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일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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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2.2. 20세기
2.3. 21세기
3. 문화 교류
4. 대사관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스페인일본의 관계를 말한다. 스페인과 일본은 17세기에 관계를 맺은 이후로 계속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두 나라 모두 군주와 총리가 별도로 존재하는 입헌군주제라는 점도 닮았다. 그리고 스페인어권 모임인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에서 주관하는 이베로 아메리카 정상회의에도 일본은 참관국에 가입되어 있다.

스페인내에도 일본인 공동체가 존재해 있다. 또한, 일본내에도 스페인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20세기 이전[편집]


스페인은 센코쿠 시대 무렵에 포르투갈과 함께 일본과 무역을 맺고 있었던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리고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함께 여러가지 문물을 전파하면서 동시에 천주교도 전파했다. 1584년에는 펠리페 2세를 만난 일본 소년들도 있다. 덴쇼 소년사절단 문서 참고.

1609년 당시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총독 로드리고 로드리게스가 임기가 만료되어 본국으로 귀환하던 도중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되어 일본으로 표류한 뒤 이미 서양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에도 막부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후사정을 듣고 서양식 갤리온 한 척을 내주어 그들을 돌려보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스페인과 정식 교류를 시작하게 되자 서양 문물에 관심이 많던 다테 마사무네는 1612년, 유럽에 무역 허가서를 요청하는 사절을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마사무네는 스페인인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와 선교사 "루이스 소테로"의 도움으로 유럽의 갤리온을 모방한 "산 후안 바우티스타" 호를 건조한 후 하세쿠라와 소테로를 사절단의 단장으로 삼아 유럽에 보냈다.

1615년, 태평양대서양을 건너 유럽에 도착한 하세쿠라 일행은 스페인 왕 펠리페 3세를 알현하고 이어 로마 교황청에 들어가 교황 바오로 5세를 알현했고 하세쿠라는 유럽에서 귀족급의 대우를 받으며 스페인에서 세례성사도 받고 교황청에서는 로마 시민증서도 받았다.

하지만 일본의 에도 막부는 기독교를 금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에서 활동하던 스페인 선교사들은 철수하게 되었고 종교적으로도 관계가 끊어졌다. 그리고 끊어졌던 관계는 19세기 후반 메이지 시대가 되어서야 국교가 회복되었다.


2.2. 20세기[편집]


태평양 전쟁에서 벌어진 일본의 전쟁범죄 중의 한 가지 사례로 마닐라 대학살 당시 일본 제국군은 2월 23일날, 스페인 국기가 걸려있던 스페인 영사관에 방화를 하고 대검으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찔러대서 70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비록 스페인이 중립국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추축국과 친한 세력이었는데다, 당시 친일적 친적이던 중립국들도 잇따라 연합국에 가담하던 상황에서 스페인은 일본이 가진 정말 몇 안 되는 우호적인 국가 중 하나였다. 한마디로 외교적으로 보았을 때 스페인 영사관은 그야말로 개막장 속에서도 절대로 일본이 건드려서는 안 될 곳이었다. 그러나 현지인들의 피에 취해 있던 일본군에게는 그런 게 없었는지 몇 안 되는 우호국의 외교 공관까지 쳐들어가 학살하는 희대의 막장 행각을 벌인 것이다.

당시 주필리핀 스페인 대사 호세 델 카스타뇨 박사는 본토의 정치적 상황이 그랬던 만큼 골수 친프랑코, 프랑코 정권 내에서도 친독인사로 유명했던 라몬 수녜르 계열 인사에 이 사건 전만 해도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런 이념적, 지정학적 이유로 추축국이 이길듯했던 대전 초기만하더라도 일본의 힘을 통해 필리핀에서 에스파냐 영향력을 회복할수 없나 고민하던 친일, 반미 성향이었다(...). 이런식으로 전혀 생각도 못했던 방식으로 우호국으로 생각했던 일본한테 사실 일본 입장에서도 전혀 득될 거 없는 방식으로 발등 찍힌 에스파냐 측에선 이 학살 소식을 알게 되자 격노했고[1][2], 결국 4월 11일에 벌어진 이 학살극으로 인해 에스파냐는 일본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아무튼 일본은 그렇게 유럽에 몇 남지 않은 우호적인 외교 채널을 제 발로 걷어찬 셈이다. 그리고 아무도 의도치 않은 결과지만, 이 학살 이후 공사관 자산과 현지에 남아있고 살아남은 에스파냐 교민들의 재산 등을 복구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미국의 협조를 구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친독 파시스트색을 뺄 필요가 있었던 에스파냐 측에서 수녜르도 정권 2인자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갑자기 독일과 관계를 정리하는 등 피상적으로나마 프랑코 정권이 약간이나마 온건하게 누그러지는 나비효과까지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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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1세기[편집]


