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직/논란 및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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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목록
2.1. HOTEL 공모전 수상 논란
2.2. 이원복 비판
2.4. manga/manhwa 논란
2.5. 키노 칼럼 논란
2.6. 표절 비판 논란
2.7. 원론주의 논란
2.9. 왜곡된 역사인식 및 혐한 성향
2.9.1. 왜곡된 역사인식 및 혐한 성향에 대한 반론


1. 개요[편집]


사실상 한국만화계가 내쳤고 본인이 돌아가고 싶어도 독자들의 정당한 항의를 지속적으로 받아 꿈도 못 꾸게 될 작가. 일반독자들만이 아니라 업계까지 전반적으로 워낙 까가 많은 작가다 보니[1] 한국에서 활동하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저렇게 꽉막힌 사고방식으로 작가활동해서 버틸 수 있을리가 없다"거나, 일본 진출 초기에도 성인물을 그렸다는 점만으로도 "그렇게 도도하게 굴더니 고작 이렇게 현실타협하냐"는 식의 비난들 받기도 했다.[2]

사실 원론 추구와 화실 운용 운영 문제로 인해 국내에선 평이 좋지 않지만 만화가로서의 역량이 뛰어난 편인 것은 사실이다. 그림체는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그림 실력이 뛰어난 편이며 덕분에 선캔락으로 크게 히트를 쳤다. 이후 메이저 잡지인 주간 소년 점프 연재를 따냈고, 협업한 스토리 작가가 아이실드21로 유명한 이나가키 리이치로인 점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2. 목록[편집]



2.1. HOTEL 공모전 수상 논란[편집]


일본 진출 초기 메이저잡지로의 진출을 위해 제자의 작품을 가져가 재작화하여 내놓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리뉴얼 대상이 됐던 해당 작품 자체는 '순수 제자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박무직 화실에서 나온 작품'으로 보는게 올바르다. 문제가 된 단편 <HOTEL>은 원안/구성 박무직에 작화는 제자인 박지홍이 하여 국내 공모전에서 수상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애초에 내용 자체가 박무직의 작품이다 보니 작품자체의 컬러는 박무직 이외에는 할 수 없는 요소가 많았다. 작품에 참여한 파트를 밝힌 사항이 좀 독특한데 '원작'이나 '글' 혹은 '스토리'가 아니라 '원안'이나 '구성'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볼 때, 단순히 원작이나 시나리오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콘티 단계까지는 박무직이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논란의 귀결은 박지홍이 스승의 원안과 콘티를 받은 다음에 그 부분을 숨기고 자신의 독자적인 작품인양 한국 공모전에 당선된 것이든지 박무직이 제자의 당선작을 재탕해서 일본 공모전에 당선된 것 둘 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다.

즉 "베테랑 작가인 박무직이 사실상 모든 걸 한 작품인 <HOTEL>이 (신인) 공모전 수상을 했던 것이 옳은 일이었나?"에 대한 논란[3], (일본에서 재차 수상한 이후에는) "한 공모전에 수상한 작품을 재탕하여 다른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이라고 할 수 있다.[4]. 물론 박무직 명의로 발표된 <HOTEL>은 박지홍 명의로 발표된 <HOTEL>의 리뉴얼이나 감독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탕'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5] 실제로 일본 측에서도 박무직이 아니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수준급 작화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2004년 동아 사이언스 과학기술창작문예 만화부문 수상작 리스트에는 작가로서 박지홍 이름만 있고 박무직 이름은 없었다. 출판된 수상작 모음집에도 박무직 이름은 없다.# 공모전 당선을 위해 프로작가가 스토리를 쓴 사실을 일부러 숨긴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던 대목.

무엇보다도, HOTEL이 당선되었던 동아사이언스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은 신인작가 지원을 위한 공모전이었다는 것이 문제다.[6][7] 그러니까 이 논란은, 프로작가의 공모전 참가나 재탕 출품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프로가 나올 수 없는 신인작가 지원 목적의 공모전에 문하생 이름을 빌려서 출품해서 당선되었고 상금도 받아 챙긴 행위 (그게 아니라면 신인작가가 스승인 프로작가의 스토리와 원안을 받은 후 그 사실을 숨기고 출품하여 당선되고, 상금도 받아챙긴 행위)가 핵심적인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2.2. 이원복 비판[편집]


만화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내성적인 다른 만화가들에 비해 능동적인 편이라 이원복병맛스러운 순정만화 비판[8]을 적절하게 깨부수고 오히려 이원복의 그림체가 서양 카툰을 흉내낸 면[9]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원복 본인부터가 일본만화가 치바 테츠야 만화를 표절하던 사람인지라 박무직만 이원복을 비판한 게 아니라 많은 만화가들에게도 덩달아 일본 만화를 그대로 표절하던 양반이 나중에는 난데없이 서구풍 만화가 으뜸이라고 하고 일본만화 따라한다고 비난할 자격있냐고 까였기에 당시에는 박무직에 대한 비난은 그리 없었다.

