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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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Alb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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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oveles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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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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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b v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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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my bloody valentine

파일:My Bloody Valentine.jpg
▲왼쪽부터 빌린다 부처, 케빈 실즈, 데비 구지, 콜름 오시소그

▼ 다른 사진 보기
파일:My Bloody Valentine_1987.jpg
1987년 빌린다 부처 합류 당시
파일:My Bloody Valentine_1991.jpg
1991년 《Lovelss》 발매 당시
파일:My Bloody Valentine_2013.jpg
2013년 23년만의 정규 앨범 《m b v》 발매 당시

국적
[[아일랜드|

아일랜드
display: none; display: 아일랜드"
행정구
]]

결성
1983년
아일랜드 더블린
데뷔
1985년 1월
데뷔 앨범
활동 기간
1983년 – 1997년
2007년 – 현재
멤버
케빈 실즈 (기타 & 보조보컬[1])
빌린다 부처 (기타 & 메인보컬)
데비 구지 (베이스)
콜름 오시소그 (드럼)
전 멤버
[ 펼치기 · 접기 ]
데이비드 콘웨이 (보컬)
스티븐 아이버스 (기타)
마크 로스 (베이스)
폴 머태그 (베이스)
티나 더킨 (키보드)
조 바이필드 (보컬)

장르
슈게이징, 노이즈 록, 노이즈 팝, 드림 팝
레이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omino_Records_logo.png[2]
링크
파일:My_Bloody_Valentine_Logo_1.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스포티파이 아이콘.svg

1. 개요
2. 멤버
2.1. 현재 멤버
2.2. 이전 멤버
4. 특징 및 영향력
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 앨범
5.2. 미니 앨범
5.3. EP
5.4. 컴필레이션 앨범
6. 내한
6.1. 2013년 첫 내한
6.1.1. 셋리스트
6.1.2. 상세 및 후기
6.2. 2018년 내한
7. 여담
8. 관련 문서
9.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파일:2021_05_18_113335_1621318332._large.jpg


1983년에 결성된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슈게이징을 대표하는 밴드다.[3]


2. 멤버[편집]



2.1. 현재 멤버[편집]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구성 멤버

파일:Kevin-Shields-Credit-Ian-Dickson-Redferns@1050x1400.jpg

케빈 실즈 Kevin Shields
출생
1963년 5월 21일 (60세)
출생지
미국 뉴욕주 뉴욕시 퀸스[4]
고향
아일랜드 더블린
국적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아일랜드
활동
1983년 – 현재
담당
기타, 보컬, 작사, 작곡, 프로듀싱
배우자
기혼
신체
191cm
밴드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다.

파일:ColmÓCíosóig.png

콜름 오시소그 Colm Ó Cíosóig[5]
출생
1964년 10월 30일 (60세)
출생지
아일랜드 더블린
국적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아일랜드
활동
1983년 – 현재
담당
드럼, 작곡, 프로듀싱
밴드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다.

파일:f17867f2891b49df99d4908ed80f557c.jpg

데비 구지 Debbie Googe
출생
1962년 10월 24일 (61세)
출생지
잉글랜드 서머셋 요빌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활동
1985년 – 현재
담당
베이스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tumblr_38741924b73fdcdfa18e16e81bf8e8e6_fdd35a5e_1280.jpg

빌린다 부처 Bilinda Butcher
출생
1961년 9월 16일 (62세)
출생지
잉글랜드 런던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활동
1987년 – 현재
담당
기타, 보컬, 작사

대부분의 곡은 케빈 실즈가 작사, 작곡했다. 그 밖에 콜름 오시소그가 작곡을, 빌린다 부처는 작사를 하고 있다. 1987년 11월 9일 발매된 싱글 'Strawberry Wine' 이래 남성 2명, 여성 2명이라고 하는 현재의 멤버 구성이다.


2.2. 이전 멤버[편집]


활동
이름
담당
1983~1987
데이비드 콘웨이[6] (David Conway)
보컬, 작사, 작곡
1983~1984
스티븐 아이버스 (Stephen Ivers)
기타
1984
마크 로스 (Mark Ross)
베이스
1984~1985
폴 머태그 (Paul Murtagh)
베이스
1984~1985
티나 더킨[7] (Tina Durkin)
키보드
1987
조 바이필드 (Joe Byfield)
보컬


3. 활동[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특징 및 영향력[편집]






Only Shallow
Feed Me With Your Kiss

The Kings and queens of beautiful noise

아름다운 노이즈의 왕들과 여왕들.

Apple Music#


이 밴드는 1991년 걸작 《Loveless》 이후 단 하나의 앨범만을 발매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전혀 희미해지지 않고 있다. (중략) 놀랍게도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이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끼친 지속적인 영향력을 감안할 때, 그들의 그림자는 얼터너티브 록을 넘어 일렉트로니카, 그리고 보다 추상적인 힙합에까지 드리워져 있다.

더 가디언, 2021년#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은 슈게이징을 대표하는 밴드이며, 1990년대 가장 영향력있는 밴드 중 하나로 꼽힌다. 이들은 대중음악 역사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소닉 유스와 함께 노이즈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밴드 중 하나로,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 슈게이징 장르를 정의한 밴드로 평가받는다. 이들의 독특한 사운드는 이 밴드 이후의 나온 밴드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되며, 수많은 팔로워 밴드들, 아류 밴드들이 등장하게 된다.

