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크 메간틱 유조열차 탈선 참사

덤프버전 :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
2. 사고 당시
3. 피해
4.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파일: 라크 메간틱 참사.jpg


#같은 내용의 프랑스어판
캐나다 교통안전 위원회(Transportation Safety Board of Canada / Bureau de la sécurité des transports du Canada)에서 재현한 철도사고 동영상 (영어 / 프랑스어)





L'accident ferroviaire de Lac-Mégantic
Lac-Mégantic rail disaster

2013년 7월 6일 캐나다 퀘벡의 라크-메간틱에서 일어난 화물열차 탈선 사고.


2. 사고 당시[편집]


2013년 7월 5일 밤 늦은 시각, 당시 MMA[1]소속의 화물열차가 퀘벡주를 지나고 있었다. 당시 열차는 원유 700만 리터가 담긴 72대의 원유 수송 탱크를 실고 있어 길이가 무려 1,433m였다.[2] 기관사 톰 하딩이 승무원 교체를 위해 잠시 차량을 멈추고, 차량 7개의 핸드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런데 기관차 중 한 대에서 검은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고, 불안해진 하딩은 MMA측에 이를 보고하고는 택시를 타고, 평소 자주 갔던 라크 메간틱의 호텔로 향했다. 자정이 지나고 7월 6일, 8개월 전 응급 수리했던 연료파이프 누설부위에서 작은 화재가 발생했고, 소방관들이 즉각 출동해 불이 진압돼서 큰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진압 과정에서 열차 자체의 연료에 불이 붙는 걸 막으려고 시동을 껐는데, 이러면서 공기압 브레이크도 해제됐다. 해제되면서 브레이크에 바람이 빠져 점점 약해졌고, 소방관이 모두 떠난 뒤 브레이크 내 기압으로 기차를 잡을 수 없는 정도까지 떨어지자 기차는 힘을 잃고 뒤로 미끄러졌다.

기관사는 열차가 완전히 멈췄다 생각해 호텔에 쉬러 간 상황이라 열차가 폭주하던 사실을 몰랐다. 기관사도 없이 폭주하던 기차는 그대로 최대 속도인 시속 105km까지 빨라졌다. 당시 열차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불이 꺼진채로 바퀴에서 스파크까지 튀며 뒤로 달리는 열차를 보고 의아해 했다. 그렇게 뒤로 가던 열차는 10km 떨어진 인구 6,000명 규모의 시골마을 라크 메간틱으로 향했다. 오전 1시 30분, 라크 메간틱까지 미끄러져 내려온 열차가 제한속도 시속 16km인 코너에서 중심을 잃으며 탈선, 수송 차량에서 원유가 쏟아졌다. 그리고 원유에 불이 붙으면서 열차가 폭발했다. 불기둥은 100m높이까지 치솟았고 인근 가옥 수십채를 날려버렸다. 불길이 워낙 강해서 2km 떨어진 곳에서도 열기가 느껴졌다.

하필 그날은 새벽인데도 날이 맑아 마을 중심가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는데, 이때 열차가 탈선해서 피해가 커졌다. 마을 주민의 6분의 1인 1,000여명이 긴급히 대피했고, 열차는 몇 차례 더 폭발했다. 폭발로 3명이 사망, 100여명이 실종된 가운데, 소방관 150명이 급히 출동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톰 하딩도 화재 진압을 도왔다. 근처 미국에서 까지 소방관이 급히 출동한 가운데, 화재로 인한 독성 연기가 퍼져나가자 주민 1,000여명이 더 대피했다. 20시간이 지나고서도 화재는 진압되지 않았는데, 기차가 운반하던 연료가 너무 많아서 이 연료들이 불 붙은 채 하수구로 흘러들어가 곳곳에 불을 퍼뜨렸다. 특수 소화제 까지 동원한 끝에 사고 2일이 지나서야 불을 간신히 진압할수 있었다.


3. 피해[편집]


사고로 결국 47명이 사망 했다. 이중 시신을 찾는데 성공하고 신분이 확인 된 사람은 42명, 시신이 강한 불에 인해 너무 많이 훼손되어 유가족과의 DNA 대조를 통해 파악하기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남은 5명은 시신조차 발견되지 못한 채 실종됐고, 결국 사망처리 됐다.

건물 30채와 가옥 115채가 폭발로 무너졌다. 화재 당시 새어나온 기름 때문에 식수원이 화학물질과 비소로 오염되어 피해자들은 물을 공급받아야 했다. 화재가 일어난지 1달이 지나고서야 수질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화재로 인해 공기도 오염됐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본래대로 돌아왔다.

사고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열차를 멈출 때 원래는 14개 이상의 핸드브레이크를 잠궈야 했으나 톰 하딩은 7개만 잠궜다. 거기다 브레이크를 잠글 땐 공기압 브레이크를 끄고 핸드 브레이크를 확인해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또한 MMA측에서 이러한 안전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고, 원래는 2명씩 열차에서 근무를 해야 했으나 1명만 근무해도 되는 것으로 규정을 바꾼 것이 화를 불렀다.

사고는 북미서 무인 열차가 일으킨 참사 중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참사로 기록됐다.


4. 사고 이후[편집]


당시 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와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 그의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과 왕세자 찰스 3세는 이 사고에 애도를 표했다.

퀘벡주 정부는 6,000만 달러를 들여 마을을 복구했다. 다만 파괴된 정도가 너무 심해 완전히 복구하지는 못했다. 공공 도서관을 비롯한 몇몇 건물은 결국 철거됐다.

MMA는 이 사고로 결국 파산했다.

사고 이후 기차로 위험물질을 운반할땐 최소 2명의 직원이 탑승하도록 법으로 지정됐다.

인근 교회에 사고를 추모하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사고 이후에도 열차는 라크 메간틱 마을을 통과하지만, 사고가 났던 7월 6일엔 통과하지 않는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5 03:37:46에 나무위키 라크 메간틱 유조열차 탈선 참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Montreal, Maines and Atlantic Railway.[2] 다만 마일 트레인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런 종류의 화물열차 중에서는 그렇게 긴 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