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훈/논란 및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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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과 기록
4. 북한의 대남 도발 옹호 발언
7. 민주유공자 법안 발의로 운동권 셀프 특혜 논란
8. 음주운전 논란
9. 노인 폄하 발언 논란
10. "광주는 싹쓸이해도 된다" 발언 논란
11. 문재인 정부 고위공직자 부동산 투기 옹호
12. 성차별 발언 논란
13. 조국 사태 집회 참가자 관련 발언
14. 윤미향 옹호 발언 논란
15. 검찰총장 임기에 대한 무지
18. 쥴리 벽화 옹호 논란
19. 한미연합훈련 연기 발언
20. 이낙연계 정치인으로서 경선 경쟁 후보 비방 논란
20.1. 이재명 지지자와 설전
20.2. 의원직 사퇴선언(철회)
20.3. MB감옥 거론 네거티브
20.4. 경선불복 논란
21.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아무것도 아닌 일" 망언 논란
23. "탄핵 사유에 해당 된다" 발언 논란
24. 기타


1. 개요[편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설훈의 논란과 사건사고에 관한 내용을 담은 문서다.

정치입문 초기인 1990년대 초부터 2023년 지금까지 수많은 막말로 구설수를 일으키기로 유명한 인물[1] 중 하나이며,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러한 발언이 재조명 되었다.


2. 전과 기록[편집]


  • 3건의 범죄 전과가 있다.
    •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도로교통법위반: 벌금 200만원. 1994년 4월 28일 선고
    •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위반: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 - 2004년 11월 30일 선고, 2007년 2월 12일 형사면특별복권
    •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벌금 150만원. 2007년 5월 8일 선고


3. 병풍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병풍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15대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두 아들이 군 면제를 받은 것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여 당시 신한국당 후보였던 이회창의 낙선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회창의 두 아들의 불법적인 병역기피 의혹은 결국 법적으로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되었고, 가짜 뉴스를 유포한 설훈과 김대업은 처벌받았다.

  • 16대 대선에서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최규선에게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최규선 게이트 설과 기양건설 10억원 수수설 등의 거짓 선동을 통해서 이회창의 낙선에 영향을 끼쳤지만, 2005년 법원 판결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아 피선거권이 10년 동안 제한되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007년 3월 9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 사면·복권 대상자에 포함돼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이렇게 그는 민주당의 거짓 선동을 전문으로 하는 의원이었고 그에 따라 전혀 합당하지 않은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2007년 2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사면된 후 탄핵 표결에 반대하였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친노 이미지로 자신의 범죄를 묻고 이를 친문, 친이낙연계로 갈아타면서 자신의 계파 보스의 이미지를 이용해 자신을 둘러싼 논란들을 덮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4. 북한의 대남 도발 옹호 발언[편집]


2015년 5월 천안함 피격 사건과 관련하여 "국민의 절반인 47.2%가 천안함 침몰에 대해 정부 여론 조사를 못 믿겠다고 하는 상황"이라며 천안함 피격이 북한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천안함 폭침을 북한 소행이라고 5년 만에 인정한 뒤에 나온 것이어서 더 논란이 되었다. #

2019년 5월에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지난 2017년에 남북경제협력추진본부를 열고 8백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대북 지원을 의결했지만 아직도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금이 집행됐다면 과연 북한이 무력시위를 했을까 생각된다"고 북한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

2020년 5월 25일에는 1987년 일어난 KAL기 폭파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재조사가 필요한다는 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국정원 진실위에서도 북한의 테러가 맞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


5. 20대 비하 발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설훈·홍익표 국회의원 20대 비하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국민 비정상 발언 논란[편집]


2020년 8월에는 민심이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돌아서자 국민들이 '정상상태'로 돌아가는 상황이 올 것라며 국민들을 비정상 상태로 취급 하는 발언을 하였다. #


7. 민주유공자 법안 발의로 운동권 셀프 특혜 논란[편집]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0일 민주화운동 이력을 가진 이들을 유공자로 지정해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 취업 혜택 등을 주는 내용을 담아 '운동권 셀프 특혜' 논란을 빚은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예우법)'을 결국 철회했다. 설 의원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법안에 대한 논란 등을 감안해 이날 오후 법률안을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설훈의 '헛발질'…특혜 논란에 '민주유공자예우법' 철회


8. 음주운전 논란[편집]


2007년 3월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입건되었는데 측정수치를 신빙할 수 없다며 인근 병원에서 채혈을 하는 등 시간끌기를 시도했으나 결국 면허취소를 당했다.[2]


9. 노인 폄하 발언 논란[편집]


2014년 자니 윤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되자[3] "인간은 연세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79세면 쉬셔야지 왜 일을 하려 드느냐"고 발언하여 노인 폄하 발언 논란이 일었다.[4] 이에 대한노인회가 크게 반발하며 해명할 것을 요구하자 막상 대한노인회를 방문하기는 했는데 "뭘 잘못했길래 사과를 해야 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주장하며 끝까지 사과를 거부했다.

