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수 살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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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4년 12월 11일 연예계 전문 매니저 1세대였던 배병수가 자신의 부하직원이자 당시 최진실의 로드매니저였던 전용철과 공범 김영민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형사 사건으로는 특이하게 당시 연예계 내부의 갑을관계를 최초로 대중들에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정·관계, 언론사, 방송사 인사 등 ‘절대 갑’, 연예 기획사 대표라는 ‘갑’, 유명 연예인이라는 또다른 ‘갑’과 신인 연예인, 말단 로드매니저 등 ‘을’ 사이의 지배·복종 관계와 착취 구조 등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계 내부의 부조리에 대한 의혹과 설만 난무했고, 명확한 진실은 가려졌으며, 개선노력은 전무했다.[1]
1994년은 언론에 수많은 대형 살인사건들[2] 이 보도됐는데, 이 사건이 가장 마지막이었다.
2. 매니저 배병수에 대해서[편집]
자세한 내용은 배병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사건의 시작[편집]
1993년 여름에 전용철(全鎔喆)은 고졸 이후 군대를 전역하고 일 없이 지내던 와중에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MBC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3] 야외 무대에서 배병수를 알게 되어 현장 잡일을 도와주었고 그에게 로드매니저로 채용되었는데, 그는 전용철이 체격이 왜소하고 얼굴이 곱상하며 착하고 성실해 보여 여자 연예인 로드매니저로 어울린다고 판단하고 이후 최진실의 로드매니저로 배정하지만 이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4. 전개[편집]
하지만 로드매니저로 채용된 이후 배병수와 전용철 사이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 때 기획사 사무실에서 금품이 없어진 데 이어 설상가상으로 기획사 직원들과 그와 계약을 맺은 연예인들의 소지품에서 금품이 없어지는 일이 늘어나자 배병수는 전용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이 빈번히 일어나자 전용철을 도둑으로 몰기까지 한 데다 사소한 실수를 저질러도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배병수가 전용철을 질책하게 되면서 이들의 불화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다가 결국 1994년 1월 배병수는 전용철을 해고하였다.
이후 전용철은 자신을 해고한 배병수에 대해 앙심을 품기 시작했고 이 시기 최진실이 일약 스타가 되면서 배병수의 명성은 점점 더 높아졌다. 그럴 때마다 전용철은 그에 대한 복수심을 점점 더 키웠으나 전용철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었고, 로드매니저였던 시절에 벌어둔 돈을 오락과 유흥으로 탕진했으며, 돈이 떨어진 뒤에는 카드빚으로 충당하였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매니저 일을 시작하려고 연예계를 드나들다가 우연히 다시 만난 배병수로부터 '너같은 사람은 매니저 할 자격도 없다'는 말을 듣게 되자 전용철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5. 살해[편집]
1994년 10월, 전용철은 가진 돈도 떨어지고 천 만원이 넘는 카드 빚마저 지게 된 상황에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어느 성인 오락실에서 범행을 공모할 사람을 찾게 되는데, 때마침 절도 등 전과 5범의 김영민(金英敏, 당시 23세)[4] 을 알게 되었고, 이들은 '돈을 벌자'는 명목으로 범행을 모의한다. 전용철은 김영민에게 배병수가 돈이 많다는 점과 배병수의 내부 사정을 잘 안다는 점을 이용하였고 그의 범죄 경력까지 합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여 범행을 제안하였다.
차량과 범행 도구를 마련한 두 공범은 12월 11일 밤 11시, 에스페로 승용차를 지인으로부터 빌린 후 배병수의 집에 도착하였고 초인종을 눌렀으나 응답이 없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두 사람은 배병수의 집 안으로 들어가 숨어 있다가 30분 뒤 귀가한 배병수의 머리를 각목으로 내리쳐서 실신시킨 뒤 안방으로 끌고 간 다음, 결박하고 깨운 뒤 칼로 위협하여 예금 통장과 현금카드의 위치와 비밀번호를 말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배병수가 저항하자 전용철은 그를 무자비하게 구타하였으며 결국 배병수는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을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두 공범은 필요한 것을 빼앗은 다음 어떤 협상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배병수를 전깃줄로 교살하였다.
이들의 살해는 자신들의 얼굴을 아는 배병수가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그에 대한 복수심도 동반하였다.
다음날인 12월 12일, 두 공범은 배병수의 시신을 경기도 가평군의 야산에 유기하고 범행 증거가 남은 차량을 외진 곳에 버리고 당시로서는 신형 차량인 브로엄[5] 을 구입한 뒤 통장에서 배병수의 돈을 마구 인출했고 그 돈을 이용하여 술집 등 유흥업소를 전전했다.
6. 범인 체포[편집]
시신 유기 당일인 1994년 12월 12일 배병수의 가족은 그의 거처를 수소문하던 끝에 약 1주일 후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였으며, 경찰은 사건의 파장을 고려하여 수사에 임했다. 주요 수색 대상은 배병수의 집이었고 현장에는 증거 인멸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여기저기서 격투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안방에서 혈흔이 발견되면서 경찰은 실종 사건에서 강력 사건 수사에 돌입하였다.
