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석/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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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서강석

1. 개요
2. 송파구 연고지 문제
3. 송파공공산후조리원 운영 논란
4. 송파구 관내 재건축 사업 문화재 관련 논란
5. 송파구청 건국절 현수막 게시 논란
6. 송파구청 구내식당 과잉 의전 오해 소동
7. 송파구 CI 및 캐릭터 변경 관련 비판
8. 송파구 성추행 간부 인사 관련 논란
9. 양재대로 가락시장 앞 대형 태극기 관련 논란
10. 석촌호수 명칭 변경 시도 및 철회 논란


1. 개요[편집]


현 송파구청장 서강석의 논란 및 사건 사고를 다룬 문서.

임기 수행 불과 1년차에 이 모든 게 터진 터라 일각에선 제2의 신연희라는 우려도 나온다.

2. 송파구 연고지 문제[편집]


서강석 구청장은 2018년 2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후보로 광진구청장 출마를 준비하였지만#, 출마를 철회하였다. 그러나 출마를 철회한지 1개월도 지나지 않아, 강남구청장 예비후보로 등록하였지만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그리고 4년이 지난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송파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3. 송파공공산후조리원 운영 논란[편집]


서강석 구청장은 취임 직후 서울 유일 공공산후조리원인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를 전문의료기관에 위탁해 최고의 산모건강 서비스 수준을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센터 운영을 중단하는 것 아니냐"는 구민들의 오해가 있었지만, 곧바로 명확한 입장문을 발표해 더 이상의 논란은 없었다.

서강석 송파구청장 "공공산후조리원 지속 운영…최고의 서비스 제공" #

서울시의 유일한 공공산후조리원이 송파구에 있다. 그런데 인수위원회 당시 공공산후조리원 산모실 27개 가운데 10개 정도만 이용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것도 몇 년 동안. 결국 연간 10억에 가까운 적자가 계속 누적돼왔고 인수위에서는 민간으로 넘기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검토하고 있었는데 위드 코로나가 되면서 다시 산모실이 꽉 찼다는 거다. 결국 수요가 있다면 멈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폐쇄하겠다는 말을 한 적은 없다. 계속 운영할 것. 다만 공공산후조리원을 현재 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산후조리원의 전문성이 없는 곳 아닌가. 대형병원에 위탁해서 비용은 올라가지 않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4. 송파구 관내 재건축 사업 문화재 관련 논란[편집]


송파구 잠실 진주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 확인된 백제시대 집터와 관련하여, 문화재청이 백제시대 집터 조사를 위해 일부 구역에 대한 공사 중단을 명령하자 "2000년 전 집터 흔적이 나왔다고 현 시대를 살고 있는 2700여 세대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중지시키는 건 문화재청의 월권"이라고 반발한 뒤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

서 구청장은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풍납동 주민들의 기본권이 수십 년째 침해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주민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법적 대응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

서강석 송파구청장 "집터만 나와도 무조건 공사중단…문화재 과잉 행정 뜯어고칠 것" #

풍납동은 20년 동안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으로 모든 것이 다 막혀버렸다. 땅에 어떤 문화재가 있을지 모른다며 개발을 막고 있는 문화재청 때문에 주민들의 기본적인 재산권이 침해받고 있다. 현재 풍납동 일대는 보상 절차가 진행 중인데 집들이 철거되고 토성도 상당 부분 복원됐다. 주변에 공터도 많이 생겼다. 개발을 진행하고, 풍납동에 박물관을 만들어 개발 과정에서 나온 문화재들을 전시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풍납동 개발 제한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검토를 하고 있고 법률적으로도 문화재청과 싸울 생각이다.



5. 송파구청 건국절 현수막 게시 논란[편집]


2022년 광복절 당시 1948년 건국절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구청에 게시했다. 서 구청장은 광복절 뿐 아니라 건국일까지 언급했는데, 건국절은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뉴라이트 사관이라 논란이 되었다. #


6. 송파구청 구내식당 과잉 의전 오해 소동[편집]


구청 구내식당 내에 자신만의 전용석을 만들고 본인의 식사를 직원들이 나르게 하는 등 과잉의전 및 갑질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 그러나 서강석 구청장이 곧바로 직접 입장문을 발표하고 해명하면서 논란은 불식되었다.

