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스 레오폴딘 빅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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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작 알프레드의 4녀이자 막내이며,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 루마니아의 마리 왕비와 러시아 제국의 대공비 빅토리야 표도로브나의 동생이다. 애칭은 베이비 비(Baby Bee).
스페인 이사벨 2세의 외손자인 갈리에라 공작 알폰소 왕자[1] 와 결혼했다.
2. 작위[편집]
- 에든버러의 베아트리스 공녀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Beatrice of Edinburgh (1884년 4월 20일 ~ 1893년 8월 23일)
-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베아트리체 공녀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Beatrice of Saxe-Coburg and Gotha (1893년 8월 23일 ~ 1909년 7월 15일)
- 알폰소 데 오를레앙 이 보르본 왕자비 Her Royal Highness Princess Alfonso de Orleans y Borbón (1909년 7월 15일 ~ 1930년 12월 24일)
- 갈리에라 공작부인 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Galliera (1930년 12월 24일 ~ 1937년 7월 14일)
- 알폰소 데 오를레앙 이 보르본 왕자비 Her Royal Highness" Princess Alfonso de Orleans y Borbón (1937년 7월 14일 ~ 1966년 7월 13일)
3. 생애[편집]
3.1. 어린 시절[편집]
1884년 4월 20일 켄트의 이스트웰 파크에서 태어났다. 유아기를 아버지 에든버러 공작 알프레드가 해군 복무 중인 몰타 섬에서 보냈다. 1893년에 큰할아버지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작 에른스트 2세가 사망하면서 아버지가 작위를 물려받아 가족들이 모두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코부르크로 이사를 갔다.
막내딸인 베아트리스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럼에도 응석받이가 되지 않고 똑부러진 소녀로 성장했다.
3.2. 결혼[편집]
1902년, 16살 무렵에 베아트리스는 사촌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대공[2] 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사촌간의 혼인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니콜라이 2세는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미하일 대공은 이별을 통보하는 편지를 보냈고, 베아트리스는 크게 상심했다.
이후 베아트리스와 스페인의 알폰소 13세가 결혼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1906년에 알폰소 13세는 베아트리스의 사촌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지니와 결혼했다. 베아트리스는 이 결혼식에서 알폰소 13세의 사촌이자 갈리에라 공작의 장남 오를레앙의 알폰소와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반대에 부딪치게 되는데, 베아트리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1909년 7월 15일, 두 사람은 스페인을 떠나 코부르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살림을 차렸다.[3]
3.3. 추방[편집]
1912년에 부부는 스페인 왕실의 허락을 받아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알폰소 13세는 두 사람의 지위를 복권시켜 주었다. 베아트리스는 국왕 부부와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1916년, 알폰소 13세는 임무를 핑계로 베아트리스와 알폰소를 스위스로 추방시켜 버렸다. 이는 굉장한 스캔들이 되어 그 이유에 대해서 각종 소문이 분분했다. 크게 두 가지로 이유가 갈렸는데, 하나는 알폰소의 어머니 에우랄리아 공주로 인해 알폰소가 불이익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와중에 에우랄리아는 공개적으로 독일 제국을 지지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중립국의 위치에 있는 스페인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는 일이었다. 또한 에우랄리아는 자신의 첫 저서에서 알폰소 13세가 프랑스와 진행 중이던 외교 협상을 비난해 알폰소 13세를 분노케 한 전적도 있었다. 에우랄리아는 왕족의 지위를 박탈한데도 눈 하나 깜빡 안 할 인물이라 애꿎은 아들 알폰소에게 불똥이 튄 것이 아니냐가 호사가들의 주장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당대 가장 핫했던 소문은 알폰소 13세와 베아트리스가 불륜 관계라는 추문이었다. 오입쟁이로 유명한 알폰소 13세가 베아트리스와 불륜을 하다가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자 앙금을 가지고 베아트리스와 그녀의 남편을 추방시켰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졌다. 설상가상으로 베아트리스 부부와 국왕 부부의 정적들은 소문을 부풀려서 퍼뜨렸다. 심지어 국왕의 애인인 베아트리스가 국왕과 왕비를 마음대로 조종하며 국정을 농단하려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3.4. 내전[편집]
베아트리스와 가족들은 1924년에 스페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들은 산루카르데바라메다에 집을 짓고 정착했다. 1930년 시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남편이 갈리에라 공작위를 물려받았다.
1931년 알폰소 13세가 퇴위하고 스페인 왕족들은 망명길에 올랐다. 그나마 베아트리스의 가족들은 개인 영지에 있는 자택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직후 내전이 일어나면서 대부분의 재산을 잃게 되었으며, 차남 알폰소가 공화파와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3.5. 사망[편집]
1966년 7월 13일 산루카르데바라메다에서 숨을 거두었다. 유해는 카푸친 수녀원에 안장되었다.
4. 가족관계[편집]
4.1. 조상[편집]
4.2. 자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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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사벨 2세의 4녀 갈리에라 공작부인 에우랄리아의 장남.[2] 외삼촌인 알렉산드르 3세의 4남이자 니콜라이 2세의 동생.[3] 몇년 뒤 베아트리스는 가톨릭으로 개종했다.[4] 조지 3세의 4남이다.[5]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장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