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킨키우스 알리멘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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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루키우스 킨키우스 알리멘투스
(라틴어: Lucius Cincius Alimentus)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직위
시칠리아의 프라에토르

1. 개요
2. 행적
3. 연대기



1. 개요[편집]


로마 공화국의 군인, 정치인, 역사가. 제2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 한니발 바르카의 카르타고군에 생포되어 수년간 포로 생활을 한 경험을 토대로 포에니 전쟁을 포함한 로마 역사를 다룬 연대기를 저술했다.


2. 행적[편집]


에트루리아 출신 평민 집안인 킨키아 씨족의 일원으로, 기원전 204년 호민관을 역임했으며 <로마법>의 저자인 마르쿠스 킨키우스 알리멘투스의 형제일 것으로 추정된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그는 기원전 210년 법무관을 맡은 뒤 기원전 209년부터 칸나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뒤 원로원에 의해 시칠리아로 보내진 부대의 프라에토르(Preetor: 군대 지휘관과 선출직 행정관에게 부여되는 칭호)를 맡았다고 한다.

기원전 208년, 집정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의 지시에 따라 로크리 포위를 맡았다. 베누시아 전투에서 마르켈루스를 전사시키고 크리스피누스에게 중상을 입힌 한니발 바르카가 로크리를 구하러 달려왔고, 그는 뒤이은 전투에서 참패하고 카르타고군에 사로잡혔다. 이후 수년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 풀려난 뒤 연대기를 집필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3. 연대기[편집]


리비우스에 따르면, 알리멘투스의 연대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 아이네이아스가 이탈리아에 상륙한 시점부터 제2차 포에니 전쟁까지의 로마 역사를 다뤘으며, 동시대의 원로원 의원이자 역사가인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와 그리스 역사가인 타우로메니오스의 티마이오스의 연대기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그의 연대기는 현존하지 않으나 리비우스 등 후대 역사가들의 인용한 일부 내용은 전해진다.

그는 그리스어로 연대기를 저술했는데, 이는 타우로메니오스의 티마이오스의 제자인 아그리젠토의 필리노스가 카르타고에 유리한 역사서를 집필한 것에 대응하고자 지중해 전역에 로마의 입장을 널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리비우스는 알리멘투스가 카르타고군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한니발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카르타고군이 히스파니아에서 이탈리아로 진군할 때까지의 여정을 상세히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에 따르면, 그는 로마의 건국년도가 제12회 올림피아 제전 4년차, 즉 기원전 729년이라고 명시했다고 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로마 건국년도인 기원전 753년보다 20여 년 늦춰진 년도다. 독일 역사가 바트홀드 게오르그 니부어(1776~1831)는 킨키우스가 연도를 12개월 단위로 세지 않고 10개월 단위로 세는 로마-에트루리아 달력을 사용했기에 이런 연도차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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