2.3. 도서대여점 논쟁[편집]


당대 작가들에 비해 권리를 주장하는 데에 적극적인 만화가였으며 한때 도서대여점 논쟁을 주도하기도 했다.[10] 주도만 하고서 나중에 뒤로 쏙 빠져버렸다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대여점 이야기는 꾸준히 이야기했다. 다만 본업인 만화가 일과 코믹스투데이 원고료 미지급 사건 등 여러가지 일이 겹친터라 초기 여론형성에 주력하고 빠졌다고 보는게 맞다. 실제로 이 시기 널리 퍼져서 소위 '작가들의 권리를 생각하는 의식있는 독자들'을 스스로 뭉치도록 만든 '자유의 검은 리본'이라는 심볼은, (황미나의 양해를 구해) '황미나가 만든 것으로 하고' 사실은 박무직이 만들고 퍼뜨린 심볼이다. 현역작가 중 거의 유일하게 대놓고 활동하던 박무직이 빠진 이후에도 독자들을 중심으로 이 '검은 리본' 심볼 아래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박무직이라는 존재 자체가 대여점 논란에서 사라졌다고 보긴 힘들다.

2.4. manga/manhwa 논란[편집]


하이텔 만화창작동호회에서도 활동했었는데 (아이디:einsteiN) '외국에서는 모두들 만화를 망가라고 부르니 우리도 망가라고 불러야 한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망가(manga)는 일본 만화를 뜻하는 말이지 만화 일반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반발이 심했던 주장이다.[11][12]

2.5. 키노 칼럼 논란[편집]


90년대 후반에는 한때 존재했던 영화잡지 월간 키노에 만화 관련 컬럼을 쓴 적도 있다. 박무직 본인은 이때의 컬럼 연재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듯, 당시 활동을 '만화평론가로도 데뷔'라는 식으로 자칭하곤 하는데 글의 내용은 평론이라기보다는 특정인/단체에 대한 독설이나 컬럼이라기도 민망한 본인의 단상을 나열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키노 연재판은 문장력도 떨어져서 읽기 불편했는데 나중에 단행본화되면서 그나마 읽을만은 하게 수정되었다. 박광수의 광수생각을 비판하기도 하고 YWCA를 씹어주는 글도 싣었다가 관련 단체 반론글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이걸 보고 더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사족으로 키노 컬럼니스트 시절 인디만화계에 '이상한'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던 최지룡을 발굴(?)해서 최지룡의 이름이 '아는 사람은 아는'정도로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최지룡이 이후 홈페이지를 갖추고, 디씨에서 만화를 올리고 디씨인과 치고박고하다보니까 인지도가 커진 것이지만 아마 만화나 동인계를 전전하던 이 작가를 세상에 처음 알린 건(?) 박무직의 공이다.


2.6. 표절 비판 논란[편집]


당시 6~70년대 한국만화계의 표절 만화 관행 관련으로 작가들을 비판했다가 되려 그 자신이 비난을 많이 당했다. 그가 매우 호평하던 아기공룡 둘리 원작자인 김수정도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13] 당시 상황에선 만화가들이 표절작을 그리지않고 먹고 살아가기 힘들었던 상황[14]임에도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비난을 했다는 것이 주요골자. 특히 당시 박무직이 비난하던 만화가가 타이거 마스크를 억지로 그려야했던 이두호인데, '토속적인 필치로 제대로된 한국만화를 그리는 작가'라는, 일종의 상징이기도 한 작가였기 때문에 비난여론이 더 들끓게 됐다. 뭣보다 박무직이 직접 몸담고 있는 순정만화계 역시 이런 일이 비일비재 했으며 박무직이 존경하던 '순정만화계의 대모' 황미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하지만, 황미나에 대하여 이런 건 지적하지 않아 자신이 존경하는 이들에 대해서 덮어주기를 보여줬다.

