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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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07년 5월 14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1가 수원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무려 7명이 범인으로 지목되었으나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고 결국 진범이 잡히지 않은 미스테리한 사건이다.
미디어에 따라 "수원역 노숙 소녀 살해 사건", "수원역 노숙 소녀 상해치사 사건", "수원역 노숙 소녀 사망 사건"[1] 등으로 불린다.
2. 사건의 전말[편집]
2007년 5월 14일 아침 수원고등학교에서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녀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는데 학교에서 10대 소녀가 살해당한 사건이라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처음에는 소녀가 그 학교 학생이 아닌가 했으나 조사하고 말 것도 없이 애초에 그곳은 남자고등학교였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2] 그런데 문제는 죽은 소녀의 신원을 알 만한 단서가 없었던 터라 여기서부터 사건의 수사는 꼬이기 시작했다. 미성년자라 지문 조사를 했지만 나온 것이 없었다.
신원 파악이 안 된다는 점에서 경찰은 이 소녀를 노숙하던 소녀라고 단정하고 수원역 일대의 노숙자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원역 노숙자들과 수원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수원역 일대의 노숙자들을 움직이는 대장이 있는데 사망한 소녀는 이 노숙자들의 대장의 돈을 훔쳤다가 발각되었고 노숙자 대장이 자신의 부하들을 시켜 이 소녀를 구타하다가 소녀가 사망하자 시체를 고등학교 건물에 내다버렸다는 것이다.[3]
이 소문이 경찰의 귀에도 들어갔는지 경찰은 수원역의 노숙자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했으며 결국 사건 발생으로부터 얼마 안 되어 수원역에서 노숙을 하던 2명의 정신 지체인을 이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했다.
3. 누명[편집]
사건 발생 8개월 후 검찰은 5명의 비행 청소년들을 폭행치사 혐의로 추가 기소하였다.[4] 이들은 가출하여 다른 학생들에게 금전을 갈취하거나 차량을 절도한 등의 혐의로 체포되어 소년분류심사원에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검찰 조사에서 자신들의 혐의를 시인했던 청소년들이 갑자기 재판 과정에서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과 검찰이 짜맞추기 수사로 자신들을 위협하며 자백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얼마 가지 않아 결정적인 증거가 제출되면서 사실로 드러났는데 그 증거는 바로 검찰의 심문 과정 녹화영상이었다. 검찰은 수사를 하면서 용의자로 지목된 청소년들이 자백을 하도록 유도하는가 하면 청소년들이 알지도 못했던 사항[5] 을 알려주면서 각인시키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사건을 조작하려고 한 것이다.
심지어 이들 중 한 명은 사건 당일에는 수원에 있지도 않았다. 그 날은 성남의 다른 가출 청소년 친구를 만났으니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도록 그 친구를 찾아 달라고 요청까지 했는데 검사가 거꾸로 "네가 그렇게 거짓말한다고 될 것 같냐"는 식으로 비난하며 묵살하는 영상이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결국 사건을 맡은 국선변호사 박준영 변호사와 검찰 간의 끈질긴 법정 공방 끝에 2010년 7월 5명의 청소년 전원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무죄 판결 이후에도 검찰은 판사들이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대차게 까였다.[6]
이후 먼저 검거된 2명의 정신지체인 노숙자들과 5명의 가출 청소년들 모두 자신들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러자 검찰은 두 명을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2012년 6월 14일 대법원에서 위증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고 같은 해 6월 29일 대법원은 이 노숙인의 상해치사 혐의에 대해서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 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대법원 판결로 진범은 따로 있다고 공언된 셈이다.
이들 중 한 명은 상해치사에 대한 재판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었기 때문에 이후에도 수감 중이었지만 위증 혐의가 무죄 판결이 났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신 지체인 노숙자들도 사실상 무죄가 될 것이라고 보았으며 실제로 2013년 10월 무죄가 확정되었다.
4. 검사들의 근황[편집]
이렇게 질 것이 뻔한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검찰이 끝까지 용의자들을 물고늘어진 이유는 패소하면 담당 검사의 인사에 치명상을 입기 때문이었다. 법치국가의 재판에서 최우선시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대놓고 어겨 애꿏은 사람에게 누명을 씌운 것도 모자라 그 대상이 미성년자라는 사법계 희대의 초대형 사고였다. 여기에 부적절한 조서 작성 과정과 협박에 가까운 심문까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설령 이들이 정말 진범이었다고 해도 본전조차 못 건지는 짓이었다. 즉, 검사 입장에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지른 것이다. 그 죄질을 생각하면 사퇴 압박을 받고 물러났거나 겨우 공직생활은 유지한다고 해도 한직만 전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한국은 검사들끼리 관대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법무부 고위층 혹은 요직에는 전현직 검사들이 많기에 그럴 수밖에 없긴 하지만, 어지간한 실세가 아닌 이상 무죄 판결시에는 아예 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예시로 검사가 퇴직하기 전에 송치받은 사건을 백 번 기소한다고 하면 무죄가 나올 확률은 그야말로 한두번 나올까말까하는 수준이므로, 이런 사건이 생겨 버리면 상부 입장에서도 무능한 검사로 낙인찍어서 쉴드 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설령 후술한 무죄평정에서 책임이 없다고 나온다고는 해도 이런 사람을 굳이 승진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책임이 없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무죄를 유죄로 둔갑시키진 않기 때문이다.
