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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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불이를 그린 삽화

1. 개요
2. 상세
3. 소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의 손불이



1. 개요[편집]


孫不二 (1119 ~ 1182)
금나라의 도사였다. 전진교전진칠자 중 한 사람이자 마옥의 처로, 본명은 손부춘(孫富春)이며 도호는 청정산인(淸淨散人)이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법명인 불이(不二)로 알려져 있으며 손선고(孫仙姑)라고도 불렸다.


2. 상세[편집]


산둥성 영해 사람으로 영해의 호족인 손충익의 딸로 어려서부터 남다른 바가 있어 마옥(馬鈺)이 진선의 재목임을 알아보고 아버지에게 요청하여 그에게 시집갔다.[1] 부부간의 금슬이 좋은 것으로 당대에 유명했으며, 대정(大定) 7년인 1167년에 남편인 마옥과 함께 왕중양의 제자가 되어 7년간 수도하였다. 도가(道家)로 칠진(七眞; 일곱 명의 眞人)으로 유명한 전진칠자 중 홍일점으로 뛰어난 미인이었다고 한다. 1119년생으로 남편 마옥과 함께 1167년에 출가할 당시 나이가 48세일 무렵에도 미모가 나이보다 젊어보이고 뛰어나 전진교에서 수행하는 아랫 배분의 제자들이 그녀의 미모에 미혹되어 수행을 제대로 못하여 몰래 염탐하여 제사를 주관하는 손불이가 목욕재계 하는 것을 훔쳐보아 한탄했고 자신의 직전제자를 다른 이들도 아닌 그 아래 배분의 제자들이 음심을 품고 염탐했다는 것에 분노한 왕중양이 이들의 목을 베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미모가 탁월했다고 전해진다.

