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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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기원과 건국
3. 쇠퇴와 몰락
4. 여담


1. 개요[편집]




중원의 최초의 고대 국가 상나라를 세운 집단이다.[1]


2. 기원과 건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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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문화 영역

고고학적으로 보면 상족(商族)의 기원은 B.C.2500~2000년 즘 '산둥용산문화(山東龍山文化)'[2] 영향권에 있던 황하 하류의 오래된 부락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중국사-상족(商族)의 기원과 건국

상족(商族)의 발원지인 이 '산둥용산문화(山東龍山文化)'는 요서 지역의 홍산 문화권에 있던 집단들 일부가 산둥반도로 남하해 중국 신석기 문화인 '앙소문화(仰韶文化)'문화를 정복해 이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헌학적으로 보면 당시 상족(商族)이 거주하던 부락 우두머리인 설(契)을 상족의 시조로 보고 있고 상나라 초대 국왕인 탕왕 때 이르러서야 국가 체계가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탕왕이 화하족(華夏族)들이 세운 하나라를 정복하고 상나라를 건국한 것으로 나와있는데 고고학적으로는 증거가 부족해 하나라는 그 실체를 아직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다만 하나라가 국가로 인정받지 못해도 하나라가 존재했다고 보는 시기에 황하 중하류의 '얼리터우 문화(二里頭文化)' 영향 아래 화하족(華夏族)들이 만든 공동체는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고고학적으로는 황하 하류의 '산둥용산문화(山東龍山文化)'에서 발원한 상족(商族)들은 기원전 16세기 즘 중원 내륙으로 들어가 '얼리터우문화(二里頭文化)'를 붕괴시키고 황하 중류에 차지하면 상나라를 건국했다고 보는 견해가 존재한다.

학술적인 측면에서 현재 중국 주류 민족인 한족(漢族)의 원류를 화하족(華夏族)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상족(商族)을 현대 한족의 직계 조상이라고 보기 다소 어려우며 현재 중국에서도 하나라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당시 시대상으로 상나라를 건국한 상족(商族)과는 화하족(華夏族)을 하상이원론(夏商二元論)에 입각해 별개의 집단으로 구분한다.[3]

이렇게 상족(商族)은 본래 화하족(華夏族)과는 종족의 기원이 달랐지만 상나라 건국 이후 오랜 기간 동안 화하족(華夏族)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성을 점점 잃어간 것으로 보인다.

3. 쇠퇴와 몰락[편집]


상족(商族)이 세운 상나라는 약 500년간 중원의 최초 국가로서 주변 부족들을 복속 시키고 노예로 만들면서 부흥기를 맞이하지만 기원전 1046년 화하족(華夏族)이 세운 주나라와의 목야대전에서 어이없게 패배 후 상족(商族)의 전성기도 끝이 난다.

주나라의〉 성왕(成王)이 즉위한 뒤 상(商)의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성왕은 주공(周公)에게 가서 그들을 토벌하라고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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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승리한 주나라상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아들 무경을 제후로 봉했는데 무경이 상나라 부흥 운동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 무경을 처형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족(商族)의 세는 강한 편이라 무경 밑에 있던 상족(商族)들의 저항이 계속되었다. 화하족이 세운 주나라 입장에서는 이민족인 상족(商族)들을 다스리고자 상나라 왕족 중 주나라에게 협력적이었던 주왕의 이복형 미자계를 그 자리에 앉혀 제후로 봉하고 땅을 주어 이들을 다스리게 하니 이렇게 탄생한 게 상족(商族)의 두 번째 국가 송나라(춘추전국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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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 멸망 후 요서 지역에서 발견되는 상나라계 청동기
상나라가 멸망한 시점 전후로 고조선과 인접한 요서 지역에서 기존에 없던 상나라계 청동기가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하는 데 고고학적 관점에서 주나라 제후국이 되길 거부한 상족(商族) 집단들 일부가 송나라(춘추전국시대)에 편입되지 않고 북상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따라서 상족(商族)들은 상나라가 멸망하고 송나라(춘추전국시대)로 교체되는 시기까지는 독자적인 정체성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송나라(춘추전국시대)는 상족(商族)과 상나라 왕족이 상나라 수도 상추시에 세운 나라기 때문에 상나라가 멸망 후 없어진 게 아니라 그대로 송나라(춘추전국시대)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송나라(춘추전국시대)주나라 제후국으로 시작해서 그 입지가 상나라보다는 못했지만 기원전 1040년부터 기원전 286년까지 약 800년간 상나라보다 오래 존속한다.

송나라(춘추전국시대)도 기원전 286년 제, 초, 위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는데 이 시점에서 상족(商族)들도 정체성을 잃고 각지로 흩어졌고 중원에 남아있던 상족(商族)의 후손들은 진한시대 전후로 한족(漢族)으로 완전히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4. 여담[편집]


  • 상족(商族)할 때 이라는 한자는 오늘날 상인(商人), 상업(商業) 등의 한자에서도 쓰이는데 상나라 멸망 후 상나라의 유민들이 이곳저곳 장사하며 떠돌아다니던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 산둥용산문화(山東龍山文化)의 발원지가 홍산 문화권으로 추정되고 상족(商族)의 왕실 혈통 기자가 세웠다는 기자조선의 존재를 들어 재야사학계와 일부 제도권 학자들 사이에서 이 상족(商族)과 고조선의 연관성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고 아직은 고고학적 근거가 부족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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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에서는 하나라를 화하족(華夏族)이 세운 최초의 나라로 주장하나 학계에서는 그 실체를 아직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2] 크게보면 용산문화로 보지만 세부적으로는 중원용산문화와 구분된다.[3] 하나라와 주나라를 화하족이라고 보고 상나라를 동이족으로 보기도 한다. (이 시기 동이족산둥-강소쪽 중국 동해안 일대의 부족만을 뜻하는 말이었고 한나라 무렵부터 중국 동쪽의 모든 이민족(예맥족, 삼한족, 여진족, 거란족, 등)을 가리키는 말로 변한다.) 하나라는 앙소문화를, 상나라는 용산문화를 배경으로 하며 상나라가 산동반도 근처에서 문화를 일궜다가 소둔촌 부근으로 침입하여 원주민을 정복하고 상을 발전 시켰다 하였는데, 사마천의 사기에서 하나라라고 명명 돼 있는 하족의 문화가 이때 상의 침입을 받고 무너졌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동양사개론 (신채식 저) 물론 하나라는 고고학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