2.7. 원론주의 논란[편집]


성격과 가치관이 너무나도 독선적인 데다, 자신의 의견과 대립된 주장은 모두 틀렸다는 식의 무리수가 드러날 때도 많다. 자신의 논리적 비약성은 생각지 못하고 자신을 공격하면 끝까지 물어뜯으려는 성향도 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원론을 강조하는 편. 실제로 <박무직 만화공작소>에서 사진을 이용하여 배경을 베껴그리는 일이나, 아예 사진 자체를 배경으로 삼는 일은 치욕이라고 까지 표현했다.[15] 한편으로 건물이 아예 그려진 배경톤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의 길을 망치는 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 정작 일본 작가들은 박무직이 소개한 배경톤을 감정표현 하는데 주로 쓴다. 다만 <만화공작소> 시리즈의 경우 만화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한 책이므로 굳이 다른 프로만화가들에 대한 디스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실제로 박무직과 친분이 있거나 박무직이 좋아하는 만화가 중에서도 만화공작소 등에 나와있는 내용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 말 그대로 만화를 배우겠다고 자기 책을 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원론 강조'란 것인데... 문제는 그걸 '치욕'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과 잘못된 것이고 작가를 망친다는 오류를 범한 것. 어디까지나 원론의 권장과 실력향상을 위한 노력을 어필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박무직은 작법서나 기타매체(인터넷 게시판 등)를 통해 지망생들을 가르칠 때 '회화적인 데생력'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일반 독자들에게도 널리 퍼진 '만화가는 그림을 그렇게 그리지만 사실 화가만큼 잘 그린다'는 원론적인 부분인데 사실 만화가는 그림을 '잘' 그릴 필요가 없다.[16] 만화는 그림 이전에 연출이 핵심이기 때문. 원론적으로만 따지자면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만 잘 배치해도 '세모가 동그라미로 변화하는 과정'의 만화를 연출할 수 있는 것이 만화라는 매체의 특징으로, 이 말은 즉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만화"를 그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이다.[17] 이러한 이론적 접근의 근거는 만화 속에 포함되는 '그림'을 ─일종의 '기호'로 인식하고─ 서양회화 속의 '그림'보다는 '문자'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기 때문인데,[18] 이러한 만화 고유의 특징은 만화이론서 중 가장 유명하고 기본적인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만 읽어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니 평소 만화 자체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을 많이하던 박무직이 이런 "만화의 기본 개념" 자체를 오해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왜냐면 이건 만화의 기본 개념 자체에 대한 또다른 '원론적' 접근이기 때문이다. 박무직의 이런 '작화에 대한 지나치게 아카데믹하고 원론적인 관점 설파' 태도는 만화가지망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기위한 의도일 테지만 극단적이고 예외를 부정하는 오류로 역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셈.[19]

이러한 회화적 데생의 강조가 "만화도 회화미술과 같은 예술의 영역"으로 강조하기 위함이고, 이는 3류문화 취급받던 만화가 '만화 또한 예술의 영역입니다'라고 항변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가 '그림'이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당시 논란이 되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것이기에 더욱 그러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원론적인 접근이라고 옹호자들이 평가하고 있는 작법서라는 것에 스스로 역행한다는 뜻이다.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접근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회화와의 차이가 엄연히 있는데 그림만이 예술의 영역이라고 어필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라는 주장부터 오류다. 애초에 무일푼 만화교실에서도 이와 상반된 주장에 가깝다. 빠들이 무리하게 옹호하다 보니 정작 박무직 본인의 주장과 멀어져 버린 케이스. 그보다는 만화관련학과들과 학원들이 생겨나면서, 만화의 요소 중 하나인 '작화기술'에 대한 예술이론적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맞다.

지나칠 정도로 원론적인 "회화적 데생력" 에 관해 일례를 들자면, 박무직은 <만화공작소>에서 실사체의 경우 주름 하나까지도 사진을 참고해야 하는 '것처럼' 적어놓고 있는데, 사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작가도 드물고 그럴 필요도 없다.(주름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고 익숙해지면 보통 패턴을 외우기 때문이다)[20] 박무직이 설파하는 '그래야 하는 것'들은 실전에서 현역작가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극단적으로 추구할 때나 할 법한 것들에 가깝다.[21] 쉽게 말해 <박무직 만화공작소>라는 책 자체가 "만화"에 대한 이론 보다는 실전적인 기술적 테크닉 즉 '작화'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많이 할애하고 있는 것. 그렇기에 해당 작화기법을 자세하게 배워볼 생각이라면 참고할 만한 테크닉에 대한 요소라 보면 나쁘지 않다. 문제는 만화기법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다루는 책에서 기본적으로 거쳐야 할 부분을 건너띄고 필수 요소라 볼 수 없는 부분을 강조했다는 것.[22][23]

