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봉덕동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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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건 당일
3. 범인으로 지목된 동거남, 뒤집어진 재판 결과
3.1. 당시 방의 상황
3.2. 사건 익일의 상황, 추가 수사
3.3.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4. 의외의 범행을 당했을 수도 있다?
5. 사건은 그대로 종결된채로 남는가?
6. 마지막 희망, 루이 비통 가방
7. 기타
8. 관련 문서 및 관련 링크


1. 개요[편집]



2005년 1월 23일 새벽,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서 술에 취한 채로 친구의 부축을 받고 동거남 김 모 씨가 있는 원룸에 들어간 정나리(당시 23세) 씨가 그 방에 들어간 이후로 실종되어 지금까지 행방이 불분명한 사건. 수사 초기에는 동거남 김 씨가 살해했을 정황이 높았기에 김 씨가 기소되었으나, 재판 결과는 김 씨의 무죄로 판명되어 현재까지도 정나리가 살아있는지도 알수 없는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당시 정나리는 대구 시내에서 가족과 별거하는 상태였고, 친구와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정 씨는 금전 관계도 깨끗했으며 일 관련해서는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김 씨의 혐의에 초점을 맞출 경우 무죄로 종결된 사안이나, 정나리의 행방을 기준으로 할 때는 여전히 미제사건이다.

만약 전국 어딘가 생존해있다면 정나리씨의 현재 나이는 40~43세가 된다.

2. 사건 당일[편집]


사건 당일 정나리가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가는 도중, 술에 만취한 정나리가 갑자기 엎어져 서럽게 울어대자 옆에 있던 친구들이 그녀를 부축했다.[1] 당시 정 씨는 술을 마시면서 자신은 집에 돌아가기 싫다는 투로 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친구들이 차에 태워 데려준다고 했지만, 정 씨는 차에서도 내리기 싫다고 말하며 고집을 부렸다. 친구들은 정 씨가 하도 인사불성인 탓에 마지 못해 집에 데려다 주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새벽에 정 씨는 원룸이 있는 빌라에 들어갔는데, 이미 그 원룸에는 동거남이 알몸으로 엎어져 자고 있었으며, 정 씨를 부축한 친구는 동거남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정 씨를 원룸에 데려다준 채 바로 빠져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새벽, 남자의 욕설 소리와 뺨 때리는 소리, 머리를 쿵쿵 찧는 듯한 소리가 빌라의 주변 방들을 울리고, 그 소리는 많은 숫자의 인근 주민들에게 노출이 되었다고 한다. 거기다 어떤 주변 주민은 이 소리를 듣고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경찰 참고인 조사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거나, 서로 '누군가가 신고하겠지'라면서 생각한 탓에 결국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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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웃들 중에서도 한 명은 하필이면 본인이 죄를 지어 기소중지가 된 상태였기에, 이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고 자신이 나서서 경찰을 불렀다가 자신이 되려(이 사건과 관계없이 지은 죄 때문에) 경찰에 불려갈까봐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일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1심 재판 결과대로 동거남 김 씨의 소행이었다고 하면 이를 입증할 골든 타임이었지만, 그 골든 타임을 안타깝게 놓쳐버린 셈이다.


3. 범인으로 지목된 동거남, 뒤집어진 재판 결과[편집]


먼저 동거남 김 씨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늦게 일어나고 나니까 정 씨는 이미 방에 없는 상태였으며, 화장실에는 만취한 정 씨가 변기에 구토한 흔적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변기를 청소하고, 어차피 정 씨도 안보이는데 꺼림칙해서 나온 것이 전부라고 말하고 있다. 주민들이 들은 '소음'에 대해서는 자기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씨의 지인은 당시 동거남 김 씨가 집착이 심해 정 씨에게 전화도 많이 걸었다고 하며, 정 씨에게 폭행을 몇 번 가할 정도로 괴롭혔다고 증언했다.