오늘날에 MBV는 슈게이징의 개척자들(The shoegaze pioneers)#이라고 불리며, 지금까지도 가장 혁신적인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17년 아티스트들에게 끼친 영향력을 알기 위해 AllMusic의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연구에 대한 결과가 나왔는데, 이 밴드는 가장 자주 인용되는 아티스트 영향력 27위를 기록했다.[사진]# 이 순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의 음악은 90년대 이후 록씬의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또한 이들의 2집 《Loveless》는 슈게이징을 대표하는 앨범이자, 90년대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도 거론되는 앨범이다. 그리고 포스트 록의 시발점 중 하나로 꼽히는 밴드이기도 하다. 이들의 사운드는 슬로우다이브, 라이드, 러시, 페일 세인츠(Pale Saints), 링고 데스스타(Ringo Deathstarr) 등 수많은 슈게이징 밴드들과 다이노소어 주니어[8], 라디오헤드, 시규어 로스, 나인 인치 네일스, 스매싱 펌킨스, , 더 호러스, M83, 모과이, 데프톤즈, 더 버브, 딜린저 이스케이프 플랜, 디어헌터, 테임 임팔라 등 음의 왜곡을 주요 소재로 삼는 밴드들에게 영향을 끼쳤다.'Loveless'의 영향을 받은 앨범들

벨벳 언더그라운드, 소닉 유스, 그리고 그들 앞의 지저스 앤 메리 체인처럼,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은 팝송 작곡의 맥락에서 노이즈가 의미하는 것을 재정의했다. (중략) 1991년 슈게이즈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은 《Loveless》를 발매했는데, 이 앨범은 새로운 음파 지대를 깨고 명작으로 칭송받았다. 비록 밴드가 대중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이 밴드는 스튜디오로 사라졌고,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명된 유산을 남기고, 그 후 5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AllMusic#


Loveless》가 나온 이후로 케빈 실즈의 기타 사운드는 대중 음악에서 가장 탐나는 것 중 하나가 됐다.

롤링 스톤#


케빈 실즈는 《Loveless》에서 위대한 기타리스트만이 달성할 수 있는 무언가를 달성했습니다. 그는 전체성과 통일성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소리를 창조했어요.

― 버논 레이드[9]


이들의 음악적 특징은 노이즈 강한 사운드와 내재된 몽환적 멜로디에 걸맞게 공연 내내 관중이랑 소통하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자기 발만 내려다보는 공연태도(슈게이징/Shoegazing)로 유명하다. 내가 기타 연주를 듣는 건지 노이즈[10]를 듣는 건지 모르겠다는 느낌의 기타 연주에 몽환적인 보컬과 아름다운 멜로디를 끼워넣어 평단의 찬사를 받아냈다. 이 밴드의 초창기 음악 스타일은 당시 밴드의 리더였던 데이비드 콘웨이가 좋아했던 버스데이 파티, 크램프스(The Cramps), 조이 디비전과 유사한 포스트 펑크고딕 록 장르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콘웨이가 밴드에서 탈퇴하고 케빈 실즈와 기타리스트 빌린다 부처가 밴드의 중심이 되면서, 이 밴드의 스타일은 극적이고 멜로디적인 스타일로 발전하여 영국의 음악 언론에서 '슈게이징'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장르의 선구자가 된다.

이후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음악은 소닉 유스익스페리멘탈 록,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의 시끄러운 노이즈, 그리고 콕토 트윈스의 팝적인 멜로디를 합친 그들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었다. 소리는 의도적으로 극도로 시끄럽고, 보컬은 다운믹스되고, 코러스는 때때로 악기처럼 샘플링되고 다시 재편집된다. 기타는 포화 상태이며 대부분의 사운드 공간을 차지하며 리듬 섹션은 강력한 파워와 구속의 순간을 번갈아 나타낸다. 듣고 있는 청취자를 놀라게 하면서도 기타와 드럼으로 만들어진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를 능숙하게 엮어내는 훌륭한 품질의 멜로디를 제공하는 음악이다. 또한 인지도가 그렇게 높은 밴드는 아니라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초기 음반과 후기 음반의 차이가 엄청난 밴드다. 비틀즈, 핑크 플로이드, 플리트우드 맥도 저리가라하는 수준이다. 이 밴드가 음악적으로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필 스펙터, 조 믹[11], 프랑수이즈 아르디[12], 비치 보이스, 비틀즈, 버즈, 라몬즈, 와이어,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 슬릿츠[13], 토킹 헤즈, 조이 디비전, 파우스트[14], 데이비드 보위, 바우하우스, D.C. Nien, 코크니 리젝츠[15], 킬링 조크, 버스데이 파티, 시스터스 오브 머시[16], 아인스튀어첸데 노이바우텐[17], 허스커 두, 소닉 유스, 다이노소어 주니어, 퍼블릭 에너미[18] 지저스 앤 메리 체인, 크램프스, 스투지스, 콕토 트윈스 등이 있다.##

