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헌팅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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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성향
3. 단장으로서의 행보
3.1. 드래프트
3.2. 트레이드와 FA
3.2.1. 2008년
3.2.2. 2009년
3.2.3. 2010년
3.2.4. 2011년
3.2.5. 2012년
3.2.6. 2013년
3.2.7. 2014년
3.2.8. 2015년
3.3. 주요 FA계약과 장기계약
3.3.1. 2007년~2011년
3.3.2. 2012년 이후
3.3.3. 헌팅턴의 FA 성과
3.4. 해외 스카우트
3.5. 정리
4. 몰락
5. 이모저모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의 야구 경영인. 2007년부터 13시즌간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단장을 역임하며 이름을 알렸다.

5년의 리빌딩을 통해 20년 연속 승률 5할 미만을 기록하던 피츠버그 파이리츠를[1] 3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올렸으나, 2016년부터 팀 성적이 꺾이고 2018년 게릿 콜 트레이드 실패, 크리스 아처 트레이드 잔혹사[2], 펠리페 바스케스 성범죄 연루 사건 등으로 인해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다.


2. 성향[편집]


세이버 매트릭스에 대한 조예가 깊다. 1990년대 머니볼과는 별도로 존재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존 하트 단장의 데이터 팀[3]으로 활동했다. 2007년 취임 당시 인터뷰에서는 "선수를 평가하고 육성하는데 있어 전통적인 방식보다 더 다양한 방법을 쓰고싶다." 라고 밝히면서 'wOBA, VORP, PRM' 등 을 언급했다. 이에 따라서 수비 시프트 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진보적인 성향이다. 클린트 허들감독을 영입한 것도 자신의 성향과 맞을 것 같아서 였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허들은 첫 계약기간 3년중에서 초기 2년은 수비시프트 같은거 별로 안 썼다. 이론적으로는 알면서 실전에서는 전통적 방법을 쓰는 타입이었는데 마지막 년차에 '이러다 망함'이라는 내용의 대화를 헌팅턴 단장과 한 다음부터 수비시프트를 쓰게 된다. 이게 2013년 이야기[4]

트레이드와 대형 FA계약을 통한 전력보강 보다는 스몰마켓팀 답게 드래프트와 유망주 장기계약 , 단기 FA계약[5]을 중심으로 팀을 운영하는 스타일이다. 로우리스크 - 하이리턴의 복권긁기식 트레이드로 성과를 내왔으며, 빅딜형 트레이드 유망주 털어주기 와는 거리가 멀었다.

단 2018년 야심차게 시도한 게릿 콜 트레이드와 크리스 아처 트레이드는 많은 유망주들이 움직인 빅딜이었고, 대차게 망했다(...)


3. 단장으로서의 행보[편집]


  • 스몰마켓에 최적화된 장기적 관점을 가진 단장
  • 저평가된 선수를[6] 영입하는 탁월한 안목
  • 일부 선수들은 나무위키에 페이지가 없거나, 있더라도 내용이 빈약하다. 해당 선수의 자세한 성적을 알고 싶다면 페이지가 없는 선수는 본 항목에 있는 영문 선수명을, 페이지가 있는 선수는 해당 선수의 페이지에 있는 영문 선수명을 복사해서 레퍼런스팬그래프에서 검색하면 된다.


3.1. 드래프트[편집]


전임단장 데이브 리틀필드의 드래프트 만행을 잠깐 소개 하자면[7]
  • 2002년 유망주 넘쳐나기로 유명했던 드래프트에서 전체 1픽 지명권이 있었다. 여기서 B.J. 업튼, 잭 그레인키, 프린스 필더, 스캇 카즈미어, 닉 스위셔, 콜 해멀스 거르고 브라이언 벌링턴(Bryan Bullington)[8]을 지명.
  • 2006년 드래프트 때 커쇼, 린스컴, 슈어저, 이안 케네디 다 거르고 전체 4픽으로 뽑은게 대학 통산 성적이 9승 - 11패 4.74ERA에 불과 했던 브래드 링컨(Brad Lincoln)이다.
  • 2007년 드래프트때 맷 위터스, 범가너, 헤이워드 다 거르고 전체 4픽으로 뽑은게 4년간 선발 불펜 왔다갔하면서 1승 - 1패 2.96ERA가 전부였던 대니얼 모스코스(Daniel Moskos)

