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탈로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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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 왕국 6대 군주
Ἄτταλος Γ΄ | 아탈로스 3세
파일:아탈로스 3세.jpg
제호
한국어
아탈로스 3세
그리스어
Ἄτταλος Γ΄
영어
Attalus III
존호
바실레프스
생몰 년도
미상 ~ 기원전 133년
재위 기간
기원전 138년 ~ 기원전 133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페르가몬 왕국 6대이자 마지막 군주. 취미 활동에 전념하다 나라를 로마 공화국에 바쳤다.


2. 생애[편집]


에우메네스 2세와 스트라토니케 왕비의 유일한 아들이다. 출생년도가 언제인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지만, 기원전 167년경에 저술된 폴리비오스의 '역사'에 에우메네스 2세에게 자녀가 없다고 서술된 걸 볼 때, 그 후에야 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58년 에우메네스 2세가 사망했을 때, 그는 왕위에 오를 만큼 나이가 들지 않아서 에우메네스 2세의 동생이자 그의 삼촌인 아탈로스 2세가 왕위에 올랐다. 아탈로스 2세는 그의 어머니 스트라토니케와 결혼했고, 기원전 153년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

아탈로스 2세는 20년간 통치하다가 기원전 138년 사망했고, 그가 예정대로 왕위에 올랐다. 유스티누스에 따르면, 그는 어머니를 병적으로 사랑했고, 어머니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라 타살이라 믿고 많은 친척과 신하를 죽였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궁궐에 틀어박혀 지냈으며, 식물학, 원예학, 약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정원에 유독한 약초와 무해한 약초를 함께 길렀고, 이와 관련된 연구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또한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플루타르코스, 대 플리니우스 등은 그가 농학과 식물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기술했는데, 특히 플리니우스는 그의 저서인 <농업에 대하여>를 참고하여 유독한 식물의 목록을 <박물지>에 실었다.

한편, 아탈로스 3세는 청동과 밀랍으로 조각상을 만드는 작업을 즐겼다. 그는 어머니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고, 무더운 날씨에도 그 조각상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의 필로메토르 유게테스(Philometor Euergetes)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러다 기원전 133년 중병에 걸려 죽어가던 그는 자식이 없기에 물려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나라 전체를 로마 공화국에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대 그라쿠스가 페르가몬에 들렀을 때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페르가몬에서 온 사절이 그라쿠스의 집을 먼저 찾아가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가 이런 유언을 남긴 것도 그라쿠스의 영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아탈로스 3세가 로마 공화국에 넘긴 페르가몬 왕국의 국고를 자신이 시행한 농지법의 예산으로 쓰자고 주장해 평민집회에서 관철시켰다. 이에 원로원은 예산의 집행은 자신들의 권한인데 그가 멋대로 결정했다며 반감을 품었다. 이 일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피살당하고 공화국의 적으로 단죄되는 계기가 된다.

한편, 페르가몬 주민들은 큰 문제가 없던 나라를 한 순간에 타국에 넘긴다는 왕의 유언을 납득하기 힘들어 했고, 로마인들이 유언장을 위조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때 아리스토니코스라는 인물이 에우메네스 2세의 사생아를 자처하며 '에우메네스 3세'라는 왕호를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4년간 로마를 상대로 성공적으로 항전했지만, 기원전 129년 로마 집정관 마르쿠스 페르페르나에게 패배하여 사로잡힌 뒤 개선식에서 전리품 취급받은 후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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