그런데 설훈은 8년 뒤 20대 대선을 앞두고 세는 나이로 71세, 만으로 69세였던 1952년생 이낙연 후보를 지지한 적이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이낙연 또한 판단력이 떨어지는 나이이니, 정계를 은퇴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해야함이 옳다(...)

설훈 본인도 21대 국회의원이 되어 70세 넘어서까지 정치활동을 계속했다.

10. "광주는 싹쓸이해도 된다" 발언 논란[편집]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주는 싹쓸이해도 된다"라는 발언을 했다. 정의당이 이에 대해 비판하였다. #


11. 문재인 정부 고위공직자 부동산 투기 옹호[편집]


2019년 4월,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과 최정호 전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 등 문재인 정부 인사들의 부동산 관련 논란이 들끓고 있을 때, "(과거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너도나도 다 같이 이런 사회 분위기가 있어서 위장 전입이라든지 부동산 투기라든지 이런 데 대해서 둔감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발언하였다. 20대 비하 발언으로 비난세례를 받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부동산 투기 정당화 또는 50대 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이다. 해당 발언에 대해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이 분 주장을 다 합치면 20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았고, 50대는 부동산 투기문화를 가졌다고 싸잡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


12. 성차별 발언 논란[편집]


2019년 4월, 패스트트랙 사건과 관련해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을 향해 "처음에는 임 의원이 남자인 줄 알았다"라고 비하적인 발언을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


13. 조국 사태 집회 참가자 관련 발언[편집]


2019년 9월, 조국 사태와 관련하여 조국사퇴를 촉구하는 대학생들의 집회와 관련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2만 명 정원 중에서 한 200명 정도 나왔다고 알고 있다"며 "집회에 참석한 사람이 50대, 60대가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고 폄하하는 주장을 했다. # 그런데 실제로 50, 60대가 더 많이 등장하긴 했다.[5] 심지어 70% 가량이 50대 이상인 것 같다는 기사도 있다. #[6]


14. 윤미향 옹호 발언 논란[편집]


2020년 5월에는 정의연 비리 의혹으로 논란이 된 자당 소속의 윤미향 당선자를 옹호하며,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윤미항이 사퇴해야한다는 반응이 70%를 찍자 "국민들이 정확한 사실을 몰라서 저런 판단을 했다."라는 반응을 하여 다시 논란이 되었다. #


15. 검찰총장 임기에 대한 무지[편집]


2020년 6월 19일 한명숙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나라면 벌써 그만뒀다." 라고 비난[7]을 하였다. # 검찰청법은 검찰의 독립을 위해 검찰총장의 임기를 2년으로 못박아뒀는데, 이를 무시하고 사퇴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검찰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발언의 계기인 검찰의 한명숙 사건 위증교사 의혹도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 # 장진영 변호사는 "윤석열 총장에게 한 말인데 오히려 김현미 국토부장관[8]이 뜨끔했을 것"이라며 "뜨끔한 장관들이 김현미 장관 말고도 많았을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


16.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유족에 대한 막말[편집]


2020년 9월 25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북한이 과감하게 사과하고 ‘우리도 잘못했다. 그러니까 이거는 우리 판단착오다’ 이렇게 된다고 하면 상황이 완전히 역전될 수 있는 소지도 있다. 남북 관계를 좋은 쪽으로 만들 수 있는 소지도 있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북한이 일방적으로 우리 국민을 총으로 사살한 뒤, 시신까지 불태운 만행을 저지르며 국민적 공분이 일어난 가운데 여당 중진 국회의원으로서 적절한 발언이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그리고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교전상태도 아닌데 대통령 새벽 3시에 깨워 보고하나"라고 되려 불만을 터뜨리면서 발언했다. 명색이 적의 도발로 민간인이 숨진 만큼 당연히 준전시상태나 다름없기에 대통령을 깨워야 하는 게 맞는 만큼 너무 상황을 안일하게 보는 게 아닌가 싶다.#


