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1세(그라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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أبو عبد الله محمد بن يوسف بن نصر
1195년~1273년 (향년 78세)
1232년~1273년
1. 개요
2. 생애
2.1. 즉위 전
2.2. 즉위
2.3. 카스티야의 봉신
2.4. 카스티야와의 전쟁
2.5. 내전과 죽음



1. 개요[편집]


그라나다 나스르 왕조의 창건자. 13세기 초엽 안달루스의 혼란을 틈타 종교를 막론하고 동맹과 배반을 반복하는 뛰어난 처세술로 그라나다 일대를 장악, 결국 안달루스의 마지막 무슬림 국가로 남았다.


2. 생애[편집]



2.1. 즉위 전[편집]


12세기 말부터 안달루스를 통치하던 무와히드 왕조는 1212년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의 참패 이후 쇠퇴하였다. 특히 내전이 겹치며 그들은 안달루스에 신경쓰지 못하였고, 그틈에 1228년부터 안달루스는 사라고사 아미르 가문 출신인 무함마드 이븐 유수프 (이븐 후드)가 통치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1231년 헤레즈 전투에서 카스티야 군에 대패하며 쇠퇴하였고, 그 틈에 아랍 혈통의 무함마드 이븐 유수프 (이븐 나스르 / 이븐 알 아흐마르)가 고향 아르주나를 기반으로 자립하였다. (1232년 7월)


2.2. 즉위[편집]


무함마드는 이븐 후드의 적들과 연대하여 같은해 인근의 큰 도시인 하엔을 수중에 넣었고, 일시적이긴 하지만 코르도바도 얻었다. 1234년에는 일시적으로 세비야를 얻었지만 한 달에 그쳤다. 두 도시 모두 이븐 후드의 통치로 돌아갔다. 결국 같은해 무함마드는 하엔 일대의 통치를 대가로 이븐 후드에게 재차 충성을 맹세하였다. 그러나 1236년 카스티야 군이 남하하자 무함마드는 그들의 코르도바 점령을 도우며 이븐 후드를 배신하였다.

1237년 5월, 무함마드는 그라나다 유지들의 초청을 받아 지배자가 되었고 곧 자신의 새 수도로 삼았다. 그리고 1238년 이븐 후드가 암살되자 안달루스의 술탄을 칭하였다. (무함마드 1세) 그는 무와히드 조를 본따 스스로 칼리파인양 '알 갈리브 빌라'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같은해 알메리아, 이듬해에 말라가를 얻으며 나스르 왕조의 영토가 확립되었다. 하지만 카스티야의 침공에 1244년 첫 수도 아르주나를 잃었고 이듬해 하엔이 포위되었다.


2.3. 카스티야의 봉신[편집]


격렬한 전투 끝에 패색이 짙어지자, 1246년 2월 무함마드는 하엔을 넘겨주며 카스티야의 봉신이 되었다. 그는 1248년 카스티야의 세비야 정복을 돕는 등 충실한 모습을 보였고, 그 대가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1254년 카스티야 국왕 페르난도 3세가 사망하고 알폰소 10세가 즉위하자 그 궁정에 출두하기도 했다.1262년 니에블라를 점령한 알폰소 10세는 그해 5월 하엔에서 무함마드를 소환해 마그레브와의 연결 항구인 알헤시라스와 타리파 할양을 명하였다.

비록 구두로 승복하긴 했지만 무함마드는 각종 핑계를 대며 이행을 지연시켰고, 마그레브의 마린 왕조와 연락하여 2천여 병력을 지원받았다. 그리고 1264년, 무함마드는 카스티야와의 휴전 연장을 논의하러 세비야로 향하였다. 알폰소 10세는 그에게 옛 아바드 왕궁을 내주었는데, 밤새 카스티야 군대가 궁전을 둘러싸기 시작하였다. 이를 함정이라 여긴 무함마드는 친위대에 출격을 명하고 황급히 그라나다로 돌아갔다.


2.4. 카스티야와의 전쟁[편집]


알폰소는 이 조치가 기독교도들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였다고 해명하였지만 이미 분노한 무함마드는 국경 도시들에 전쟁 준비를 명하고 튀니스 하프스 왕조의 칼리파 알 무스탄시르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1264년 봄, 무함마드는 카스티야를 침공하였다. 동시에 추방과 차별을 겪던 무데하르 (카스티야의 무슬림들) 역시 사전 협의대로 봉기하였고 무함마드는 수월히 시도니아, 헤레즈, 무르시아 등지를 점령하였다.

하지만 알폰소는 아라곤의 도움으로 반격에 나섰고, 실지를 수복한 후 1265년 그라나다를 침공하였다. 결국 무함마드는 협상에 나서 재차 카스티야에 복속하였다. 연공은 이전보다 훨씬 증가한 25만 마라베디스로 증액되었다. 또한 카스티야의 무슬림 추방이 가속화되었는데, 이들이 그라나다로 모여들며 나스르 왕조의 인구가 증가하긴 했다.


2.5. 내전과 죽음[편집]


1266년에는 말라가의 바누 아쉬퀼라가 반기를 들고 알폰소의 도움을 청하며 재차 위기가 찾아왔다. 무함마드는 원군으로 파견된 카스티야 사령관 누뇨 곤잘레즈를 오히려 알폰소에 반란을 일으키도록 변심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다만 카스티야, 그라나다 양측 모두의 내전이 계속되던 와중인 1273년 무함마드는 낙마 사고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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