이들의 정규 앨범은 전부 평단의 찬사를 받았지만, 특히 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거의 전설의 영역으로 넘어간 명반 <Loveless>는 거의 만장일치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으며, Loveless가 큰 인기를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록 명반을 선정할 때 빠지지 않고 들어가고 있다. NME는 '슈게이징이라는 장르의 청사진'이라 평하며 "인간을 신과 같은 존재로 승격시킨다는 생각이 얼마나 불경하게 받아들여질지는 몰라도,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그 결점과 모든 것은 당신의 존중을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19]고 노골적으로 찬양하기도 했다. 피치포크는 이들의 음악적 전성기인 1988년부터 1991년까지를 '기적(miracle years)'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많은 뮤지션들이 그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Loveless'의 마지막 트랙인 Soon은 브라이언 이노에게 '새로운 팝의 기준'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노는 Loveless를 '가장 창조적인 앨범 중 하나'라고 평하기도 했다.# 더 큐어의 로버트 스미스도 이들의 음악을 극찬했고[20], 스매싱 펌킨스빌리 코건은 'Loveless'에 대해 "기타를 기반으로 한 음악에서 누군가가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것은 드물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는 'Loveless'를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앨범"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라이드의 기타리스트 앤디 벨은 'Isn't Anything'을 인생을 바꾼 앨범 중 하나로 꼽았다.#

물론 '뒤틀어진 음악 자체는 좋은 아이디어고, 이 음반도 좋은 앨범이지만, 가창이나 곡이 좋아서 추천하는 건 아니다'라는 평을 내린 '스핀'처럼 상반된 평가를 내린 언론도 있었다. 하지만 《Loveless》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나면 갈수록 더 높아져서, 피치포크 미디어는 이 앨범을 1990년대 최고의 앨범으로 꼽았으며[21] 롤링 스톤에서는 500대 명반 가운데 219위로 <Loveless>를 올렸다. 이후 2020년 롤링 스톤이 순위를 다시 매긴 개정판에서는 순위가 대폭 상승해 73위까지 올라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가 계속해서 상승하는 앨범이다. 2집이 대중 음악계의 걸작 중 하나라 덜 언급되는 느낌도 있지만, 1집 《Isn't Anything》 역시 슈게이징의 대표적인 명반이다. 또한 이들의 EP인 《You Made Me Realise》, 《Feed Me With Your Kiss》, 《Glider》, 《Tremolo》 역시 꼭 들어봐야 하는 앨범들이다. 또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은 일본 록씬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밴드이기도 하다. MBV가 일본 음악씬의 미친 영향을 해설한 기사가 나올정도다. MBV의 가장 뛰어난 성취라고 불리는 케빈 실즈의 기타 연주 스타일에서 만들어진 '글라이드 기타'는 일본의 얼터너티브 록씬과 비주얼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LUNA SEAX JAPAN의 기타리스트 SUGIZO는 케빈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MBV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일본 밴드는 플리퍼즈 기타스핏츠, 보리스가 있다. 물론 수많은 일본 슈게이징 밴드들도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 키노코 테이코쿠, 신세이 카맛테쨩, 슈퍼카, 도쿄 슈게이저가 이들의 열렬한 팬이다.

Q. <Loveless>의 사운드는 록 음악에서 이전에는 사용된 적 없는 ‘소리의 벽’(wall of sound)이라 칭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케빈 실즈: “우리가 사운드에 대해 취했던 태도는 다른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 대부분의 음반은 사운드를 여러 가지 개별적 소리가 함께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나는 각각의 소리가 개별적으로 인지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한 덩어리로 들리길 바랐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나는 라이브 음악을 들을 때 스테레오로 들리지가 않는데, 이것이 우리 사운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내 귀에는 하나로 들린다. 사람들은 음반을 만들 때 모든 소리를 분리해서 스테레오로 만들고 EQ를 이용해 각각의 소리가 제자리에서 잘 나오게 하려고 애를 쓴다. 즉, 모든 소리가 명료하게 들리게 하려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다. 내 작업 방식은 여러모로 그와 정반대였다. 나는 오히려 모든 것이 하나의 소리로 들리게 하고 싶었다. 이 같은 접근 방식은 당시 그리 흔치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지 어떤지도 잘 몰랐다.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을 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소위 ‘슈게이저’ 밴드들과의 공통점도 잘 느끼지 못하겠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음반 제작 및 음악에 대한 접근은 좀 더 전통적인 방식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는 말했다시피 우리만의 음악을 했다.”출처






My Bloody Valentine's Evolving Sound
The Joy of the Guitar Riff

"케빈은 항상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매우 추상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매우 직선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A에서 B까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A에서 K까지 중간쯤으로 갑니다. 그는 사물을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 데비 구지#


"나는 극단적인 삶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이유 때문에 항상 극단적인 일이 일어나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일어납니다."

― 케빈 실즈#


기타리스트 및 보컬인 케빈 실즈는 사운드에 대한 엄청난 강박과 편집증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예시로 Loveless의 첫 곡인 Only Shallow는 도입부에만 300번이 넘는 오버더빙과 믹싱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완벽주의로 유명한 마이클 잭슨Billie Jean이 94번 믹싱을 한 것을 생각하면 흠좀무. 쉴즈의 결벽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다. 라이브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사운드 때문에 몇 시간씩 예정된 공연시간을 미룬 적이 있으며 한국 첫 내한 공연에서 있었던 것과 같이 자기가 원하는 사운드를 내기 위해서 관객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소리를 구현하기 위한 장비 또한 엄청나서 다른 멤버들은 비교적 적은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데 쉴즈는 확인된 것만 10개가 넘는 앰프를 사용하며 페달보드를 이불만한 것으로 들고 다닌다. 기본적으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사운드는 소리를 오버더빙해서 만드는 것인데 그것을 구현하려면 그만한 장비를 갖고 다녀야 하기 때문인듯. <Loveless>를 만들 때에도 무려 2년이나 걸렸다. 케빈 실즈도 처음에는 '금방 끝나겠지'라고 생각하다 이정도로 걸리니까 미칠것 같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Loveless를 만들때 25만 파운드가 소요되었으며 과도한 지출에 크리에이션 레코드를 파산 직전까지 몰아넣었다는 유명한 루머도 있는데 굉장히 그럴 듯 해보이지만, 실즈가 직접 아니라고 밝혔다. 25만 파운드는 터무니 없이 과장된 금액이지만 어찌되었든 그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금액이 들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크리에이션 사장 앨런 맥기는 실즈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같이 못해먹겠다며 Loveless 발매 이후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을 쫓아내버린다. 여기서 단련된 앨런 맥기는 훗날 그 형제들을 만나도 잘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22]