김용의 소설 사조영웅전에서 손불이는 중년의 나이에야 수련을 시작해 무공도 그다지 높지 않아사 사부 왕중양이 이를 걱정해 그녀에게 가장 좋은 보검을 남겨주었다고 나오는데, 실제로 왕중양은 손불이에게 좋은 보검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실존 인물인 손불이는 사조영웅전에서 묘사되듯 무림인이 아니라 도교의 도사라서 무술을 따로 익히지 않은데다 여자이기 때문에 무력이 약할 수 밖에 없었다. 위와같이 문파의 아래 제자들이 벌인 음행이 드러났는데 당시 전진교는 신흥 종교로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다른 도교 및 문파들이나 금나라 등과도 교류를 하여 손불이도 마옥과 낙양 일대와 남방을 유람하면서 전도하였는데 때로는 바빠서 마옥과 따로 떨어져 전도하는 경우도 많았는데다 스승인 왕중양은 전진교는 도가의 일원이지만 유불선이 결국 하나로 합쳐진다는 이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유학과 불가 서적도 공부하게 했다고 하여 전진교의 제자들은 선비, 승려들과도 깊은 교류를 했는데 이때문에 그녀의 전도에 따라다니는 본파의 제자들이나 유랑하면서 만난 다른 문파의 제자들이나 선비, 승려, 일반인들 중에 손불이에게 음심을 품을 가능성도 있기에 자신이 구한 가장 좋은 보검을 하사하여 손불이가 이들에 의해 정절을 더럽히지 않게끔 대비하게 하였다. 즉, 자신이나 다른 여성에게 음행을 하는 이들을 만나면 보검으로 죽이고, 중과부적으로 정절을 더럽혀질 위기에 처하면 자결하여 치욕을 받지 말라는 뜻으로 하사했으며 왕중양은 금나라에 맞서 의병을 조직한 적이 있어 무술에 일가견이 있어 손불이에게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무술수련을 따로 지도해줬다고 전해진다. 정확하게는 전진교는 도가의 맥을 잇는 종교로 당시에 실존하던 다른 종교단체들이 그러했듯 전진교도 고유의 무공이나 진법 등이 있었으며 왕중양이 젊은시절에 의병을 조직할 정도로 병법에도 능한 인물이라서 손불이는 왕중양의 지도로 무술이 늘어았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전진칠자 중 막내인 학대통은 전진교가 왕중양 사후 구처기의 용문파가 조사 직을 독점[2]하면서 사분오열되는 것을 비관하여 전진교를 나와 화산파를 창건했다. 이를 비춰보면 전진교의 무술이 격이 떨어진다고 보기 어려우며 개파조사인 왕중양으로부터 직접 무술을 지도받은 손불이도 무술이 늘어났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손불이가 금나라 최악의 폭군이자 유부녀를 좋아하는 해릉양왕도 손불이도 표적으로 삼아 자신의 후궁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그가 취임할 1150년의 손불이는 31세였으며 그가 사망한 1161년은 손불이는 42세로 여성으로 미모가 완숙해질 무렵이었다. 당대에 미모로 상당한 찬사를 받았는데 해릉양왕 생전에 그로부터 나라를 기울여 위태롭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뜻하는 경국지색(傾國之色),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를 뜻하는 단순호치(丹脣皓齒), 하늘 아래 가장 뛰어난 미모라는 천하일색(天下一色), 꽃 같은 얼굴에 달 같은 자태를 뜻하는 화용월태(花容月態), 세상에 견줄 사람이 없는 미인을 뜻하는 절세미인(絶世美人)이라는 수식어를 받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고 전해지며 해릉양왕을 처단하고 황제가 되는 금세종 시기에도 미모로 유명했고 해릉양왕이 그녀에게 한 수식어들이 금세종 시기에도 알려졌다고 하니 미모가 상당히 뛰어나다고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이니 실제로도 미모가 뛰어났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쿠데타에 성공해서 1150년 금나라 황제에 오른 해릉왕은 취임사를 발표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국가의 대사는 모두 짐이 지배한다.
  • 군사를 이끌고 남송을 공격해서 토벌하고 남송 황제를 붙잡아 죄를 묻는다.
  • 천하 절색의 미녀를 손에 넣어 모두 부인으로 삼는다.
이 작자는 대놓고 짐은 풋사과보다는 단물이 철철 흐르는 농익은 사과를 더 좋아하느니라라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신하들이 해릉양왕에게 제발 유부녀는 냅두고 처녀를 건드리십시오라고 말할 정도로 유부녀를 탐하는 자라 당대에 뛰어난 미모로 평가받은 손불이도 이 표적이 되었기에 해릉양왕이 언급한 천하 절색의 미녀에 손불이가 포함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해릉양왕의 성벽 때문에 표적으로 삼은건 당연했으며 천하절색인 중년미부(中年美婦)를 손에 넣겠다고 추진하였다.