단 검사들이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고 해서 무조건 큰 수준의 불이익이 오거나 징계를 받는 것은 아니다. 무죄평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뭣이냐면 무죄 판결 시에 담당 수사검사들 및 공판검사들에게 상부가 진행하는 일종의 감사이다. 근데 대부분 검사의 잘못으로 끝나는 경우가 적어서 생각 외로 큰 불이익은 없을 가능성이 높으며 현 사건 역시 무죄평정이 진행되었겠지만, 결과가 알려지지 않고 있으므로 단정짓는 것은 곤란하다. 물론 인사상 치명상을 입었을 가능성은 99.9%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의 억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는 이 검사들의 근황에 대해서 여러가지 추측이 오가고 있는데, 조용하게 어디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는 말도 있고 아니면 퇴직 후 그냥 살고 있거나 로펌에 들어갔다는 추측이 있는데, 보통 검사들이 퇴직 후 대부분 이런다는 것을 감안하면 별 의미 없는 가정이다.[7]
2024년 기준으로 15년이 다 되어가는 사건이므로 현재는 검사들도 나이가 찼거나, 아니면 경쟁에서 밀려서 사퇴했을 것이다. 검사들은 사실상 제복공무원이나 다를 게 없으므로, 사퇴도 이들과 비슷하게 빨리 하는 편이라서 아마 현재 기준으로 현장에서 뛰는 검사들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 중 한 명이 2010년 퇴직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8]
5. 소녀의 신원[편집]
결국 경찰은 피해자의 신원을 찾기 위해 이례적으로 시신의 얼굴과[9] 그녀가 입고 있던 옷[10] 들을 모두 공개했다. SBS에서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사건을 다루면서 신원 찾기 캠페인[11] 을 진행한 결과 마침내 피해자의 신원은 시신이 발견된 지 50여 일이 지나서야 방송을 본 부모에 의해서 밝혀졌다. 사실 죽은 피해 소녀는 노숙인이 아니었다. 이 소녀는 15살의 중학교 2학년 김모 양이였고 가출을 잘 하긴 했지만 딱히 노숙자였던 것은 아니었던 걸로 드러났다. 지적장애가 있었으며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한 뒤 변을 당했다고 한다.
7월 5일 오후 수원 모 병원 장례식장에서 빈소가 차려졌는데 피해자의 마지막 가는 풍경은 쓸쓸하고 초라했다. 빈소에는 소녀의 영정 사진만 있을 뿐 그 흔한 조화조차 없었다. 조문 오는 사람도 별로 없어 부모 외에는 친척 2~3명만이 자리를 지켰을 뿐이다. 피해자의 가정은 아주 가난했기 때문에[12] 장례비 350만 원을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이 돈은 그동안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병원에 보관되어 있던 2개월여간의 안치 비용이 붙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장례보다 불어난 금액이다. 그래서 더욱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이것도 병원 측이 딱한 사정을 알고 30% 가량 깎아준 가격이다.
소녀의 시신은 7월 6일 수원 연화장에서 쓸쓸히 화장되어 화장장 뒤편에 뿌려졌다. 출처
6. 경찰 수사에 대한 비판[편집]
실로 이 사건은 한 소녀의 죽음을 놓고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뻘수사만 감행하는 경찰과 검찰의 무능함이 수사를 더욱 꼬였다는 비판이 있다. 살인 피해자와 무죄가 나온 피의자들이 폭행[13] 한 사람[14] 이 전혀 무관한 사람이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게 꼬여 버린 가장 큰 원인으로 경찰의 수사 방식을 꼽고있다. 실제로 경찰은 '소녀의 신원을 모르겠으므로 소녀는 노숙자다'라고 단정지은 다음 노숙자들을 중심으로 수사의 초점을 맞추면서 사건의 실상과는 거리가 멀어졌으며,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아닌 근처에 떠도는 헛소문만 듣고 사건과 아무 관련없는 엉뚱한 폭행 사건을 수사하며 결국 엉뚱한 사람들을 범인으로 붙잡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한겨레에서 심층 취재한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여기
7. 진범은 누구인가[편집]
2011년 11월 26일 그것이 알고싶다의 취재를 통해 이전까지 언론 등에서는 알려지지도 않았던 이 사건의 새로운 진상들이 밝혀졌다.
사망한 김 양은 지능에 조금 문제가 있었고 시력도 나쁜 등 신체적 조건이 안 좋아서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해서 버디버디나 미니홈피 같은 온라인상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에 집중했다고 한다.