케빈 실즈는 자신이 연주할 때 명상 상태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당신이 하는 일을 듣고 소리의 일부가 된다"라고 말하며 "당신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육체적으로 하고 있는 일은 그것으로부터 거의 분리되어야 합니다"고 말했다.# 또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은 자신이 내놓는 음악에 대한 철학이 확실하다. 타국에 있는 바이닐 공장들에 전화해서 어떤 특별한 사운드를 가장 잘 구현할수 있는지 알아보고 결정한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맘에 들어하지 않는 음악을 내놓느니 차라리 레이블이 자기들을 고소하도록 놔둔다고 한다. 실제로 2001년에 10년동안 앨범이 없자 Island Records는 밴드를 고소하기도 했다.출처

케빈 실즈는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이 다른 슈게이징 밴드와 엮이는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케빈은 2012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슈게이징 밴드들과 묶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들 조금씩 다른 음악을 했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 음악을 했고 저마다 다른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태도와 사운드 면에서 많은 밴드들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걸어온 방향을 보면 천차만별이다. 우리라면 싫어할 만한 것에 영향을 받은 이들도 많다. 말하자면 그런 밴드 중 다수는 소리나 음악의 측면에서 내가 흥미를 느낄 만한 것과 180도 다른 음악을 하고 있었다. 몇몇 밴드는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몇몇 헤비메탈 그룹을 좋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헤비메탈 뮤지션으로 불리고 싶은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요컨대 그만한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슈게이저라고 일컬어진 밴드들은 대부분 우리보다 네댓 살 어렸는데, 다들 우리 팬이었고 우리 공연을 보러 왔었다. 어릴 때 나는 펑크 음악을 좋아했다. 그런데 많은 밴드가 “우리가 하는 것은 펑크 록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음악을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얘기를 하도 지겹게 듣다 보니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닥치고 그냥 해. 좋아하는 거 하면 됐지. 군말 말고.’ 나도 싸잡아 불리는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고 싶진 않다. 그러나 난 슈게이징 밴드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밴드들과 음악적으로 별 공통점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꼭 말해야겠다. 그들과 우리가 비슷한 점이 있었다면 그건 그들이 우리의 팬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거야 나쁠 거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혼동을 하고 역사를 다시 쓰곤 한다. 우리가 <Isn't Anything>을 녹음한 것은 슈게이징 밴드라는 게 생겨나기도 전이었다는 사실은 잊고서. 그때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밴드는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태도의 측면에서 다이노서 주니어(Dinosaur Jr.)나 소닉 유스(Sonic Youth)같은 밴드들에게 훨씬 더 친밀감을 느낀다. 그리고 <Loveless>를 녹음할 즈음엔 이미 우리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출처



5. 디스코그래피[편집]



5.1. 정규 앨범[편집]


파일:71R1whVxcfL._SL1426_.jpg}}}
Isn't Anything (1988년 11월 21일)

[ 펼치기 · 접기 ]
  • 1. Soft as Snow (But Warm Inside)
  • 2. Lose My Breath
  • 3. Cupid Come
  • 4. (When You Wake) You're Still in a Dream
  • 5. No More Sorry
  • 6. All I Need
  • 7. Feed Me with Your Kiss
  • 8. Sueisfine
  • 9. Several Girls Galore
  • 10. You Never Should
  • 11. Nothing Much to Lose
  • 12. I Can See It (But I Can't Feel It)

파일:Loveless.jpg}}}
Loveless (1991년 11월 4일)

[ 펼치기 · 접기 ]
  • 1. Only Shallow
  • 2. Loomer
  • 3. Touched (instrumental)
  • 4. To Here Knows When
  • 5. When You Sleep
  • 6. I Only Said
  • 7. Come in Alone
  • 8. Sometimes
  • 9. Blown a Wish
  • 10. What You Wan
  • 11. Soon

파일:m b v.jpg}}}
m b v (2013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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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She Found Now
  • 2. Only Tomorrow
  • 3. Who Sees You
  • 4. Is This and Yes
  • 5. If I Am
  • 6. New You
  • 7. In Another Way
  • 8. Nothing Is
  • 9. Wonder 2



5.2. 미니 앨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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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Your Bloody Valentine (198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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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one
  • 1. Forever and Again
  • 2. Homelovin' Guy
  • 3. Don't Cramp My Style
  • 4. Tiger in My Tank
Side two
  • 5. The Love Gang
  • 6. Inferno
  • 7. The Last Su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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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stasy (198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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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one
  • 1. She Loves You No Less
  • 2. The Things I Miss
  • 3. I Don't Need You
  • 4. (You're) Safe in Your Sleep (From This Girl)
Side two
  • 5. Clair
  • 6. You've Got Nothing
  • 7. (Please) Lose Yourself in Me



