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재판/새누리당 공천개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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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소 및 공판준비절차
1.2. 2018년 4월 17일
1.3. 2018년 4월 19일 - 증인: 신동철
1.4. 2018년 4월 27일 - 증인: 원 모·박 모
1.5. 2018년 5월 3일 - 증인: 이 모·이상일
1.6. 2018년 5월 10일 - 증인: 현기환·김재원
1.7. 2018년 5월 17일 - 증인: 권 모·이병호·이헌수·박준우·박 모
1.8. 2018년 5월 24일 - 증인: 정호성
1.9. 2018년 6월 14일 - 결심: 징역 3년 구형
1.10. 2018년 7월 3일 - 증인: 신동철·박 모
1.11. 2018년 7월 20일 - 선고: 징역 2년
2.1. 2018년 10월 5일
2.2. 2018년 10월 19일 - 결심: 징역 3년 구형
2.3. 2018년 11월 21일 - 선고: 징역 2년
2.4. 2018년 11월 28일 - 징역 2년 확정


1. 제1심 서울중앙지방법원[편집]




1.1. 기소 및 공판준비절차[편집]


2018년 2월 1일, 검찰은 "박근혜2015년 11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제20대 총선에서 친박 정치인을 대거 당선시킬 목적에서 선거운동 기획·여론조사·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에 각종 자료 전달·친박 후보자들의 출마 지역구 선정 및 경선유세 관여 등을 했다"는 취지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국정원 특수활동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어 진행중인 재판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2부 (부장판사 성창호)에 사건을 배당하였다. 이에 병합 심리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제57조의6(공무원 등의 당내경선운동 금지) ②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당내경선에서 경선운동을 할 수 없다.

제86조(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금지) ① 공무원(중략)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2.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거나 그 기획의 실시에 관여하는 행위

3. 정당 또는 후보자에 대한 선거권자의 지지도를 조사하거나 이를 발표하는 행위

제255조(부정선거운동죄)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0. 제86조제1항 제1호부터 제3호까지·제2항 또는 제5항을 위반한 사람 또는 같은 조 제6항을 위반한 행위를 한 사람

③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1. 제57조의6제2항을 위반하여 경선운동을 한 사람

2018년 2월 19일, 재판부는 박근혜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변론할 국선변호인으로 국선전담변호사인 장지혜 변호사(36·여·사법연수원 44회)를 선임했다.뉴스1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국선변호인인 장지혜 변호사는 "공소사실에 대해 피고인의 입장과 증거에 관해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면서, "기본적으로 '검찰의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행위를 지시한 적 없고 보고 받거나 승인한 바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근혜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견을 정리해서 다음 기일에 말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박근혜현기환으로부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지시하고 보고를 받아 승인했는지 불명확하고 '친박 리스트'의 대상자 역시 특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2. 2018년 4월 17일[편집]


공직선거법 제270조의2(피고인의 출정) ① 선거범에 관한 재판에서 피고인이 공시송달에 의하지 아니한 적법한 소환을 받고서도 공판기일에 출석하지 아니한 때에는 다시 기일을 정하여야 한다.

②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다시 정한 기일 또는 그 후에 열린 공판기일에 출석하지 아니한 때에는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2018년 4월 17일에는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의 첫 공판기일이 열렸지만, 박근혜의 불출석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날 재판은 5분 만에 종료됐고, 형식상 기일 연기로 처리됐다.


1.3. 2018년 4월 19일 - 증인: 신동철[편집]


2018년 4월 19일 공판기일에는 신동철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박근혜는 이날 공판에도 출석하지 않아 궐석재판이 시작됐다. 한편, 신동철은 이날 증언해야 할 사안과 관련해 남재준·이병기·이병호·이헌수·이원종의 재판 4월 5일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적이 있다.

