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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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개요
2. 아나키즘의 태동
2.1. 근대 이전의 사상들
2.2. 프루동에서 바쿠닌까지
3. 초기 아나키즘 운동
3.1. 사상적 대립과 발전
3.2. 허무주의에서 아나키즘으로
3.3. 서구의 아나키스트
3.4. 권위에 대한 투쟁 : 암살테러
4. 민족해방운동과 아나키즘
5. 혁명전쟁에서의 아나키즘
6. 제3세계와 아나키즘
7. 아나키즘의 향방
7.1. 다양한 분파들의 탄생
7.2. 현대의 아나키즘
8. 출처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이 문서는 아나키즘의 역사를 통시적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

2. 아나키즘의 태동[편집]



2.1. 근대 이전의 사상들[편집]


인민과 인류의 몰락은 나를 나의 부흥으로 이끌 것이다. 들어보라, 내가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우리의 사랑스러운 독일 존재의 1000년을 기념하는 내일의 축제를 위한 종소리가 시작되고 있다. 이 종소리는 이 장례식의 장송곡의 소리다!... 독일 민족과 독일 인민들은 그들 뒤에 1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얼마나 기나긴 삶인가! 그러니 가서 잠들어 다신 깨어나지 말아라, 그렇게 네가 그토록 오랫동안 사슬로 묶어왔던 모든 이들이 이로써 자유로워 질 것이다. 인민은 죽었다. 나여 영원하라! 오, 그대 너무도 고통받는 독일 인민이여 너의 고통은 무엇이냐? 그것은 사상이 그 자신의 육신을 만들지 못하는 고통이며 새벽이 가기 전에 무로서 사라져 버릴 유령 들린 정신의 고통 이건만, 너는 아직 구원과 성취를 갈망하구나. 그대 친애하는 사상이여, 그대 친애하는 유령이여, 너는 내 안에서도 오랫동안 살아왔다. 나는 너의 구원을 위한 말을 거의 발견했다고 상상했었고, 배회하는 정신을 위한 살과 뼈를 발견했었다. 그리고 나는 너의 영원한 안식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게 되었고, 마지막 희망이 사라져 가며, 마지막 사랑도 사라져갔다. 그리고 나서 나는 황량한 죽은 자의 집에서 빠져나와 산자들을 부른다. 오직 살아있는 자만이 권리를 지닌다.잘 가거라, 그대 수백만의 꿈이여, 잘 가거라, 그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천년의 폭정이여! 내일 그들은 너를 무덤으로 데려갈 것이다. 곧 너의 자매들과 너의 인민들이 너를 따르리라. 그러나 그들 모두가 뒤따랐을 때, 인류는 매장될 것이고, 나 자신은, 웃고 있는 상속자일 것이다!

막스 슈티르너 - 유일자와 그 소유


정부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더라도 비판과 불평을 야기할 수 있는 소지를 충분히 안고 있는 주제다. 인류의 진정한 관심은 끊임없는 변화와 영구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데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정부는 변화와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는 속성을 지닌다. (...) 우리에게 헌법이 아닌 평등과 정의를 달라. 아무런 강요 없이 우리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이해와 지식의 성장에 보조를 맞춰 사회질서를 변혁시켜 나갈 수 있게 하라.

이런 모든 해악에도 불구하고 아나키 상태의 해악이 정부가 있는 사회의 해악보다 더 나쁘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곤란하다. 개인의 안전도 아나키 상태보다는 독재 상태에서 더욱 더 보장받기 어렵다. 왜냐하면 아나키 상태는 일시적이지만 독재 상태는 영구적이기 때문이다. (...) 정부는 인류의 악을 종용하는 야만적인 제도다. (...) 정부를 완전히 해체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그런 해악을 근절할 수 없다. 의식 있는 인류의 친구들이여, 정부가 해체된 행복한 시대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자!

윌리엄 고드윈


초기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그 전에 기독교 아나키즘으로써의 독일 농민전쟁이 있었지만 이는 제대로된 체계와 사상은 아니였으니) 국가의 폐지를 요구함과 동시에 개혁을 추구하고 혁명을 반대하는 사상이였다. 또한 개인의 극 자유를 요구함에서 이들은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로 분류된다.

개중에서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론은 후대 아나키즘에서 '자유'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는 '나'라는 개인은 다른 누군가로도 대체가 불가능한 '유일자'이며 '유일자'인 나는 에고이스트며 그런 '나'를 옳아매는 모든 존재들 특히 국가, 자본주의등은 그저 '유령'일 뿐이며 그런 유령들로부터 '유일자들'은 벗어나야한다고 말했다.