5.3. EP[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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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ek! (198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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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one
  • 1. No Place to Go
  • 2. Moonlight
Side two
  • 3. Love Machine
  • 4. The Sandman Never Sle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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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Record by My Bloody Valentine (198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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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one
  • 1. Lovelee Sweet Darlene
  • 2. By the Danger in Your Eyes
Side two
  • 3. On Another Rainy Saturday
  • 4. We're So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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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Made Me Realise (1988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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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You Made Me Realise
  • 2. Slow
  • 3. Thorn
  • 4. Cigarette in Your Bed
  • 5. Drive It All Ove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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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ider (1990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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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Soon
  • 2. Glider
  • 3. Don't Ask Why
  • 4. Off Your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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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molo (1991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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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To Here Knows When
  • 2. Swallow
  • 3. Honey Power
  • 4. Moon Song


1988년 발매한 'You Made Me Realise'부터 'Tremolo'까지 세개의 EP가 모두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You Made Me Realise'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5.4. 컴필레이션 앨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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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stasy and Wine (198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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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one
  • 1. Strawberry Wine
  • 2. Never Say Goodbye
  • 3. Can I Touch You
  • 4. She Loves You No Less
  • 5. The Things I Miss
Side two
  • 6. Don't Need You
  • 7. (You're) Safe in Your Sleep
  • 8. Clair
  • 9. You've Got Nothing
  • 10. (Please) Lose Yourself 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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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s 1988–1991 (2012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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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 one
  • 1. You Made Me Realise
  • 2. Slow
  • 3. Thorn
  • 4. Cigarette in Your Bed
  • 5. Drive It All Over Me
  • 6. Feed Me with Your Kiss
  • 7. I Believe
  • 8. Emptiness Inside
  • 9. I Need No Trust
  • 10. Soon
  • 11. Glider
  • 12. Don't Ask Why
  • 13. Off Your Face

Disc two
  • 1. To Here Knows When
  • 2. Swallow
  • 3. Honey Power
  • 4. Moon Song
  • 5. Instrumental No 2
  • 6. Instrumental No 1
  • 7. Glider
  • 8. Sugar
  • 9. Angel
  • 10. Good for You
  • 11. How Do You Do It
위의 있는 EP들과 미발매곡들을 통합해 낸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피치포크는 이 앨범을 9.5점을 주며 "최고의 새로운 재발매물(best new reissue)"로 언급했다.



6. 내한[편집]



6.1. 2013년 첫 내한[편집]


2013년 1월 27일부터 영국에서 월드투어를 시작한 이후 영국 외 첫 투어 국가로 2월 3일 내한 공연을 가졌다.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개최되었으며, 티켓 가격은 전석 11만원으로 매겨졌다.

비교적으로 마이너한 밴드이다보니 예매율이 너무 낮아서 혹시 공연이 취소되지는 않을까하고 걱정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막상 당일날에는 그럭저럭 관객이 꽤 찼다고 한다.

밴드는 2일에 한국에 입국했으며 그 날에 열린 패티 스미스 내한공연을 관람했다.[23] 멤버들은 한국 관광도 하고 한국 음식도 먹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특히 김치전이 맛있었다고. 그리고 공연 후 4일 아침, 이어지는 일본에서의 투어를 계속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떠나면서 "한국 관객들은 정말 대단했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첫 내한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채로 두번째 내한일정이 발표가 났다. 두 번째 내한무대는 안산 록페라고...


6.1.1. 셋리스트[편집]



트랙
앨범
영상
비고
1.
Rough Song
m b v

'Rough Song'이라는 곡명은
앨범 'm b v'의 곡인 'New You'의 다른 이름이다.
2.
I Only Said
Loveless


3.
When You Sleep
Loveless
#

4.
You Never Should
Isn't Anything


5.
Honey Power
Tremolo EP


6.
Cigarette In Your Bed
You Made Me Realise EP


7.
Come In Alone
Loveless


8.
Only Shallow
Loveless
#
음향 문제 때문에 중단했다.
9.
Thorn
You Made Me Realise EP
#
관객들이 Only Shallow를 다시 해달라고해서 Thorn 다음에 Only Shallow를 다시 연주했다.
10.
Nothing Much To Lose
Isn't Anything


11.
To Here Knows When
Loveless
#
케빈이 마음에 들지않아서 다시 연주했다.
12.
Slow
You Made Me Realise EP


13.
Soon
Loveless


14.
Feed Me With Your Kiss
Isn't Anything

역시 케빈이 마음에 들지않아서 세번이나 연주했다.
15.
You Made Me Realise
You Made Me Realise EP
#



6.1.2. 상세 및 후기[편집]


공연 시작하기 전부터 케빈이 "공연이 그렇게 시끄럽진 않다. 높은 볼륨 때문에 공연장의 낡은 벽돌 조각이 떨어지거나 먼지가 날려서 공연장이 뿌옇게 된 적은 있지만"이라고 하는 등 굉장히 시끄러울 공연이 될 것임을 예고했으며, 관객들의 청력을 보호한답시고 모두에게 귀마개를 나눠줬다.귀마개 사진. 하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귀마개를 껴도 효과가 없었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겁준 것처럼 그리 소리가 크지 않아서 쓸 일이 없었다는 사람도 있다.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공연 음량의 2/3 수준이었다는 후기도 있다.