신동철은 이날 ▲청와대의 '친박 공천 여론조사' 및 선거 전략 수립은 박근혜의 지시가 있어야 가능한 사안이었고 ▲박근혜여론조사 결과·선거전략 자료 등을 수시로 보고받았으며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박근혜와 자주 전화통화를 하면서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어 ▲현기환·최경환·윤상현이 논의해 수립된 '친박 리스트'도 정호성을 거쳐 박근혜에게 보고했고 ▲이한구는 박근혜의 지명을 거쳐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근혜가 '유승민 대항마'로 지명됐던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에 대해 연설을 잘 못한다"고 지적했고 ▲박근혜이재만의 연설문을 아예 작성해서 정무수석실을 거쳐 보냈던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이날 신동철의 증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현기환박근혜로부터 '이재만의 연설문'을 받은 뒤 '이거 봐라, 할매직접 연설문 보냈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신동철은 그 연설문의 작성자를 "정호성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박근혜국선변호인은 ▲정치권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의 당연한 업무이고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 수립을 위한 것이며 ▲박근혜대구 서문시장 방문 당시 정치인을 아무도 동행시키지 않는 등 자신의 행보와 관련된 정치적 억측을 금기시 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박근혜는 청와대 참모들의 총선 출마 등 정치 개입으로 보일 여지가 있는 행위를 경계했고 ▲신동철 자신도 총선에 출마하려다가 포기한 적이 있었으며 ▲여론조사 실무를 맡았던 원 모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은 "박근혜가 지시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강조했다.


1.4. 2018년 4월 27일 - 증인: 원 모·박 모[편집]


2018년 4월 27일 공판기일에는 원 모·박 모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원 모는 ▲진박 여론조사는 정책·국정현안 여론조사 진행에 '끼워 넣기' 방식으로 넣어 진행했고 ▲보안 유지를 위해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했으며 ▲이상일은 비용과 관련해 "전임 정부들[1]도 '내곡동 돈'으로 여론조사 비용을 해결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김재원에게 "'여론조사 미납 비용을 국가정보원과 협의해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고 보고하자 ▲김재원국가정보원과 통화한 뒤 "국가정보원이 주기는 할 건데 '5억 원만 준다'고 한다"고 말했으며 ▲국가정보원으로부터 5억 원을 받기 위해 동행했을 때, 너무 은밀하게 만났기 때문에 "떳떳하지 않은 일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떨렸다는 증언도 남겼다.

박 모는 ▲현기환은 "대통령의 뜻"이라면서 총선 개입 관련 업무를 지시했고 ▲현기환은 '새누리당 총선 개입' 관련 보고서에 대해 어딘가에 전화한 뒤 "대통령께 올려드리라"고 지시했으며 ▲일부 문건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OK'라고 하니 그 문건 내용대로 진행하면 된다"고 지시한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1.5. 2018년 5월 3일 - 증인: 이 모·이상일[편집]


2018년 5월 3일에는 이 모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과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모는 ▲여론조사정무수석실 내 중요한 사항이라 정무수석에게 보고하지 않고 처리할 수 없는 사안이고 ▲여론조사를 너무 자주 했던 것에 대해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으며 ▲신동철은 정무비서관 사퇴 직후 여론조사 미납대금에 대해 "국가정보원의 돈을 받아 해결할 것이니 알고만 있으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2016년 8월 새로 정무수석으로 부임한 김재원에게 여론조사 미납대금 내역을 보고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북악스카이웨이에서 국가정보원 관계자로부터 5억 원을 받아 미납대금을 결제했으며 ▲국가정보원영수증을 써 줬다고 덧붙였다.

이상일은▲2015년 11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의뢰를 총 110여 건·12억 원 상당 총선 관련 여론조사를 진행했고 ▲국가정보원의 자금 5억 원을 포함해 8억 원만 지급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어 ▲남은 3억여 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발생 후 변제받기를 포기했고 ▲초반 비용 3억 원은 "'정책 현안 여론조사'에 '총선 관련 여론조사'를 끼워 넣는 방식을 사용해서 허위 세금계산서를 받은 뒤 비용 일부를 돌려받는 형식"으로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비용 부담 때문에 여론조사 진행을 더 하지 않으려고 하자, 신동철은 저에게 "무조건 해야 한다. 꼭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너와 나의 인간관계는 끝"이라고 말했으며 ▲"전임 정부들은 '내곡동 돈'으로 (비용을) 해결하기도 했다"고 말한 것은 맞지만, 예민하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1.6. 2018년 5월 10일 - 증인: 현기환·김재원[편집]