손불이는 북송의 산둥성 출신이라 정강의 변으로 북송 지대가 금나라의 영토가 되면서 자연히 금나라에서 활동하였기에 해릉양왕에게 끌려갈 위기에 처했으나 해릉양왕이 취임사와 함께 남송 정벌을 하느라 금나라가 남송과 전쟁 준비에 돌입하면서 유야무야 넘어갔고, 1161년 해릉양왕이 금세종이 되는 완안옹의 쿠데타에 사망하면서 정절을 빼앗길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러한 위기를 겪으며 자신의 미모에만 혹하고 자신의 내적인 감정이나 자신의 생각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3]에게 실망 하였으나 진선의 재목인 마옥이 자신을 위로하며 자신이 입수한 도가사상의 서적을 가지고 오면서 서로 도가사상에 매혹되어 스스로 공부하고 수련하여 1169년에 남편인 마옥과 함께 신흥 도교 문파 전진교를 개창한 왕중양의 직전 제자가 되어 전진칠자로 7년간 수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50세였는데, 7년간의 수련 중 배분이 낮은 전진교의 젊은 남자 제자들이 여전히 아름다운 자신의 미모에 미혹하여 수련을 등한시하고 정욕에 빠져 제사를 주관하는 자신이 목욕재계 하는 것을 훔쳐보아 한탄했고 자신을 염탐하여 정욕에 빠져 스승인 왕중양이 이들의 목을 베어 일벌백계 하고서도 자신에게 미혹된 남자 제자들이 자신을 윗 배분의 사숙모가 아닌 한낱 여인으로 대하는 남자 제자들을 불러모아 자신은 너희들의 사숙인 마옥의 아내로, 항렬 상 숙모인 자신에게 음심을 품어 수련을 등한시하여 스승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사적으로 숙모를 탐해 패륜을 저지른 것이라서 너희들의 목을 베어야 마땅하나 너희들이 나의 외모에 미혹되어 그런 것이니 내 책임도 크다며 칼을 빼들고 남자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얼굴에 칼을 그어 미모를 손상시키고 자신에게 음심을 품은 남자 제자들의 목을 다른 전진칠자가 보는 앞에서 베어 다른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어 수련에 매진하게 했다고 하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녀의 남편 마옥 역시 진인의 반열에 올랐는데, 이들 부부는 함께 도를 이룬 후 방중술을 체계화하였다. 고대에 현녀와 소녀, 채녀, 서왕모 등도 방중술의 최고 경지에 오른 전설적인 여성들로 전해지는데 이때문에 도교 문파에선은 손불이를 소녀, 채녀, 서왕모, 하선고[4]의 화신으로 여겨 숭앙하기도 한다. 또한 방중술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보정(寶精)이라고도 하며 음양의 교접을 통한 모든 술법을 통칭한다. 도교에서 실제로 행한 종교적인 수행법 중 하나로 음양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올바른 음양 교접을 통해 를 원활하게 유통시켜 천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는 것을 골자로 한다. 즉, 적인 본능을 부당하게 억압하거나 방종하지 않고 올바른 방법으로 발산하면 음과 양 두 기(二氣)가 조화를 이루어 불로장수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이론.

지나치게 정욕을 행사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무턱대로 금욕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모든 방중술은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음양 조화를 이루는 게 목적이고, 성관계를 그 수단으로 삼고 있을 뿐이므로 철저하게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방중술의 진정한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 그 때문에 방중'술'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내용이 올바르게 성을 영위하는 방법과 이에 따른 예절, 성과 관계 있는 약[5]의 종류, 불륜의 관계에 대한 훈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쉽게 말해 민간종교에서 집필된 성교육 교본.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함께 도를 이룬 후 방중술을 체계화하였다는 것은 부부관계가 매우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손불이는 마옥이 진선의 재목임을 알아보고 호족인 아버지에게 요청하여 그에게 시집갔다는 것은 손불이가 마옥에게 반해서 시집간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다른 기록에는 이미 연인 사이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미 당대에 마옥과 혼인 기간이던 시기에도 여러차례 많은 남자들에게서 마옥 모르게 즐기자며 추파를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여 정숙한 유부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남편 마옥과 함께 전진교에 귀의한 뒤에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법명인 불이(不二)로 알려져 있으며 손선고(孫仙姑)라고도 불렸졌는데 손선고는 손불이의 성인 손(孫)에 중국도교 전설에 나오는 선인(선녀)로 팔선 중 하나인 하선고(何仙姑)를 더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손선고(孫仙姑)'로 불려졌는데 하선고가 팔선의 홍일점인데다 미모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평을 받아 그렇게 불린 것인데 손불이의 남편 마옥은 마동빈(馬洞賓)이라고도 불려졌는데 마동빈은 마옥의 성인 마(馬)에 중국도교 전설에 나오는 선인으로 팔선 중 하나인 여동빈(呂洞賓)을 더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마동빈(馬洞賓)'으로 불려졌다. 팔선들 중 하선고(何仙姑)와 여동빈(呂洞賓)은 연인 사이로 나오는 인물들이라 당대 사람들이 손불이와 마옥을 두고 하선고와 여동빈을 대입하며 한 쌍의 사랑하는 두 남녀 도사를 팔선에 비유하여 칭송한 것인데 부부 사이가 매우 좋아 자식도 여럿 보았다고 전해졌으며 방중술을 체계화하여 대중에게 전파하여 다른 전진칠자와 달리 손불이와 마옥은 부부의 금슬이 좋게 해주는 신으로 사당에서 모셔지기도 한다.