이 지나친 원론주의 때문에 일부 작가들 사이에선 박무직의 만화 학습 서적은 입문자가 봐선 안되는 책이라는 말도 나오긴 한다. 물론 책 안에서 소개되어 기술이나 정보등에 대해선 나무랄 것도 없고, 웬만한 책들 수권을 사는 것 보다도 상세히 잘 정리되어있다는 점이지만 이러한 원론주의 원칙까지 초보자가 잘못 배우게 되면 쉽게 만화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 주요 골자. 지나치게 원론주의를 지키면서 작업을 하려다보니 만화에 대한 접근이 더 어려워지게 되는것이다. 그래도 많은 작가들이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은 박무직 작가의 서적은 자료로서는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며, 이런 지나친 원론주의적 주장들만 조금 더 생각하고 걸러보면 별 문제될게 없기 때문에 박무직 서적은 웬만하면 만화에 대해 어느정도 연식이 있는 사람과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본다거나 아니면 작품에 대한 실전경험을 조금 더 쌓고 보는것이 좋다. 처음부터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독학한다고 박무직 작가 책을 무턱대고 집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어찌됐건 소위 '벽창호'스러운 성격임은 확실하고 오히려 이런 점이 박무직 스스로를 고정관념에 가두어 버렸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온갖 작법서를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저서나 인터넷 등을 통해 자신의 문하생 뿐만 아니라 다른 만화가 지망생에 대한 교육열이 강한 편인데 열정이 과해서 실전 테크닉은 물론 원론적 접근이라는 명제에서도 이탈해 버린 케이스.[24] 앞뒤 꽉 막혀보일 정도로 올곧은 성격상 박무직 스스로도 그걸 지키는 편인데[25], 그러다보니 만화 자체로서의 자유로움 보다는 요소요소에만 과도하게 신경을 써서 전반적으로 만화를 다루는 방식이 경직된 인상을 주거나 스스로의 오류도 가끔 보이는 것. 그래도 만화가가 될 제자들에게 열정에 대한 충고는 만화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몇번이고 되새길 만 하다.-라고 자칫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의 실상은 아래로.


2.8. 문하생 열정페이 논란[편집]


2000년도 초중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문하생 공고도 여러모로 화제가 된 바 있다. '○○ 구합니다' 정도의 내용이 전부인 일반적인 모집 공고와 달리 일주일의 작업량과 문하생들에게 내주는 '숙제'의 내용과 정기적으로 하는 '독서토론'의 내용 등등 거의 커리큘럼 공고 수준으로 자세했던 것. 정확한 액수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돈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잘 하지 않는 편인 다른 문하생 공고에 비해 문하생은 어느 정도 일을 하고 어느 정도를 받고 어느 정도가 되면 어시스턴트로 취급해 어느 만큼을 준다는 식으로 자세히 적어놓기도 했다.

원론적으로 보자면 틀릴 거 없는 공고였지만 상대적으로 문하생 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만화가들과 지나치게 빡쎄보이는(?) 내용이 거슬렸던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단순히 문하생 문의를 하는 것만으로도 미리 고민을 하는 지망생들도 있었고, 반면 만화학원 대신이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문하생 모집란을 살펴보는 지망생들도 있었기 때문. 글만 살펴봐도 '들어가기 어려워보였기 때문'에 어그로로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2014년 9월 13일 일본 화실에서 1년 가까이 일하다가 나온 한국인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노동착취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 허구한날 자뻑질에 자기는 명품을 사고 휴일까지 지키면서, 월급날마다 어시스턴트에게 짜증을 낸다거나 초과근무, 휴일 무시는 기본에 약속한 돈도 제대로 주지 않고 쫒겨나듯 나왔다고.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하고, 한국에서도 별 차이가 없었다는 다른 사람들의 증언도 SNS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아래는 순서별로 네이버 카페 방방 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에서 있은 어시턴트들의 증언과 박무직 작가의 해명을 정리한 것이다. 이대로는 결국 자가당착의 일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 어시 증언 증언1 증언 2

2.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1 해명2

3. 어시 증언과 박무직 작가의 답글 해명 증언3 해명3

4.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4 해명5

5. 어시 증언 증언4 증언5 증언6

6.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6

7. 어시 증언 증언7

8.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7 이것이 박무직 작가의 이번 사태 마지막 글이다.

9. 어시 증언 증언8 증언9

이후에도 어시들의 증언이 추가되었다. 여기에서는 증언1에 이어 매니저인 박무직 작가 아내의 문제점도 나온다(증언10).