헌팅턴 부임 후 1라운드 픽 현황 + 주요 드래프트는 다음과 같다.
  • 2008년
  • 2009년
    • 토니 산체스(Tony Sanchez) (C / 전체 4픽) // 2010 BA 유망주 순위 : 79위[9]
  • 2010년
  • 2011년
    • 게릿 콜 (RPH / 전체 1픽) // 2015 올스타
    • 타일러 글래스노우 (RHP / 전체 152 픽) // 2015 BA 유망주 순위 : 16위 (투수 2위)
    • 조시 벨 (1B // 전체 61픽, 2라운드 1픽) // 2015 BA 유망주 순위 : 64위
  • 2012년
    • 마크 어펠(Mark Appel) (RPH / 전체 8픽) // 계약 불발[10] / 2013 전체 1픽으로 휴스턴에 입단
  • 2013년
    • 오스틴 메도우스[11] (OF / 전체 9픽) // 2015 BA 유망주 순위 : 41위
    • 리즈 맥과이어 (C / 전체 14픽) // 2015 BA 유망주 순위 : 97 위(포수 7위)
  • 2014년
  • 2015년

합리적으로 뽑고 잘 키운다. 00 거르고 00식의[12] 흑역사가 없다.[13] 합리적인 아마추어 평가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까지 토니 산체스 정도를 얘는 안될거야... 제외하면 대부분이 성공적인 빅리거가 되었거나 마이너에서 준수한 성적으로 콜업을 대기중이다.

이 과정에서 구단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 투자했다. 전임 단장 데이브 리틀필드가 재임기간 동안 재능을 중시하기보다는 계약이 얼마나 용이한가에 중점을 두고 드래프트를 시행해 팜을 박살내 버렸다. 반대로 헌팅턴은 많은 계약금을 요구할 것이 우려되는 최고 수준 유망주들을[14] 드래프트에서 지명하기 시작했다. 2008년 돈 때문에 못 뽑은 포지가 샌프란시스코의 2010년 우승을 이끈는 걸 보고 빡쳤을지도 게릿 콜, 페드로 알바레즈, 조쉬 해리슨은 이미 포텐이 터졌고, 2010년 이후의 드래프티들이 2016~2017 시즌에 콜업되었다.


3.2. 트레이드와 FA[편집]


헌팅턴 부임 후, 2007년말 ~ 2015년 까지의 주요 트레이드와 FA 계약을 서술한 항목.


3.2.1. 2008년[편집]


2004년 NL신인왕, 올스타2 회 출장 기록의 슈퍼스타인 제이슨 베이를 트레이드 시키는 파격행보를 보인다. 트레이드 직전 시즌 베이는 하락세를 보였기 때문. 이 과정에서 보스턴의 매니 라미레즈가 다저스로 이적했던 3각 트레이드로 헌팅턴의 트레이드 중 가장 잘 알려진 트레이드이다. 이때 받아온 선수들이 브랜든 모스(Brandon Moss), 앤디 라로시(Andy LaRoche),[15] 크레이그 핸슨(Craig Hansen), 06년 다저스의 1픽 이었던 브라이언 모리스 (Bryan Morris).

보스턴으로 간 제이슨 베이는 2009년 커리어 하이인 36홈런을 기록하는 등 보스턴에서 1.5시즌 동안 좋은 활약을 펼쳤다. 보스턴은 연장계약을 제의했으나 다소 미온적인 태도였고, 베이는 메츠로 가서 커리어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피츠버그가 받아온 브랜던 모스[16], 앤디 라로시, 브라이언 모리스는 기대에 못 미쳤다. 다저스에 간 매니 라미레즈는 약물이 적발되면서 다저스 커리어가 끝나버리지만 일단 나왔을 때는 잘했고, 매니를 데려오면서 관중이 증가하는 등 야구 외적인 이득을 본 것을 감안하면 이득을 본 셈이다. 초대형 트레이드에서 보스턴, 다저스는 지출에 비해 많은 이득을 올린 반면 피츠버그는 남은게 없었던 참혹한 결과를 거뒀다.

