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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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348호

349호

350호
봉화 태백산사고지
남원 만복사지
경주 구정동 고분군
파일:남원_만복사지_전경3_(촬영년도___2015년) 문화재청.jpg

1. 개요
2. 역사
3. 가람배치
4. 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
5. 남원 만복사지 석조대좌
6. 남원 만복사지 당간지주
7. 남원 만복사지 석조여래입상



1. 개요[편집]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절터다. 남원 시내와 신정동 남원역 사이에 있다.

김시습의 한문소설집 금오신화에 있는 소설 중 하나인 만복사저포기의 실제 배경이다.


2. 역사[편집]


자세한 축조 년도는 전해지지 않지만, 고려 문종 시기(1046년~1083년)에 지어진 절로 추정된다.

이 당시 고려는 한창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시기였기에 만복사 역시 거대한 규모로 축조되었으며, 5층으로 지어진 법당과 2층으로 지어진 법당등 다층 구조의 법당이 존재하고 그 안에 높이 35척(10m)의 불상이 안치되는 등 개경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지어졌음에도 당시 전성 가도를 달리던 고려의 불교 문화를 여과없이 보여주던 거대 사찰이었다.

조선 시대의 백자도 출토되는 것을 볼때 몽고의 침략도 견뎌낸 것으로 추정되지만,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이 함락됐을 때 일본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다고 전해진다.[1]


3. 가람배치[편집]


파일: 만복사 가람배치.jpg

절의 전체적인 부분을 완전히 발굴하지 못하는 관계로 현재 발굴 가능한 범위 까지만 발굴한 결과를 봤을때 절의 중심 권역은 1탑 3금당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금당 3동이 탑을 둘러싸고 있다. 이는 고구려의 가람배치형식과 똑같은 형식이다. 다만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닌데, 만복사의 목탑은 고구려 특유의 팔각형 목탑이 아닌 사각형 목탑이며, 탑을 둘러싼 금당의 입구가 모두 탑을 바라보도록 축조되어 있는 고구려식 가람배치와는 달리 만복사의 금당들은 위치에 상관없이 전부 남향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의 가람배치 형식을 따왔을지언정 완벽하게 따르고있는 형태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4. 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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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30호

31호
김제 금산사 심원암 삼층석탑
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
남원 만복사지 석조대좌
파일:남원_만복사지_오층석탑_8_(촬영년도___2015년) 문화재청.jpg


문화재청 홈페이지: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 (南原 萬福寺址 五層石塔)

고려시대에 승려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만복사의 옛터에 서 있는 탑이다. 원래 이곳에는 절터 중앙에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979년부터 1985년까지 7차에 걸친 발굴조사로 많은 건물지와 다수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현재 탑은 4층까지만 남아있고, 5층 이상은 모두 없어졌다.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는 기단부(基壇部)는 땅에 파묻혀 있는데, 이는 훗날 이 지역의 땅바닥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대단히 높고 2층 이상은 약 3분의 1로 크기가 줄어 들었다.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고, 지붕돌은 밑면 전체가 위로 들려 있어, 마치 목조건축의 지붕을 보고 있는 듯하다. 특이한 점은 각 지붕돌 위에 몸돌을 괴기 위한 별도의 네모난 돌이 끼워져 있는 것으로, 당대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 탑은 고려 문종 때인 11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1968년 이 탑을 보수하다가 탑신의 1층 몸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5. 남원 만복사지 석조대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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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
남원 만복사지 석조대좌
남원 만복사지 당간지주
파일:남원 만복사지 석좌 문화재청.jpg


6. 남원 만복사지 당간지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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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만복사지 석조대좌
남원 만복사지 당간지주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
파일:남원_만복사지_당간지주_4_(촬영년도___2015년) 문화재청.jpg


7. 남원 만복사지 석조여래입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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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43호

44호
남원 용담사지 석조여래입상
남원 만복사지 석조여래입상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파일:남원_만복사지_석조여래입상 문화재청.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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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만복사가 정유재란에서 살아남았어도 계속 명맥이 유지되었을지는 미지수다. 조선시대 유생들은 지방 거대사찰에 지속적인 반달리즘을 일삼았고, 때문에 능침사찰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봉은사 정도를 제외하고는 평지가람 사찰은 조선시대 18세기를 기점으로 모두 폐사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