3.1. 당시 방의 상황[편집]


당시 방은 밤에 늦게 술을 마시고 들어온 사람의 집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심지어 변기도 그랬다. 그런데 당시 수사관이 방을 탐색하다가 장롱 안에 이불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불을 만져보니 눅눅하고 꿉꿉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불을 세탁하고 나서 제대로 마르지 않은 듯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보를 듣자마자 정 씨의 모친이 방을 재빨리 확인했는데, 침대 한 쪽이 깨져 있었으며, 유리를 수세미로 박박 닦아 놓은 듯한 흔적, 구석에 놓여져 있는 세제들을 포착했다. 그리고 그 문제의 꿉꿉한 이불도 만졌다고 한다. 다만 자신이 정작 경찰 측의 현장검증에서 같이 있지 못해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서랍장 안의 이불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서 가지고 나온 후 계속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 씨의 모친은 사건이 끝난 수 년 뒤 과학 수사가 발전해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해 이불에 루미놀 테스트를 했으나 안타깝게도 혈흔 반응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정나리의 혈흔이 발견되기는 했는데, 문제는 그게 방문 유리와 침대의 이불 위에 극미량만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또 신발에서도 피해자와 피고인의 혈흔이 극미량 남아 있었다. 그리고 김 씨가 시체 유기를 위해 사체를 차로 끌고 갔을 가능성도 조사했지만 역시 진전은 없었다.


3.2. 사건 익일의 상황, 추가 수사[편집]


초기에는 범인 김 씨에게 혐의가 있다고 보고 과학 수사를 동원하여 살인사체유기 혐의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당시 수사 기관은 김 씨가 전과가 없었기에 우발적인 사건이면 자기가 알아서 술술 자백할 것이라면서 좀 쉽게 생각했다고 한다. 김 씨는 당일 일어난 후 친구들과 팔공산으로 드라이브를 갔다고 진술했기에[2] 해당 친구들도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해당 친구들도 김 씨의 수상한 행동에 대해서는 부정했으나, 그중 한 친구가 말하기를 '갑자기 김 씨가 새벽 6~7시 쯤에 팔공산 드라이브하자고 그러더라, 이건 평소 김 씨의 습관에서 생각해보면 특이한데'라고 해서 팔공산 드라이브를 가자는 행위가 무언가 김 씨 라이프 사이클의 상궤에서 벗어난 듯한 행위라는 귀띔을 했다. 거기다 새벽 6시에 전화라니, 이는 기존에 김 씨가 발언했던 '11시까지 곯아 떨어져 있었다'와 상반되는 증언이다. 그리고 전화가 두 번 왔었는데 한 번은 김 씨 본인의 전화로, 두 번째는 김 씨의 다른 전화번호로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동통신사는 발신 내역만 관리하기에 해당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3.3.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편집]


최후의 수단으로 거짓말탐지기까지 쓰려했는데, 갑자기 김 씨가 조사가 예정된 날에 중국으로 출국해 2심이 벌어질 때까지 귀국하지 않았고, 5년 뒤 변호사 몇 명을 선임해 2심에 임했다.[3]

그런데, 2심은 재판 결과가 뒤집어지면서 김 씨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2심 무죄의 근거로는, 무엇보다도 살인 사건이라면 정 씨의 시신이 발견되어야 할텐데 그런 것도 없고 주민들의 소음을 들은 것이 명확한 증거가 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4], 극미량의 혈흔들은 정나리가 치명상 수준의 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5]

심지어 2심 직전에는 피해자 가족들이 김 씨와 면담을 하기도 했는데, 피해자 모친이 '다 용서할테니 솔직하게 말해줘'라고 울고불고 하였지만 김 씨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수사관이 수사하는 동안 뭔가 마음이 흔들리는 모습을 포착하기는 했는데 끝내 함구했다.

김 씨의 정나리 살해 가능성은 법리적으로 이렇게 종결되었으나, 정나리는 여전히 실종된 상태이다.

이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김 씨를 인터뷰하였다.

"정씨 때문에 내가 얼마나 귀찮게 경찰에 불러가면서 생고생했는지 아느냐. 나도 그 여자 면상이 보고 싶다. 만일 찾으면 욕 좀 하게. 그리고 그때 아버지가 중국에 가서 일이나 배우라고 했기에 중국으로 간거다.[6]

난 지금 이미 결혼해서 가정 꾸리고 살고 있으니, 정 씨의 행방은 수사 기관이 알아서 하라고 해라. 더 이상 그 일은 나와 관련이 없다."