2.2. 프루동에서 바쿠닌까지[편집]


다양한 자유체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영어로 '자치 정부'로 불리는 체제를 아나키 혹은 개별정부로 지칭하고자 한다. 일련의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아나키한 정부란 표현은 불가능하고, 또는 이는 부조리한 이념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언어(용어)를 재구성하면, 정치적으로 아나키의 개념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이고 또 긍정적이다.

"자유는 평등이다, 자유는 아나키이다, 자유는 무한한 다양성이다, 자유는 비례균형이다."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우리는 사회주의 없는 자유란 특권이자 불의이며, 자유 없는 사회주의란 야만이자 노예제라고 확신한다."

미하일 바쿠닌 - 국가 없는 사회: 아나키즘

카를 마르크스의 등장과 프랑스 혁명 등 세상을 뒤바꿀 이론과 혁명이 등장함에서 아나키즘은 철학에 가까운 사상에서 이론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다. 프루동은 소유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사유재산을 비판함과 동시에 어떻게 사유재산이 폐지된 세상을 이끌어야 할 지를 상호주의적 관점으로 풀어냈으며, 바쿠닌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를 채용해 아나키즘사회주의를 결합시킨 아나코-집산주의 이론을 풀어냈다.

그러나 프루동은 시작부터 마르크스와 사상이 달랐으며[2] 바쿠닌의 경우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주장하던[3] 마르크스와 사상적 견해가 차이났으며 세르게이 네차예프 건으로 바쿠닌을 시기하던 마르크스는 바쿠닌을 인터내셔널에서 쫒아내기에 이른다. 이럼으로써 아나키즘(엄밀히는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는 서로 다른 세상을 향해 갈라서게 되었다.

3. 초기 아나키즘 운동[편집]



3.1. 사상적 대립과 발전[편집]



3.2. 허무주의에서 아나키즘으로[편집]



3.3. 서구의 아나키스트[편집]


"둘 중의 하나. 국가는 폐지되어야 하고, 그러한 경우에 정력적인, 개인적인, 그리고 집단적인 주도권에 기초한 수천의 중심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혹은 국가는 개인과 지방적 삶을 압살할 것이다. 국가는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권력 장악을 위한 전쟁과 내적인 투쟁을 수행하고, 폭군들을 교체하기만 하는 피상적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끝, 죽음이 온다. 스스로 선택하라!"

"상호부조는 인류의 본능이다."

표트르 크로포트킨 - 국가: 역사에서의 국가의 역할(위), 상호부조론(아래)


"정부는 무력을 통하여 법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할 권리를 의미한다.(...) 우린 공권력을 제거하길 원한다. 우린 모든 사람의 자유와 자유로운 협약을 바라며, 이것은 아무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고 모두가 바람직한 사회의 운영에 동참할때 나타날 것이다. 우린 아나키를 바란다."

에리코 말라테스타 - 민주제도 독재도 아닌 아나키


"결국 우리는 사회주의자다. 다른 사회주의자들 이를테면 사민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I.W.W가 사회주의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주의자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의 단 한가지 주요한 차이는 그들이 권위주의자인 반면 우리는 리버테리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국가와 정부를 믿지만, 우리는 믿지 않는다."

사코와 반제티 사건 당시 바르톨로메오 반제티의 발언


3.4. 권위에 대한 투쟁 : 암살테러[편집]


혁명가는 불행한 운명에 갇힌 사람이다. 혁명가는 자기만의 관심사도 없고, 일도, 감정도, 애착도, 재산도 없다. 심지어 그에게는 이름도 없다. 혁명가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오직 하나, 모든 사고와 열정을 사로잡는 혁명뿐이다. 자신에게 엄격한 혁명가는 다른 사람에게도 엄격해야 한다. 혁명가는 혈육의 정, 우정, 사랑, 고마움, 심지어 존경심까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모든 감정을 혁명의 대의를 향한 냉혹한 열정으로 제압해야 한다. 혁명가의 동지는 혁명성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우정은 혁명에의 쓸모로 결정된다. 혁명가는 공적인 신분질서 세계를 파괴하기 위에 그곳에 침투한다.

