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애들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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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의 공주. 조지 3세의 7남 케임브리지 공작 아돌푸스 왕자와 헤센카셀의 아우구스테 공녀의 딸로, 조지 5세의 왕비인 테크의 메리의 어머니이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와 조지 6세의 외할머니이다.
2. 작위[편집]
- 케임브리지의 메리 애들레이드 공녀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Mary Adelaide of Cambridge (1833년 11월 27일 ~ 1866년 6월 12일)
- 테크 공비 전하 또는 메리 애들레이드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of Teck or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Mary Adelaide (1866년 6월 12일 ~ 1871년 12월 16일)
- 테크 공작부인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Teck (1871년 12월 16일 ~ 1897년 10월 27일)
3. 생애[편집]
3.1. 어린 시절[편집]
1833년 11월 27일 하노버에서 케임브리지 공작 아돌푸스 왕자와 헤센카셀의 아우구스테 공녀의 1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아버지 아돌푸스 왕자는 조지 3세의 7남으로 영국의 왕자였고, 메리 애들레이드 또한 조지 3세의 친손녀로서 전하(Her Royal Highness) 경칭과 공주(Princess) 작위를 받을 수 있었다. 친가 쪽으로는 웨일스의 샬럿 공녀, 빅토리아 여왕과 친사촌이고, 외가 쪽으로는 헤센카셀의 루이제와 외사촌이다.
1834년 1월 9일 하노버의 케임브리지 하우스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큰아버지 윌리엄 4세와 큰어머니 애들레이드 왕비 등이 대부모가 되었다. 이름은 고모 글로스터와 에든버러 공작부인 메리 공주[1] 와 큰어머니 애들레이드 왕비로부터 따와 '메리 애들레이드 윌헬미나 엘리자베스'로 지어졌다.
어린 시절은 대부분 하노버에서 보냈다. 1837년 큰아버지 윌리엄 4세가 사망하여 사촌언니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였는데, 당시 하노버 왕국은 살리카법을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왕위 승계를 금지했다. 이에 영국과 하노버 왕국 간의 동군연합이 해제되었고, 이때 메리 애들레이드도 영국으로 돌아왔다.
3.2. 결혼[편집]
굉장히 뚱뚱해서 '팻 메리(Fat Mary)'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었던 메리 애들레이드는 서른 살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했다. 또 그녀는 영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시집 가는 것을 원치 않아서 결혼을 계속 미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공주로서 메리 애들레이드는 굉장히 매력적인 신붓감이었는데, 나폴레옹 3세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또한 그녀의 신랑감으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사촌언니 빅토리아 여왕은 노처녀였던 메리 애들레이드를 안타깝게 여겨서 여러 남자들을 이어주려 했다.
1865년 에드워드 왕세자와 알렉산드라 왕세자비는 오스트리아를 순방하던 중 젊고 잘생긴 테크의 프란츠를 보고 메리 애들레이드에게 소개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테크의 프란츠는 뷔르템베르크 왕가 출신으로[2] , 귀천상혼 가문이라 왕위 계승권도 없고 메리 애들레이드에 비해 신분은 낮았지만, 적어도 왕족의 혈통이었기 때문에 노처녀인 메리 애들레이드와 결혼하기에 적합했다.
1866년 에드워드 왕세자는 테크의 프란츠를 공식적으로 영국에 초대했고, 프란츠와 메리 애들레이드는 만난 지 한 달 뒤인 3월 7일에 약혼하였다. 두 사람은 1866년 6월 12일 세인트 앤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비록 두 사람은 금전적으로 어렵기도 했지만 슬하에 3남 1녀를 낳으며 대체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
수입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메리 애들레이드는 파티를 열고 비싼 음식을 먹는 등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다. 결국 1883년 빚을 줄이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을 떠돌며 지내야 했다.
3.3. 말년과 사망[편집]
1885년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메리 애들레이드는 여러 자선 사업을 지원했다. 그러던 중 영국인 손자며느리를 들이고 싶어했던 빅토리아 여왕의 뜻에 따라 딸 메리 공주가 앨버트 빅터 왕세손과 약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앨버트 빅터 왕세손은 6주 뒤에 갑작스럽게 사망하였고, 테크의 메리는 앨버트 빅터의 남동생인 요크 공작 조지 왕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딸이 웨일스 공비가 되는 것을 보기도 전에, 1897년 10월 27일 응급 수술을 받은 후 사망했다. 유해는 윈저의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 매장되었다.
4. 가족관계[편집]
4.1. 조상[편집]
4.2. 자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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