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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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육성회비(育成會費)1970년부터 자녀 교육을 위한 학부모의 자진협찬 형식으로 마련하는 회비다. 말이 좋아 자진이지 사실상 강제로, 만일이라도 못 냈다면 선생님이 불러 독촉했으며, 심하면 샌드백 취급을 했다. 국민학교에서 주로 걷었던 회비로 옛말은 '월사금' 혹은 '사친회비(師親會費)'이다.[1] 오늘날엔 법으로 뇌물죄에 해당하는 불법이지만, 그래도 걷었던 부정한 돈이다.


2. 상세[편집]


전국의 국민학교에서 시행된 후 1972년 도서벽지, 1977년 농어촌, 1978년 읍 이하 지역, 1979년 6대 도시 이외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폐지되었다.

서울은 1970~1974년 육성회비가 450원이었다가, 1975~1976년 600원으로 인상되었다가, 1977년부터 450원으로 인하되었다. 농어촌 및 읍 이하 지역은 1978년까지 150원.

국민학교에서 육성회비를 내지 않던 학생들을 은근히 학교에서 독촉했는지, 담임 선생들이 미납자를 호출하여 회초리체벌을 하거나 동네방네 소문을 내는 갈굼을 주기도 하였다. 물론 옛날 우리나라의 학교 문화가 그렇듯 한 반에 적어도 50~60명은 되었기에 제출 당일에 육성회비를 내지 않은 학생들이 나름 적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선생님마다 다르겠지만, 오늘까지 회비를 내지 않은 학생들은 내일까지는 꼭 가져오라고 마지막 기회를 주기도 한다. 당연히 이 약속 마저 안 지키면 위에 서술 된 것처럼 결국 체벌을 당하게 된다. 저 450~600원이란 돈이 당시로는 국민학생들에게는 비교적 큰 돈이었다. 당시 국민학생들의 참고서이던 전과 1권당 125원(1970)~450원(1978) 이었다.

1996년까지 6대 도시 초등학교 학생들은 월 1,000원(대전)에서 2,000원(인천)까지 육성회비를 내고 있었다. 1997년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고,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육성회비가 완전히 폐지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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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근찬의 흰종이 수염에 이 단어가 나온다. 검정 고무신의 '보릿고개 시련기' 편에서도 사친회비를 내지못해 괴로워하는 학생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야말로 구시대에 존재했던 악습이다. 교육부도 이 문제는 부끄러웠는지 국어가 국정 교과서였을 당시에는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흰종이 수염에서 동길이 선생님한테 책보를 뺏기는 장면은 생략되었다. 물론 국어도 검정 교과서를 채택하는 교육과정에서는 출판사에 따라 교과서에 문제의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유명인사들 중에 학창시절 월사금 문제로 시달린 사례도 있는데, 천재교육 창업주 최용준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안이 가난한 탓에 월사금을 못 내 퇴학당했다가 1년 후 복학했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1년에 쓴 자서전 <운명>에서도 월사금과 만화방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2] 서울 등 6대도시 초등학교 육성회비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