박무직 작가와 일하는 어시스트들의 불만은 경제적 대우, 인격 모욕, 언행불일치 등에 있다. 특히 화가 날 때 감정을 조절할 줄 모르는 점이 큰데, 예전에는 작업이 잘 안되거나 불만족스러우면 어시스트나 문하생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부수거나 했고, 현재는 거기에 더해 욕까지 했다는 증언이 여럿 나왔다. 그런 것에 질려 그만두려는 어시스트 등에게는 "출판사에 못 들어가게 하겠다." 식으로 협박도 일삼았다고 한다.

또한 매니저를 맡고 있는 박무직의 부인 역시 어시스트들이 박무직 화실을 떠나는 여러 원인을 제공했다. 박무직 작가의 아내는 고생하는 어시들 앞에서 남편에게 명품 가방이나 옷을 사달라거나 해외 여행을 시켜달라고 수시로 조르고, 작가도 아닌 입장에서 상관처럼 굴면서 어시들에게 화를 낸다던가 집안일 등 사적인 감정을 어시들에게 푼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여 박무직 작가 이상으로 원성을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박무직 화실 경험자들은 매니저(박무직의 아내)를 화실에서 퇴출시키고, 그녀가 어시스트와 화실의 일에 간섭하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

더구나 박무직 작가의 해명글이나 이와 관련된 미디어스 기사에 아내에게 외제차를 두 대나 사주면서 경제적 여유가 줄어든 것이 어시스트에게 박한 대우를 한 원인 중 하나로 나오고, 어시스트들이 박무직 아내가 기존의 옷과 가방 외에 명품의 관심이 외제차로 옮겨졌고, 평소 그녀가 그런 것을 사 줄 것을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렇게 여러 문제가 불거져 어시스트 등 한국의 만화 지망생들에게 박무직 작가의 인식은 상당히 나빠졌다. 박무직 작가의 인덕이나 대인 관계는 현재 화실에 장기 근속 어시스트가 한 명도 없다는 점에서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되어 언론에 기사가 실렸고, 인터넷 방송에서도 이 일이 언급되었다.
1. 2014년 9월 17일 미디어스에 성상민 만화평론가가 쓴 '그 만화가는 어떻게 '악덕 업주'가 되고 말았는가'
원문기사
2. 2014년 9월 20일 대작스멜22화-대스 헤럴드 트리뷴에도 이 내용이 나온다. 10분 30초 이후부터 박무직 작가 관련 언급이 나온다.
링크는 최신 회차로 연결되니 22화를 찾아가야 한다.

결국 이로 인해 박무직도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에 해당하는 인물이 되었다. 과거 월간 키노 지에서 한국만화 병폐를 그리도 성토하고 인터넷에서 지적했지만 그렇게 잘난척 하던 본인도 갑이 되자 문하생을 저렇게 착취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7~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만화계에서 일어나던 일과 전혀 차이가 없다. 덕분에 2000년 초반까지 인터넷에서 박무직을 까던 만화동호회 사이트 회원들은 이 일을 이야기하며 박무직도 그리도 잘난 척 했는데 정작 자신도 그러한 병폐를 계승했을 뿐, 여태 하던 비난이 그야말로 개소리라고 비아냥을 보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예술계에서 아마추어와 프로를 막론하고 이러한 일은 오프라인과 인터넷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2.9. 왜곡된 역사인식 및 혐한 성향[편집]


박무직의 일본 출세작 겸 대박작 <선 켄 락>에서 불거진 문제. 국내 만화계에서 축출돼 도일한 한의 분출이라고 하면 과장이지만 이 만화의 한국에 대한 묘사가 문제가 되었다. 몇가지 예시를 들자면 4대강 사업은 토건족을 배불리고 나라를 말아먹기 위한 정권의 음모[26] 이며 보수정당 당대표는 사생아를 아이돌로 키워서 강간하는게 꿈인 패륜남인 동시에 재벌 2세는 연예기획사에서 성상납을 받고 한화 김승연을 차용한 듯한 재벌 회장이 맷값폭행을 자행한다. 이게 다 만화 내용이다. 일단 내용상 악의 본거지로 매도되는 한국에 대한 편오나 한국의 기득권층, 한나라당 및 이명박 정부를 향한 증오는 작가 성향도 그렇고 비교적 사실기반 소재활용이니 그렇다 치지만 하지만 3부 들어 "외노자 암살단"이 등장하면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의 묘사차원을 초월한 회피불가능의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이 외노자 암살단의 작중 배경설정 및 정식명칭은 <반 프엉 갱단>으로 반 프엉을 우두머리 삼으며 일본 간사이와 간토를 통일한 야쿠자 백룡구미가 한국본토로 진출하기 앞서 한국 최대조직 선켄락 패밀리의 암살을 의뢰한 선발대. 이들은 전원 동남아, 몽골, 러시아 및 동구권, 남미 등지 주로 개발도상국 외노자 출신이며 자신들을 핍박한 대한민국에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다. 고향이 베트남인 두령 반프옹의 성은 김씨로 태권도 고수인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용사다. 즉 라이따이한이다. 프엉의 부친은 월남전때 벌어진 민간인 학살 등 부조리한 현실에 울분을 가지고 있으며, 전쟁이 끝난 후 한국이 88올림픽을 개최하는 등 발전한 이후 다시 베트남으로 찾아가, 자신이 전쟁통에 지킨 로리를 키잡하고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김 반 프엉이었다.