17. 삼성 장충기 문자 청탁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삼성 장충기 문자 청탁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8. 쥴리 벽화 옹호 논란[편집]


어제, 오늘 갑자기 튀어나온 문제라서. 저는 개인적으로는 가서 보고 싶어요. 뭐 때문에 갑자기 논쟁이 붙었는지 내용이 뭔지 눈으로 보고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근데 우리 사회가 너무 경색됐다고 있다고 그럴까요. 그런 게 튀어나오면 서로 막으려고 들고 이러는데 좀 여유 있게 보면서 웃으면서 "저런 것도 있구나" 이럴 수 있어야지 그걸 되니 안 되니 논쟁하는 것 자체도 우스꽝스러운 거 아닌가. 그 그린 사람은 대단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용기있는 사람인 건 틀림 없는 것 같고요. 가서 봐야겠습니다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봐야겠습니다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오늘 캠프에서 논의한 바도 없고 오늘 처음 이 문제를 가지고 생각하는 겁니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너무 그렇게 각박하게 그럴 게 있냐. 만평 보듯이 그렇게 대할 수 있는 건데요.

여성에 대한 인격 모독 그런 측면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어쨌든 그 부분을 우리 신문 상에 만평 나오지 않습니까? 한 컷으로 나오는. 그런걸 보면 그걸 웃으면서 보지 못됐다 하기는 쉽지가 않거든요. 표현의 자유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전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여유를 갖고 볼 수는 없느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요.


2021년 7월 30일 노영희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해서 쥴리 벽화을 옹호하여 그 논란이 일어난다. 마침 표현의 자유라고 여기고 있어서 그의 성인식이 심각하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관련 기사


19. 한미연합훈련 연기 발언[편집]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노골적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요구가 요구한 지 이후 나흘만에 범여권 의원 60여 명은 5일 연기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하였는데 설훈이 연합훈련을 연기하자는 연서명 운동을 주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 이와 관련해 세간에선 김여정의 압력에 따르는 것이라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되자 설훈은 "이는 명백한 사실이 아니다"라며 "훈련 연기는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고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 속에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는데 보수야권의 '김여정 하명 프레임'에 말려들면 대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은 민감한 이슈여서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삼가는 모양새다. #


20. 이낙연계 정치인으로서 경선 경쟁 후보 비방 논란[편집]


이것 때문에 친이재명 성향의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열린민주당 지지자들은 대체로 설훈을 매우 싫어하며, 거진 '똥파리 좌장', '국힘 X맨#팀이나 파티 내부의 적' 취급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좋아하느냐면 그 것도 아니다. 이 사람이 이회창을 허위사실로 끊임없이 공격해왔기 때문이다.[9] 그야말로 양측에 적이 산재한 상황이다.[10]


20.1. 이재명 지지자와 설전[편집]


2021년 9월 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대전·충남지역 합동연설회 행사장 밖에서 이재명 지지자들이 네거티브 중단을 요구하자 "귀를 여세요!"라며 막말하는 태도를 보이며 비난을 받았다.#


20.2. 의원직 사퇴선언(철회)[편집]


2021년 9월 9일 전날 이낙연 후보가 경선 도중 의원직 사퇴선언 한 것도 모자라 이낙연캠프 선대위원장인 설훈이 의원직 사퇴를 계획했다 캠프의 만류로 철회했다. 이로 인해 큰 논란이 되었으며 비판을 받고있다. #

안철수가 19대 대선을 앞두고 의원직 사퇴를 함부로 강행했다가 노원구 병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11], 이낙연이 마찬가지로 사퇴하고 나서 종로구 선거 판세가 어떻게 되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20.3. MB감옥 거론 네거티브[편집]


2021년 9월 16일 본인이 선대위원장으로 있는 이낙연 캠프가 과도한 네거티브로 지지율이 많이 하락했는데도 아직도 느낀것이 없는지 또 다시 막말을 하며 네거티브를 펼치고 있다. 이재명을 겨냥하며 MB처럼 감옥을 갈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된다는 식의 또 다시 막말하는 추태를 보이고 있다.#


20.4. 경선불복 논란[편집]


이낙연 캠프의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설훈은 8월 11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경선 불복 논란으로 해석될 수 있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낙연을 지지하는 분들의 32% 정도가 이재명 후보로 정해지면 지지 못하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역대 이런 현상이 없었다"며 "당에서 경선을 하더라도 하나가 되면 다 따라서 함께 하는 게 통례였는데 이번만큼은 독특하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무조건 원팀으로 가는데, 그 32%를 어떻게 우리가 설득해서 함께 합류할 수 있도록 해낼 것이냐, 이것이 중요한데 참 답이 안 나온다"며 "결과를 놓고 보면 2~3% 차이로 본선에서 당락이 결정될 것인데 32%를 보면 당선이 안 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

