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다 부처

덤프버전 :


파일:My_Bloody_Valentine_Logo_1.png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argin: 0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transparent 45%, #1f120f 45%, #1f120f 55%, transparent 55%); width: 90%"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 color: #1f120f; min-width: 50%"
[Studio Albums]

파일:71R1whVxcfL._SL1426_.jpg


파일:Loveless.jpg


파일:m b v.jpg


1988

1991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12168F; font-size: .8em"
m b v
2013



빌린다 부처
Bilinda Butcher


본명
빌린다 제인 부처
Bilinda Jayne Butcher
출생
1961년 9월 16일 (62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직업
싱어송라이터, 기타리스트, 키보디스트
장르
슈게이징, 얼터너티브 록, 드림 팝
활동
1987년 ~ 현재
자녀
아들 토비, 데이비, 빌리

1. 개요
2. 생애
2.1. 데뷔 이전
3. 여담



1. 개요[편집]


영국의 음악가.


2. 생애[편집]



2.1. 데뷔 이전[편집]


1961년 9월 16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이름이 빌린다인 이유는 할아버지에게 따온 이름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녀는 이후 가족과 함께 더비셔 주의 골든 밸리로 이주했는데 그곳은 염색에도 부정적일 정도로 매우 보수적인 곳이었다. 그녀는 상당히 구시대적으로 자랐는데 1920년대 풍의 옷만 입었으며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16살 쯤에 런던으로 돌아와 공부를 하고 밴드 공연을 접하게 되었다. 돌아온 뒤 많은 고딕 록 밴드들을 보았고, 본인이 좋아하던 춤 공부도 하게 됐으나 병으로 그만두었고 기타로 관심을 돌렸다.[A][1]

춤을 그만둔 뒤론 6개월 간 유모로 일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도 사망했다. 이로 인해 집을 팔려고 돌아갔다. 파트너[2]하고 반년 간 파리에 머물렀고, 어머니가 사망할 당시 돈이 좀 있어서 몇 년 동안은 일하지 않아도 아들 토비와 살 수 있었다.[A]

원래 얹혀 살았지만 얹혀사는 게 지루해져서 브릭스턴의 불법 거주자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 사후에 얻은 돈으로 꽤 오래 버틸 수 있었지만, 결국 돈은 떨어졌고 정부에게 돈을 받는 삶을 살았다.[A][참고] 또한 불법 거주자들의 삶이 안전할리 없었다. 그녀는 마약이 나도는 상황에다 파트너도 정상이 아니자 불안감을 느꼈고 아파트로 다시 이사했다고 한다.[A]


2.2.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시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음악을 관두기로 결심한 데이비드 콘웨이가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을 떠나면서 밴드는 오디션을 열어 보컬리스트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7년 4월, 음악적 경험이 있던 그녀가 영입된다.


3. 여담[편집]


  •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이 재결성하기 전엔 몇몇 곡에서 보컬로 참여했으며, 두 명의 자녀를 더 낳았고 플라멩코 춤에 빠져있었다.

  • 본인 피셜로 가사 상당수는 즉흥적으로 써내려간 헛소리라고 한다.[3]

  • 세 아들은 모두 아버지가 다르다. 토비의 아버지인 첫 파트너는 그녀를 함부로 대했는데, 이는 앨범 Isn't Anything의 수록곡 "No More Sorry"에서 다뤄졌다. 대뜸 공동 양육을 원해서 그녀가 두려웠었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앨범 발매 후 공황장애에 시달렸으며 이는 다음 앨범인 Loveless까지 이어졌다.[B]

  • 밴드 해체 후 그녀는 우울한 상태였다. 이후 항우울제를 먹다가 운동하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선택한 게 태권도였다. 초록띠라고 한다.[B]


  • 예쁜 외모 덕에 슈게이징 여신이라 불리기도 한다. 동안으로도 유명하다.

  • 한국에선 이름 때문에 '갚는다 예수'란 드립이 생기기도 했다.

  • 그녀의 이름을 딴 더 빌린다 부처스 (The Bilinda Butchers) 란 밴드가 있다.

  • 항상 애완동물을 기르며 살았다고 밝혔다. 친칠라 두 마리를 키웠을 때 둘이서 새끼를 20마리 낳았던 걸 회상하기도 했다.[A]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1 23:51:54에 나무위키 빌린다 부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A] A B C D E "TD ARCHIVE: MY BLOODY VALENTINE’S BILINDA BUTCHER INTERVIEWED", 「Todally Dublin」, 2012.10.1.[1] "DREAM DEMONS", tohereknowswhen.org[2] 첨언하면 토비의 아버지가 된 옛 파트너는 그 뒤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앨범인 Loveless 무렵까지 그녀와 아들을 지독하게 괴롭혔다고 한다.[참고] on the dole: 직업이 없거나 매우 가난한 사람이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 "on the dole", 「Merriam-Webster」[3] "TD ARCHIVE: MY BLOODY VALENTINE’S BILINDA BUTCHER INTERVIEWED", 「Todally Dublin」, 2012.10.1.[B] A B "TD ARCHIVE: MY BLOODY VALENTINE’S BILINDA BUTCHER INTERVIEWED", 「Todally Dublin」, 201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