서 구청장은 "구내식당에서 나 홀로 식사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구내식당에 구청장 전용칸이라는 장소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며 "구청장의 나 홀로 점심 식사를 위해 직원들에게 식판 셔틀을 시켰다는 기사는 악의적 허위기사"라고 밝혔다. 서 구청장은 이어 "구청을 찾는 송파지역 인사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리고 예산절감 차원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했다"며 "구청을 찾은 인사들에게 직원들과 같이 줄을 서서 식판을 받아와 식사하게 할 수는 없기에, 담당 직원이 미리 식사를 준비해 놓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1] #


7. 송파구 CI 및 캐릭터 변경 관련 비판[편집]


파일:송파구로고.png

2023년부로 11억원을 들여 송파구 휘장과 캐릭터를 변경하였는데, 이는 2020년식 도안을 사용한 지 고작 2년 반만의 변경인데다, 전 도안에 대한 구민들의 평가도 좋았는데도 굳이 변경한 도안이 지나치게 못생겼을 뿐더러, 이를 위해 10억여원이 넘는 구 예산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구민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2]

디자인은 2020년대의 트렌드인 미니멀리즘에 역행하며, 88올림픽기원을 둔 캐릭터 설정은 꼰대 감성이라는 평이다. 송파의 가치를 내세운다는 것을 명목으로 민주당 전임자의 흔적 지우기식의 행보를 보였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이에 서강석 구청장은 "기존 CI의 디자인에 대해 송파의 도시지향 가치와 역사성을 대변하는데 부족하다는 구민들의 의견으로 인해 민선 8기 출범 후 총 2회에 걸쳐 설문조사를 실시, 특정 기업 CI와 유사하다는 의견이 89%에 달하였으며, 교체 필요성에 65% 찬성하였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CI와 함께 조사한 캐릭터(송송파파)에 대한 조사결과는 발표하지 않고 있으며 “CI가 특정 기업의 그것과 유사하면 CI만 바꾸면 될 일이지 왜 멀쩡한 송송파파 캐릭터까지 같이 바꾸냐”는 항의에는 철저한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 서강석 구청장의 해명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이유가, 2022년 7월 1일 취임식 바로 당일날부터 "다시 뛰는 송파 창의와 혁신의 구정" 슬로건을 내세우며 송파구 공식 홈페이지에 기존 CI와 캐릭터에 관련된 내용을 전부 삭제한 뒤 CI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슬로건을 꾸겨넣었으며, 송파구 내 주민센터의 간판은 물론 송파구에서 발행하고 제작하는 각종 인쇄물, 기물, 심지어는 관내 길거리 안내판, 청소도구함과 공사장 울타리에까지 기존 송파구 CI와 캐릭터를 사용하지 않고 스티커로 땜빵해서라도 매우 빠르게 해당 슬로건만으로 교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일:송파구홈페이지.png

즉 CI와 캐릭터 변경에 관한 충분한 여론 수렴을 실시하였다는 것은 구청장 선거에 당선되어 취임하기 전 한달동안의 시간 안에 실시하였다는 것인데, 분명 구청장은 민선 8기 출범 후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고 해명하지 않았는가?

구민들은 그러한 설문조사가 있었는지도 모를 뿐더러, 구청장은 해당 설문조사 참여자의 투표 비율 숫자만 공개할 뿐 언제 어디서 실시되었는지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설령, 민선 8기 출범 이후 구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도시브랜드에 관한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정말 실시하였다고 하여도 이미 기존에 사용중인 도시 브랜드를 취임 첫날부터 전부 폐지하고 교체해버린 뒤에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답정너의 행태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송파구민들은 22년 9월부터 구청장실에 CI교체를 반대하는 청원을 내었으며, 구민들은 반대 의견만 많았는데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 많음으로 조사결과 전체에 대한 공개가 필요해 보인다. 신 CI의 디자인을 맡았다는 '스튜디오 시멘트'는 인터넷에서 업체 정보를 검색할 수 없다. 송파구청은 이 과정에서 신CI 공개 유튜브 영상 및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악플이 많아지자 영상을 삭제하고 재업로드하기도 하였다.

2023년 3월 22일 개의된 송파구의회 300회 제2차 본회의에서, 2022년 말에 서강석 송파구청장이 직접 "10월 의회에 상정해서 상징물을 규정하고 관리하기를 바람","상징물 변경 시에 심의위원회 위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득해야 변경할 수 있다는 조문을 명시하라"는 지시를 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서강석 송파구청장 본인은 이러한 규정이 없이 멀쩡한 송파구의 상징물을 졸속으로 변경하였지만, 이후에 위와 같은 규정을 신설하여 후임자가 송파구의 상징물을 변경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며, 이에 구청장은 "송파구의회 회의 규칙 제65조의2(구정질문을 하고자 하는 의원은 질문방식과 요지를 기재한 질문요지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하여 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하며, 의장은 늦어도 질문시간 48시간 전까지 구청장에게 송부하여야 한다.)를 위반하였기 때문에 답변 할 수 없다" 라고 대답하며 이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8. 송파구 성추행 간부 인사 관련 논란[편집]


[단독]'성비위 논란'에도…前송파구 간부, 산하기관장 취임

2019년 5월, 직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직원 B씨를 성추행하여 피해자와의 합의 끝에 정년을 앞두고 자진 퇴직하였던 A씨(당시 송파구청 모 부서 국장)가 2023년 초 송파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논란이 된 일이다.

