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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邊光鎬
1890년(고종 27)[1] 2월 25일 ~ 1958년 5월 13일

1. 개요
2. 생애
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원주(原州)[2], 초명은 변진호(邊縉鎬), 자는 문규(文圭), 호는 만헌(晩軒)이다.

2. 생애[편집]


1890년 2월 25일 전라도 임피현 북삼면 나포리(현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 나포리)에서 아버지 변기탁(邊基卓, 1858. 9. 18 ~ 1916. 3. 3)[3]과 어머니 성주 현씨(星州 玄氏, 1857. 2. 5 ~ 1895. 8. 20)[4] 사이의 9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19년 경성방직의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1923년 고향 군산부에 설립된 민립대학 지방부 설립에 집행위원으로 참여했다. 1928년 친일단체인 군산 간화회(懇話會) 창립에 참여해 부평의장으로 활동했다.

8.15 광복 후인 1945년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정부장인 조완구의 요청과 기타 독립운동가들의 제청으로 결성된 애국금헌성회의 중앙위원으로 참여했다. 그 뒤 민주국민당에 입당하여 중앙위원으로 있다가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민주국민당 후보로 전라북도 군산시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2대 국회 기간 동안 발췌 개헌에 결사반대했고, 이승만 정부에서 발췌 개헌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기립 투표에 들어가자 이에 불응하고 제자리에 앉아 일어서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58년 5월 13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1가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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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주변씨대동보 권5 523쪽에는 1889년생으로 등재되어 있다.[2] 부마공파(駙馬公派) 19세 용(用) 항렬. 족보명은 변용갑(邊用甲)이다.#[3] 전라도 장흥도호부(현 전라남도 장흥군) 출신으로, 1888년(고종 25) 식년 생원시에 3등 25위로 입격했다. 일제강점기 초 전국 양반 인명록인 조선신사대동보에도 이름이 등재되었다.[4] 현상덕(玄相德)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