280타율에 20+홈런은 꾸준히 해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던 우익수 제이비어 네이디(Xavier Nady)도 잡지 않고 양키스로 트레이드. 암흑기 리드오프 호세 타바타(Jose Tabata)를 받아온다.

2008년 베이와 네이디의 이적을 아쉬워하며 팬이 만든 영상
이 두번의 트레이드 당시 베이와 네이디가 팀의 중심이자 암흑기를 끝내줄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팬들은 멘붕했다.

김병현과 계약했으나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주자 방출했다.

호세 바티스타를 토론토로 트레이드 했다. 마이너 무명 포수와 바꿧다. 지금 생각 해보면 충공깽이지만 바티는 20라운더로 지명순위도 낮았고 10년동안 파워 포텐을 못 터뜨렸다. 파이어리츠 마이너에서만 8년을 보냈으니 기다릴 만큼 기다려줬다고 볼 수 있다.

룰5 드래프트를 통해 데블레이스에서 에반 믹[17]을 데려왔으나 시즌 중 지명할당행. 다시 마이너 계약을 맺고 절치 부심해 2010년 올스타에도 선정되는 등 불펜 에이스 역할을 한다.


3.2.2. 2009년[편집]


2008년 골든 글러브 위너이자 올스타 중견수 네이트 매클라우스(Nate McLouth)를 애틀랜타에 트레이드했고, 반대급부로 제프 로크, 찰리 모튼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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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파이리츠의 황금의 외야진.[18]
이 선수들은 2008년 피츠버그의 암흑기를 끝내줄 것이라 확신했던 주축 선수들인데, 맨 오른쪽 더밋 빼고 다 팔았다.[19] 그 여파로 파이어리츠는 2000년대 최저관중을 기록했다. 제이슨 베이, 네디에 이어 매클라우스까지 주축 선수를 거리낌 없이 트레이드 하는 모습에 우려를 표명한 언론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매클라우스도 파이어리츠를 나가자마자 폭망했다.

수비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타격은 좋았던 애덤 라로시[20]를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하면서, 유망주 헌터 스트릭랜드를 받아왔다. 하지만 파이리츠에서는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샌프란시스코 이적 후 임팩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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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핸러핸
KBO 한화에서 잠깐 뛰다가 방출된 외야수 나이저 모건[21]이 이때 네이트 매클라우스에게 중견수 포지션 경쟁에서 밀려 워싱턴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 댓가로 2011, 2012시즌 파이어리츠의 수호신으로 활약한 클로저 조엘 핸러핸(Joel Hanrahan)[22]을 받아 왔다. 참고로 핸러핸은 체격과 강한 인상 + 97마일의 포심 평속 때문에 더 해머(The Hammer)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2011~12년 전성기때는 그가 클로저로 등장하는 9이닝을 해머 타임(Hammer Time)이라고 불렀다. 포심과 슬라이더가 엄청났기 때문에 긁히는 날은 건드릴 수도 없었다.

It's Hammer Time
참고로 영상 BGM은 MC 해머의 전설적인 명곡인 U Can't Touch This. 가사도 그렇고 해머도 그렇고 핸러핸과 적절하게 잘 맞는다.