후기에 따르면 한 곡마다 사운드 세팅을 바꾸는 등 실즈의 사운드에 대한 결벽증적 집착이 잘 드러난 공연으로 예정보다 20분 늦게 공연이 시작되었으며 실즈는 거의 매곡마다 기타를 교체했다. 또한 인트로에서 실즈가 드럼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드러머 콜름을 갈구고 꼬장을 부리거나 기타 사운드가 튜닝한 대로 안나와서 계속 조정하면서 질질 끌거나 연주하다가 중단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등 어수선한 공연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앙코르도 안 하고 그냥 가버렸다. 사실 애초에 앙코르 요청이 나오질 않았다고 한다.[24]

실즈는 자신이 원하는 사운드를 내는 것에 있어서 다른 사람(제작자, 밴드 멤버, 관객 등)의 입장을 별로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딱히 놀랄 일은 아니다. [25] 하지만 모든 관객이 실즈의 이런 성격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관객이 '실망스러웠다'거나 '애매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냥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을 본 것 자체에 의의를 둔다는 관객들도 더러 있다. 사운드에 대한 집착이 밴드의 주요한 정체성임을 감안했을 때 공연중 자주 일어났던 사운드체킹 과정을 공연의 일부분으로 이해하고 즐길 수도 있지만 어쩐지 전문가적인 모습보다는 홍대 인디밴드스러운 아마추어리즘이 묻어나왔다는 평도 있다.[26]

또한 아무리 슈게이징이라고 해도 보컬의 볼륨이 너무 작았으며 반면 드럼 소리는 너무 커서 다른 소리가 묻히는 문제도 있었다.

특히 인기가 많은 곡 중 하나인 'Only Shallow'를 할 때는 도중에 음향 문제가 생겨서 중단했는데 이리저리 해봐도 안되자 그냥 다음 곡으로 넘어갔지만 팬들이 다시 연주해달라고 떼를 써서 결국 다시 연주했다. 음향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서 다시 연주하긴 했지만 그리 듣기 좋지 않았다는 평이 많다.

'To Here Knows When'의 경우도 관객들은 뭐가 문제였는지 몰랐지만 케빈이 마음에 안든다고 거의 1절이나 연주해놓고 처음부터 다시 연주했다. 다시 연주하겠다고 하니까 한 흑인 팬이 "모든 곡을 두 번씩 해 달라"고 외쳐대기도 했다. 로타리 베이스 신준섭은 "두번씩 들은 곡이 많으니 11만원 내고 공연을 1.5번 본 것과 같다"며 긍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타협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사운드 테스트 한다고 기타를 몇 번 긁었는데, 그때마다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공연의 피날레로 'You Made Me Realise'를 연주했는데, 도중에 하나의 코드에 머무르더니 약 10분가량 넘게 그대로 그 부분만 반복해서 달렸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공연은 아니었다는 평이 대다수지만, 마지막의 피날레만큼은 압도적으로 훌륭했다는 평이 많다. [27]

슈게이징 밴드 불싸조 멤버인 한상철도 이 공연에 참석했고 공연의 진행에 대해서 혹평을 했다그러면서 사진은 또 같이 찍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조. 의 해당 공연 리뷰.[28]

한국 다음으로는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일본 공연은 평이 좋다. 한국 공연처럼 중단하고 다시하는 일도 없었다. 한국은 테스터였던 것일지도...

게다가 안산 내한때도 처음보다 훨씬 들을만해져서 악스홀 내한 본 사람들이 엄청나게 빡치는 사태가... 내한 때 겪을 만큼 겪어서 인지 서브스테이지 헤드라이너인 박정현의 무대가 끝나고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까지 무려 4시간 가까이 텀을 두어 음향 셋팅을 충분히 할 시간을 주었다.


6.2. 2018년 내한[편집]





2018년 6월 5일 오전 9시에 공개된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차 라인업에 등장했다.

5년 전 단독공연이나 안산때에 비하면 훨씬 관람하기 좋은 공연이었다. 케빈의 결벽증이나 음향 문제로 인해 공연이 중간에 중단되는 일도 없었고, 보컬도 집중하면 들을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펜타 공식 SNS 등에 마블발 음량에 대한 경고문을 미리 올리기도 했고, 공연 시작 전에는 펜스 근처 관중들에게 이어플러그도 나눠주기도 했지만, 다른 밴드들을 보러 온 사람들 중에는 마블발의 사운드 출력에 기겁하며 뒤로 빠지거나 집에 간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볼륨이 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기본적으로 기타 배음에 의해 노이즈를 만드는데 그걸 라이브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소리가 웬만큼 크지 않고서는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인 것도 있다. 펜타포트 부지 특성상 보통 밤 10시 이후에는 공연 출력을 줄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행히 이번 공연에서는 그런건 없었다.

13년 이후로 신보가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에 [29], 셋리스트는 단지 신곡 한개가 추가된 것 말고는 안산때와 거의 비슷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블발 노래에서도 시도때도 없이 기차놀이와 슬램을 했고, 원체 멘트를 잘 안하는 케빈은 그걸 보고 "Thanks for being so groovy"라고 했다. 여담으로 그 슬램존안에 라이프 앤 타임의 기타리스트 진실이 섞여있었다. 마지막곡 'You Made Me Realise'나올 때 관객들은 진실을 발견하고 서핑을 태워주었다.


