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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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유래
3. 여담



1. 개요[편집]


백안, 그러니까 뒤집힌 눈으로 상대를 본다는 뜻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쌀쌀맞게 대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2. 유래[편집]


삼국시대(중국) 죽림칠현 중 한 사람인 완적(阮籍)은 명문가 출신으로 태어나 을 많이 읽고 을 좋아했으며 거문고 연주의 달인이었다. 그의 또다른 특기는 바로 청안(靑眼, 눈동자)과 백안(白眼, 흰자위)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어느 날 완적이 친구와 바둑을 두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전혀 마음의 동요를 보이지 않고 태연히 바둑 승부를 마쳤다. 그리고 나서야 두 이나 되는 술을 마시고는 를 토하면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상가에 조문객들이 찾아왔지만 완적은 머리를 풀어 산발로 만들고는 조문객을 제대로 받지도 않고 곡도 하지 않았다. 오직 검은 눈동자와 흰 자위 두가지 눈으로 조문객을 환영하는지,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지를 표시할 뿐이었다.

죽림칠현으로 어울리던 혜강의 동생인 혜희는 통속적인 예의범절을 차리는 선비였다. 이런 모습을 싫어한 완적은 그가 찾아오자 완적은 눈을 치켜 떠 백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 소식을 들은 혜강은 술과 거문고를 싸들고 그를 찾아갔는데, 그제서야 완적은 검은 눈동자를 바로 돌아가 혜강을 환영하면서 어울렸다고 한다.


3. 여담[편집]


이 백안시의 반대 표현은 청안시(靑眼視)이다.

뭐 이렇게 보면 계속 이런 삶을 살았겠거니 생각할 수 있으나, 완적은 이후에 혜강을 처형한 사마소에게 출사했고, 사마소의 총애를 받아서 관직생활을 영위했다. 술 마시느라 일을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음에도 사마소가 많이 덮어줬다고 한다.

조선시대 유학자인 송익필도 백안시로 유명했다고 한다.

백상아리는 눈꺼풀이 없기 때문에 사냥감을 덮칠 때 눈을 뒤집는다. 공격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로 공포스러운 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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