3.2.3. 2010년[편집]


닐 워커, 페드로 알바레즈, 호세 타바타의 제대로 된 루키 시즌

각각 1년 FA로 계약한 옥타비오 도텔을 다저스로 하비에르 로페스(Javier López)를 샌프란시스코로 시즌 중 트레이드 했다. 이때 받아온 선수가 현재 파이어리츠의 외야 백업인 앤드루 램보(Andrew Lambo) 와 암흑기때 이닝은 나름 먹어주던 제임스 맥도널드(James McDonald)로, 저평가된 FA 단기계약 <=> 트레이드 카드로 써먹기를 이때부터 써먹기 시작했다. 성공적인 트레이드는 아니었지만 핸러핸 영입으로 시작된 헌팅턴의 강점인 불펜 투수 보는 능력이 이때 부터 발휘된듯 하다. 로페스는 이때부터 현재까지 샌프 불펜의 든든한 한 좌완 불펜이며 도텔도 욕먹은 거에 비해서 성적은 괜찮은 편.

한편 양키스에서 웨이버 공시된 박찬호를 클레임을 걸어 영입했다. 파이리츠 이적 후 28.1이닝 / 3.49 ERA로 37세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나름 회춘모드 였다. 참고로 이때 피츠버그에서 구원승으로 2승을 더 올리며, 아시아 투수 역대 최다승 신기록(124승)을 경신했다.


3.2.4. 2011년[편집]


2014년 까지 3년 연장계약을 받았다. 3년안에 성적을 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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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그릴리
2011~2013년 핸러핸과 함께 불펜 에이스로 활약한 제이슨 그릴리(Jason Grilli)를 이때 데려왔다. 필리스에서 방출된걸 싸게 주워와서 잘 써먹은 편.

야심차게 룰5 드래프트 전체 1픽으로 유격수 조시 로드리게스(Josh Rodriguez)를 데려 왔다. 헌팅턴이 "다른 룰5 드래프티들과는 다르다. 그는 다를 것이다."라고 했지만 다르지 않았다. 몇 게임 못나오고 4월에 DFA행.

리빌딩의 성과가 나오고 있던 시점이이었다. 선발진의 뜻밖의 활약 + 클로저 핸러핸의 분투로 전반기 54승 52패로 5할을 넘겼지만, 후반기 DTD하면서 72승 90패로 시즌 마감. 이 때문에 다음시즌 도약을 위한 로스터 정리가 시즌 중 무브의 대부분이었다.


3.2.5. 2012년[편집]


클린트 허들 감독이 시즌을 운용했던 첫 해이자, 8월 1일까지 60승 44패 +16의 승률 마진을 기록하다 DTD를 했던 해여서 헌팅턴의 시즌 중 무브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해이다. 19년의 암흑기를 끝낼 수 있는 절호의 시즌이었지만 헌팅턴의 무브는 소극적이었다.

A.J 버넷 이외에는 이렇다 할 선발이 없었음에도 영입한 투수는 프론트라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좌완 선발 완디 로드리게스(Wandy Rodríguez)였고, 수준급 마무리 핸러핸을 받쳐줄 솔리드한 불펜이 필요했으나 영입한 투수는 퇴물 불펜 채드 퀄스(Chad Qualls)였다. 이 당시 매물로 나온 수준급 선발로 잭 그레인키아니발 산체스가 있었는데, 그레인키는 팀 재정상 무리라 쳐도 산체스는 비벼볼 만 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적 후 로드리게스는 5승4패 3.72(이적 후 bWAR 0.7)로 그냥저냥 한 정도였고, 퀄스는 6점대 ERA로 폭망해서 이후 양키스의 케이시 맥기히(Casey McGehee)와 트레이드 되었다.

타선은 준수한 파워에 비해 정확도나 참을성이 너무 떨어져서 팀 홈런 12위지만팀 타율은 25위, wOBA는 25위에 불과했으며, 이 때문에 컨택이 되거나 눈야구를 좀 하는 타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기준에 정확하게 들어 맞는 헌터 펜스가 매물로 나와 있었지만, 정작 영입한 선수는 기대치가 없다시피 한 개비 산체스(Gaby Sánchez)와 트래비스 스나이더(Travis Snider)에 불과했다.

유격수 야마이코 나바로[23]가 트레이드되어 오기도 했다. 그러나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어 철창신세 크리. 워커의 부상 공백을 메꾸러 잠깐 올라왔으나 별 다른 활약 없이 볼티모어로 트레이드 됐다.


