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규(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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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박찬규.jpg

본관
반남 박씨[1]
출생
1928년 4월 5일
충청북도 청주군 부용면 부강리
(현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
사망
2019년 11월 22일
인천광역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6묘역-27호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편집]


박찬규는 1928년 4월 5일 충청북도 청주군 부용면(현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5년 강제징용되어 중국 하북성 북평시(北平市)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 제1972부대에 군속(軍屬)으로 배치되어 근무를 했는데, 그동안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차별대우와 일본군의 잔악한 행동을 체험하면서 점차 민족의식을 키워갔다. 그러던 중, 1945년 2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 소속으로 북경에서의 지하공작을 위해 일본군 군속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던 김순근(金順根)으로부터 조선독립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형세이므로 함께 일어나야 한다는 권유를 받고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해 3월 김순근과 함께 부대 관사에 잠입하여 지하공작에 필요한 권총 등을 확보하다가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김순근은 이때 자결하였으며, 그는 살아남았지만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1945년 4월 21일 징역 단기 5년, 장기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았다.

출옥 후 귀국하였으며, 200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그후 2019년 11월 22일 인천광역시에서 별세하였다.# 그의 유해는 2019년 11월 25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6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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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양공파 26세 찬(贊)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