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젠베르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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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나치 독일동유럽 점령 및 통치 계획. 계획의 입안자인 동부점령지관리부(Reichsministerium für die besetzten Ostgebiete, 독소전쟁 발발 직후인 1941년 7월 설립) 장관 알프레트 로젠베르크의 성을 따서 이름 붙여진 계획이다.

나치 독일이 독소전쟁 승리를 대비하여 전후 소련영토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모스크바와 그 일대를 관리하는 모스크비엔 국가판무관부(Reichskommissariat Moskowien), 벨라루스발트 3국을 관리하는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Reichskommissariat Ostland), 우크라이나 지역을 관리하는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부(Reichskommissariat Ukraine), 캅카스 지역을 관리하는 카우카지엔 국가판무관부(Reichskommissariat Kaukasien)를 설치하기로 계획되었다.


2. 상세[편집]


1942년 2월 경부터는 계획된 4개 국가판무관부 중 오스트란트와 우크라이나 도합 2개 국가판무관부가 실제로 설치되어 소련 시절 설치된 집단농장의 해체 및 농민들에게의 토지 재분배를 약속하였으나, 히틀러가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으로 직접 파견한 에리히 코흐(Erich Koch)는 로젠베르크의 의지를 비웃듯 철저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다른 곳에서 대부분의 나치가 그랬듯 피점령민에 대한 가혹한 통치를 일삼았고, 홀로도모르로 인한 우크라이나인들의 대 소련 적개심을 한방에 잠재우며 로젠베르크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당연하지만 알프레트 로젠베르크[1]나치당의 몇 안되는 양심이라 피점령지역 국민들에게 선정을 베풀려고 한 게 아니고, 피점령지의 해방자로서의 독일군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즉 어디까지나 정치적 측면에서의 선정인 것이다.

사정은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도 다르지 않아서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이였던 힌리히 로세(Hinrich Lohse) 또한 그러했는데, 사실 이건 국가판무관들에게 국가판무관부 관할지역의 경찰권이 없고 아인자츠그루펜을 필두로 한 무장친위대에 있었기 때문에 손쓸 방도가 없긴 했다. 본인 자체는 발트인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물론 이건 전부 피점령지역 국민들에 대한 대우를 말하는 것이고 유대인공산주의자에 대한 학살은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또한 찬성했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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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트 독일인 출신이며 바우만 모스크바 국립 공과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