  • 윈나우 지지측
    • 8월 1일까지 승률마진 +16이던 팀을 포스트 시즌에 못 올린 점에서 단장과 감독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상기된 내용에 나와 있듯이 시즌 중 전력보강에도 매우 소극적이었다. 거기에 영입한 선수들 모두 부진한 성적으로 2012시즌 DTD를 가속화 시켰다.
  • 윈나우 반대측
    • 애초에 선발 로테이션이 리그 하위권 이었던[24] 파이리츠 였기에 DTD는 피할 수 없었따는 반론도 있다. 특히나 단기간에 보강하기 가장 어려운 전력이 선발 로테이션이라는 점을 감안해 봤을때 단장과 감독의 책임으로만 한정지을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 수준급 유망주 였던 스탈링 마르테, 제임슨 타이욘, 조시 벨[25]을 모두 아꼈다.
    •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육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스몰마켓의 특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도 합리적인 무브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26]
    • 러시 했다가 망한 사례가 최근에 등장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2014년 항목 참조.
















"왜 한물갔다고 평가 받던 선수들이 파이어리츠에만 오면 반등 한다고 생각하는가?"

9월, 파이어리츠의 감독 클린트 허들에게 한 기자가 했던 질문



  • OUT
    • 2008년: 제이슨 베이, 재이비어 네이디[27]
    • 2009년: 네이트 매클라우스, 애덤 라로시



  • 2012년
    • A.J 버넷 트레이드 영입: 잔여 계약 2년 $33M, 양키스에서 $20M을 보조하므로 피츠버그에서 쓰는 돈은 2년 $13M이다.
    • 앤드류 맥커친 6년 $51.5M: 헌팅턴 부임 후 최초의 장기 계약이다. 맥선장을 중심으로 윈나우를 나서겠다는 의중이 담긴 계약.
    • 클린트 바메스(Clint Barmes) 2년 $10.5M: 조디 머서가 자리잡기 전에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영입한 베테랑 유격수. 타격은 영 좋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고, 2014년부터는 더 싼 금액에 재계약하며 백업으로 피츠버그에 남았다.
    • 에릭 베다르 1년 $4.5M: 버넷이 스프링 트레이닝 도중에 부상을 입으면서 무려 개막전 선발로 낙점되었다. 직전 시즌에 부상 복귀 후 페이스가 나쁘지 않아 싼 맛에 긁어왔지만, 성적은 별로였고 재계약하지 않았다.
    • 네이트 매클라우스 1년 $1.75M: 피츠버그를 떠난 후 애틀랜타에서 폭망한 매클라우스를 백업으로 데려왔다. 다만 하향세가 너무 커서 여기서도 반등하지 못하고 두 달만에 DFA되었다.
  • 2013년
    • 러셀 마틴 2년 $17M
    • 프란시스코 리리아노 1년 $1M(+ 1년 $5M 베스팅 옵션): 원래 2년 $13M에 양자간 합의가 이뤄졌었는데, 그 직후 리리아노가 고국에 돌아가서 애들과 놀다가 오른쪽 팔이 부러지는 황당한 부상을 입으며 정식 계약이 대폭 수정된다. 그나마 오른팔을 다친거라 계약 자체를 물리지는 않았다.
    • 조너선 산체스 1년 $1.375M: 한때 샌프의 에이스였지만 직전 시즌을 망친걸 피츠버그가 선발 뎁스도 채울 겸 한번 주워나 봤는데, 5경기에서 13.2이닝 18실점이라는 기가막힌 성적을 찍고 방출되었다.
    • 브랜든 인지(Brandon Inge) 1년 $1.25M: 디트로이트에서 오래 활약한 베테랑 3루수. 나이가 나이라서 반등은 어렵고 적당히 내야 유틸리티 백업 용도로 영입했다. 8월 1일에 방출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 2014년
  • 2015년





























