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사이드 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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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verside Records
리버사이드 레코드

설립
1953년
해산
1964년
유형
음반 레이블
본사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뉴욕시 뉴욕주
설립자
올린 킵뉴스
빌 글라우어 주니어
장르
재즈, 블루스, 포크 음악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역사
3. 특징
4. 주요 아티스트
5. 관련 문서
6.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1953년에 설립한 미국재즈 레이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미국 재즈씬을 풍미했던 레이블 중 하나다.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델로니어스 몽크빌 에반스가 이 레이블 소속이었다.


2. 역사[편집]


'리버사이드 레코드'는 1953년 출판사에서 편집원으로 일하고 있던 재즈 작가 올린 킵뉴스(Orrin Keepnews)와 빌 글라우어 주니어(Bill Grauer, Jr)가 적은 예산으로 설립한 레이블이다. 이 둘은 재즈광으로 유명했다. 킵뉴스는 이 레이블의 대부분의 음반에 프로듀서로 관여했으며, 그라우어는 재정면을 관리하고 있었다. 킵뉴스는 재능이 뛰어난 뮤지션을 스카우트하는 일도 맡았다. 설립 초창기에 리버사이드는 1920년대에 발매했던 클래식 재즈와 블루스 레코드를 재발매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큰 실패를 거뒀는데 킵뉴스는 후일 인터뷰에서 "열정만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나친 광기의 행동이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패를 겪은 리버사이드의 설립자들은 1954년부터 레이블의 음악적 노선을 바꿨다. 피아니스트 랜디 웨스턴(Randy Weston)의 연주를 레코딩한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모던 재즈 음반을 발매했다.[1] 프로듀서 올린 킵뉴스는 뛰어난 세션 연주자들을 초빙했으며, 라이너 노트[2]를 직접 작성해 비평가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라우어가 비즈니스 측면을 관리하는 동안 킵뉴스는 리버사이드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음악과 프레젠테이션을 관리했다. 또한 디자이너 폴 베이컨(Paul Bacon)과 켄 디어도프(Ken Deardoff)의 상상력이 풍부한 아트 디렉션 덕분에 리버사이드의 300개 음반 중 거의 모든 것이 멋진 작품이 되었다. #

이후 리버사이드는 델로니어스 몽크[3], 빌 에반스, 캐논볼 애덜리[4], 웨스 몽고메리, 소니 롤린스, 얼 하인즈, 존 리 후커, 쳇 베이커, 윈튼 켈리, 리 모건 같은 유명 아티스트나 주목받는 신인급 아티스트를 대거 영입했다. 이들은 리버사이드에서 많은 명반을 발매했는데, 이전까지 주목 받지 못했던 델로니어스 몽크는 하드밥 명반 'Brilliant Corners'를 발매했고, 빌 에반스는 쿨 재즈 명반 'Portrait In Jazz'을 발매했으며, 기타리스트 웨스 몽고메리는 하드밥 명반 'The Incredible Jazz Guitar of Wes Montgomery'을 발매했다. 영입 배경에는 소속 아티스트들의 의견을 신뢰하고, 그들이 추천하는 뮤지션들을 적극적으로 초청하는 레이블의 방침이 있었다고 한다.