7. 여담[편집]


  • 영문 이름 'My Bloody Valentine'을 외래어 표기법에 준수하여 쓴다면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이 맞는 표현이지만, 발렌타인 데이라는 다른 호칭의 영향과 기본적 로마자 소릿값을 추구하는 관습에 따라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라는 표현이 보다 폭넓게 쓰이고 있다.(구글 검색량 출처) 후자 영향에 따라 국내 음악 커뮤니티에선 '마블발'이라는 줄임말로도 불리기도 한다. 또한 영어자의 이니셜을 딴 'MBV'라는 약칭도 세계적으로 쓰이기도 하고 있으며 당사자들도 이를 로고로서 채택하기도 했다.

  • 밴드명이 길기 때문에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영미권은 줄여서 'MBV'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주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마블발'이라고도 불린다. 일본에서는 '마이부라(マイブラ)'라고 줄여서 부른다. 일본에서도 상당한 매니아층이 있는 밴드다. 일본에서 공연하면 그들의 공연은 대부분 매진된다.

  • 2013년 앨범 mbv가 나왔을때 스트리밍이 안됐는데 리더인 케빈 쉴즈의 조카들은 자기 친구들에게 삼촌의 음악을 들려주려고 했는데 찾을수가 없다고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케빈에게 "왜 일부러 미스터리하게 구는거죠? 그런건 멍청해보여요"라고 했다고 한다. 제대로 팩폭당한 케빈은 "내가 가진 세상에 대한 인식이 이제 세상에 맞진 않나보다. 이제 세상엔 내가 모르는게 너무 많아"라고 인정했다고 한다.출처


  • 의외로 소소한 면에서 무술(...)하고 관련이 있는 팀인데, 콜름하고 케빈은 열네댓살 때 가라데 대회장에서 만난 사이라고 하고, 빌린다 부처는 태권도 유단자라고 한다. 케빈 쉴즈는 영춘권도 할줄 안다고 안다.

  • 리더인 케빈 실즈가 영향 받은 여러 뮤지션들 중에서도 특히 가장 좋아하는 두 밴드로 비틀즈라몬즈를 꼽았다.[30] 인터뷰

  • || {{{#!wiki style="margin: -5px -10px"파일:tumblr_mr4dbrpfVp1qbesnao1_540.jpg}}} ||
    메인 보컬 빌린다 부처는 예쁜 외모로 슬로우다이브의 보컬 레이철 고스웰과 함께 슈게이징 여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동안으로 유명한데, 60대가 다 되어가는 현재도 40대 초반(!)으로 보일 정도이고 Loveless 시절에 이미 30대였지만 당시 사진을 보면 많아봐야 20대 중반으로 보인다.

    • 2012년 초에는 한상철, 전자양, 조월 등이 모여서 Loveless 트리뷰트 앨범을 내더니, 2013년 1월에는 일본의 익스페리멘탈 록 밴드 보리스가 트리뷰트 앨범 "Yellow Loveless"를 발매했다.

    • Loveless는 아일랜드 최대 일간지 '아이리시 타임즈'가 뽑은 '역대 최고의 아일랜드 앨범' 1위이기도 하다.# '아이리시 인디펜던트'가 뽑은 '역대 최고의 아일랜드 앨범'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 성향이 극과 극으로 알려진 평론지인 NME, 롤링 스톤, 피치포크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는 밴드이기도 하다.

    • 힙스터들이 엄청나게 좋아하는 밴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음악 커뮤니티 4chan/mu/[31]Rate Your Music이 사랑하는 밴드다. 국내 음악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포스트락 마이너 갤러리에서도 굉장히 좋아하는 밴드이기도 하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파일:마블발 슈프림.jpg}}} ||
    2020년에는 Supreme과 콜라보를 하기도 했다. 이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착안한 아이템들을 출시한다. 슈프림은 이 컬렉션의 의의에 대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노이즈를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음악가와 리스너에게 큰 영향을 미친 밴드다.”라고 설명했다.#

    • 2021년 도미노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원래 소니랑 계약을 맺었지만, 이제부터는 메이저보다는 독립레이블이랑 계약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32] 도미노 레코드와 계약하게 된다. 마침 도미노의 소유자는 케빈 실즈의 친구 Laurence Bell이라는 사람이다. Bell에 의하면 케빈 실즈는 "아주 구체적으로 무얼하고 싶은지 안다. 그는 소리나 이미지를 소수의 사람들만이 듣고 볼수 있는 방식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출처

    • 스매싱 펌킨스빌리 코건이 엄청나게 영향을 받은 밴드이기도 하다. 빌리 코건은 항상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 질문을 받으면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리더 케빈 실즈를 꼽는다.



    • 1988년 9월 25일, 영국 DJ 존 필 라디오에서 진행한 라이브.#


    • 1992년 2월 8일, 오스틴 리버티 런치에서 진행한 라이브. Loveless 발매 이후라 Loveless 앨범곡들을 당시의 라이브로 들어 볼 수 있다. 또 이 해에 밴쿠버에서 한 라이브도 좋은 평을 받고 있다.#

    • 파란만장한 음악 경력, 엄청난 임팩트를 남긴 앨범[33]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리더 케빈 실즈는 '1990년대의 브라이언 윌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케빈 실즈는 이런 이야기에 대해 "글쎄. 난 그냥 브라이언 윌슨의 팬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나를 내가 존경하는 사람과 비교한다면…. 나의 영웅과 비교되는 것인데 꺼릴 이유가 없다. 그렇잖나. 과거에도 지금도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다.”라고 답했다.출처