2020년 3월 18일에 스페인의 알레한드로 블랑코 올림픽위원장은 도쿄 올림픽을 연기해야 공정하다고 밝혔다.#

3. 문화 교류[편집]


일본에서도 스페인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이 있고, 스페인어책도 많이 발행중이다. 스페인어는 일본내에서 인기가 많은 외국어중의 하나에 속해 있다. 거기에다 일본내의 대학교들에서도 스페인어학과가 많이 개설되어 있거나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DELE시험도 일본에서 치러지고 있다. 그렇지만 스페인 본토의 발음을 기준으로 삼은 대한민국과는 달리 발음은 미국의 영향으로 멕시코쪽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3] 거기에다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문화(예컨대, 플라멩코 등)는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의 대학들과 스페인의 대학들은 서로 교환학생 제도를 통해 학생을 교환하고 있다. 일본의 조치 대학이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유대학과 학생을 교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담으로 일본 내 스페인어 사용자 커뮤니티는 대개 스페인어 사용 가톨릭 성당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스페인이 세속주의화되어 있는 영향으로 가보면 대부분이 중남미출신인 경우가 많이 있다.

스페인에서도 일본 애니가 방영중이라서 일본 애니가 인기가 있는 편이다. 또한, 스페인내에도 오타쿠들이 있는 편이다. 스페인 여행 가보면 웬만한 도시마다 일본 애니 관련 굿즈를 파는 소매점들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4]

바르셀로나의 일본 애니, 게임 캐릭터 코스프레


4. 대사관[편집]


양국 모두 대사관을 두고 있다. 스페인은 도쿄에, 일본은 마드리드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5. 여담[편집]


  • 'Kabuto'라는 쇼 코스기 주연의 1991년작 영화가 있는데, 일본 사무라이가 화승총을 구하기 위해 스페인에 다녀오면서 겪는 활극을 그린 내용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96년 '장군 마에다'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 일본 영화를 상영하지 않던 시절이지만 일단 미국 영화라는 이유로 상영이 허가되었다.참고 기사 다만, 영화 내용 자체는 역사적 사실과는 별 관련이 없다고 한다.
  • 교역의 경우,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이전에 스페인에서 일본산 굴을 많이 수입했지만, 원자력사고 이후에는 일본산 굴의 수입이 중단되었다.#


6.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5 06:58:02에 나무위키 스페인-일본 관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다만 이 사건을 접한 뒤에도 에스파냐에서는 '그래도 일본과의 외교 관계는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논란도 있었다. 자국민 학살이 발생했는데도 이럴 정도로 당시 에스파냐에서는 일본을 우호적으로 대하고 있었다.[2] 당시 에스파냐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전국민의 절반을 죽이면서까지 아돌프 히틀러베니토 무솔리니의 비위를 맞춰줘서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하고 나니 그 히틀러무솔리니제2차 세계 대전을 터뜨렸고, 이들의 외교적 압력에 따라 좋든 싫든 간에 명예 추축국으로 분류되어, 연합군은 이미 에스파냐을 반쯤 적성국가 취급하고 이웃나라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는 공화파 잔당을 지원하며 에스파냐도 추축국과 절연할지를 고민하던, 외교적 고립 중에서도 최악의 고립 상태에 있었다. 이러니 아무리 이런 사건이 터져도 에스파냐 당국 입장에서는 몇 안 되는,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유일한 우방국이라 할 만한 일본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것.[3] 스페인어를 배우는 중국도 스페인어 표기가 멕시코쪽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4] 이거는 스페인만 그런 것은 아니고 일본 굿즈 샵은 유럽 웬만한 나라의 웬만한 도시마다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