그 후 실종 당일인 12월 12일을 기점으로 서울과 부산 등에 있는 현금인출기를 이용하여 누군가 배병수의 계좌에서 총 3820만 원이라는 거액을 인출한 것이 포착되면서 서서히 수사망을 좁혔다. 현금인출기가 설치된 은행 일부에서는 은행 직원들이 두 공범의 인출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고, 일부 지급기엔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목격자들이 진술한 20대 남자의 인상 착의로 용의자의 신원을 추정해 가던 경찰은 배병수 밑에서 로드매니저로 일하다가 몇 달 전에 해고당한 전용철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경찰은 주변에 대한 탐문수사 결과 전용철이 범행 당일 브로엄 승용차를 구입하고 지인에게서 폐차 직전의 낡은 에스페로 승용차를 빌렸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전용철이 유력한 용의자임을 확인했다.
1994년 12월 23일 오후 2시 15분, 충청북도 음성군의 중부고속도로 진출로에서 잠복 근무 중이던 경찰관이 범인의 차량을 발견했는데, 운전자는 검문을 위해 다가간 경찰관을 제치고 차량을 급출발했으며, 이후 2시간 동안 경찰과 추격전을 벌였다. 이 차량에는 전용철, 김영민, 2명의 젊은 여성 등 총 4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여성들은 배병수가 실종된 1994년 12월 12일 밤에 전용철과 김영민이 찾은 룸살롱 종업원들로 거액의 팁을 받고 함께 강원도의 한 스키장으로 놀러 가는 중이었다. 경찰의 추격 이후 약 2시간 뒤, 차량은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견되었지만 사람은 타고 있지 않았다.
그 뒤 같은날 오후 6시 40분,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전용철은 경찰에 전화해 자수 의사를 밝히고 차량을 주차한 장소에 나타나 체포되었다. 두 여성은 도주해 친지 집에 숨어 있었고 경찰은 그 집을 급습해 두 여성을 범인 은닉 및 도주 방조 혐의로 검거했다. 김영민 역시 1994년 12월 24일에 서울 서초경찰서를 찾아와 자수했다. 전용철과 김영민이 배병수를 살해한 후 암매장한 사실을 자백함으로 사건은 막을 내렸다.
7. 이후[편집]
1995년 6월, 두 사람에게 각각 무기징역형이 선고되었고, 형이 너무 과하다며 이들은 항소했지만 10월 항소심에서 최종적으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되었다. 최진실은 법정에서 고인이 모진 행동을 하긴 했으나 살인까지 이어질 일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이후 전용철은 형이 확정되어 수감된 뒤 일부 정치인과 언론사에 지속적으로 ‘이제 진실을 밝히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일부 언론사와 교도소 내 인터뷰까지 하였다. 1994년 12월 이래 8년간 여러 언론사에 '섭섭한 게 있다'는 모호한 표현이 담긴 편지만을 보내다가 2002년 11월 전후 기자들에게 실명을 거론하며 그 섭섭함의 실체를 교도소 내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002년 11월 18일 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에서 이 문제로 소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전용철은 원주교도소에 수감되었고 이후 형량이 20년으로 감형되어 2022년 현재 출소한 것으로 추정되나 김영민은 현재까지도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6] 옥중 자격증만 10개를 따고 전문학사까지 취득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사건에서 CCTV를 활용한 수사기법이 대한민국 경찰 역사상 최초로 도입되었다.
2008년 최진실이 사망했을 때 전용철은 너무 슬프고 바빴지만 그녀와 일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말을 했다.
8. 루머[편집]
최진실이 '살인을 사주했다'는 루머가 한동안 돌았다. 배병수가 엄정화, 최진실 등을 노리개로 삼았고 어머니까지 건드리며 섹스비디오를 가지고 협박하자 매니저에게 살인교사를 했다는 내용으로, 아직도 이런 루머를 믿는 사람들이 꽤 있다.[7]
이와 별개로 배병수의 갑질이 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9.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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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이것을 보도하는 언론사들이 이런 갑을관계, 착취구조의 중심축이었기 때문에 대중들의 말초신경을 건드는 자극적인 보도로만 일관하는 기레기짓거리만 했다. 당장 2020년대 들어서도 방송사들은 하나같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처우개선에 대해선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2] 지존파 사건, 온보현 사건, 뉴월드 호텔 앞 살인사건, 박한상 존속살해 사건, 부산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강태민 유괴 살인 사건 등이 이 해에 일어났다.[3] 이때까지만 해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는 무한도전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 버라이어티 형식으로 변질되면서 인기가 하락하기 시작하다가 1997년에 종영된다.[4] 1971년생[5] 해당 모델은 1993년 출고. 이후 아카디아의 출시로 단종되었으나 2년 후 뉴 브로엄으로 출시되어 1999년 단종.[6]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부산교도소에서 복역중인 김영민이 교도소에서 복역 중 시한부 선고 혹은 암 말기 선고를 받아서 교도소에서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을 경우 검찰측이 형집행정지 내리지 않는 이상 계속 부산교도소에서 노역을 하고 작업상여금을 받으면서 계속 복역 할 수 밖에 없다.[7] 구봉숙의 노래 한국을 조진 100인의 개새끼들이라는 노래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