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도를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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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포르투갈 왕국 카를루스 1세의 왕비. 포르투갈의 마지막 국왕 마누엘 2세의 어머니이다.
2. 작위[편집]
- 오를레앙의 아멜리 공녀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Amélie of Orléans (1865년 9월 28일 - 1886년 5월 25일)
- 포르투갈의 왕세자비와 브라간사 공작부인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Royal of Portugal and Duchess of Braganza (1886년 5월 25일 – 1889년 10월 19일)
- 포르투갈과 알가르브의 왕비 폐하 Her Most Faithful Majesty the Queen of Portugal and the Algarves (1889년 10월 19일 - 1908년 2월 1일)
- 포르투갈과 알가르브의 왕대비 폐하 Her Most Faithful Majesty the Queen Dowager of Portugal and the Algarves (1908년 2월 1일 ~ 1951년 10월 25일)
3. 생애[편집]
1865년 9월 28일에 루이필리프의 손자이자 프랑스 왕위 요구자인 파리 백작 필리프의 장녀로 태어났다. 프랑스 제2공화국이 수립된 뒤 가족들이 망명했을 때라 망명지인 영국에서 태어나 유아기를 보냈다. 1870년 9월 4일에 프랑스 제2제국이 무너지고 이듬해에 일가는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멜리는 연극과 오페라를 사랑하고 그림에 재능이 있는 소녀로 자랐다.
1886년에 당시 포르투갈의 왕세자였던 카를루스 1세와 약혼했다. 카를루스 1세는 아멜리보다 키가 작고 뚱뚱했지만, 상냥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남성이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상 도밍고스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리스본에 위치한 벨렝 궁전[1] 에 살림을 차린 아멜리는 빠르게 포르투갈어를 배워나갔다. 포르투갈에서 아멜리는 아멜리아 또는 마리아 아멜리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막내아들 마누엘 2세가 태어나기 한달 전인 1889년 10월 19일에 카를루스 1세가 즉위했다. 왕비가 된 아멜리는 국민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병원, 요양소, 보육원 등의 설립을 지원했다.
1908년 2월 1일, 리스본 거리에서 마차를 타고 가던 국왕 일가가 피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카를루스 1세와 루이스 필리프 왕세자는 총을 맞아 사망했다. 아멜리와 마누엘 2세는 아멜리가 마차에 올라탄 습격범을 꽃다발을 휘둘려서 무력화시키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사건 이후 아멜리는 아들과 시어머니 마리아 피아와 함께 궁에 틀어박혀서 사건이 정리될 때까지 철저한 보호를 받았다.
마누엘 2세가 즉위했지만 즉위 2년 만에 혁명으로 폐위당했다. 망명길에 오른 모자는 과거 아멜리의 집안 사람들의 망명지였던 영국에 자리 잡았다. 1913년에 마누엘 2세가 결혼하자 아멜리는 프랑스에 정착했다. 1932년에 마누엘 2세가 숨을 거두면서 카를루스 1세 일가 중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포르투갈 정부는 아멜리에게 포르투갈에서 살 것을 권했지만 거절했다. 대신 1945년에 한번 포르투갈을 방문해 자신이 설립을 지원한 시설들을 둘러본 뒤 프랑스로 돌아갔다. 1951년 10월 25일에 아멜리는 프랑스 르셰네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유언 중에는 자신을 포르투갈로 데려다달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유언대로 아멜리의 유해는 남편과 자식들이 있는 포르투갈 리스본의 상 비센트 드 포라 성당에 안장되었다.
4. 가족관계[편집]
4.1. 조상[편집]
4.2. 자녀[편집]
5. 여담[편집]
- 첫째 여동생 엘렌은 카를루스 1세의 외사촌인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공작의 아내이며, 막내여동생 루이즈는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외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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