김 씨는 이러한 투로 진술했고, 이후 다시 통화하는데 성공했으나 '이미 끝난 일이고, 나와 상관없는 일인데 왜 자꾸 나에게 물어보냐'라면서 이내 지속적인 통화를 거절했다. 나중에 취재진이 이 통화의 발신지를 찾아가보니 대구 시내 어느 공중전화에서 건 것으로 되어 있었다.


4. 의외의 범행을 당했을 수도 있다?[편집]


사실, 기존의 재판 진행은 '김 씨가 정 씨의 머리를 찧어서 죽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에만 너무 중점을 둔 것이 문제였다. 거기에 머리를 찧는 소리 등으로 인해 세부적으로는 교살 가능성에 대해, 더 넓게는 이 사건 자체가 김 씨로 인해 벌어진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도 배제되어 버렸다.

그래서 사실은 정나리가 (김 씨에게 단순 핍박을 받거나 해서) 원룸에서 나온 뒤에 급작스럽게 제3자에 의해 납치나 범죄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7] 그러나 가장 가능성이 높은 용의자가 있는 상태에서 제3의 용의자를 상정하고 추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또한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시신을 은폐하는 일은 초범일 경우 쉽지 않으므로 오히려 다른 면식범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수정 프로파일러도 역시 정나리가 외부에서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김 씨의 범행 가능성에만 집중하지 말고 정 씨의 행적에도 포커스를 맞췄어야 한다고 지적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나는데, 정씨는 김씨와 동거하기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와는 4년간 연애를 했던 사이였다. 그런데 사귀는 도중에(헤어진 뒤가 아니라) 김씨를 알게되어 갑작스럽게 헤어졌다는 것이다. 김씨의 "정나리씨가 갑자기 나갔다"라는 말이 사실이라 가정했을 때, 정씨가 나가면서 그 전 남자친구에게 연락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전 남자친구의 전화번호도 추적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진은 그 전 남자친구의 전화번호[8]를 어렵사리 수소문했으나, 안타깝게도 세월이 오래 지난 후여서 해당 번호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었다.


5. 사건은 그대로 종결된채로 남는가?[편집]


일단 대구경찰 강력계의 경우 해당 사건은 재판 전후로 해서 검찰로 송치했고, 이미 종결된 사건이라 사건기록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재수사는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유가족들이 이를 알고 대구지방검찰청에 가서 사건기록 조회를 요청했지만, 사건이 종결된데다 피해자 본인의 진술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 거절당했다. 그나마 통지서라도 받은게 위안인데, 불허의 추가적인 사유로 「기록의 공개로 인하여 사건관계인[9]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생명/신체의 안전이나 생활의 평온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음.」「기록의 공개로 인하여 수사방법상의 기밀이 누설되거나 불필요한 새로운 ███ ███ [10]우려가 있음.」가 거론되었다. 더 비극적인건 피의자(로 지목된 인물)의 경우 이러한 기록열람에 있어서 피해자보다 더 자유롭다는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은 이렇게 비판한다.

지금 같은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우리가 할 일은 없으니 당신이 수사의 단서를 새롭게 만들어서 수사를 요청하세요』라고 한다는 것은 국가가 스스로 국가 책무를 저버렸다는 거지요.



6. 마지막 희망, 루이 비통 가방[편집]


사건 종결 이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고 각종 제보를 모집했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와 비슷한 2005년 초 겨울, 피해자가 살던 원룸 600m 거리의 어느 빌라 건물 문 앞[11]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루이 비통 가방을 주워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여인의 제보가 나타났다.