2018년 5월 10일 공판기일에는 현기환·김재원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현기환은 ▲박근혜에게 제20대 총선 관련 구체적 보고를 하거나 여론조사 등 구체적 사항에 대한 지시를 받은 적이 없고 ▲박근혜가 '유승민 대항마' 이재만의 연설문을 보낸 적도 없으며 ▲박근혜를 지칭해서 할매라고 표현한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 현기환은 '할매'라는 호칭에 대해 "박근혜에게 애정이 있는 일부 언론인이 사석에서 박근혜를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김재원은 이날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취임 후인 2016년 8월 "총선 관련 여론조사 비용 12억 원이 밀려있는데, 국가정보원의 자금으로 결제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았고 ▲이헌수으로부터 "사정상 5억 원만 주기로 했고, 돈은 마련돼 있다"고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이 모 당시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과 이헌수를 연결시켜 줬고 ▲한참 뒤 이 모로부터 "국가정보원 사람을 만나서 차량 안에서 돈을 전달 받았고, 영수증을 써 줬다"고 보고 받았으며 ▲박근혜에게는 보고한 적도 없고 보고할 사안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1.7. 2018년 5월 17일 - 증인: 권 모·이병호·이헌수·박준우·박 모[편집]


2018년 5월 17일 공판기일에는 국가정보원 직원 권 모 씨·이병호·이헌수·박준우·박 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은 이날 현기환·최경환·윤상현의 '김성회 출마 포기 종용' 관련 전화통화 녹취록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박근혜국선변호인은 "공소사실과 무관한 내용이고, 검찰이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도 "검찰이 결심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공판기일에 임박해 추가 증거신청을 했고, 미리 입증계획과 입증취지도 제출하지도 않았다"면서 불편해 했다. 검찰은 "미리 '특정 의원들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언급하지 않겠지만 증거로는 제출하겠다'고 밝혔던 적이 있다"고 반박했다.

권 모는 2016년 8월 이헌수와 함께 북악스카이웨이에 가서 청와대 정무수석실 관계자들에게 여론조사 비용 5억 원을 전달한 적이 있다. 권 모는 ▲이헌수가 곤혹스럽고 난처한 얼굴로 청와대가 '사업비가 부족하다'면서 '돈을 지원해 달라'고 한다"고 말한 적이 있고 ▲이헌수·청와대 정무수석실과의 협의를 거쳐 북악스카이웨이에서 5억 원을 전달했으며 ▲5억 원을 주고받은 명목은 모른다고 증언했다.

이병호는 ▲이헌수의 보고를 듣고 수용했을 뿐이라서 '20대 총선 여론조사 비용'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고 ▲이헌수로부터 '여론조사 내역'에 대해 보고를 받은 적이 없으며 ▲"이병호에게 '여론조사 내역'을 보고했다"는 이헌수의 주장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증언했다. 반면, 이헌수는 "신동철로부터 '여론조사 비용 요청'과 여론조사 내역 자료를 받은 뒤, 이병호에게 보고했고, 이병호는 '5억 원만 주라'고 지시했다"고 반박했다.

박준우는 ▲6.13 지방선거 당시 김기춘은 "체크해 보라"라는 지시를 했고 ▲그 말은 "여론조사를 하라"는 의미이며 ▲실제 여론조사를 한 곳은 새누리당여의도연구소였다고 증언했다. 이어 ▲박근혜는 대체로 전화로 업무 지시를 했고 ▲김기춘박근혜와 전화통화를 하던 모습을 자주 봤으며 ▲정무수석비서관 재직 중 박근혜와 대면은 2회 정도 했고, 대부분 전화로 업무 지시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박 모는 "현기환의 지시를 받고, 내용을 잘 모른 채 이한구와 만날 약속 장소를 예약했으며, 이한구에게 현기환이 준 서류를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1.8. 2018년 5월 24일 - 증인: 정호성[편집]


2018년 5월 24일 공판기일에는 정호성이 '친박 여론조사' 관련 증인으로 출석했다. 원래 최경환도 증인으로 출석해야 했지만, 최경환자신의 재판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최경환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관련 증인으로 출석하는 6월 1일에 함께 신문하기로 했고, 불출석에 대비해 구인장을 발부했다.

정호성은 이날 박근혜의 '총선용 불법 친박 여론조사 진행'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정호성은 ▲박근혜는 평소 그렇게 강하게 표현을 하는 성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박근혜유승민에 대해 '배신의 정치'를 언급했을 때에는 깜짝 놀랐고 ▲박근혜현기환에게 '이재만의 연설문'을 줬다면, 그 연설문도 제가 썼어야 하는데, 저는 쓴 적이 없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며 ▲정무수석실에서 '총선 공천' 관련 여론조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각종 국정현안 등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서 대통령에게 그 결과를 보고하는 것은 역대 정권의 정무수석비서관의 역할 중 하나라고 증언했다.