아버지가 고엽제중독으로 절명하자 프엉은 부친의 고향 한국에 와 외노자 생활을 하다 한국제패를 꿈꾸는 조폭꿈나무 켄을 만나 아치에너미의 구도를 형성한 뒤 3부의 반동인물 겸 半주인공으로 격상되고, 이런 외노암살단의 비극적 진상을 알게 된 선켄락 패밀리의 실세 박태수는 일본인 켄을 대림동 차이나 타운으로 초대하여 그 앞에 한국인 대표 자격으로 엎드려서는 근대 한국에서 발생한 외국인혐오사건, 즉 만보산 사건1931년 화교배척폭동에 관해 그들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2.9.1. 왜곡된 역사인식 및 혐한 성향에 대한 반론[편집]


<선켄락>에 등장한 라이따이한 김반훔(낌반훔)은 외노자 생활중 겪은 차별과 여자친구를 자살로 몰고간 한국인 동료들로 인하여 흑화하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를 갖고있는 외국인들을 모아 외국인 갱단을 결성하며, 선켄락파의 숙적으로 재등장 한다.

이를 알게 된 선켄락 패밀리의 실세 박태수는 과거에 있었던 외국인 혐오사건 및 1931년 화교배척폭동을 언급하면서 선켄락파 두목인 일본인 켄에게 증오는 또다른 증오를 낳는다. 부끄러운 과거를 그들에게 사과하고 앞으로도 잊지 않겠다며 자신의 생각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완결 후기의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은 사과와 용서를 테마로 한 작품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작중에 독립운동가 장지락(김산)의 말과 윤동주의 시를 언급하기도 하며, 작품의 일부 페이지만 보고 혐한이라고 낙인을 찍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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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9 19:35:55에 나무위키 박무직/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싫어하는 사람이 '일반독자'들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원론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성격과 위에서도 언급한 원로작가들의 표절 경력을 비판한 사건 등도 있고 스스로도 비판받을 행위를 자초한 것도 있겠지만 출판사와 작가간의 갈등에서 최일선에서 나서서 활동한 점,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여점 논란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놓고 활동하던 '현역' 작가였다는 점 같은 긍정적인 활동에 소위 '탄압'에 가까운 사안도 있었다. 간만에 나온 스페이스 셰프 시저도 삼대 메이저 만화 출판사가 아닌 씨앤씨미디어라는 마이너 출판사에서 출판했다.[2] 다만 박무직의 경우 까가 많아서 주시당하고 있던 탓이 클 뿐, 일본에서 성인물을 만든 한국 출신 작가는 박무직만이 아니다. 언어/문화/스토리 관련 진입장벽이 낮은 것에 비하면 한국의 자잘한 단편 원고작업에 비해 원고료가 훨씬 세기 때문. 사실 그런 것은 공공연한 비밀에 가까웠기에 애초 성인물 그렸다는 자체로 비난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고고한 투사로 자신을 묘사하며 시대적 상황에 꺾일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을 비난한 것은 박무직 본인이기도 했다.[3] 공모전에 따라서는 신인으로 대상을 한정하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HOTEL이 수상한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은 신인작가를 위한 공모전이 맞다.[4] 재탕문제는 조금 더 까다로운데, 공모전이 출품작에 대한 작가의 권리를 어느 정도로 보장하느냐 따라 다르다. 괜히 대부분의 공모전에서 출품작 권리를 주최측이 가져간다고 명시된게 아니다.[5] 설령 '리뉴얼'이나 '감독판'이라고 한다면 더욱 공모전의 규약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주의가 필요.[6] 이 공모전에 관한 기사를 확인해봐도 분명히 신인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공모전이라고 써있다. 이하 기사 내용 발췌.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은 과학소설, 논픽션, 만화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신인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과학기술부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공모전이다"[7] 신인작가 지원 공모전에 기성작가 이름을 내걸 수 없어서인지, 당시 출판된 수상작품집에도 '만화 부문 수상작 HOTEL, SINCE 2079 _ 박지홍'라고만 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심사위원 이두호 명의로 나온 만화부문 심사평을 봐도 심사 당시에 박무직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처음 대회라서인지 수상작이라고 내세울만한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몇몇 작품은 기존학습지 만화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Hotel:Since 2079'를 수상작으로 뽑은 것은 작품을 준비한 작가를 격려하고 다음에는 더 뛰어난 작품을 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관심과 많은 응모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상작으로 선정한 'Hotel:Since 2079'는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그림체와 밋밋한 이야기 전개로 참신함과 재미를 반감시킨 아쉬움이 있었으나 그 소재가 돋보였다."

