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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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2][편집]
2.1. 선수 생활[편집]
2.1.1. 클럽[편집]
CA 보카 주니어스의 유스팀 출신인 보예는 1941년 6월 8일에 보카에서 CA 인데펜디엔테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고 CA 우라칸전에서 첫 골을 넣었다.
그가 보카에서 뛰었던 초기 9시즌 중 보카는 1943년과 1944년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1946년에는 그가 24골을 넣어 득점왕이 되었다.
1949년, 보예는 제노아 CFC에서 반 시즌을 뛰었고 18경기에서 12골을 넣어 꽤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보예는 콜롬비아의 미요나리오스 FC로 건너가 한 시즌을 보낸 후 아르헨티나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행선지는 친정팀 보카가 아닌 라싱 클루브였고 라싱의 리그 우승에 힘을 보탰다.
그는 CA 우라칸을 거쳐 1955년, 친정팀 보카에서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2.1.2. 국가대표[편집]
보예도 1940년대에 아르헨티나가 이룩했던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3연패의 주축 선수 중 한 명이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보예는 킥력이 좋은 아웃사이드 포워드였다. 그가 가장 선호하던 포지션은 오른쪽이었지만 왼쪽 측면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고 센터 포워드도 소화 가능했다.
보예는 1940년대 CA 보카 주니어스의 아이돌 중 한 명이었다. 초기의 보예는 기술적으로 미흡한 면이 있어서 서포터들에게 큰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기량을 끌어올려 곧 보카의 아이돌이 되었다.
4. 뒷이야기[편집]
- 1951년 5월 9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잉글랜드와의 친선 경기에 참가했던 보예는 잉글랜드 선수들과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체격을 비교하면서 경기에서 승리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예는 전반 18분에 골을 넣었고 아르헨티나가 거의 이길 뻔 했지만 후반 34분과 41분, 잉글랜드의 스탄 모르텐슨과 재키 밀번에게 골을 먹혀 결국 그의 생각대로 되었다.
- 보예는 레네 폰토니와 함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피자 가게 La Guitarrita(작은 기타)를 열었다. 폰토니가 1983년 사망한 후 보예는 혼자 1992년에 사망할 때까지 피자 가게를 운영했고 이 가게는 지금도 성업중이다.
5. 수상[편집]
5.1. 클럽[편집]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4회: 1943, 1944(이상 CA 보카 주니어스), 1950, 1951(이상 라싱 클루브)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4회: 1945, 1946, 1947(이상 CA 보카 주니어스), 1952(라싱 클루브)
5.2. 국가대표[편집]
-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승 3회: 1945, 1949, 1947
5.3. 개인[편집]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1회: 1946(CA 보카 주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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