1959년, 프로듀서 올린 킵뉴스는 샌프란시스코의 재즈 워크숍에서 캐논볼 애덜리 퀸텟의 라이브 공연을 녹음했다. 이 녹음물을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해 엄청난 성공을 거뒀는데, 재즈계에 라이브 앨범 유행을 일으키기도 했다. # 이후 많은 리버사이드 소속 아티스트들이 탁월한 라이브 앨범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뒀다. 대표적으로 빌 에반스는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와 'Waltz for Debby' 같은 걸작 라이브 앨범을 발표했다. 여담으로 캐논볼이 라이브 앨범 열풍을 불러일으키기 전인 1958년에는 델로니어스 몽크가 'Misterioso'라는 뛰어난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리버사이드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재즈 클래식'이라고 평가받는 여러 장의 수작과 걸작들을 제작했다. 이로인해 뉴욕을 대표하는 명망있는 독립 재즈 레이블로 알려지게 됐다. 전성기 당시에는 모던 재즈를 대표하는 최고의 레이블인 블루 노트 레코드, 프레스티지 레코드(Prestige Records), 버브 레코드(Verve Records) 등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 설립자 킵뉴스는 후일 인터뷰에서 "뉴욕에는 리버사이드, 프레스티지, 블루노트가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는 퍼시픽 재즈(Pacific Jazz)와 컨템퍼러리(Contemporary)가 있었죠. 우리는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지 몰랐지만, 우리는 대단한 관심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라이벌 관계였고, 라이벌 관계에 머물렀지만,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 가지는 음악 자체에 대한 열정 그 자체였지만, 많은 곳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어요. 다른 한 가지는 우리가 기능을 할 수 있게 해준 시대에 우연히 존재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50년대 후반에 큰 성공을 거둔 리버사이드는 많은 자회사를 설립하며 규모를 확대했다. 리버사이드 레코드 소속의 자회사로는 'Jazzland[5]'와 'Riverside Wonderland[6]'가 있으며, 1960년부터는 'Living Legends'란 상표로 블루스와 포크 음악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3년 12월, 레이블의 재정 책임자인 그라우어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결국 리버사이드 레코드는 1964년 7월 자발적으로 파산을 신청했다.

파산 이후 리버사이드의 일부 음반들은 ABC 레코드가 재발매했으나, 사실상 대부분의 리버사이드 음반들의 저작권은 1972년 판타지 레코드가 인수했다. 이 음반의 대부분은 마일스톤 레이블에서 LP로 재발매되었고, 1980년대에는 판타지 오리지널 재즈 클래식 시리즈(Original Jazz Classic)[7]의 일부로 CD로 재발매되었다. 현재는 판타지 카탈로그의 소유주인 콩코드 레코드가 리버사이드 레코드의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리버사이드 음반을 꾸준히 재발매하고 있다. 또한 2006년 초부터 콩코드 레코드의 배급사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에서 리버사이드의 음악을 배급하고 있다.

리버사이드 레코드의 설립자 올린 킵뉴스는 레이블 해체 이후에도 마일스톤과 판타지 레코드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또한 그는 리버사이드 레코드의 미발표 작품의 발굴과 재발매에 힘을 쏟았다. 킵뉴스는 2004년 국립 녹음 예술 과학 아카데미로부터 그래미 어워드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에는 재즈 분야에 대한 "중요한 공헌"을 인정받아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of the Arts)으로부터 재즈 마스터 칭호를 수여받았다. 킵뉴스는 2015년 3월 1일, 향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특징[편집]


우리의 목표는 많은 음반을 팔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다음 음반을 만들기에 충분한 음반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만들고 싶은 마음과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무언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순진했는지 아니면 헌신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매우 똑똑하거나 매우 어리석었지만 평범하지는 않았습니다.

올린 킵뉴스 (리버사이드 레코드의 설립자) #

리버사이드 레코드는 설립 이후 불과 11년 만에 해체했지만, 재즈 음반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음반사로 지금까지도 평가받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의 가장 중요한 독립 재즈 레이블 중 하나"라고 평했다. #

비밥, 하드 밥, 쿨 재즈, 모달 재즈 성향의 음반들을 주로 발매했다. 또한 델로니어스 몽크, 빌 에반스[8], 웨스 몽고메리, 캐논볼 애덜리의 초기 명반들은 리버사이드 레코드에서 많이 발매했다. 레이블의 설립자이자 프로듀서인 오린 킵뉴스는 소속 아티스트들이 추구하는 음악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고 한다. 그는 후일 인터뷰에서 "제 직업은 음악가들이 그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리버사이드는 탁월한 음반들을 많이 발표했지만, 그중에서도 레이블을 대표하는 명반은 아래와 같다.