일부 강성 지지자들이 제기해 온 민주당 내 '반(反) 이재명' 정서를 당 중진 의원이 공식화해버린 셈이다. 경선이 치열하게 진행되면서 나온 주장이지만, '레드 라인을 넘은 무리수'라는 지적과 '실제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정서'라는 엇갈린 분석이 나온다. 경선 불복론까지 등장하면서 후보들 사이에 씻을 수 없는 앙금이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다시 제기된다. 하필 선대위원장 직위에 있을 때 한 말이라 이낙연 캠프 측에 경선 불복 논란이 씌어지는 것도 불가피 해졌다. 이낙연 캠프 쪽 인사도 "설훈 의원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라며 "아무리 이재명 지사에 대한 이낙연 전 대표 지지층의 비난 수위가 강하더라도 이번 발언은 선을 넘었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대선 주자인 김두관도 설훈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두관은 "민주당 당원이라면, 진정 민주 개혁 세력이라면 입에 올려서는 안 될 말"이라며 "이낙연 후보께서 원팀 정신을 훼손하고 경선 불복을 시사한 설훈 의원에 대한 선제적이며 명확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설훈은 "김두관 후보가 자신을 모욕하고 캠프를 협박했다"며 "거짓 프레임을 당장 멈추라고 반발했다. #

결국 이낙연이 경선 불복은 없다면서 설훈 의원의 발언은 우려에서 나온 발언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


21.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아무것도 아닌 일" 망언 논란[편집]


2022년 6월 20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논란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바라는 건 정쟁에 이용해 득이 되려는 것이 아니냐”며 “북한은 아주 이례적으로, 제 기억으로 한 번도 한 적 없는 사과 성명을 김정은 위원장이 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두고 최근 벌어진 상황 등에 대해 “이게 무슨 짓이냐, 아무것도 아닌 일로”라고 발언했다가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이 말은 지우겠다”고 급정정한 일이 일어났다. #


22. 종북 성향 보좌관의 과도한 군사기밀 열람[편집]


설훈의 보좌관을 지낸 김혜민이 그녀가 설훈의 보좌관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지위를 이용해 국방부로부터 민감한 군사기밀[12]을 요구해 왔음이 밝혀졌다. 게다가 국회의원조차 메모 등이 불가한 2급 군사기밀을 열람하면서도 자료를 메모하고 사진을 찍으려 시도하다 제지를 받기까지 했다. 김혜민은 국정원 내사 사실이 알려지자 2023년 3월 설훈 의원실에서 해고되었으나,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다른 의원실에서 채용 면접까지 보았다고 한다.# 게다가 김혜민은 민주노동당 출신으로 과거 김정은을 찬양하는 기사를 작성했고 그 남편 또한 통합진보당 출신으로 국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바 있는 등 종북 성향이다.


23. "탄핵 사유에 해당 된다" 발언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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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와 질의하는 도중에 발생한 발언이다.

24. 기타[편집]


  •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되어 조사를 받던 이 모씨[13]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검찰이 어떻게 했길래 사람이 죽었냐며 검찰이 노무현 때와 달리진 것이 없다고 맹비난했다. 그런데 수사를 담당한 부서가 추미애 라인인 이성윤이 지검장으로 있는 중앙지검인 건 함정.
  • 5.18 유공자 지정과 관련하여 이해찬과 같이 공적을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 상대 당의 윤석열 대선 후보를 전두환의 후예라며 맹비난했다. # 그런데 정작 그 전두환의 후예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건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통령이다.(...) 팀킬 전문
  • 2021년 12월 4일부천시청 3층 어울마당에서 열린 이낙연[14] 지지자와의 모임에 참석해 논란을 빚었다.[15] 이에 이재명 및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미 니네 후보 떨어졌는데 왜 아직도 광을 팔고 있냐? 빨리 원팀해서 대선 이길 생각 안 하고?"라는 엄청난 성토에 직면했고, 지역구에서까지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성화가 나왔다. #[16][17]


