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게토브리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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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기원전 63년, 중앙 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켈트족인 하이두이족과 라인강 건너편의 게르만족수에비족이 맞붙은 전투. 갈리아 전쟁의 계기가 된 전투이다.

2. 상세[편집]


기원전 1세기 중순, 중앙 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하이두이족은 세콰니족과 심각한 갈등을 벌이고 있었다. 스트라본에 따르면, 두 종족 사이의 갈등의 원인은 주로 상업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두 부족은 아라르 강의 소유권과 강을 건너는 물품에 대한 세입을 자기들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세콰니 족은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베손티오에 요새를 건설했다. 이에 하이두이족이 공세를 가했고, 세콰니 족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라인강 건너편의 강력한 부족인 수에비족에게 구원을 호소했다.

수에비족의 지도자 아리오비스투스는 영토를 할양해 자기 부족민들이 이주하게 하는 걸 용인하는 조건으로 구원 요청을 받아들이고, 라인강을 건너 하이두이족과 대결했다. 기원전 63년, 양측은 세콰니족의 마게토브리가 마을에서 격돌했는데, 수에비족이 대승을 거두었고 하이두이족은 공물을 바칠 수밖에 없었다. 하이두이족의 지도자 디비키아쿠스는 로마에 찾아가 구원을 요청했지만, 로마 원로원은 그에게 "로마인의 친구"라는 칭호를 부여할 뿐, 원군을 보내주지 않았다. 이는 하이두이족이 갈리아에서 패권을 확립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디비키아쿠스의 위상이 추락하자, 동생 둠노릭스는 이 때를 틈타 헬베티 족의 오르게토릭스의 딸과 결혼하여 든든한 뒷배를 마련하고 형의 권위에 도전했다. 급기야 기원전 58년 헬베티 족이 하이두이족의 영역으로 쳐들어와 심한 약탈을 자행하자, 디비키아쿠스는 갈리아 키살피나, 갈리아 트란살피나, 그리고 일리리아 속주의 총독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카이사르는 즉각 출진하여 아라르 전투비브라테 전투에서 헬베티 족을 물리쳤다.

한편, 아리오비스투스는 세콰니족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막대한 공물을 챙겼고, 더 많은 게르만인들을 불러들이면서, "이들을 정착시켜야 하니 땅을 더 내놓아라"라고 요구했다. 이에 세콰니족이 카이사르에게 밀사를 보내 구원을 청했고, 디비키아쿠스도 카이사르의 힘을 빌려 수에비족을 물리치고 싶어서 카이사르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카이사르는 세콰니 족의 영토로 출진해 보주 전투에서 아리오비스투스를 격파했다. 이로써 로마는 갈리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카이사르는 이를 기반으로 갈리아 전쟁을 본격적으로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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