1.9. 2018년 6월 14일 - 결심: 징역 3년 구형[편집]


또한, '친박 공천 목적 여론조사 진행'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박근혜국선변호인은 "박근혜는 불법적인 공천 개입 관련 지시를 한 적이 없고, 대통령정당 활동이 가능한 정무직 공무원"이라는 취지로 변론을 했다.


1.10. 2018년 7월 3일 - 증인: 신동철·박 모[편집]


2018년 6월 25일, 검찰은 변론재개를 신청했다. 6월 27일에는 재판부가 검찰의 변론재개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김무성의 보좌관을 지낸 장성철이 자신의 책 보수의 민낯에서 주장한 '새누리당 살생부'와 관련해 신동철·박 모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기로 결정됐다.뉴스1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7월 3일 공판기일에서는 보수의 민낯이 거론되지 않았고, 이전 공판에서 취급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차원의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신동철은 이날 ▲김무성은 "박근혜레임덕이 아니었기 때문에 박근혜의 공천 개입을 최대한 막으려고 했"고 ▲청와대 정무수석실김무성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막기 위해 ARS나 연령별 여론조사 방식의 공천 룰을 검토했으며 ▲관련 자료는 정호성을 거쳐 친전으로 보고되는 등 박근혜도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또한, 박 모는 ▲현기환은 100% 국민참여경선을 주장하던 김무성과 협상을 진행해 "100% 국민참여경선은 도입하지 않되, 전화 여론조사 방식 국민참여경선을 적극 실시하자"고 정리한 것으로 들었고 ▲비박 현역 의원들에 대해서는 "의정활동이 불량하다"는 등 이유를 들어 전략공천 방식으로 배제하려고 했으며 ▲이한구에게 공천 룰 자료를 전달한 이유는 "박근혜가 임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친박에 유리한 공천 방식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고 증언했다.


1.11. 2018년 7월 20일 - 선고: 징역 2년[편집]


2018년 7월 17일, 재판부는 20일로 예정된 선고 공판을 생중계하기로 결정했다. 18일에는 417호 대법정 기준으로 일반인에게 30장의 방청권을 배분해 추첨을 진행했지만, 24명만 응모했다.

2018년 7월 20일 진행된 선고기일에서, 재판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 전부 유죄를 선고하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같이 진행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뇌물수수 재판에서는 징역 6년 형·추징금 33억 원 및 가납을 선고했다.

판결문은 이곳을 참조할 것.


2. 항소심 서울고등법원[편집]



2018년 7월 24일, 검찰은 2018고합119 사건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다. 검찰은 "범행이 선거일에 임박해 일어난 점이 가중요소로 고려돼야 하지만, 1심에서 이런 판단이 누락됐다"며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8월 9일, 서울고등법원은 형사1부(부장판사 김인겸)에 사건을 배당했고, 재판부는 박근혜국선변호인으로 한문규(39·변시 1기) 변호사를 선임했다.


2.1. 2018년 10월 5일[편집]


2018년 10월 5일 진행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첫 공판기일은 박근혜의 불출석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박근혜는 "건강상 이유로 출석이 어렵다"는 취지로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했다.연합뉴스


2.2. 2018년 10월 19일 - 결심: 징역 3년 구형[편집]


2018년 10월 19일 진행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첫 공판기일 겸 결심에서, 검찰박근혜에 징역 3년 형을 구형했다.뉴시스


2.3. 2018년 11월 21일 - 선고: 징역 2년[편집]


2018년 11월 2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는 박근혜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징역 2년 형을 유지했다.


2.4. 2018년 11월 28일 - 징역 2년 확정[편집]


박근혜상고 제기 기한인 11월 28일까지 상고하지 않았다. 법원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기 때문에, 검찰은 "검찰은 양형 부당을 이유로 상고를 제기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로 인해 상고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법원 2005. 9. 15., 선고, 2005도1952, 판결

이로써 재판이 종료되었고, 박근혜공직선거법 위반 유죄가 확정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징역 2년형을 받게 되었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의 구속영장 효력이 2019년 4월 16일 부로 만료되었지만, 만료 즉시 '기결수' 신분으로 전환되어 계속 수감되어 구속 상태로 나머지 재판을 받게 되었다. 형집행기간은 2019년 4월 17일부터 2021년 4월 16일까지이다.

[1] 원 모는 "이상일은 '전임 정부들'이라는 복수형 표현을 썼다"고 증언했다. 성창호 부장판사도 "이상일이 '전임 정부들'이라고 말했느냐"고 다시 확인 차원에서 물었지만, 원 모는 "이상일이 복수형으로 말했던 것은 맞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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