델로니어스 몽크 - Brilliant Corners

델로니어스 몽크 - Well You Needn't

맥스 로치 - Deeds, Not Words
  • 1958년 발매한 맥스 로치의 하드밥 명반 'Deeds, Not Words'.

캐논볼 애덜리 - Spontaneous Combustion
  • 1959년 발매한 'The Cannonball Adderley Quintet in San Francisco'는 캐논볼 애덜리가 동생 냇 애덜리와 합작으로 만든 수작 앨범이다.

쳇 베이커 - Alone Together
  • 1959년 발매한 쳇 베이커쿨 재즈 명반 'Chet'. 레이블 퍼시픽 재즈에서 발매한 'Chet Baker Sings'와 함께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쳇 베이커의 수작 중 하나다.



조지 러셀 섹스텟 - Ezz-thetics
  • 1961년 발매한 조지 러셀의 아방가르드 재즈 명반 'Ezz-thetics'.


웨스 몽고메리 - Full House

리버사이드는 여러 뉴욕 스튜디오와 엔지니어들을 레코딩에 기용했는데, 주로 플라자 사운드(레이 파울러, 잭 매튜스), 리브스 사운드(잭 히긴스), 벨 사운드(빌 스토다드)를 이용했다. 이 스튜디오들의 엔지니어링은 대체로 매우 훌륭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 또한 리버사이드의 음반은 역동적이고 음색이 매우 넓은 것이 특징이다. #


4. 주요 아티스트[편집]


  • 냇 애덜리(Nat Adderley)
  • 덱스터 고든
  • 델로니어스 몽크[A]
  • 돈 프리드만(Don Friedman)
  • 리 모건
  • 마크 머피(Mark Murphy)
  • 맥스 로치(Max Roach)
  • 몽고 산타마리아(Mongo Santamaria)
  • 밀트 잭슨(Milt Jackson)
  • 배리 해리스(Barry Harris)
  • 보비 티먼스(Bobby Timmons)
  • 블루 미첼(Blue Mitchell)
  • 빌 에반스[A]
  • 빌리 테일러(Billy Taylor)
  • 소니 롤린스[A]
  • 애비 링컨(Abbey Lincoln)
  • 얼 하인즈
  • 웨스 몽고메리[A]
  • 윈튼 켈리
  • 유세프 라티프(Yusef Lateef)
  • 조니 그리핀(Johnny Griffin)
  • 조지 러셀(George Russell)
  • 존 리 후커
  • 찰리 버드(Charlie Byrd)
  • 쳇 베이커[A]
  • 캐논볼 애덜리
  • 케니 도햄(Kenny Dorham)
  • 콜맨 호킨스
  • 클락 테리(Clark Terry)
  • 클리포드 조단(Clifford Jordan)
  • 허비 만(Herbie Mann)


5. 관련 문서[편집]




6.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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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에는 Jazzland라는 새로운 로고를 붙이기도 했다.[2] 음반 제작의 막후까지 꿰뚫고 있는 킵뉴스가 직접 쓴 라이너 노트에는 작품 탄생 배경과 녹음 당시 에피소드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또한 초창기 리버사이드 레코드 음반에는 정성스럽게 적혀있는 장문의 라이너 노트가 굉장히 많았다.[3] 리버사이드의 설립자 올린 킵뉴스는 몽크에 대해 "자신이 연관되어 있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고 불렀다. #[4] 캐논볼은 뮤지션 스카우트와 음악 디렉터 역할을 맡기도 했다.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던 웨스 몽고메리를 발굴한 것이 캐논볼이다.[5] 존 콜트레인델로니어스 몽크의 합작 앨범 'Thelonious Monk with John Coltrane'가 이곳에서 발매됐다.[6] 어린이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레이블이었다.[7] 약칭 OJC.[8]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저서 재즈 애세이에서 "이런 앨범을 녹음하고 제작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리버사이드라는 레코드 회사는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A] A B C D E 리버사이드 음반을 통째로 수록한 컴플리트 박스셋(Complete Box Set)을 발매한 뮤지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