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양)/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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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계보


1. 개요[편집]


양무제 소연(蕭衍)의 혈통과 그에 관한 논쟁을 정리한 문서.

정사인 《양서》(梁書)에서는 양무제 소연을 전한의 상국(相國) 소하(蕭何)의 후예라 명시하고 있으나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에 일어난 논쟁으로 현재로는 혈통이 거짓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2. 계보[편집]



파일:古聖賢像傳略蕭何.jpg

고성현상전략 (古聖賢像傳略, 공연경 作)
생몰
? ~ 기원전 193년 8월 16일
요사렴의 《양서》에서 명시한 무제 소연의 시조는 전한의 상국 소하로 《양서》 <무제 본기> 상(武帝本紀上)에서는

한(漢) 상국(相國) 소하(何)의 후예이다.

(漢相國何之後也)

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한서》(漢書) <소하전> (蕭何傳)에 따르면 소하의 가계는 서한때도 수없이 단절되었는데 당시 황제가 대를 이으려고 조서를 내려 후사를 찾은 것이 무려 4번이나 되었고, 이마저도 왕망이 패망할 당시에 모두 대가 끊겼다.
소하(蕭何)
소록(蕭祿)
소연(蕭延)

소유(蕭遺)
소칙(蕭則)
소가(蕭嘉)
소표(蕭彪)

소승(蕭勝)
소장(蕭章)
소호(蕭皓)
소앙(蕭仰)
소망지(蕭望之)
소육(蕭育)
소함(蕭咸)
소유(蕭由)
《양서》에서 명시한 난릉 소씨(蘭陵 蕭氏)는 다음과 같다. 소하의 아들 소연(蕭延)과 손자 소유(蕭遺), 소가(蕭嘉) 그리고 증손 소승(蕭勝)은 《한서》에서 기록된 인물로 소연의 아들 중 소표(蕭彪)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끝내 모두 대가 끊기게 되었다.[1]

문제는 소표가 정사서 《한서》가 아닌 《양서》나 《신당서》(新唐書) 등에만 언급된다는 것인데 소망지(蕭望之) 대에 이르러서는 부친이 언급되지 않은 당대의 이름이 있었던 유학자 소망지를 소앙(蕭仰)의 아들로 삼아 강제로 난릉 소씨의 계보에 편입시키기도 했다.
望之八子,至大官者育、咸、由。
소망지는 아들이 8명이 있었는데,이중에 이르러 관직에 오른 이는 소육(育), 소함(咸), 소유(由)였다.
위는 <소망지 열전>에서 언급된 기록이다. 소연의 가계는 소망지를 이어 소육의 가계로 내려오는데 그의 아들인 어사중승(御史中丞) 소소(蕭紹)는 《한서》에 언급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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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후한이 들어선 후 다시 소하의 후손을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