랑스의 전 축구선수. 월드컵 최초의 부상자로 기록되기도 한 인물이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브레스트에서 선원의 아들로 태어난 테포는 어린 시절에 고향팀에서 플레이했다.
2.2. 선수 생활[편집]
2.2.1. 클럽[편집]
테포는 브르통에서 빨리 두각을 나타내었고 군복무를 마친 1927년부터는 파리로 이동하여 1년간 르발루아에서 활약하였다. 르바루아에서 1년을 보낸 테포는 그 후 7년간은 레드 스타 파리에서 뛰었다. 1935년부터는 됭케르크에서 뛰며 커리어를 마무리하였다.
2.2.2. 국가대표[편집]
테포는 르바루아에서 뛸 때부터 레 블뢰에도 선발되어 전임 골키퍼 피에르 샤이리게스의 자리를 대체하였다.
1927년부터 1935년까지 테포는 총 31경기를 뛰었는데 이는 1970년대에서야 기록이 깨졌다. 또한 그 중 13경기를 주장으로서 활약할 정도로 리더십이 있었다. 그런 그였던 만큼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활약하였다.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테포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4골을 실점했고 프랑스는 3골을 넣었지만 이를 만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프랑스는 이 한 경기를 끝으로 암스테르담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초대 월드컵 개막전이었던 멕시코전에서는 24분에 멕시코의 공격수 메히아와의 충돌로 턱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결국 하프백 오귀스탱 샹트렐에게 골키퍼 자리를 넘겨줬지만 프랑스는 4대1로 승리를 거두었다. 다행히 턱 부상이 큰 부상이 아니어서 다음 2경기에도 출전하여 모두 한 골씩만 실점했지만 공격진이 아예 침묵을 지키는 바람에 결국 2경기에서 모두 1대0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렇게 프랑스는 초대 월드컵을 다소 암울하게 마쳤지만 적어도 테포의 재능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조별 리그로 활약을 좁히면 13팀의 모든 골키퍼 중 테포는 최고급의 활약을 보였다.
다음 월드컵에도 프랑스의 골문을 지켰지만 분더팀 오스트리아를 맞아 연장 혈투 끝에 2대3으로 패배하였다. 그리고 1935년 독일을 상대로 마지막 A매치를 치렀다.
2.3. 이후[편집]
됭케르크에서 나온 테포는 여러 아마추어팀에서 뛰었다.
그 후에는 1954년부터 1960년까지 프랑스 대표팀의 선수 선발위원을 맡기도 했다. 이 때 발탁된 선수들이 1958년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3위에 올렸다.
1968년에는 1964년부터 시작한 세관일도 은퇴하고 그 이후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활동 반경이 넓은 편이고 골문 안에서의 반사 신경이 좋은 골키퍼로 평가를 받았다. 또한 테포가 있는 동안 잉글랜드를 꺾기도 하는 등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 프랑스 축구계에서는 2006년 10월에 테포를 역대 프랑스 골키퍼 중 7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4. 뒷이야기[편집]
- 테포는 초대 월드컵 칠레전에서 기예르모 사베드라의 페널티 킥을 막아내기도 했는데 이것은 월드컵 역사에서 최초의 페널티 킥 세이브였다.
- 초대 월드컵 대회에서 남미 관중들이 정직하고 훌륭하다고 칭찬을 남기기도 했다.
5. 수상[편집]
5.1. 클럽[편집]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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