「혁명가의 교리문답」, 세르게이 네차예프, 1869년


"나는 한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또 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현실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을 암살한 후 레온 촐고스가 밝힌 암살 동기


4. 민족해방운동과 아나키즘[편집]



4.1. 유럽[편집]



4.2. 아시아[편집]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요 둘이 아닌 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 줄 알진대, 현재 조선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新朝鮮)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 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민중이 한 편이 되고 일본강도가 한 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아니하면 내가 망하게 된 〈외나무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2천만 민중은 일치로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 - 암살· 파괴·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조선 혁명 선언」의 마지막 글귀. 신채호, 1923년



본격적으로 일본, 중국 등을 통해 아나키즘이 도입된 시기. 그와 동시에 허무주의, 인민주의등이 들어오던 시기였으며 초기에 허무주의와 아나키즘이 분리되지 않았다가 구율견궐촌이 최초로 크로폿킨의 글을 번역하고서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고토쿠 슈스이가 전향함을 필두로 반국가, 반정당, 반군국주의적, 노동자 직접 행동적 아나키즘이 퍼젔다.

한국중국의 경우에는 개량주의적 움직임이 많이 보였고 특히 중국의 경우는 안국합작(국민당-아나키스트 합작), 연성자치론자들(천중밍 등)과의 합작 등을 통해서 개량주의적 면모를 보였다. 한국의 경우는 민족주의와 연관이 크게 되었고 사실상 아나키스트로 부를 수 없는 사람들(유림 등)과 그저 허무주의자인 사람(박열 등)이 생기기도 하였으며 민족적 아나키스트(신채호 등) 등이 나오던 시기였다.

4.3. 아프리카[편집]



4.4. 라틴아메리카[편집]



5. 혁명전쟁에서의 아나키즘[편집]



5.1. 러시아 혁명[편집]


"승리 혹은 죽음. 이것이 역사의 순간에서 우크라이나 농민이 직면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수는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류애라는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수많은 승리가 결국에는 새로운 주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맞김으로써 끝나게 된 위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부여잡고, 우리 자신의 의지와 우리 자신의 진리에 따라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마흐노주의자 선언(Manifesto of the Makhnovists), 네스토르 마흐노, 1918년


러시아 제국차르의 오랜 폭정으로 인해 마침내 2월 혁명10월 혁명을 통해 무너젔다. 그 과정 속에서 드넒은 러시아 벌판에서는 여러 사상들의 실험이 이루어젔고 볼셰비키레닌주의는 물론 아나키즘과 인민주의[4]등의 사상이 펄처젔다. 아나키즘의 경우는 레닌과 같이 10월 혁명에 동참하던 이들도 있었으며 레닌연합하였으나 그들과 독립하여 활동하던 마흐노의 우크라이나 혁명 반역군등이 있었다.

동양에서는 아나키즘 관련된 사건으로 니콜라옙스크 사건자유시 참변이 있다.

5.2. 스페인 내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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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나벤투라 두루티
전국 노동 연맹[5] 깃발과 여성

"우리는 계급 없는 사회를, 착취받는 사람도 착취하는 사람도 없는 사회를 원합니다. 불의를 더 이상 넘겨서는 안됩니다. 자유, 정의, 존엄을 위해 거역하고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커다란 희망이 가득찬 신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폐허는 우리를 무섭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궁궐, 교회, 도로, 다리, 이 모든 것들을 우리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필요하다면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다시 건설하기 위해 그것들을 파괴할 것입니다.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5.3. 제2차 세계 대전[편집]



5.4. 반전주의와 아나키즘[편집]



6. 제3세계와 아나키즘[편집]



6.1. 아시아[편집]



6.2. 아프리카[편집]



6.3. 라틴아메리카[편집]



7. 아나키즘의 향방[편집]



7.1. 다양한 분파들의 탄생[편집]



7.2. 현대의 아나키즘[편집]


로자바치아파스가 아나키즘 원리에 따라 민주적 공동체로 운영되고 있다.

8. 출처[편집]



9. 관련 문서[편집]


[1] 위의 세 동영상은 아나키즘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3부작 다큐멘터리 《신도 없고 주인도 없다 : 아나키즘의 역사(No Gods No Masters : A History of Anarchism)》이다.[2] 개인적인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서로 티격대격하는 친구사이였다고.[3] 아나-볼 논쟁이라고도 하며 아나키스트 사이에서는 과도기라 부르며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거부했다.[4] 한국에선 브나로드운동으로 유명하다. 엄밀히는 브나로드 운동의 원류로 나로드니키라고 불린다.[5] 엄밀히는 전국 노동자 연맹(CNT)와 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합(FAI)가 같이 있는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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