[1] 20년 연속 루징시리즈를 기록한 팀은 현재까지도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유일하다.[2] 이 때 오스틴 메도우스, 타일러 글래스나우, 셰인 바즈가 반대급부로 갔는데 세 명 다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포텐이 터졌다. 게다가 아처마저 얼마 있지 않아서 탬파베이로 다시 갔다.[3] 이 데이터 팀에서 5명의 메이저리그 단장이 나왔다. 가장 유명할 전 LA 다저스 단장 폴 디포데스타, 존 하트의 후임이었고 이후 토론토 블루제이스사장이 되는 마크 샤파이로, 샌디에고 파드레스 단장이었던 조시 번즈, 마크 샤파이로의 후임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단장과 사장을 역임하는 크리스 안토네티.[4] 2011년 허들은 수비시프트를 87번 사용했고, 2012년에는 105번 사용했다. 그런데 2013년에는 이 횟수가 494번으로 5배 가량 증가한다.[5] 파이어리츠는 MLB 내에서도 알아주는 스몰마켓이므로 대형 FA는 남의 이야기며 취임 당시 뎁스와 팜도 엉망이었기 때문에 트레이드 또한 어려웠다.[6] 저평가를 넘어서 거의 퇴물급 선수들이 파이어리츠에 온 뒤에는 환골탈태 하는 수준.[7] 재임기간에 뽑은 매커친과 닐 워커로도 실드가 안 쳐질 정도[8] 선발로 세 게임나오고 방출. 이후 일본으로 넘어가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수년간 에이스로 활약했다. 현 오릭스 소속.[9] 기대치에 비해 6년간 마이너 성적이 너무 평범해 기대를 접은 팬들도 다수[10] 당시 에이전트는 스캇 보라스로 계약금 문제로 밝혀짐[11] 마크 어펠의 유산[12] 이 시리즈의 전설로는 2004년 샌디애고의 저스틴 벌랜더 거르고 맷 부시[13] 2008 버스터 포지 거르고 페드로 알바레즈의 경우는 돈 때문에(당시 포지는 역대 최고액인 6.4m에 사인했다.), 2010 맷 하비 거르고 타이욘의 경우 당시 하비는 평가가 낮았다.[14] 헌팅턴은 2011년 한해에만 종전 '단일 드래프트에서 단일 구단 역대 최고 지출인 1,700만 달러를 쏟아부으며, 이듬해 사무국이 구단별 드래프트 계약금 제한 규정을 만들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15] 애덤 라로시의 형제다.[16] 모스는 이후 5년이 지난 2012년에 오클랜드에서 각성한다.[17] 2015년에 기아 타이거즈에서 '에반'이라는 등록명으로 뛴 그 선수 맞다.[18] 왼쪽부터 우익수 네이디, 좌익수 베이, 중견수 매클라우스. 참고로 맨 오른쪽은 포수 라이언 더밋(Ryan Doumit)[19]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더밋은 공수 모두 하자가 있는 선수인지라 못 팔았다. 때문에 2013년 러셀 마틴을 영입하기 전까지 포수 자원은 파이리츠의 최대 문제점이었다. 팬들이 전임자 제이슨 켄달이 5살만 젊었으면 하는 바램을 내비쳤을 정도.[20] 라로시는 이후 내츠에서 2012년 33홈런 / fWAR 3.3 으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21] T 세레모니로 유명한 그분 맞다.[22] 11, 12시즌 76세이브.[23] 나중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날아다닌 그 선수 맞다.[24] 에이스였던 버넷의 성적조차 202.1이닝 / 3.51 ERA 였다.[25] 각각 BA TOP100 PROSPECTS 순위 73위, 15위, 60위 / 타이욘은 투수부문 1위다.[26] 당시 모든 팬의 염원이었던 펜스와 그레인키가 있었다면 염원하던 포스트시즌은 가능했을지 몰라도 벅스의 팜은 무너질 것이다.[27] 2009년에 반년 렌탈로 데려와서 다시금 쏠쏠히 써먹기도 했다.