습득자 여인은 당시 새벽까지 밖의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귀가하였고, 자신이 사는 빌라에 키패드를 누르려고 밑을 봤는데, 문 앞에 웬 뜬금없는 새 것이나 다름 없는 상태인 명품 가방이 있어 횡재했다는 느낌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가방에 화장품 몇 개 빼고는 원래 주인을 특정할 만한 신분증이나 영수증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외에도 뭔가 잡동사니들이 많았지만 그것에 대한 기억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습득자는 명품 가방이 버려져 있는 이유에 대해 '그거 사실 누군가가 쓰다가 짝퉁이라 버린거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요즘이야 한국 명품 시장이 커지고 중고 거래도 활성화 되어서 명품이 옛날에 비해 많이 대중화 되었어도, 당시에는 정말 부자가 아닌 이상 명품을 사는 일이 거의 없을정도로 명품이 드문 시절이었고 지금이나 예전이나 그런 고가의 명품 가방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분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즉 그런 비싼 물건을 길에 버릴 이유가 없는것.

다만 가족들이 실종자 전단에서 증언하는 루이 비통 가방은 그냥 루이 비통 가방이라고만 언급되어 있어, 그 가방이 실종자의 가방인지의 여부는 불확실하다. (가족들도 실종자가 루이 비통 가방을 들고다녔다는 것만 알았지, 어떤 제품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버려진 가방을 감정 해보니, 진품이었으며, 2003년에 생산된 한정품으로 주로 20~30대 고객이 선호하는 제품이었다한다. 그런 고가의 진품[12]이다 보니 싫증 났다고 버릴 제품은 아니었다.

이수정 프로파일러도 이 가방에 대해 "무엇인가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고서는 가방이 그런 위치에서 발견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라고 거든다. 또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해당 가방이 정씨의 것임이 확실하다고 하면, 사망하고 시신이 유기・이동되는 과정에서 버려졌을 수도 있고, 그 유전자가 혹시라도 나온다고 하면 굉장히 중요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이 가방은 2019년 대구지방경찰 수사계에 과학 수사 증거물로 이관되었으므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7. 기타[편집]


남겨진 유족들은 꿈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피해자를 본다고 한다. 어머니는 가족 중 한명이 수술받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꿈에서 해당 가족이 수술받을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하며, 남동생은 군에 복무할 때 꿈에 피해자가 나타났으며, 언니의 꿈에 나타난 피해자의 모습은 묶여 있으면서 고통받는 듯한 비참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8. 관련 문서 및 관련 링크[편집]


  • 그것이 알고싶다/2019년 방영 목록#1160
  • 개괄기사[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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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때 정 씨가 취한 채로 우는 소리를 인근 주민이 들었다.[2] 경찰은 이 '팔공산 드라이브'를 김 씨의 알리바이 맞추기로 의심했다.[3] 당시 형사는 이에 대해 '중국에서 어떻게 돈을 벌어 오더니 제대로 2심에 임할 작정인가 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4] 당시 현장 소음 검증에 동행했던 판사도 발 소리가 잘 들렸다고는 하지만, 범죄 현장에서 나는 소리인지 특정할 수 없었다고 한다.[5] 이 부분에 대하여 피해자가 목을 졸려서 살해 당했을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라는 맹점이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애당초 김 씨는 교살이 아니라 "피해자의 머리를 잡고서 벽에 계속 찧었다"는 내용으로 기소되었고, 기소하지도 않은 내용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목을 졸라 죽였는지 여부는 재판에서 판단되어야 할 대상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렇게 판단하면 재판부의 월권이 된다.[6] 즉 자신의 중국행은 단순히 취업 목적이었고 사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는 뜻.[7] 그렇다면 앞서 말한 극미량의 혈흔들은 정나리가 원룸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동거남 김 씨와 다퉈서 단순히 다친 흔적에 불과했을 가능성도 있다.[8] 방영 전 제보화면에서 011-****-0890을 쓰던 친구를 찾았는데 바로 전 남자친구일 확률이 높다.[9] 피의자도 포함되는듯하다.[10]공소장 장면에서 이 부분만 유족의 손가락에 의해 가려져있는데, 문맥상 '범죄가 발생될'로 추정.[11] 즉 습득자가 당시 살던 장소.[12] 2005년 당시에 그 제품의 중고가는 100만원 이상이었다 한다.[13] 오마이뉴스의 기사이며 2011년에 탈고된 기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