    • 리더 케빈 실즈는 2021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인터뷰 이 인터뷰에서 실즈는 어렸을때 25세가 되기전에 피크를 찍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밴드가 성공한 이후로 시간에 쫓긴다는 생각을 아예 접었다고 한다. 그래서 공백이 길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다 지났다. 실즈는 "시간은 이제 좀더 소중해. 70 몇살이 돼서야 mbv의 차기작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지금 만들어야 좀더 쿨한거 같아"라고 인터뷰 말미의 생각을 밝혔다.출처

    • ||
    {{{#!wiki style="margin: -5px -10px"파일:my_bloody_valentine_68.jpg}}} ||
    MBV 멤버들의 서명이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1] 이 밴드의 대부분의 노래를 작사/작곡했다.[2] 레이지 레코드(1987) → 크리에이션 레코드(1988~1991) → 아일랜드 레코드(1992~1997) → 소니 뮤직 아일랜드도미노 레코드(2021~)[3] 슬로우다이브, 라이드와 함께 슈게이징 BIG 3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슈게이징이라는 장르를 대표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를 첫번째로 꼽을때는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을 이야기한다.[4] 뉴욕 퀸스에서 태어났지만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케빈 실즈의 부모님은 1973년 케빈이 6살 때 경제적 사정으로 고국 아일랜드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5] 'This is Your Bloody Valentine' EP 부클릿에서는 콤 큐잭(Colm Cusack)이라는 영어식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6] 아일랜드 출신. 이 밴드의 이름을 지은 인물이자, 케빈 실드, 콜름 오시소그와 함께 밴드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다.[7] 데이비드 콘웨이의 여자친구다.[사진] 파일:올뮤직 데이터.png[8]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은 다이노소어 주니어에게 영향을 받기도 했다.[9] 흑인 록 밴드 리빙 컬러의 기타리스트. 2003년판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의 66위를 차지했다.[10] M/V에서도 화면에 노이즈가 가득하다[11] 영국의 음반 제작자. 실험 음악의 선구자다[12] 프랑스의 대표 가수. Comment te dire adieu로 알려져 있다.[13] 영국의 포스트펑크 밴드[14] 독일의 크라우트 록 밴드.[15] 영국 펑크 록 밴드[16] 영국 록 밴드[17] 독일의 인더스트리얼 밴드[18] 케빈 실즈 "퍼블릭 에너미는 하이파이 힙합 레코드가 아닙니다. 경기장용으로 설계된 음악은 아니었고, 그 사운드의 선입견과 듣는 사람을 예쁘게 달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19] however decadent one might find the idea of elevating other human beings to deities, My Bloody Valentine, failings and all, deserve more than your respect[20] Loveless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21] 그런데 2003년에 1990년대 앨범 순위를 갱신하면서 1위를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OK Computer》가 워낙에 대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뭐라 안한다...[22] 사실 갤러거 형제는 성격이 특이하긴긴 해도, 실즈처럼 녹음 비용이나 스케줄 가지고 문제를 끼친 적은 없다. 앨런 맥기에게는 차라리 갤러거 형제 쪽이 편한 상대였을 것이다. 맥기는 아직도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과 Loveless를 싫어한다. 2014년 슈게이징 씬을 다룬 다큐멘터리 Beautiful Noise에 출연해 Loveless 질문 받았을때 경기를 일으키며 과대평가받은 앨범이라고 까대기도 했다.[23] 케빈 실즈와 패티 스미스는 매우 각별한 사이로 실즈는 스미스의 시낭송 앨범에 음악을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다음날 있었던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본공연 때는 어제 스미스 공연 정말 좋지 않았냐는 멘트를 하기도 했다.[24] 공연이 그리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앙코르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공연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You Made Me Realise" 피날레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 계속해서 앙코르가 이어질 분위기가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슈게이징 밴드 특유의 무대 매너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25] 실제로 실즈는 한 인터뷰에서 "데비 구지는 너무 열정적으로 연주하니까 라이브 할 때는 괜찮은 연주자지만 내가 추구하는 사운드를 만들기 힘들어서 <Loveless> 레코딩에서는 그냥 내가 베이스 다 쳤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번 새 앨범 <m b v>에서도 드럼과 빌린다의 보컬빼고 전부 혼자 다 했다고 한다.[26] 그렇게 사운드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공연을 준비할 때 사운드를 다 점검하고 나왔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는데, 11만 원씩이나 주고 표를 산 관객 입장에서는 그런 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27] 마블발 곡중에서 흔치 않은 펑크 넘버인데 이 밴드 특유의 노이즈 사운드를 장착해서 엄청난 사운드 폭격을 경험할 수 있다.[28] 한상철은 이미 2012년도에 발매된 이들의 리마스터 앨범 전작의 해설지를 작성한 바 있으며 음반해설지 안에 이례적으로 무려 음향 그래프까지 삽입하는 덕심을 발휘했다.[29] 일단은 새 EP와 앨범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다만 발매일은 미정.[30] Well, the Beatles and the Ramones are my two favorite bands of all-time[31] Loveless는 /mu/의 필청 앨범 중 하나다.파일:1516430146222.png[32] 사실 도미노 레코드는 베거스 그룹이나 마타도어와 함께 독립레이블 중에서도 준 메이저급에 속하는 곳이기도 하다.[33] Pet Sounds, Loveless 모두 처음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재평가를 받아 걸작 소리를 들은 앨범이기도 하다.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 한참 활동하던 시기의 인터뷰들 모음.1, 2, 3, 4 일본에서 한 인터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