송파구시설관리공단 자격요건에 따르면 공단 정관(임·직원의 결격사유)에 의거해 성폭력 범죄로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형 확정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공사의 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논란이 되었던 해당 간부는 피해자와의 합의를 통해 형사처벌은 커녕 송파구청 차원의 감사나 징계 절차까지 피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보인다.

앞서 A씨는 퇴직 3년 뒤였던 2022년 6월 신임 서강석 송파구청장 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1차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바 있다.


9. 양재대로 가락시장 앞 대형 태극기 관련 논란[편집]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민선 8기 출범 직후 "태극기 달기 활성화 방안 강구" 및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 명목으로 송파구 관내 곳곳에 대형태극기 게양대 설치 공사 등을 추진한 사실이 있다.

파일:송파구서강석시.jpg

해당 사업을 추진하던 중 위 사진과 같은 "태극기" 라는 제목의 시가 적힌 표지석이 가락시장 교차로 앞 대형태극기 게양대 옆에 설치되었는데, 문제는 이 시가 서강석 송파구청장 본인이 직접 지은 시이며, 송파구민의 혈세로 제작된 표지석이라는 점이다. #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문예지 '열린시학'에서 한국예술작가상을 수상한 등단시인임을 본인의 프로필에 강조하고 있으나, 이 점이 구청장이 구민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서 구민들의 세금으로 마음대로 본인의 자작시 비석을 제작하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이에 대해 "길거리에 설치된 대형 태극기가 부실하게 세워져 안전하지 않다는 식의 근거 없는 의문을 제시하지 말라"와 같은 말로 주제를 바꾸며 이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또한, 상술하였던 가락시장 교차로 앞 55m 높이의 대형 태극기 게양대에서 태극기를 고정하는 후크가 떨어지는 일이 생겼으며, 해당 구조물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송파구민의 질문에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어떤 사업이든 안정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는 발생 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차를 사도 고장은 난다"와 같은 무책임한 답변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10. 석촌호수 명칭 변경 시도 및 철회 논란[편집]


2022년 11월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석촌호수의 명칭을 과거 송파강애서 유래된 점과 행정구역 상 석촌동에 속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이유로 '송파호수'로 변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실 변경은 아니고 석촌호수는 공식 명칭이 아닌 일반에서 불리는 관례적 명칭으로 이번 기회로 송파호수로 국가지명위원회의 심의를 받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진에 송파구민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미 자신의 치적 쌓기를 위해 구 로고와 구 마스코트를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없이 졸속으로 변경해 이미 한차례 물의를 빚은 상황에서 이젠 호수 이름까지 구청장 입맛대로 바꾸겠다는 것에 주민들이 폭발한 것이다. 석촌호수는 몇 년전부터 송리단길의 부흥과 롯데몰의 성장, 벚꽃 명소로의 유명해지며 성수, 여의도와 함께 핫플레이스로 떠올라 이미 인지도가 높아진 상황이다. 이미 석촌호수라는 지명이 널리 알려진 상태에서 바꾸겠다는 것이 주민들 입장에선 황당한 상황인 것이다. 로고나 마스코트와 달리 석촌호수란 지명은 이미 45년이나 불려온 명칭이다. 실제로 이 호수공원을 칭하는 송파나루근린공원이라는 명칭이 있으나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서 구청장의 행정구역이 맞지 않다는 주장도 명칭변경의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석촌호수가 잠실동신천동에 속해 있으나 석촌동과도 접해있어 그리 이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발음이 어렵다는 것도 황당한 것이 단지 외국인 발음을 위해 우리 지명을 바꾸자는 것도 황당하지만 국제금융 중심지가 되려했던 여의도나 한류거리가 있는 청담동 등 외국인들이 찾는 명소중 발음이 무조건 편리한 곳만 있는 게 아니다.

결국 구 로고와 마스코트와 달리 시민들의 추억이 담겨있고 이미 유명한 지명을 4년짜리 구청장이 졸속으로 바꾸려는 사실에 주민들이 앞선 졸속 변경에 비해 훨씬 거세게 반발했고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서강석 구청장이 자신의 치적 쌓기를 위해 1년도 안 돼 구 로고와 구 마스코트에 이어 구의 상징 격인 석촌호수의 명칭까지 바꾸려한 사실에 구민들이 강력하게 분노하는 상황이다.

[1] 비슷하게 용산구청 10층의 구내식당에도 구청장 및 구청장 방문객 전용 좌석이 있다.[2] 여담이지만 블로그 포스트에 송파의 한자명을 松(언덕 파)가 아닌 松(파도 파)로 오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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