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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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삼성 라이온즈 역대 단장
김재하

송삼봉

안현호

파일:송삼봉1.jpg

1. 개요
2. 생애
3. 평가


1. 개요[편집]


삼성 라이온즈의 단장.

2. 생애[편집]


중앙상업고등학교(현 대구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제일모직 경리과에 입사함으로서 삼성그룹에 첫발을 들였다. 1993년에 삼성 라이온스로 보직이 이동되어 부단장을 맡고 있었으나, 2010년 12월 단장을 맡고 있던 김재하가 갑작스럽게 건강을 이유로 사임을 선언한 이후인 2010년 12월 8일 제11대 단장으로 취임했다.[1]

단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선동열 감독도 "자진사퇴"를 선언했고, 류중일을 감독으로 임명했다. 이는 본인 뜻이라기보다는 당시 그룹에 복귀한 이건희 회장의 임김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2008년 삼성비자금 사건 때문에 회장직을 사임했고, 사실상의 그룹 경영을 이학수 부회장이 맡았는데, 2010년 이건희가 복귀하고 나서 이학수 인맥을 정리할 때 삼성 라이온스도 직격탄을 맞았다. 전임 김재하 단장이 이학수 인맥으로 찍혔기 때문에 이학수 인맥인 김응용 사장과, 김응용의 제자인 선동열마저도 낙마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구단 수뇌부의 교체가 있었지만, 팀을 잘 추스려서 2011~2014년까지 삼성 라이온스의 리그-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를 달성하였다.[2] 외국인 선수 영입은 평타수준이었고 (탈보트(2013), 밴덴헐크(2014), 마틴(2014) 나바로(2014) 같은 성공사례도 있지만, 실패도 꽤 된다.), 2012년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접은 이승엽을 데려왔고, 2014년 메이저리그 입성에 실패한 임창용을 데려와 오승환의 공백을 메꾸었다.

2014년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후임은 안현호. 그리고 이 사임은 삼성 라이온즈가 유례 없는 하위권으로 떨어지는 신호탄이 되었다.


3. 평가[편집]


삼성 왕조 시기의 단장임에도 불구하고 삼성 팬덤에서는 전임 김재하나, 이후 안현호, 홍준학에 비해 존재감이 약해 거의 언급이 되지 않는다. 김재하는 팀을 리빌딩한 손에 꼽는 명단장으로, 안현호와 홍준학은 명문 구단을 추락시킨 손에 꼽는 무능한 단장으로 회자되지만 이쪽은 왕조 시기의 단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행적이 없어서 존재감이 미약하다. 그래도 왕조 시기의 단장이었던데다 후임 단장들인 안현호홍준학이 10년간 워낙에 역사적인 트롤링을 저지르며 팀을 리그 전체적 차원에서 보아도 밑바닥으로 처박아버렸기에 송삼봉은 반사효과로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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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이온스를 사임한 김재하는 바로 다음 달인 2011월 1일 대구FC의 단장으로 취임하여, 건강상의 이유는 그냥 핑계였음이 간접적으로 드러났다.[2] 2014년에는 정확히 그가 떠나고 나서 삼성이 우승한 것이긴 하지만 그가 재임할 때까지 페넌트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