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알바니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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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근세
2.2. 19세기
2.3. 20세기
2.4. 21세기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세르비아알바니아의 관계에 관한 문서. 양국은 발칸 전쟁 이후로 갈등을 빚고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근세[편집]


오스만 제국의 지배기간 동안 알바니아인들 상당수가 이슬람으로 개종하였으며, 동로마 제국 시대 이래 슬라브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코소보 지역에 알바니아인들이 이민,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남슬라브인 세르보크로아트어 사용자 집단 중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은 보슈냐크인으로, 명목상이나마 정교회를 고수한 인구는 세르비아인, 몬테네그로인 등으로 분화되었다.

2.2. 19세기[편집]


세르비아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아드리아 해로 진출하기 위하여 알바니아를 확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르비아의 진출을 견제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알바니아의 독립을 지지하였고 삼국 동맹의 일원인 이탈리아 왕국독일 제국이 여기에 동조하였다. 세르비아는 알바니아의 독립을 방해하였고 알바니아의 영토인 코소보를 차지하여 이로 인해 알바니아와 갈등이 생겼다.


2.3. 20세기[편집]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쳐 유고슬라비아와 알바니아에 공산 정권이 각각 수립된 이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엔베르 호자는 처음에 협력 관계를 지켜왔으나, 티토가 알바니아를 자국령으로 취급하고 유고슬라비아에 흡수하려고 하자 양국은 사이가 틀어졌다. 이후 티토는 스탈린과 결별하고 엔베르 호자는 프라하의 봄 이전까지 소련과 관계를 맺었다.

동유럽 혁명 이후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휩싸였다. 코소보의 자치권이 박탈되자,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이 분리독립을 요구하였고 코소보 전쟁 과정에서 세르비아인들과 알바니아인들이 학살되었다.


2.4. 21세기[편집]


코소보 전쟁을 거치고 21세기에 들어 2014년, 알바니아의 에디 라마 총리와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 부치치 총리가 처음으로 회담을 가졌으나, 여기서도 양국은 코소보 문제를 놓고 갈등을 벌였다. 이후 같은 해에 열린 UEFA 유로 2016 I조 예선에서는 폭력사태가 발생하여 경기가 중단될 정도로 양국의 관계는 험악하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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