실제로는 프로만화가가 만든 스토리인데 "밋밋한 이야기 전개로 참신함과 재미가 반감"되었다고 써있다. 공모전 출품 당시 박무직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증거다.
[8] 한국, 일본 순정만화는 동양인 인물도 서양인처럼 그린다는 주장을 하며 깐 적이 있다. 그림체 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일본만화나 그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만화들의 머리색깔-흑발과 백발의 문제는 테제안티테제의 관계에서 시작해 발전한 부분으로, 이걸 '서양인 흉내'라는 개념으로 보는 건 잘못된 시각이다. 이런 식의 비판은 이원복 뿐만 아니라 탈망가를 주장하는 만화가들이나 독자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이다. 다만 서구적 미의 기준이 식민지배와 대중매체를 통해 세계적으로 퍼진 것은 사실이고, 일본 만화 역시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단순히 머리색의 문제가 아니라 외모의 문제인 것. 그런데 재미있게도 모에한 그림체가 유행하면서 과거의 서구적 외모의 요소가 대부분 사라졌다.[9] 여기에는 표절 논란도 많다. 벨기에 및 유럽 만화 장면을 그대로 베꼈기에 이원복 비판론자들은 일본 만화 표절을 그리도 비난하던 이원복은 정작 유럽 만화를 베끼냐고 까댔다. 이에 이원복은 영향을 인정하긴 했어도 표절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 말도 일본 만화에 대한 표절 논란에서 종종 보이던 것이라 내로남불이기에 더 까였다.[10]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지속적으로 참여한 현역작가. 발단이 된 글도 그렇지만 다른 작가들의 경우 본인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거나 작품활동이 바빠서라도 적극적으로 독자들과 함께하는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 편이었다.[11] 이 주장은 <NEW 무일푼 만화교실>의 부록에도 등장한다. 우리나라 만화가 가진 특질은 서구권만화와 달라 그들처럼 comics로 번역할 수는 없고(근데 일본의 그 '망가'도 서양에서 manga로 부르기도 하지만 Japanese comics라고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우리나라 만화의 직접적인 뿌리격인 일본만화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차라리 manga라고 부르는게 낫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의 골자였다.[12] 한국만화의 뿌리가 일본만화라는 주장 자체는 나올 수도 있다. 국내주류 만화계라는 조건을 붙인다면. 기본적으로 우리가 익숙한 만화의 페이지 연출, 컷 연출, 기호 표현, 내러티브 전개 방식의 대부분은 그 방식 자체의 기원은 어찌됐든 한국은 일본만화에서 직접적으로 영향 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주류를 이루는 만화잡지 연재-단행본 형태의 만화 시스템에 국한된 것으로 서양 만화나 흔히 말하는 카툰 쪽에 영향받은 영역을 싹 무시하는 형태다. 매체의 한계로 시장이 크지 않았을 뿐이지 개별 작품으로 따지면 사회적 영향은 무시못할 정도로 큰게 시사만화 같은 장르다. 이들은 피너츠나 신문삽화, 소설 삽화 등의 서양매체에서 영향받은 것이 더 많다. 또한 기존에도 일부는 영향받더라도 독자적이거나 기존에 내려오던 만화가 아닌 회화의 기법을 도입하는 등의 시도가 없던 것도 아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박무직은 이런 것들을 싸그리 무시한 셈. 그리고 무엇보다 설령 한국의 만화가 100% 일본만화의 계보였다고 하더라도 만화(애초에 망가의 직역이기도 하다)를 manga로 부를 이유는 없다. 미국을 국내에서 'United states'나 'America'로 고쳐 쓸 이유가 없듯이 말이다. 애초에 서양에서 manga란 단어를 쓰는 이유는 자국의 comics와 구분해서 쓸 단어가 필요할 때 원어를 음차한 것 뿐이다.[13] 74~76년에 김수정이 그린 만화를 보면 그림체도 전혀 다르고 야구 및 여러 스포츠 만화를 그렸는데 김수정 본인도 이건 내 작품이 아니다(억지로 그려야하던 표절작들)라며 79년에 그린 1남 4녀 막순이가 진짜 내 첫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14] 이해가 안간다면 합동출판사 항목을 보자. 