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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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판의 모습

1. 개요
2. 역사
3. 유적




1. 개요[편집]


멕시코 유카탄 주에 위치한 마야 문명의 도시이자 유적지. 티칼이나 치첸 이트사에 비하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나름 마야 문명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도시였다. 1220년대부터 1440년대까지 약 220년 동안 사실상 마야 최후의 대도시였기 때문이다. 당시 마야 문명은 이미 최전성기였던 고전기가 다 지나가고 북부 유민들이 이룩한 후고전기에 접어들어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 후고전기 시대에 마야 세계를 이끌던 치첸 이트사를 꺾고 '마야 문명의 마지막 맹주' 노릇을 했던 도시가 바로 이 마야판이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15,000여 명에서 17,000여 명에 이르는 인원이 상주해 살면서 마야 문명의 마지막 꽃을 피웠다.[1] 특히 후고전기 초반인 1220년대에 마야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던 치첸 이트사를 몰락시키고 유일한 맹주로 떠오른 도시로서 곳곳에 무시하지 못할 권위를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1441년 경, 한 귀족이 권력 배분에 불만을 품고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켜 지배층을 몰살시키고 마야판을 약탈한 후 불살라 버리면서 결국 허망하게 무너졌다. 이후 마야판은 정글 속에 잠식되어가다가 193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발굴되었다.


2. 역사[편집]


디에고 데 란다의 16세기 경 기록에 의하면 마야판은 치첸 이트사가 무너진 이후 전설 속의 신 쿠쿨칸[2]이 세웠다고 한다. 그는 지역의 지배자와 인근 도시들을 거꾸러뜨린 다음 마야판에 새로운 수도를 세웠다. 유카탄 반도의 왕들은 마야판에 모여서 코콤 가문을 마야판의 왕가로 추대하기로 결정하고 받들었다.

위에 나온 이야기는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고고학자들이 실제로 조사해본 결과, 마야판은 1221년에 치첸 이트사를 통치하던 마야-톨텍 귀족들에게 반란을 일으킨 마야인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자유를 되찾은 마야인들은 짧은 세력 다툼 끝에 마야인들만의 새로운 중앙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회담을 개최하게 되었다. 회담 결과 치첸 이트사와의 전쟁에서 큰 공적을 세운 후아낙 칠 장군의 고향 인근에 신도시가 세워지게 되었고, 이름은 '마야인들의 수도'라는 의미인 '마야판'으로 정해졌다. 마야판 주위에는 외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높다란 돌성벽이 세워졌다.

마야판의 왕가는 치첸 이트사 시절부터 부유하고 유서깊은 가문이었던 코콤 가문이었다. 코콤 가문은 왕실로 격상되자 모든 마야 도시들에게 마야판으로 '대표'를 보내 살게 할 것을 명령했다. 마야판의 중앙 정계에 참여해줄 수 있게 해준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친인척을 마야판에 포로로 잡아두고 혹여나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제도였다. 당시 마야판에는 왕실인 코콤 가문 외에도 씨우 가문이라는 다른 명문가가 있었다. 씨우 가문은 코콤 가문이 마야판 일대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마야판에 살던 가문으로, 스스로를 욱스말 왕가의 후예로 자처했다. 씨우 가문은 향후 200여 년 동안 코콤 가문과 대립하면서 계속 각을 세웠다.

이후 마야판은 코콤 왕가의 지배하에 빠르게 성장해나가며 얼마 가지 않아 유카탄 반도 북부를 다스리는 거대한 세력으로 발전했다. 전성기의 마야판은 온두라스, 벨리즈, 카리브 해의 섬들과도 교역했으며 간접적으로는 멕시코까지 가서 교류했다. 당시 마야판이 특이했던 점은 여러 귀족들이 모인 위원회가 국왕과 함께 통치하는 과두정이었다는 것이다. 마야판에서는 여러 대귀족 가문들이 물밑에서 치열히 경쟁하면서 치고 받고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200년을 쭉 이어간 과두정치는 1441년에 씨우 가문의 아 쑤판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허무하게 멸망하게 되었다. 아 쑤판은 기존 정치 체제에 불만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켜 코콤 왕가를 학살했고[3] 마야판 시가지를 통째로 불태웠다. 그렇게 마야판이 비참하게 몰락한 이후, 근근이 명맥만 이어가던 마야 문명의 대도시들은 완전히 무너졌고 유카탄 반도는 수많은 조그만 소도시들로 쪼개져 서서히 쇠퇴했다.

마야판은 그렇게 아 쑤판의 반란 이후 쭉 폐허로 남아있다가 1841년 존 L.스티븐스가 처음으로 방문한 이래로 꾸준하게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1950년대의 대대적인 발굴 작업, 1990년대의 거주지역 발굴 이렇게 두 차례 고고학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현재는 상당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로 떠올랐다.


3. 유적[편집]


사진
설명

파일:castillo-kukulcan.jpg

쿠쿨칸 신전 (The Castle of Kukulcan)
마야판의 핵심 건축물. 치첸 이트사의 쿠쿨칸 신전을 모티브로 지어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9층의 거대한 규모의 피라미드로 높이는 15m에 이른다. 현재의 피라미드는 일부가 무너져내려서 안쪽의 더 오래된 피라미드의 모습이 약간 드러나있다. 피라미드 발치에는 '프레스코화의 방'이라고 있어서 안에 여러 개의 색채 프레스코화들이 아름답게 그려져있다.

파일:Mayapan_25-1024x683.jpg

천문대 (The Observatory)
마야판에서 가장 특징적인 건물들 중 하나이다. 특히 원통형의 독특한 모습이 유명한 편. 마야인들은 천문의 운동이 곧 하늘과 신의 뜻이라 생각해서 금성화성. 그리고 여러 천체의 운동을 관측하는 데에 많은 힘을 쏟았다. 2개의 높다란 단 위에 올라가 있으며 마야판의 전성기 시절에는 건물 전체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파일:gettyimages-1033878368-1024x1024.jpg

채색 벽감의 신전 (The Temple of Painted Niches)
마야판의 중앙 시가지에서 쿠쿨칸 신전, 천문대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수많은 채색 벽화들이 내부에 그려져 있다. 내부에는 5개의 신전 모습들이 채색되어 그려졌는데, 각각의 벽감들은 그림 속 신전들로 들어가는 입구를 상징한다고 한다. 외부 모습은 시간이 흐르며 많이 허물어져서 돌무더기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내부 모습은 잘 보존되어 있어 고고학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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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마저도 10만 명 이상이 넘는 도시들이 즐비했던 고전기에 비하면 극히 줄어든 규모였다.[2] 마야 신화에서 케찰코아틀에 대응하는 신이자 톨텍 문명의 전설적인 지도자.[3] 온두라스에 교역 대표로 파견나가 있었던 한 명을 제외하곤 아예 씨가 끊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