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타보리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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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세르게이 타보리츠키
Сергей Владимирович Таборицкий[1] | Sergey Taborit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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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세르게이_타보리츠키.jpg

출생
1897년 8월 12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망
1980년 10월 16일 (향년 83세)
서독 림부르크안데어란
가족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자페발로프(부)
안나 블라디미로브나 자페발로프(모)
니콜라이 타보리츠키(제)
국적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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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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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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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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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저널리스트, 정치 운동가
정당

,(1940 ~ 1945),

1. 개요
2. 일생
3. 대중매체



1. 개요[편집]


세르게이 타보리츠키는 러시아의 국수주의, 군주주의 성향 언론인이다.


2. 일생[편집]


러시아 혁명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표토르 사벨츠크-보크를 만나 마약을 복용하고 같이 파벨 밀류코프 암살[2]을 시도하던 도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아버지 블라디미르 드미트리에비치 나보코프를 의도치 않게 죽여서 14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얼마 뒤 사면되었다가 게슈타포와 함께 러시아 난민 사무국에서 근무하였고, 1938년에는 독일 시민권을 취득했다. 타보리츠키는 꼴통 왕정주의자라 독일 내 백계 러시아인 커뮤니티에서도 극단성과 완고함 때문에 배제당하기 일수였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의 유대계 혈통을 속이고[3]'폰 타보리츠키'라는 가상의 독일 귀족 행세를 하며 НОРМ이라고도 불리는 러시아 국가 청소년 기구라는 나치 소년단을 만들어 활동했다. 이로 인해 1942년에는 나치당의 당원 자격[4]을 얻게 된다. 타보리츠키의 삶을 다룬 게시물(러시아어) 나치즘에 매료된 타보리츠키는 이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러시아 내에서 볼셰비키 물을 빼려면 나치 독일이 소련을 25년간 지배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다만 나치 측에서는 타보리츠키가 러시아계 왕정주의자라 국가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독일과 상충된다고 보고 기껏해야 선전용으로 써먹었다.

나치 독일의 패전 이후, 친독 성향이였지만 딱히 전쟁범죄 혐의가 없었던 타보리츠키는 소련으로 송환되지 않고 베를린을 떠나 서독 림부르크안데어란에서 계속 거주하였고 말년에는 브라질의 왕당파 잡지 'Vladimirsky Vestnik(블라디미르츠키 베스티니크)'에 가끔 일부 글들을 기고하며 살았다.


3. 대중매체[편집]


추축국의 2차 세계대전 승리를 다룬 Hearts of Iron IV의 MOD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에서 등장한다. 그는 코미 공화국 우파 중 왕당파의 수장으로 등장하며, 이 세계관에서는 뜨노에 나오는 지도자들이 대개 그렇지만 이 인물은 특히 현실의 인물과 얼굴, 이름만 같지 사실상 다른 인물이라 봐도 좋을 정도로 괴리감이 크며 훨씬 극단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볼셰비키에 의해 이미 처형된 알렉세이 황태자가 살아있다고 믿으며[5], 그가 집권할 시...
스포일러
집권하게 될 시 "신성 러시아 제국의 축복받은 섭정"을 자칭하며 순수한 러시아를 만들기 위해 폭정과 학살을 벌이지만, 추축국의 침공과 소련의 붕괴로 분열된 러시아를 통일한 뒤 정신 건강이 계속 악화되고 그를 대하기 두려워한 사람들이 점차 그를 피하여 물리적으로 고립되게 되자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자 손을 사실상 쓸 수 없게 되어 뇌일혈 쇼크로 사망하고 만다.[1] 이후 타보리츠키의 수하이자 제국의 2대 섭정이 된 빅토르 라리오노프[2]는 타보리츠키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며, 타보리츠키 충성파를 숙청하고 권력 장악을 시도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제국은 붕괴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수하였던 안드레이 디키유리 엡투코비치는 여전히 고립된 채로 타보리츠키의 정책을 이어나가고 있다.

다른 하츠 오브 아이언4 모드인 Red Flood에서도 등장하는데 집권 시 학살을 자행하는 모습이 나오고 카이저리덕스에서도 더미 데이터로 희회화된 이미지의 타보리츠키의 지도자 모습이 있거나 본편 자유주의 세력 암살 이벤트에 깨알같이 언급된다.
[1] 원래 성씨의 정확한 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표기가 타보리츠키로 굳어진 것은 러시아 혁명을 피해 독일로 망명한 이후로 보고 있다.[2] 밀류코프는 차별받던 유대인과 소수민족의 권리보장을 위한 정책을 펼쳤고 타보리츠키는 민주적인 요소를 전면 부정하는 왕정주의자였기에 자연히 밀류코프가 그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3] 타보리츠키 본인은 자신의 유대인 혈통을 매우 혐오하여 본인의 이러한 혈통을 카인의 표식이라 스스로 일컫기도 했으며 유년 시절 정교회 이단 계열의 신비주의 종교에서 혈통을 지우려고 시도한 적도 있다. 의외로 이런 자기혐오적인 반유대주의는 서양권에서는 흔한 편으로 근대나 전간기,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활동한 반유대주의자나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는 단체(그 나치 독일도 해당된다!)에 소속된 인물 중에는 유대계 혈통도 은근 있었다.[4] 자격은 1942년에 와서야 얻었지만 1940년 가입으로 소급 적용되었다.[5] 정작 현실의 타보리츠키는 알렉세이 생존설을 믿지도 않았고 왕위 후계자도 미하일 1세 대공 옹립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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