쐐기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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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neiform[1]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과 인근 문명권에서 쓰였던 문자로, 쐐기 모양이기 때문에 설형() 문자라고도 불린다. 본래 수메르에서 수메르어를 표기하기 위해 개발되었다가 후대에 인근 문명권들의 언어인 아카드어, 히타이트어, 엘람어, 우라르투어, 에블라어, 후르리어, 루위아어, 팔라어 등을 표기하는 데 쓰였고 우가리트어와 고대 페르시아어의 문자도 쐐기 문자의 영향을 받았다.

쐐기 문자는 대개 점토판에 기록되었는데, 그 특성상 특별히 필기도구에 제약이 강하지는 않았으나 대개 갈대 가지를 뾰족하게 잘라 만든 철필로 썼다. 기록물로 쓰인 점토판은 기록의 양에 비해 그 무게가 심각한 수준으로 무겁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늘에서 잘 말린 경우 보존능력은 돌을 깎아 새긴 것과 맞먹는 수준으로, 후대에 등장한 파피루스, 양피지, 목간, 종이 등의 기록물보다 훨씬 보존성이 좋았다. 또한 재료를 구하기 쉽다는 것도 장점이었는데, 그래서 남아있는 유물도 제법 많은 편.

기록된 점토판을 불에 구우면 굉장히 단단해지며, 이렇게 남은 유물도 꽤 있다. 이 경우는 그늘에 말리는 것보다 내구성이 더 올라간다. 다만 기록자가 자의로 구웠던 경우는 적다. 대부분의 쐐기 문자 점토판은 가벼운 편지나 영수증 같은 기록이라 평시의 보존이 목적이면 그늘에 말려도 되고, 진짜 오래 보관할 목적이면 함무라비 법전처럼 돌에 새기지 굳이 귀한 연료를 써가며 불에 구울 이유가 없다. 점토판이 불에 구워진 이유는 그것을 보관하던 건물이나 도시가 전란 등의 이유로 싸그리 불타면서 본의 아니게 점토판이 불에 구워져 버린 것이다. 어쨌든 전란이나 자연 재해로 소실되기 쉬운 파피루스양피지와 달리 점토판은 전란이나 화재 덕분에(?) 오히려 더 단단하게 구워져서 후대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게 되었다.


1. 역사[편집]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3500년경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신바빌로니아 멸망 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막을 내리고도 서기 2세기 가량까지는 문자가 이어졌으니 무려 3000년 이상 사용된 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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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6세기경의 수메르 쐐기 문자

이집트 상형문자와 마찬가지로, 쐐기 문자 역시 그 시작은 상형 문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집트 상형문자가 후대로 가면서 점점 표음문자화가 되고, 로마의 지배 이후 훨씬 가속화 된 것처럼 쐐기 문자 역시 초기의 복잡한 형상의 상형문자에서 점점 더 간소화하고 음소를 표기할 수 있는 표음문자(음절문자)로 변하게 된다.

아카드,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엘람, 히타이트, 루위아, 후르리, 에블라 등 한번쯤 들어본 중근동의 고대 국가들은 모두 이 문자를 받아들여 사용하였으며 고대 페르시아 제국과 우가리트 왕국 등의 문자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후예가 되는 문자를 많이 남긴 이집트 상형문자와는 달리, 쐐기 문자는 역사적인 이유로 아랍 문자 같은 이집트 상형문자의 후손 문자로 대체되었다.

동아시아한자가 있다면 서아시아에는 이 문자가 있다고 할 정도로 서아시아 국제 공용문자였다. 그러나 이 문자가 서아시아에서 국제화되기 시작할 무렵엔 이미 표음성이 강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한자와는 달리 외국인들끼리 이 문자로 필담을 주고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세계 최초의 영웅담, 서사시로 평가되는 길가메시 서사시, 그리고 함무라비 법전 역시 쐐기 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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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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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라비 법전의 일부


2.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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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틴어로 cunei가 쐐기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