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 우지나공장 차량질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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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 우지나공장 차량질주 사건
マツダ本社(ほんしゃ工場(こうじょう連続(れんぞく殺傷(さっしょう事件(じけん

파일:Hiki Toshiaki.jpg
발생일
2010년 6월 22일 오전 7시 35분경[JST]
발생 위치
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마쓰다 우지나공장
유형
테러 (묻지마 범죄)
범인
히키지 토시아키 (남, 당시 42세 / 현재 무기수 복역 중)
원인
범인의 피해 망상 및 생활 빈곤
인명피해
사망
1명
부상
1명
1. 개요
2. 사건 경위
3. 범인에 관하여
4. 재판
5. 사건 이후



1. 개요[편집]


2010년 일본 히로시마현에 위치한 자동차 기업 마쓰다 본사 우지나(宇品)공장에서 발생한 묻지마 테러 사건이다.


2. 사건 경위[편집]


2010년 6월 22일 오전 7시 35분경 히로시마시 미나미구 니호오키마치 소재의 마쓰다 본사 우지나공장 동쪽 정문 앞에서 무직의 남성 히키지 토시아키(引寺利明, 당시 42세)가 운전하는 마쓰다 패밀리아 S 왜건 차량 한 대가 질주하여 2명을 치었다. 그는 경비원의 제지를 무시한 채 그대로 차를 몰고 공장 내부로 돌진해 5명을 더 들이받고 다리를 건너 800m 떨어진 본사 공장으로 침입하여 추가로 4명을 더 들이받았으며 약 10분 가량 공장 내 약 5km를 시속 40km로 달린 뒤 북문을 통해 도주했다. 이 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가 발생한 공장은 오전 8시 15분부터 조업이 시작되었고 사건 발생 시각은 마침 야간과 주간 근로자들의 교대가 이루어지는 시간대였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컸다.

한편 히키지는 도주 후 40분 뒤 사건 현장에서 4.6km 떨어진 후추정에서 경찰에 전화로 자수했고 뒤이어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부엌칼을 숨겨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살인미수에 더해 총포 및 도검류 소지 등 단속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었다. 사건 현장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으며 범행에 사용된 차량은 보닛이 찌그러지고 앞유리가 깨지는 등 심하게 파손된 상태였다고 한다.


3. 범인에 관하여[편집]


히키지 토시아키는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고 자동차 관련 잡지도 자주 사서 모았다고 한다. 또 부친이 마쓰다에서 근무했다는 점 때문인지 자동차 회사 중에서도 특히 마쓰다를 동경했다고 하며 그가 거주하던 아파트 주민들에 따르면 근 5~6년 사이에 스포츠카를 4대 정도 새로 샀다고 한다. 한 고등학교 동급생은 졸업 후 몇 년이 지나서 세련된 스포츠카를 탄 히키데라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마르고 안경을 쓴 그다지 존재감 없던 녀석이 언제 저렇게 됐나 싶어 놀랐다"고 증언했다. 그는 실제로는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이 발생한 2008년에 이미 파산했는데 직장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를 자주 바꾸는 등 큰 돈을 들인 것이 가장 큰 파산 원인 중 하나였다. 그의 아파트에는 4월경부터 세탁물이 널어 놓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하며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원금을 수급받을 정도로 생활이 곤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 자동차 부품 제조사에서 6년 동안 정규직으로 일하다 퇴사한 뒤 파견직, 계약직으로 여러 자동차 관련 업계를 전전했다.[1] 그리고 2010년 3월 26일 6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해 4월 1일부터 마쓰다 본사 공장에서 범퍼 제조를 담당했으나 14일에 퇴사했다.

히키지는 가토 도모히로의 범행 수법을 모방했다고 밝혀 충격을 주었으며 "평소 마쓰다에 원한이 있었다", "동료 직원들에게 집단 스토커 피해를 당했으나 회사 측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복수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집단괴롭힘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히키지의 피해망상에 의한 일방적 원한 범죄로 간주되었다. 다만 당시부터 친했던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히키지가 회사 측 담당자의 요청으로 업무팀에서 제외된 일이 있었는데 사유는 그의 평소 말씨가 건방지게 들릴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지인에게 마쓰다에 대한 불만을 넋두리처럼 늘어놓곤 했다고 한다.


4. 재판[편집]


재판에서 피고인의 책임능력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정신감정이 요청되었는데 이 때문에 2011년 10월 7일이 되어서야 기소가 이루어졌다. 또 기소가 늦어진 여파로 1심 최초 공판 일정도 대폭 연기되어 2012년 1월 26일에야 공판이 열렸다. 이 1심 공판은 재판원제도[2]가 적용되었는데 심의 과정에서 히키지가 피해자 유가족에게 지급된 보험금을 달라고 요구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 드러났다.

2012년 3월 9일 히로시마 지방법원은 피고인의 완전책임능력을 인정하여 검찰의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에 히키지는 재판부가 자신이 당한 집단괴롭힘을 '망상'으로 치부했다며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013년 3월 11일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피고에게 명백히 살인 의도가 있었다는 점과 완전책임능력을 인정한 1심 판결이 불합리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법령 오적용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항소를 기각했다.

피고인 측은 곧바로 상고했으나 2013년 9월 24일 최고재판소에서 상고를 기각하여 그대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그래서 히키지 토시아키는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5. 사건 이후[편집]


사건이 발생한 마쓰다 본사 공장은 가동이 일시 중단되었다가 오전 9시경부터 재가동되었다. 또 마쓰다 본사 내에 추모공간 5곳이 마련되었으며 사건 다음날인 6월 23일에 열린 주주총회에서 경비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방침을 표명했다. 이와 관련하여 마쓰다 측에서는 회사 출입 시 경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며 사건 발생 당일부터 한동안 자숙의 의미에서 광고를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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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T] 일본 표준시[1] 그가 일했던 직장들은 상당수가 마쓰다와 관련이 있는 업체들이었다.[2]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에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