당시 한국만화계를 움켜쥔 대기업이란 곳이 표절을 명령해야 하던 시대이다. 여기 맞서던 많은 만화가들이 고생해야 했고 아예 만화계를 떠나기도 했다.[15] 하지만 이후 픽시브 백과사전의 박무직 문서에 따르면 사진 합성 기법을 사용한다고 서술되었는데, 이게 사실이면 본인이 했던 말이 자승자박이 된 셈이다.[16] 전통적인 회화 기준에서의 '잘'이다.[17] 박무직 또한 전통적인 명랑만화에 대한 철저한 오마주로 <수리수리 맛소금> 등 명랑만화를 그린 적이 있는데, 이런 명랑만화 작품들의 경우 '제대로 된 연출'을 제거하고 단순히 '그림 자체만' 본다면, 섣불리 일반인 수준의 작가라 평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만화의 개념은 배치방법 즉 연출의 문제이고, 박무직 또한 작가인 동시에 만화교육자로서 그걸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다.[18] 동양회화는 전통적인 서양회화와 달리 실제보다는 개념을 표현하는데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에 '문자'에 가깝다.[19] 또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회화적인 데생력에 치중한 작가의 작품이 그림은 잘그리는데 어색하다 거나 스토리가 잘 짜여 있더라도 이상하게 재미없다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원론과는 별개로 회화적 데생의 중요성은 작화에 대한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것이지 정지된 그림으로 순간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만화에선 절대적 요소가 아니기 때문.[20] 장편만화는 예술이기 이전에 이미 노동의 영역이다. 거기에 연재라는 시스템 아래에 있다면 매컷 주름을 그릴때마다 철저하게 사진을 참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이다. 사진을 참조하는 편인 미국의 히어로코믹스 작화가들도 매컷마다 그러지는 않으며, 관련학과에서 회화데생의 기본교재로 자주 삼는편인 앤드류 루미스나 잭 햄의 책을 보더라도 웬만한 주름 패턴에 대해서는 외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21] 즉 원론적 영역을 다소 벗어난 거다. 이걸 원론적이라고 하면 이를 쓰지 않으면 원론을 지키지 않는단 소리가 된다. 즉 기교에 일종일 뿐이지 원론적 접근은 아니다.[22] 당연한 소리지만 학습을 위한 서적은 넓은 영역을 기초적인 것위주로 소개하거나 특정영역만 다루는 대신 세부적인 것까지다룬다. 입문서라면 당연히 전자를 택하는게 당연한 것인데 영역은 넓게 다루면서 정작 특정요소를 너무 강조해 버렸다. 그것도 '이래야 한다'는 방향으로.[23] 만화테크닉과 관련한 교육을 할 때에 나타나는 박무직의 이런 경직된 태도 덕에, 그가 질색팔색을 하는 것처럼 잘못 알려져있는 '사진활용'을 예로 들자면 이렇다. 박무직은 히로스에 료코의 엄청난 팬인데, 만화 내용 중에 배경에 히로스에 료코의 사진을 붙여놓은 것들이 있었다. 이것 역시 박무직이 지망생들을 가르칠 때 하는 원론적은 이야기로 따지자면, '히로스에 료코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박무직 본인이 직접 그려야하는 것'인 것. 하지만 박무직 본인은 그렇게 하지않는다. 원론적인 것이 어쨌건간에 단순한 이스터에그로 '료코'를 나타내는 것에는 jpg를 축소해서 붙여넣는게 더 '효율'적임을 스스로도 알기 때문이다. (※ 오해가 없도록 못 박아두자면 히로스에 료코의 사진은 거의 썸내일 수준으로 축소한 상태였으며 팬이 아니라면 누군지 알아보기 힘든 사이즈였다. 초상권은 '그 사람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발생하는 것으로, 이 경우 박무직은 히로스에 료코의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은 것이다.)[24] 보통 작법서 수준이란게 실전적이기 보단 원론적이긴 하지만, 박무직의 작법서의 경우 원론적인 설명이 너무 자세해서 더 독이 된 케이스.[25] 즉 스스로도 굳이 안 지킬 때가 있기는 하다는 이야기이다.[26] 여기서 작가 본인의 오너캐격 신캐릭터를 주역으로 출연시키는 현시욕구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