[1] 때문에 '설화'라는 멸칭도 있다.[2] 그런데 2014년에는 설훈의 보좌관 A씨가 음주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를 냈는데 경찰관에게 욕을 하고 음주측정을 거부하는 등 진상을 떨다가 바로 체포됐고, 2016년 2월에는 또 다른 보좌관 B씨가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됐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국회의원실 보좌관까지 음주운전 경력자인 건 정말 흔치 않다(...)[3] 이는 훗날 박근혜 대통령의 압박에 의한 낙하산 인사였다고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폭로했다. 탄핵정국 당시 자니 윤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4] 심지어 이 당시 설훈은 교문위 위원장이였는데, 자니 윤의 나이 조차 세는 나이로 계산했다. 자니 윤은 1936년 10월 22일생이라, 저 당시 만으로 77세였기 때문.[5] 심지어 개중에 민경욱은 아카라카를 외치며 고려대 집회에 참석한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다가 욕을 먹고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6] 참고로 저기서 대학생단체라는 전대연은 이름이 비슷한 대진연처럼 대학생이 없는 대학생 집단이다(...) 이언주 당시 무소속 의원의 미래를향한전진4.0이라는 정치단체에도 소속되어 있는 친박 성향 극우 집단인 것이 알려져 뭇매를 맞고 조국 사태가 사그라든 이후로 활동을 중단했다.[7] 참고로 설 의원은 건국 이래 이렇게 정권과 대립각을 세운 총장이 없다했는데, 거짓말이다. 2대 검찰총장 김익진은 대한정치공작대 사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친서까지 써가며 검찰 관여를 막았는데 김익진은 검사들이 소신있게 일처리를 하게 하기 위해 친서를 비공개하고 대검 차장검사를 지휘해 100여명 검거, 11명을 기소했다. 참고로 이 사건을 들은 이승만은 격노해 김익진 총장을 검찰총장에서 서울고등검찰청검사장으로 좌천시키는 폭거를 저질렀다. 김익진 총장은 치욕스러웠음에도 검사를 이렇게 몰아낼 수 없다는 일념으로 고검장을 수행했으나, 이후에도 이승만 암살 미수 사건 배후로 찍혀 구금되었다가 면소되는 등 고생을 했다. 사실 참여정부 시기에도 강금실 법무부장관의 검찰조직 개편시도에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이 차라리 내 목을 치라며 법무부와 정면으로 각을 세웠고 대검 중수부장이던 안대희를 내세워 이광재안희정을 수사 기소하고 안희정을 구속시키는 사건까지 일어났다.어째 지금이랑 판박이다[8] 취임하고 나서 3년 동안 21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이 엄청 올라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9] 특히, 젊은 보수 지지자가 많은 에펨코리아가 이 사실을 모르고, 그저 이재명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설훈을 대이재명 병기로 크게 띄웠다가 이회창을 허위사실로 공격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빠른 손절을 했다. 이후 낙사드로 칭송받던 이낙연도 이회창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자, 빠르게 손절.[10] 이는 자유선진당이 훗날 새누리당에서 흡수되고 나서 선진계를 홀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문제로 일부 지지그룹이 새누리당을 이탈해, 민주당으로 합류했기 때문도 있다. 실제로 과거 안희정계 원외인사 중에는 선진계도 꽤 포함되어 있기도 했고.[11] 20대 대선에서 서울 지역 중 이재명 후보의 손을 들어준 지역이 노원구일 정도로 해가 갈수록 민주당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거기에 해가 갈수록 격해지고 있는 수락리버시티 1/2단지가 노원구 편입 요구가 이뤄진다면 더욱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12] 참수부대 장비 현황, 현무 미사일 지휘통제실 교신 자료, 북파공작부대 운용 예산 등 매우 민감한 정보를 포함해 700여 건의 군사기밀을 열람한 것으로 밝혀졌다.[13]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측근이다.[14] 민주당 경선 탈락자[15]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예비후보가 본선에 나갈 후보로 선출된 것이 2021년 10월 10일이다.[16] 사실 이낙연 지지층에서도 2022년 봄 무렵부터는 반응이 나빠졌다. 얼마 후 자신이 그렇게 의문을 표하고 이낙연이 발본색원 의지를 적극 표현했던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에 대해 도로 당을 따라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데, # 후에 설훈은 이에 대해 이재명이 직접 돈을 받았다고 단정지었던 것에만 사과했다고 말했다. $[17] 게다가 설훈은 민주당 경선 당시 당이 당헌당규를 잘못 해석해서 멋대로 결선을 뭉갰다고 주장한 주요 인물 중 하나다. 그런 그가 그런 '부정'을 저지른 당의 후보를 대선에서 뽑아달라고 지지자들에게 요청하는 것 또한 위화감이 느껴지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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