남편인 마옥과 낙양 일대와 남방을 유람하면서 전도하였으며 그녀를 따르는 무리들을 청정파라 불렸으며 마옥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우선파라 불렸는데, 청정파와 우선파는 각자의 스승이 부부인데다 워낙 금슬이 좋아 이러한 이유로 우선파와 청정파 간의 사이가 매우 좋았다고 전해져 두 파벌간에 혼인하여 서로 인척이 되는 이들이 많았다. 또한 이들은 마옥, 손불이 부부가 체계화하여 정립한 방중술 강연을 들어 청정파와 우선파 제자들이 부부 사이가 되어 방중술로 인해 금슬이 더욱 좋아져서 전진교의 다른 파벌도 이들 부부의 방중술을 배우기도 했으며 민간에 전해져 일반인들도 부부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데 쓰이면서 다르 전진칠자와 달리 마옥과 손불이는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편이다. 그녀가 죽은 지 한참 지난 시기인 원나라쿠빌라이 칸 때 그녀는 청정연정순덕진인으로 봉해졌다.


3. 소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의 손불이[편집]


김용의 무협소설 사조영웅전신조협려에서도 이름과 모티브를 따온 가공의 인물로서 등장한다.[6] 전진칠자 중의 유일한 여자로, 비중은 높지 않은 편이다. 중년의 나이에야 수련을 시작해 무공도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않다. 사부 왕중양은 이를 걱정해 그녀에게 가장 좋은 보검을 남겨주었다.

정요가의 스승으로, 옷에 해골 그림이 있다. 이는 왕중양이 해골 그림을 주며 "사람은 언젠가 죽게 되니 수행에 정진하라"는 덕담을 해줬기 때문.

고묘에서 세상밖으로 나온 양과는 물론 같은 또래인 야율제보다도 아래 실력이다.

신조협려에서 양과와 소용녀의 결혼에 토를 달다가 되려 인질로 잡힌다. 원래부터 마옥의 부인이었으며 마옥이 입교하자 따라 입교했다. 양과와 소용녀의 모습을 보고 신혼 시절을 떠올리는 걸로 미루어 작중에서도 금슬 좋은 부부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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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불이가 마옥보다 4세 연상이다.[2] 이것은 구처기의 잘못이 아닌 구처기의 제자들의 탐욕 때문이다. 전진교는 왕중양 사후 그의 직전제자들이 조사직을 돌아가면서 했는데, 구처기가 조사직을 받으면서 정치적 수완으로 전진교를 크게 부흥시켜 용문파의 위세가 커졌다. 구처기가 살아있던 시기에는 다른 파벌들과 교류고 하고 관계가 원만했는데, 구처기 사후에 교단의 재산을 둘러싸고 이권다툼이 일어나게 된다.[3] 손불이는 남편 마옥과 전진교에 입문하기 전에도 유학, 불교, 한학 등을 배우며 많은 승려, 선비들과도 교류를 했는데 손불이가 미모가 뛰어나 선비나 승려들이 그녀에게 미혹되어 교류를 하고 싶다고 찾아와서는 자신을 유혹하여 남편 마옥을 배신하고 간통을 하자는 남자들에게 실망하기도 하였으나 인품이 고고하여 자신에게 미혹도지 않는 선비의 집에 교류를 하러 찾아갔더니 그 선비의 부인이 손불이가 미모가 뛰어나자 질투하여 문 밖에서 박대하며 내쫒기도 하여 손불이는 자신의 미모에 미혹되고 질투하는 사람들로 인해 염증을 느꼈다고 전해진다.[4] 하선고는 도교의 팔선 중 하나로 같은 팔선인 여동빈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옥은 여동빈의 화신으로 여겨진다,[5] 단순한 춘약의 개념이 아닌, 흔히 말하는 정력증강제 같은 것부터 분위기 잡기 위한 허브 같은 것까지 전부 포함한다.[6] 실존인물은 칭기즈 칸보다도 한 세대 앞의 인물이며 왕중양과 비슷한 세대라 신조협려는 고사하고 사조영웅전 시대에도 노년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