사건으로부터 며칠 전에 김 양이 자신의 집에 친구들을 불렀는데 친구들이 집을 나가면서 어머니가 소유하고 있던 반지, 귀걸이 등 돈 될 만한 것들을 훔쳐서 달아났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으며 김 양과 함께 있었던 친구들이 실제 범인이거나 범인을 알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런 가운데 검찰의 재판 기록에서 한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이 취재팀의 주목을 받았고 취재팀은 댓글 작성자를 찾아낸 끝에 놀라운 증언을 들었다. 당시 가출해 방황하던 댓글 작성자는 우연히 천안에서 자신과 같은 가출 청소년 세 명을 만나 동행했는데 이들이 소녀를 때려 살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의도치 않게 죽어 버리자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은 댓글 작성자를 참고인으로 조사했고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재수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면 이 댓글 작성자가 제보한 것이 여러가지로 사건의 실체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은 섣불리 판단하기는 무리이고 경찰의 재수사를 지켜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원 지역 시민 단체들이 이 사건의 재수사를 강력하게 촉구했으나 경찰의 부실수사(폭행치사로 처리)로 인해 2014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15] 사실상 영구미제로 남게 되었다.
전체 사건 요약
8. 사건 이후[편집]
검사의 강압에 의해 허위진술을 해 누명을 쓰고 무죄 판결이 날 때까지 길게는 1년까지 옥살이를 했던 김모(22) 씨 등 5명과 그들의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2014년 10월 26일 국가가 이들 피해자에게 100만 원에서 2,400만 원까지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기사
노숙인 중 한 명은 2015년 3월 서울고법에서 1억 3100만 원의 형사보상 결정을 받아냈다.
2016년 11월 16일 JTBC의 말하는대로에서 해당 사건의 국선변호인이였던 박준영 변호사가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2021년 6월 20일, tvN의 교양 프로그램 알쓸범잡에서 이 사건이 소개되었다.
2019년 발행된 윤홍기의 장편소설 '일곱번째 배심원'이 이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2022년 3월 3일, SBS의 교양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김복준교수의 유튜브 방송 사건의뢰에서 2023년 6월 9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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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이렇게 불렀다.[2] 여기서 경찰이 얼마나 지역 사회에 무관심한지를 알 수 있는데 수원중·고등학교는 수원에서 역사가 오래된 명문학교(일제강점기 시절 학교)들이며 동문들도 상당히 빵빵하다. 그런 학교를 지역 경찰이 몰랐다는 건 우스운 일이다.[3]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이 폭행한 사람은 전혀 다른 성인 노숙자이며 사건 당일이 아니라 2일 전이며 살인은커녕 큰 상해를 당할 폭행이 아니라 그냥 우리 돈 내놓으라고 멱살잡이를 하다가 포기한 정도여서 심한 폭행이 아니었다. 그러나 검사와 경찰은 이걸 그냥 살인피해자에게 한 일로 조서를 만들었다.[4] 이들 중 한 명은 당시 형사미성년자였기 때문에 기소는 되지 않았다.[5] 암기를 시키듯 범행장소로 통하는 길을 미리 설명한 후 다시 물어보면서 유도신문을 하였다.[6] 참고로 한국은 삼권분립 국가로 서로간의 일에 절대 관여할 수 없고 특히 검사와 판사가 서로 간섭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법이 다 무너져 버리기에 상호 존중하며 거리를 두되 법에서 허용된 범위(항소, 상고 혹은 국회의 대정부 질문 등등)에서만 견제해야 한다. 즉 검찰의 저 성명은 그냥 싸우자는 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당시 대법원장 또한 상당히 분노했을 것으로 추측된다.[7] 대형로펌으로 가는 전직 검사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보통은 혼자 개업하거나 일반 로펌으로 들어간다. 아니면 대학교나 대학원, 로스쿨 교수로 가기도 하며(로스쿨의 교수는 사실상 필수적으로 변호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므로 훨씬 수월할 것이다.)그 외에 여러가지 진로가 있다.[8] 설령 실명을 알더라도 절대 언급하지 말 것.[9] 모자이크 없이 소녀의 시신의 얼굴이 그대로 나오므로 다소 공포감을 줄 수 있으니 주의.[10] 자켓, 티셔츠, 바지, 브래지어, 팬티, 양말, 신발[11] 언론과 인터넷으로 노숙소녀 신원찾기 캠페인 운동을 벌인 가운데 개그맨 서경석도 직접 나서면서 동참했다.[12] 이혼 가정이었고 아버지가 일용직 노동자였다.[13] 주먹으로 때리고 그런 게 아니라 증언상 멱살을 잡아 흔든 것이었다. 돈을 훔쳐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4] 미성년자인 살인 피해자와 달리 20대 성인이었다. 2만원을 훔쳐갔다고 생각해서 폭행했다고 한다. 근데 일반적인 폭행이 아니라 돈 내놓으라고 멱살을 잡은 거지 살인 피해자가 당한 폭행과 무관했다. 살인 피해자는 온몸에 상처가 많았다.[15] 2007년 12월 21일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폭행치사 사건은 10년으로 공소시효가 늘어났지만 이 사건은 2007년 12월 20일 이전의 사건이라 소급적용이 안되어 공소시효가 7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